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
가을의 향기가 전해주는 제철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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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 2023 년 9 월 [통권 제125호] / / 작성일23-09-04 21:30 / 조회2,576회 / 댓글0건본문
이 밥은
숨 쉬는 대지와 강물의 핏줄
태양의 자비와
바람의 손길로 빚은
모든 생명의 선물입니다.
이 밥으로
땅과 물이 나의 옛 몸이요
불과 바람이
내 본체임을 알겠습니다.
이 밥으로
우주와 한 몸이 됩니다.
그리하여 공양입니다.
온 몸 온 마음으로
온 생명을 섬기겠습니다.
결국 우리가 먹는 음식이 바로 나임을 이야기하는 기도문입니다. 모든 중생은 그 뿌리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는 『화엄경』의 가르침처럼 만 생명을 내 몸처럼 소중히 여기라는 당부이기도 합니다. 밥 한 그릇을 알게 되면 세상 만사를 알게 된다고 말합니다. 밥 한 그릇이 만들어지려면 온 우주가 참여해야 합니다. 어느 하나만 빠져도 밥 한 그릇은 만들어질 수 없고, 따스하게 보듬어 안지 않으면 새로운 삶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불가에서는 밥을 ‘공양’이라고 표현합니다. 단순히 먹는 행위로 끝나지 않는 공양이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밥은 생명의 결정체입니다. 만 생명의 축복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니 밥은 발원이고 공양입니다. 음식을 앞에 두고 공양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시간은 매우 중요한 시간입니다. 비교적 짧은 내용의 공양 기도문이지만 커다란 의미를 담고 있는 부처님의 귀한 말씀입니다. 또한 지구를 살리는 귀한 법문입니다.
자연의 섭리가 담긴 제철음식
처서가 지나고 바람 끝이 다름을 느낍니다. 입추와 말복이 지나도 느끼지 못한 날씨의 변화를 처서가 지나서야 비로소 가을임을 느끼게 합니다. 처서處暑와 추분秋分 사이에 들어 있는 백로白露는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절기이고, 추분이 되면 밤낮의 길이가 같아지면서 가을걷이를 마무리하는 절기입니다. 추분 무렵에 호박고지, 박고지, 고구마순을 거두어 묵나물로 만들어 먹으면 가을이 품은 맛과 향을 그대로 즐기실 수 있습니다.
건강한 식습관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철음식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스마트 농법이 발달하면서 과일이나 채소의 제철을 잘못 인식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24절기의 특징을 참고하면 절기음식과 제철식재료에 대해 알 수 있고 지금은 농식품정보누리에 자세히 수록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지구를 살리는 생활방식
지구 온도를 낮추고 지구를 살리는 생활방식을 이야기할 때 푸드마일리지와 로컬푸드 또는 홈가드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실제 연구 결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생활 속 작은 실천만으로 지구 온도를 낮추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푸드마일리지는 곡물, 축산물, 수산물 등의 품목들이 소비자의 식탁에 올라오기까지의 거리로 식품의 중량에 이동 거리를 곱하여 계산합니다. 푸드마일리지가 시사하는 부분은 먼 거리 운송으로 인해 식품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화학제품을 많이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과 운송 및 식품 유지 등을 위해 이산화탄소의 배출이 많아진다는 점입니다.
푸드마일리지를 줄이기 위한 노력으로 로컬푸드운동을 하고 있는데요. 이는 반경 50km 내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소비하는 것을 말합니다. 장거리 운송이 필요가 없고 농, 수산물의 신선도도 보장된다는 장점이 있어서 적극 홍보하고 추천하는 생활방식입니다. 홈가드닝을 통해 푸드마일리지 ‘0’이 되게 하면 더 좋겠지만 여건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로컬푸드를 적극 활용하는 식생활의 전환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입니다.
건강한 삶을 위한 3가지 습관
사찰음식이 각광을 받고 있는 이유가 채식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수행자의 생활습관, 마음습관, 음식습관이 건강한 삶을 위한 원동력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사찰음식이 단순히 채식이라는 의미와는 다르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총체적으로는 음식습관만이 지구를 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이 모든 것들이 삼위일체가 되었을 때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명상을 통해 마음 밭을 일구는 시간,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어 실천하는 과정, 그리고 음식을 통해 우주와 내가 둘이 아님을 알아 가는 과정에서 건강한 삶은 존재하게 되고 산문 밖으로 나온 사찰음식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게 됩니다.
