[시와 禪, 禪과 시]
일생에 마음 아픈 일 얼마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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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택 / 2023 년 10 월 [통권 제126호] / / 작성일23-10-05 10:50 / 조회3,121회 / 댓글0건본문
친구들과 운문사 ‘솔바람길’ 산행에 나섭니다. 거의 평지나 다름없어 산행이라기보다는 산책이 더 어울리는 길입니다. 이 길에는 소나무, 전나무가 많아서 은은한 송진 냄새가 공기를 청량하게 해 줍니다. 솔바람길, 이름에 어울리는 길입니다.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힘을 키우는 모든 것을 기쁨이라고 부르고, 힘을 감소시키는 모든 것을 슬픔이라고 부른다.” 스피노자식으로 말하자면, 우리에게 산행은 언제나 기쁨입니다.
운문사 솔바람길
꽃이 시드는 정취가 우리들의 뒷모습에서 피어납니다. 걷는 길 내내 바로 옆으로 운문천 맑은 물이 흐릅니다.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물소리, 벌레 소리, 매미 소리, 새소리, 발걸음 소리… 작은 소리가 지닌 매혹적인 아름다움에 집중하면 우리는 언제나 가뿐해집니다.
쉼터가 나타나면 잠시 앉아 호흡을 고르며 간식을 나누어 먹기도 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다람쥐처럼 싹싹 지나갑니다. 정상에 오른다고, 혹은 더 빨리 걷는다고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젊음은 부럽습니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거의 한 달에 한 번씩은 사리암에 올랐습니다. 주차장에서 올려다보면 저 멀리 사리암이 보입니다. 보는 건 쉽지만 저기까지 수많은 계단을 올라가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는 이제 정상은 커녕 70% 능선에 있는 암자에도 잘 올라가지 않습니다. 저 멀리 사리암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젊은 시절이 생각나서 인생무상을 느낍니다. 1,400년 전, 당나라 시인 유희이劉希夷(651~679?)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해마다 피는 꽃은 서로 같지만
해마다 보는 사람은 같지가 않네.(주1)
이 두 마디는 인생무상人生無常을 절묘하게 표현했습니다. 가버린 청춘을 생각하며 백발을
서러워하는 마음을 이보다 더 절절히 그려낸 시구가 또 있을까요. 생명의 궁극은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이 두 마디는 듣는 순간 누구나, 아~ 정말, 그 절묘한 단어 배치와 운율에 무릎을 치며 찬탄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동년배 시인이자 외삼촌인 송지문宋之問(656?~712)도 이 두 구절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아직 발표하지 않았으니 자기에게 넘겨 달라고 애걸했습니다. 워낙 간절하게 부탁하니 유희이도 마지못해 허락했습니다. 그렇지만 유희이도 어찌 이 만고의 절창을 남에게 넘겨주고 싶었겠습니까. 결국 자신의 이름으로 시를 발표하고 맙니다. 이에 송지문은 화가 나서 하인들에게 명하여 조카(유희이)를 흙 가마니로 덮어 압사시켰다고 합니다.(주2)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겠지만, 좋은 시구詩句는 보석과도 같아서 때때로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시기와 질투로 목숨을 빼앗기도 합니다.
운문천 일대에는 석회암이 많아서 그게 녹아 물빛이 초록색으로 보이는 곳도 있습니다. 물빛이 너무 맑고 아름다워서 모든 생각이 사라지는 듯합니다. 저 물빛의 아름다움은 무한히 긴 세월의 내부를 보여주고, 우리는 물속에서 세월을 응시합니다.
운문사 비구니 승가대학
내려오는 길에 운문사에 들립니다. 예전에 운문사 채마밭이었던 자리에 지금은 주차장과 정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운문사에는 비구니 승가대학이 있어서 학승이 200명 이상 재학 중입니다. 정갈한 채마밭과 울력하는 비구니 스님들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습니다. 농사일이 얼마나 많았으면 학승들이 운문사 승가대학을 ‘농대’라고 불렀겠습니까.
불이문不二門 안쪽은 비구니들의 강원과 요사채가 있습니다. 운문사 승가대학의 정원은 한 학년에 60명 정도이지만 졸업은 절반 정도만 합니다. 승가대의 규율이 얼마나 엄한지 화엄반(4학년)은 임금님 행세를 합니다. “운문사 화엄반은 군수하고도 안 바꾼다.”라는 말이 학승들 사이에서 내려옵니다. 치문반(1학년)은 마치 논산훈련소 훈련병과 같은 생활을 견뎌내야 합니다.
새벽 2시 50분경에 일어나 멀리 떨어진 화장실에 200명이 한꺼번에 가야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힘든 생활인지. 그런 절차를 거쳐서 3시 20분, 그 유명한 운문사 새벽예불이 시작되는 겁니다.
스님들은 승가대학에서 불법과 함께 인간의 깊숙한 내면을 응시하게 됩니다. 일거수일투족이 선배들의 눈으로 평가되고 저녁에는 집합과 점호가 이어집니다. 학승들의 나이는 스무 살 남짓부터 쉰 살까지 다양하지만 진한 동료애가 저절로 생겨납니다. 이렇게 해서 ‘잘난’ 때를 벗어야 비로소 한 사람의 비구니 스님이 되는 것입니다.
풍번문답風幡問答
불이문 입구에 서 있는 깃발 게양대를 보며 1,300년 전에 있었던 승려들의 문답을 생각합니다. 홍인의 곁을 떠나 몇 년간 숨어서 때를 기다리고 있다가 광둥 시내에 있는 법성사로 나온 혜능(638∼713)의 첫 문답입니다.
