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천태학과 유학, 칸트 철학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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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 2023 년 10 월 [통권 제126호] / / 작성일23-10-05 09:28 / 조회2,133회 / 댓글0건본문
근대중국의 불교학자들 34 | 모종삼 ②
모종삼牟宗三(1909~1995)은 왜 중국불교의 성종으로서의 특징을 긍정하였는가? 불교가 진상유심론적 성격을 갖는 것이 왜 그에게 중요했는가? 모종삼의 도덕적 형이상학(Moral Metaphysics)에서는 인간의 심성이 한편으로는 도덕 실천의 내재적 근거가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천명, 천도가 인간 자신에게 실현된 것인 초월적인 우주 실체가 된다. 그리고 모종삼은 도덕적 형이상학을 건립하기 위해 유학뿐 아니라 불교를 활용하였다.
도덕적 형이상학에서 불성의 역할
모종삼에게 중국불교의 성종적 특징, 즉 인간에게 진상유심이 존재한다는 교설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유학의 성선性善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형이상학의 건립에 근거를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불교의 성종적性宗的 특징은 인간 내면에 진상유심眞常唯心, 즉 내재적이면서 동시에 초월적인 본성이 존재한다는 뜻이고, 이것이 바로 유학의 심성 본체와 마찬가지로 도덕적 형이상학을 지지하는 또 다른 근거를 제기해 주는 이론이었기 때문이다. 도덕적 형이상학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유학과 같이 천도, 즉 우주계와 하나로 통하는 본성, 또는 본심 개념이 반드시 필요하고, 여기에서 중국불교의 본성인 불성佛性, 또는 진상심眞常心과 연관될 매개가 찾아지는 것이다.
실제로 모종삼은 도덕적 형이상학이 서양 철학에 정면으로 대치하는 동양만의 특성이라고 보고, 이를 중시하였다. 그 결정적인 차이는 물론 ‘심성’ 개념과 관련된다.
“이 중 성체性體는 관건이 되며 가장 특출한 개념이다. 서양에는 이런 관념이 없어서 도덕과 종교가 하나가 되지 못하고 도덕과 형이상학도 하나가 되지 못한다. … 서양철학에서도 ‘실체實體(Reality)’를 말하는 이들은 많다. 그러나 대체로 러셀과 플라톤처럼 지식론에서 시작하거나, 화이트헤드와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우주론에서 시작하고, 하이데거와 훗설처럼 본체론(존재론)에서 시작하거나, 베르그송과 모르간처럼 생물학에서 시작한다.
또는 듀이와 실러처럼 실용주의(Pragmatism)에서 시작하거나,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 데카르트처럼 독단적이고 순전히 분석적인 형이상학에서 시작한다. 어떤 경우에도 유학에서 도덕 실천의 근거이자 도덕을 창조하는 성체의 관념으로 실체, 존재, 또는 본체를 말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므로 도덕과 종교는 하나가 되지 못하고 도덕과 형이상학도 하나가 되지 못하며, 어느 경우도 종교 경지를 포함하는 ‘도덕적 형이상학’을 세우지 못하였다.”
인간의 심성과 천도를 하나로 꿰뚫는 것, 내재적이자 초월적인 심성, 초월적이면서 내재적인 천도의 존재를 말하는 것이 바로 유학이 ‘도덕적 형이상학’이 되는 이유이다. 여기에서 심성 본체는 도덕과 종교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게 된다. 모종삼이 보기에 서양 철학에서는 이러한 실체 개념을 제기한 철학자는 아무도 없었다. 단 그중에서 유일한 예외가 칸트이다.
그의 생각에 “칸트는 도덕적 길에서 본체계에 접근하고 ‘도덕적 신학神學(Moral Theology)’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칸트 철학에서는 의지의 자유, 영혼 불멸, 신神의 존재가 있어야 실천이성이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 된다. 모종삼이 보기에 칸트 철학에는 ‘성체’의 관념이 없어서 의지의 자유는 가설에 불과하게 되고, 진정한 도덕적 형이상학에는 못 미치게 된다. 따라서 동양 철학은 서양 철학보다 절대적 우위에 서게 된다.
