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
3대에 걸쳐 전통 방식으로 발우를 깎는 목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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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리 / 2023 년 9 월 [통권 제125호] / / 작성일23-09-04 22:00 / 조회2,540회 / 댓글0건본문
목기장 전승인 김용오
끼니로 음식을 먹는 일은 인간의 생명유지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평범한 일상이기에 당연한 섭취활동 정도로 여긴다. 어렵게 식량을 구하던 시절을 지나 현대의 음식문화는 미식과 탐식, 어쩌면 과식과 낭비를 조장하기도 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듯하다.
어떻게 먹을 것인가?
세계식량기구(FAO)에 따르면 매년 16억 톤 가량의 음식물이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다고 한다.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약 1조 2000억 달러(한화 1343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 세계 먹거리 생산량의 3분의 1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국내에서 하루에 버려지는 식품 관련 쓰레기도 2만 톤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면 전 세계 인구 중 아프리카, 중남미와 카리브해 등 약 10% 가량의 인구가 영양실조와 기아로 고통 받고 있다. 이런 현실을 생각한다면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개인의 소비를 넘어 인류의 인권과 환경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버려지는 음식이 많은 것도, 배출된 음식물을 처리하는 것도 결국 우리 후세들이 당면하게 될 미래 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결국 음식을 적당량 섭취하고 버려지는 음식 쓰레기양을 최소화하는 것이 인간과 지구 모두를 살릴 수 지름길이다.
불교 안에서도 어떻게 먹는가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부처님께서도 음식에 대해 첫째 많이 먹지 말고 그렇다고 너무 적게 먹어도 건강유지에 어려우니 적당히 먹어야 한다고 하셨다. 적당히 먹는다는 것은 가볍게 먹어 몸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먹는 것이다. 음식을 적게 먹으면 속이 편안하고 머리가 맑아지기 때문에 수행하는 데 적합하다. 공양할 때에도 중도가 필요하다. 식사에서 중도는 자신의 양을 아는 데서 시작된다. 맛있고 없음을 분별하지 않으며 음식을 먹는 본의를 잊지 않아야 한다.
음식으로 수행하는 발우공양
예로부터 수행자가 갖추어야 할 소박한 소지품 중에 ‘삼의일발三衣一鉢’이 있다. 삼의는 세 벌의 옷이라는 뜻으로 사문의 옷이자 출가자를 구별해 주는 표식이며, 발우는 출가 수행자의 그릇이라는 뜻이다. 삼의는 승가리僧伽梨(saṃghṭāī), 울다라승鬱多羅僧(Uttara-āsaṅga), 안타회安陀會(Antarvāsa)라는 3종의 가사를 뜻한다. 이는 승려의 소박한 삶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선종에서는 의발전수衣鉢傳授라는 문화가 있는데, 스승이 제자에게 법을 전할 때 그 징표로 가사와 발우를 전해주는 것을 말한다. 스승이 입던 가사와 스승이 쓰던 발우를 물려주는 것은 곧 법法을 전수하는 것으로 여겨졌음으로 발우는 곧 수행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찰에서 행해지는 발우공양에는 보통 네 개의 발우가 사용된다. 공양의 시작은 그 네 개의 발우 중 하나에 맑은 물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식사량은 자신이 먹을 만큼만 담아 밥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모두 먹는 것이 발우공양의 식사법이다. 스님들에겐 음식을 만드는 것도 수행이고, 음식을 먹는 것도 수행이다. 똑같은 음식을 평등하게 나누어 먹는다. 발우를 펴기 전에 부처님의 4대 성지를 생각한다. 장소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출생에서 열반까지 부처님께서 살아 보이신 삶을 생각하며 잊지 않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발우 사용에 있어 어떤 모습이었는지 비구 범마유梵摩渝가 제자 마납摩納에게 수제국隨提國의 부처를 관찰하도록 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발우로 물을 받을 때에는 발우를 기울이거나 들지 않아도 물을 알맞게 담았으며, 발우를 씻을 때에는 발우와 물이 모두 고요하여 조그만 소리도 없었습니다. 발우를 땅에 내려놓지 않고 거기다 손을 씻어도 손과 발우가 모두 깨끗해졌습니다. 발우의 물을 버릴 때에는 높은 곳이나 낮은 곳이나 먼 곳이나 가까운 곳이나 그 장소가 알맞았습니다. 발우로 밥을 받을 때에는 밥이 발우에 묻지 않았고, 밥을 입에 넣어 씹을 때에는 세 번 굴리고 그치지만 밥알은 모두 부서져 잇새에 끼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맛을 모두 맛보아 알아서 넉넉히 건강을 유지하였으나 그것으로 즐거움을 삼지 않았습니다.”
『범마유경梵摩喩經』에 나타나 있는 발우 사용하는 부처님의 모습을 보면 그 섬세하고 정제된 위의에 새삼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수행자에게 음식은 더 이상 배를 채우는 끼니가 아니고 수행과 깨달음을 위한 도구로 활용될 뿐이다.
각 나라의 문화의 특성에 따라 발우의 모양이나 숫자도 달리한다. 탁발수행이 이어지고 있는 남방불교에서는 우리와 달리 큰 발우 하나만 사용한다. 북방권 불교국가에서는 사찰에 머물며 기도하고 수행하는 정주생활을 하기 때문에 여러 개의 발우를 사용한다. 우리나라는 물, 밥, 국, 반찬을 따로 담아 4개를 사용하는 사합발우四盒鉢盂를 사용한다. 발우는 금, 은, 유리, 철발鐵鉢과 와발瓦鉢 등 다양한 재료로 제작할 수 있지만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주재료는 나무이다. 나무는 가볍고 옻칠을 하면 내구성도 좋아진다.