어느 날 바야흐로 경을 강론하는데, 거센 비바람이 일어 깃발이 펄럭이니, 법사가 대중에게 물었다.
“바람이 움직이는가, 깃발이 움직이는가?”
이에, 어떤 이는 바람이 움직인다, 하고, 어떤 이는 깃발이 움직인다, 하여 제각기 다투다가 강주講主에게 와서 증명해 주기를 바랐는데, 강주가 판단치 못하고 도리어 행자(혜능)에게 미루니 행자가 말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강주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무엇이 움직이는가?”
행자가 대답했다.
“그대들의 마음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입니다.”(주3)
움직이는 것은 바람도 아니고 깃발도 아니며 바로 그대들의 마음이라는 혜능의 한마디는 듣는 이를 깜짝 놀라게 합니다. 이 한마디는 문자나 경전과 같은 학문적인 지식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혜능은 자신의 힘으로 일상생활이 지닌 심오한 의미를 그 근원까지 파헤쳐 내려간 것입니다.
일상생활에도 진리가 있고 가치가 있다고 하는 중국 선禪의 주장은 바로 혜능의 풍번문답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풍번문답이 역사적 사실인지 어떤지는 이미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주4) 풍번문답은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궁극적인 진리를 거침없이 시원스럽게 꿰뚫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풍번문답은 비록 여러 번 들었다 할지라도 처음 듣는 것같이 신선하고 새로운 맛이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들을 때 뭔가 알 것 같았던 풍번문답도 가만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심오한 혜능의 풍번문답보다 혜능의 제자 신회(670~762)의 부탁으로 혜능의 비문을 쓴 왕유(699~761)의 시는 훨씬 편안하게 다가옵니다. 왕유는 북종 계통의 『능가사자기』 편자인 정각(683~750?)의 비문도 썼으니 남종과 북종을 막론하고 선에 대한 그의 관심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젊었던 얼굴 어느새 늙어 이가 흔들리고
잠깐 사이 다박머리 백발이 되었네.
일생에 마음 아픈 일 얼마이던가
불도가 아니었다면 어디서 삭였을까.(주5)
왕유는 시도 잘 쓰고, 글씨, 그림은 물론 비파 연주에도 탁월한 재능이 있었습니다. 22세에 진사 장원 급제하고 벼슬길에 나갔으나 평생 좌천과 복귀를 거듭하며 인생무상과 허무함을 뼈저리게 체험합니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었고, 32세에는 사랑하는 아내와도 사별했지만, 평생 재혼하지 않고 홀로 살았습니다. 아내가 죽자 장안 부근 종남산 아래에 있는 망천의 버려진 별장을 사서 산수에 마음을 맡기며 수많은 명시를 남겼습니다. 그 별장은 원래 유희이의 외삼촌 송지문의 별장이었습니다.
「탄백발歎白髮」은 허무한 자신의 인생을 탄식하면서 불교에서 비롯되는 깊은 울림과 맛을 지니고 있어서 불가사의한 여운을 남겨줍니다. 불교는 왕유의 시와 인생 전체에 내면적인 진실성을 더해 주었습니다.
왕유는 매일 십여 명의 스님들에게 공양을 대접하며 담소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습니다. 방안에는 아무것도 없고, 다만 찻잔과 약탕기, 그리고 경전을 놓는 책상과 새끼줄로 엮은 의자뿐이었습니다.(주6)
운문사 경내에서 많은 나무를 만났습니다. 특이하게 흰 꽃이 피는 배롱나무도 보았고, 잎사귀가 널찍한 후박나무도 보았죠. 꼬리진달래도 보았고, 나무가 통째로 화석이 된 규화목도 보았습니다. 보기 드문 벚나무 고목도 만났지만 만세루萬歲樓 앞의 처진 소나무가 압권입니다. 수령 500년,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는 예전보다 더 생생해진 듯합니다. 처진 소나무 앞 만세루 마루에 앉아서 운문사의 바람을 맞아보는 것은 호사입니다. 이런 풍류는 사라져 가고 있지만 언젠가 부활할 날도 있지 않겠어요.
오늘 하루, 인생무상과 백발을 음미하면서 12,000보를 걸었습니다.
<각주>
1) 劉希夷(651~680?), 「代悲白頭翁」(『唐詩選』),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
2) 韋絢, 『賓客嘉話錄』, “劉希夷詩曰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 其舅宋之問苦愛此兩句 知其未示人 懇乞 許而不與 之問怒 以土袋壓殺之.”
3) 『祖堂集』(952), 第三十三祖惠能和尙條, “有一日正講經風雨猛動見其幡動 法師問衆風動也幡動也 一个云風動 一个云幡動 各自相爭 就講主證明 講主斷不得 卻請行者斷 行者云 不是風動 不是幡動 講主云 是什摩物動 行者云 仁者自心動.”
4) 『六祖壇經』에는 분류에 따라 3종부터 30종까지 다양한 판본이 있는데, 가장 오래되고 혜능의 본뜻에 근접한 판본으로 평가받는 돈황본과 신회神會의 부탁으로 왕유王維가 작성한 『육조능선사비명六祖能禪師碑銘』에는 ‘풍번문답’이 적혀 있지 않다.
5) 『全唐詩』 : 王維, 歎白髮, “宿昔朱顔成暮齒 須臾白髮變垂髫 一生幾許傷心事 不向空門何處銷.”
6) 『舊唐書』, 列傳 王維傳, “在京師日飯十數名僧 以元談爲樂齋中無所有 唯茶鐺葯臼經案繩床而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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