모종삼은 자신의 대표적 저서 중 하나인 『불성과 반야』에서 ‘반야般若’와 ‘불성佛性’이라는 두 개념을 축으로 불교사상사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특히 “반야는 공통된 것이고, 체계의 차이는 오직 불성이라는 한 문제가 관건이다.”라고 하여, 반야가 아닌 불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도덕 형이상학 재건이라는 목표를 위해 유학에서 심성에 대한 논의가 중요했던 것만큼 불교에서도 불성에 대한 논의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때 불성은 크게 아라야식 계통과 여래장 계통으로 나누어지는데, 아라야식 계통은 ‘망심이 위주이고 정문훈습이 객’이고 여래장 계통은 ‘진심이 주인이 되고 허망훈습이 손님이 된다.’ 모종삼은 “유식종의 아라야식 계통이 『대승기신론』의 진상심 계열로 진전해 간 것은 불교 교의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발전이다. 아라야식 계통을 따라가면 자연히 ‘여래장 자성청정심’ 계열로 나아가기 때문이다.”라고 하여, 여래장 계통, 진상심 계열에 무게 중심을 두었다.
『대승기신론』의 이중존재론: ‘일심개이문一心開二門’ 모델
모종삼은 왜 중국불교의 진상심 계열이 아라야식을 대체할 논리적인 필연이라고 보았을까? 여기에는 단순히 중국불교의 가치를 강조하는 민족주의 그 이상의 이론적 이유가 존재한다. 그리고 여기에 『대승기신론』이 매개체로 등장하게 된다.
“『대승기신론』이 『화엄경』, 『능엄경』, 『승만경』, 『열반경』 등에 의거해서 여래장 진심을 제기한 뒤 불교 발전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불교 내부에서 보자면 그것은 인도에서 원래 존재하던 공유 양종보다 진일보한 것이다. 『대승기신론』에서 진심을 제기하고야 성불은 비로소 초월적 근거를 가지게 되었다.”
모종삼은 성불의 근거, 특히 내재적이면서도 초월적인 근거가 필요했고, 유식종의 아라야식 계통의 설명으로는 그 근거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실제로 유식사상에서 말하는 허망유식 종자로는 무루법을 설명할 수 없고, 성불도 필연성을 갖지 못한다. 성불을 부처님의 말씀을 들어 깨닫는 성문聲聞이라는 후천습득으로 설명하는 것은 성불의 근거가 후천적이고, 외부적이며, 우연적이어서 필연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그는 『대승기신론』에 주목하게 된다. 『대승기신론』의 진심眞心·진여심眞如心·자성청정심이야말로 유학의 천도天道, 불교의 현상계 일체를 하나로 꿰뚫는 초월적 근거이자 통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종삼은 이렇게 불교의 내재적 발전은 반드시 진상심 계통으로 나타난다고 본 전제 위에서 특히 『대승기신론』의 ‘일심개이문一心開二門’ 구조가 이 세계를 설명하는 ‘보편성을 가진 공통의 모델’이라고 보았다.
모종삼은 반야는 모든 대·소승 불교에서 공통된 전제가 되고 ‘작용적으로’ 일체법에 적용될 뿐, ‘존유적인’, 즉 존재론적인 측면이 부족하다고 하였다. 존재론적인 설명을 위해 그는 『대승기신론』의 ‘일심개이문’ 도식을 선택하고, 이문에서 각각 일체법을 존재론적으로 포섭하고 있음을 설명하였다.
심생멸문에서는 현상계를 존재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고, 생멸하는 현상을 대상으로 하므로 ‘집착의 존재론’이라고 한다. 심진여문은 진여계·본체계를 존재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고, 본체론적인 진여의 세계를 대상으로 하므로 ‘무집착의 존재론’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대승기신론』이 칸트 철학보다 우월한 이유
이러한 이중 존재론 도식은 칸트 철학에서 현상과 물 자체의 ‘초월적 구분’과 비교해 볼 수 있다. 모종삼은 현상과 물 자체의 ‘초월적 구분’이 칸트 철학의 중요한 관건이자 근원적인 통찰이라고 보았다. 그는 칸트의 관점을 뛰어넘기 위하여 주체의 두 가지 다른 인식 능력과 방법의 측면에서 현상과 물 자체의 구분을 설명하려 하였다. “‘무한한 마음[無限心]’, 즉 지혜의 마음으로 말하자면 물 자체이고, 인지하는 마음[心, 識心, 有限心]으로 말하자면 현상이다. 전자를 통하여 집착이 없는 본체계의 존재론이 성립하고, 후자를 통하여 집착하는 현상계의 존재론이 성립한다.” 이는 도덕적 형이상학이 ‘이중 존재론’을 포함한다는 말이다. 무집착의 존재론은 초월적 형이상학 세계로 전개되어 나타나고, 이를 활용하여 도덕 실천의 근거를 설명하게 된다. 또 집착의 존재론을 활용하여 감성의 현상세계를 드러내며, 이를 활용하여 과학 지식과 대상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설명하게 된다. 모종삼의 이중 존재론은 『대승기신론』 의 ‘일심개이문’의 유학적 번역이라고도 할 수 있다.