산초예찬
절기상 입추가 지나면 곡식이 익어가고 열매에 살이 차오른다고 했습니다. 이맘때 머루와 다래도 익어가고 으름나무 열매도 제법 살이 차올라서 결실의 계절임을 실감하게 합니다. 또한 사찰음식에서 놓칠 수 없는 산초열매도 향기를 품고 여물어 가는 시기입니다.
사찰음식을 공부하기 시작하고 초반에는 산초와 초피의 구분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문경 윤필암 도량 안에 산초와 초피가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보았고, 열매와 잎을 현장에서 직접 비교해 보니 확연히 다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뭇잎 모양과 위치를 자세히 보면 구분이 명확해 짐을 알 수 있습니다.
산초는 주로 열매를 활용하고 초피는 잎을 활용하여 음식을 만듭니다. 산초는 『동의보감』에서는 진초秦椒(분지)라고 불리고, 초피는 촉초蜀椒 또는 천초川椒라고 불리며, 일반적으로는 제피라고 불립니다.
사진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산초는 잎이 매끈한 반면에 초피의 잎은 울퉁불퉁해 보입니다. 산초나무에는 가시가 아주 많고 가시마다 잎이 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산초는 가시가 어긋나고 초피는 가시가 마주한다는 차이점도 있습니다. 산초는 열매에 씨앗이 터지기 전에 채취하여 장아찌를 담가 먹거나 산초 씨앗으로 기름을 짜서 활용합니다. 초피의 열매는 향신료로 활용하며 봄에 나는 여린 잎은 장아찌를 담거나 말려서 활용하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산초열매를 활용해서 장아찌 만드는 법을 배워보고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산초장아찌
재료
주재료: 산초열매 1kg, 달임간장.
달임간장 재료 : 한식간장 3컵, 채수(물+다시마+표고버섯) 3컵, 매실청 2컵
만드는 법
1. 산초는 잎을 제거하고 열매 부분만 다듬어서 사용합니다.
2. 열매는 깨끗이 씻어서 물기를 제거해 준비해 둡니다.
3. 끓는 물에 소금을 넣은 다음 준비한 산초 열매를 넣고 20분간 데칩니다.
4. 새로 물을 받아 1회~2회 반복해서 데치고 찬물에 헹궈 물기를 뺍니다.
5. 한식 간장과 채수를 넣고 팔팔 끓여서 달임장이 뜨거운 상태로 산초에 부어 줍니다.
6. 단맛을 가미하고 싶은 경우에는 매실청이나 조청을 사용하시면 됩니다.
7. 열탕 소독한 유리병에 담아 실온에서 숙성시켜 줍니다.
TIP.
- 법제를 위해서 산초 열매를 끓는 소금물에 여러 번 데치고 우리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좋습니다.
- 데치는 과정 없이 산초 열매를 사용할 경우에는 맛이 너무 강해서 다른 음식과 곁들여 먹기 힘들 수 있습니다.
- 산초 열매를 끓는 물에 법제한 다음 고추장 장아찌로 드셔도 좋습니다.
- 두부나 도토리묵을 구워서 산초장아찌를 올려 드시면 좋습니다.
- 산초 열매는 까만 씨앗이 터지기 전에 채취해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귀한 식재료 ‘잣’ 이야기
조선시대 음식법飮食法에 보면 빛 고운 흰 잣을 맑은 엿에 잠깐 졸여서 네모진 그릇에 넣어 식힌 뒤 반듯하게 베어 쓰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바로 잣박산을 만드는 법을 설명해 놓은 대목입니다. 솔방울처럼 생긴 커다란 잣송이 안에 든 베이지 빛이 도는 씨알인데 오들오들하고 부드러우며 식감이 아주 좋습니다.
다른 견과류처럼 맛이 고소하고 담백한 편이라 깔끔하면서도 특유의 독특한 향과 풍미가 있어서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견과류입니다. 가평에서 4대째 잣을 채취하고 있는 분께 구입하고 있는데 채취하는 수고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높은 나무에 올라 잣을 따는 일도 어렵지만 씨알을 받아 내고 거피하기까지의 과정을 보고 있노라니 공양게에 담겨 있는 감사의 의미가 무엇인지 더 깊게 와 닿았던 기억이 납니다.