나무를 깎아 불기를 만들다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발우는 주로 나무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목기를 다루는 목기장의 손에서 만들어진다. 대전에서 발우와 봉안함을 중심으로 목기를 전문으로 만들고 있는 고려공예(대전 대덕구 덕암동)를 찾아보았다. 대전시무형문화재 제24호 김인규 목기장의 대를 이어 지금은 김용오 3대 전승인이 작업하고 있는 곳이다.
3대째 이어오는 고려공예의 전통목기 제작 기술은 1900년대 초부터 100년 전통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 작업장 마당에는 건물보다 높이 쌓여 있는 나무들이 때를 기다리며 건조의 시간을 보내고 있고, 작업장 안에는 2차 건조 중인 어느 정도 형태를 갖춘 목기들이 나란히 줄을 맞추어 수분을 증발시키고 있다. 그리고 한쪽에는 초벌작업을 할 때 사용한다는 족답기가 눈에 들어온다. 족답기의 오래된 연식에서 목기 제작의 역사가 느껴진다.
족답기 사용에서는 두 사람의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 아들 김용오씨는 아버지 김인규 목기장과 짝을 이루어 작업을 했고, 아버지는 조부인 김갑진 선생과 함께 손발을 맞추었었다. 집안일을 돕는 차원의 일이 자연스레 가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원목 선별에서부터 자연건조, 기물 용도에 맞춘 재단, 자연 건조하기, 재단 초벌 깎기, 건조 재벌 깎기, 눈 매우기, 초칠, 중칠, 상칠 등 나무에서 목기가 되는 전 과정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익혔다.
만들어지는 목기들은 발우, 봉안함, 사리함, 제기, 제상으로 주로 불가에서 사용되는 물건들이다. 발우는 음식을 담는 그릇으로 생명에 관여하고, 봉안함, 사리함, 제기, 제상은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목기라 정성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오래도록 잘 사용되어지고 귀한 조상을 모시는 일이라 예禮를 다하는 작업이라고 김용오 전승인은 강조한다.
“원칙을 가지고 기물을 귀하게 여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하게 물건을 만드는 게 아니잖아요. 차후에 완성품의 쓰임을 생각한다면 만드는 전 과정이 진지하고 정성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귀한 공양을 하고, 의례에 사용되고, 누군가의 인생을 담아 봉안의 쉼자리를 만드는 일인데 예의를 다하는 것은 기본인 거죠. 아버지는 정성으로 만드셨고, 어머니는 그런 정신의 기본을 알려주셨어요. 목기를 잡을 때도 항상 두 손으로 부처님 모시듯 그러셨거든요.”
하나의 나무 그릇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강원도 및 충북 영동에서 직접 구해 온 나무를 6∼10년 가량 자연 건조시킨 후 초벌과 재벌로 깎아내고 다듬는 과정에만 최소 1년 6개월이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물푸레나무, 쇠물푸레나무, 박달나무, 오동나무, 은행나무 등 용도에 따라 사용되는 나무의 종류도 다양하다.
항균과 영구성을 위한 옻칠은 9번 이상 칠하기와 마르기를 반복하는데, 쨍쨍한 날보다 오히려 상대습도 60~70%, 온도는 28~29℃일 때가 건조하기 좋다고 한다.
특히 봉안함의 경우 시간이 오래 지나도 벌레나 곰팡이가 생기지 않고 변함이 없어야 하는 데 중점을 두어 나름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오동나무로 만든 옻칠봉안함 안에는 숯과 황토, 동백기름 등 여러 가지 비법을 사용한다. 특별히 약제 관련한 공부를 해서 적용하기도 했지만 어머니에게서 얻은 조언도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봉안함 내부 뚜껑 안쪽으로 따로 약제 처리를 하고 있는 것은 나름의 비법이라고 한다. 전통양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방식의 연구는 계속되었다. 옻 추출물에 조성물을 첨가하여 살균 및 악취, 유해물질 제거, 대전방지, 탈취효과 등의 효과를 입증하며 발명특허와 실용실안등록 및 산업자원부의 시제품 사업 선정, 대전광역시 대표브랜드로 선정되는 등 우수제품으로 인정받았다.
“앞으로도 전통기법을 응용한 친환경적인 전통 목공예품에 대한 연구 개발을 계속하려고 합니다. 좋은 쓰임이 있는 목기를 만들어야죠.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로 나가 한국 전통 목기의 우수성과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노력도 같이 하고요. 환경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 요즘에 특히 친환경적인 목기를 세계인이 함께 사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
대내외로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요즘이지만 매 초하루만큼은 고려공예의 문을 열지 않는다. 김 전승인의 발걸음은 언제나 완주 옥련암으로 향한다. 나무를 다루기에 앞서 마음을 다루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불자로서 불가의 물건을 한결같은 마음과 정성으로 만들 수 있도록 스스로 다짐하는 시간이 있어야 초심을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발우 사용과 발우공양이 불가의 공양법이긴 하지만 건강한 친환경과 미래세대를 생각한다면 현대 생활인들에게 적용되고 그 정신을 이어 알뜰한 식사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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