모종삼에 의하면, 칸트가 현상과 물 자체의 ‘초월적 구분’을 확립할 수 없었던 근본적 원인은 인간에게 ‘지적 직각’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모종삼이 『기신론』의 ‘일심개이문’의 구조를 중시한 것은 여래장 자성청정심의 존재를 확실히 인식하고, 지의 직각이 인간에게 있음을 자각하였기 때문이다. “칸트의 문제는 그가 인간의 실천이성을 강조하지만, 인간에게 지의 직각이 있음을 긍정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칸트는 인간이 『기신론』에서 긍정하는 ‘여래장 자성청정심’, 또는 왕양명이 말하는 ‘양지良知’ 의미의 심, 심지어 육상산이 맹자의 말에 근거해서 했던 ‘본심’을 갖추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인간이 진상심을 갖추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칸트가 말한 ‘자유’ 등의 사상은 단지 가설에 그칠 뿐 구체적으로 드러낼 방법이 없다.”
모종삼은 불교식의 청정심, 유학의 양지·본심 등을 일체로 동일하게 보았고, 이것이 『대승기신론』이 현대신유학의 모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라고 할 것이다. 칸트 철학은 ‘지의 직각’을 신에게 귀결하는 동시에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음을 천명하지만, 자유의지는 가설일 뿐이어서 인간의 직각 중에 구체적으로 나타날 방법이 없다. 따라서 칸트에서 실천이성의 중요한 활동인 도덕 활동은 타율적이 될 뿐 아니라 도덕 실천에 자족적인 동력이 결핍되어 진정한 도덕이 불가능하게 된다. 이와 상반되게 『대승기신론』은 실천적인 길을 통해 인간이 본래 여래장 자성청정심을 갖추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는 유학에서 실천을 통해 양심, 또는 본심의 존재를 긍정한 것과 같다. 이를 통해 『대승기신론』은 인간에게 지의 직각이 있음을 인정한다. 이 점이 바로 서양 철학과의 결정적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화엄불교 성기론과 천태불교 성구론
단지 모종삼 역시 당군의와 마찬가지로 불교의 내재적 발전은 반드시 중국불교의 진상심眞常心 계통이라는 전제 위에서 진여연기론인 중국불교를 선택하였지만, 화엄불교의 성기론性起論보다 천태불교의 성구론性具論에 훨씬 큰 가치를 두었다는 점에서 차이를 가진다. 모종삼은 천태불교의 일념삼천一念三千설이 ‘일념무명법성심一念無明法性心’으로 표현되고, 삼천세간법을 보존하게 하여 현상계의 모든 존재에 존재론적 근거를 제공하는 점을 중시하였다. 일체법의 존재를 보존한 뒤에야 불교식의 존재론이 성립하게 되고, 이것이 천태불교가 진정한 원교圓敎가 되는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당군의는 천태불교의 본성性에 어떠한 실체의 의미도 없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천태학의 성구설을 “방이나 집의 문과 같이 가운데가 비어 있고, 실체가 없어서 모든 사람들이 출입할 수 있다.”고 비유하였다. 이에 반해 모종삼은 화엄불교는 성불의 방식에서 생사오염법을 단절해야 하고 따라서 중생과 ‘격별해’ 있으므로, 가장 원만한 불성론은 천태학의 성구론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도덕적 형이상학을 확립하였으므로, 모종삼 철학은 천태학의 영향 아래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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