지나가던 선비가 잣 파는 가게 앞의 옷을 가리키고는 “이게 뭐요?”라고 물으니 가게 주인이 “옷이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선비는 다시 잣을 가리키고는 “이게 뭐요?”라고 묻자 주인이 “잣이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선비가 대뜸 잣 한 줌을 막 주워 먹은 다음, 벽에 걸린 갓을 가리키며 “이게 뭐요?”라고 물으니 가게 주인이 “갓이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이 선비란 놈이 잣값은 내지도 않고 팔자걸음으로 느긋하게 밖으로 나가더랍니다. 화가 난 주인이 포졸들을 데려와 선비를 잡으려 하자 선비가 자초지종을 말하길 “오시라고 해서(옷이오) 들어갔고, 자시라고 해서(잣이오) 먹었으며, 가시라고 해서(갓이오) 가는 건데 왜 날 붙잡소?”라고 뻔뻔하게 대답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전해질 만큼 잣은 옛날에도 아주 비싼 견과류였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 귀한 잣으로 잣죽을 만들어 먹거나 잣박산을 만들어 먹는 것은 굉장히 사치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입맛이 변함에 따라 잣 소비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여 햇잣이 수확되는 시기에 맞춰 잣을 활용한 전통 음식인 잣박산과 서여향병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잣박산
재료
재료: 잣 400g, 시럽.
시럽재료: 물엿 50g, 설탕 50g, 소금, 식초1/2t.
만드는 법
1. 잣은 고깔을 떼고 천으로 먼지를 닦아 줍니다.
2. 깊이가 있는 팬을 선택하고 시럽의 재료를 순서대로 넣은 다음 설탕이 다 녹을 때까지 끓여 줍니다.
3. 손질한 잣은 마른 팬에 올려 약한 불로 볶아 줍니다.
4. 볶은 잣은 시럽을 끓인 팬으로 옮겨서 한 덩이가 되도록 약한 불에서 버무립니다.
5. 식용유를 바른 비닐을 틀 위에 깔고 버무린 잣을 붓고 밀대로 살살 고르게 밀어줍니다.
6. 굳기 전에 도마에 올려 칼로 반듯하게 썰어서 담습니다.
TIP.
- 시럽을 만들 때 항상 물엿을 먼저 넣고 그 위에 설탕을 부어 주세요.
- 마른 팬에 잣을 볶을 때는 약한 불로 서서히 볶아야 타지 않습니다.
- 잣을 틀에 넣고 밀대로 밀때는 잣이 골고루 펴질 정도로만 힘을 줍니다.
서여향병薯蕷香餠
빙허각 이씨의 저서인 『규합총서』에 수록되어 있는 서여향병은 가을의 식재료인 마와 잣을 활용한 떡으로 쫄깃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입니다. 지지는 떡에 해당하는 이 음식은 지금이 제철인 산사자차와 궁합이 아주 잘 맞는 다식이 되겠습니다.
재료
재료: 마 300g, 찹쌀가루, 잣 50g, 꿀 150g, 소금 약간, 포도씨유.
도구: 찜기, 면포, 치즈 그라인더.
만드는 법
1. 잣은 고깔을 떼고 면포로 먼지를 닦아 준비합니다.
2. 닦은 잣을 치즈 그라인더로 갈아 줍니다.
3. 곱게 간 잣은 면포 위에 두고 기름을 빼 주세요.
4. 마는 껍질을 벗기고 0.5cm 정도의 두께로 썰어 줍니다.
5. 찜기에 물을 끓인 후 마를 올려 쪄 주세요.
6. 골고루 소금을 조금 뿌린 다음 꿀에 담가 둡니다.
7. 꿀 옷을 입은 마에 찹쌀가루를 입혀 기름에 지져 냅니다.
8. 다시 잣가루를 입혀서 접시에 냅니다.
TIP.
- 마는 찌고 지지는 과정이 있으므로 오래 조리하지 않습니다.
- 치즈 그라인더가 없을 경우에는 밀대로 잣을 밀어준 다음에 칼로 다져 주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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