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 저편 티베트 불교]
기원의 오색 깃발 다르촉과 룽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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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 2023 년 8 월 [통권 제124호] / / 작성일23-08-04 23:32 / 조회2,833회 / 댓글0건본문
티베트 사람들의 기원이 담겨 있는 깃발을 뜻하는 ‘다르촉(Darchog, Flag, 經幡)’은 티베트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이다. 높고 드넓은 티베트 고원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티베트 민족들의 발길이 지나가는 지구촌 곳곳마다 예외 없이 엄청난 숫자의 오색 깃발들이 휘날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현재 이 오방색 깃발은 티베트 불교의 약진에 비례하여 이미 세계적인 불교문화의 중요한 코드로 자리 잡은 것이다.
티베트의 상징이 된 다르촉
이런 현상은 불교의 고향 인도의 현실을 보면 쉽게 이해된다. 전 세계의 불교도들이 벼르고 별러서 인도에 가서 이른바 불교성지라는 곳들을 가보면, 유서 깊은 유적들이나 불교적인 상징물보다 성지들을 뒤덥고 있는 수많은 오색 깃발들을 먼저 볼 수밖에 없다. 그만큼 불교가 사라진 고향 인도에서 티베트 불교는 불교의 맹주노릇을 하고 있다. 따라서 다르촉의 휘날림은 그런 아이러니한 현상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순례자들이 설역고원 티베트에 입성했을 때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다르촉의 인상은 매우 강렬하다. 그렇기에 이 다르촉은 티베트를 다녀간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으로 가슴속에 남는다. 산소가 희박하여 야성이 살아 있는 강렬한 햇빛 속에서 난반사되면서 펄럭이는 깃발의 잔영은 순례자들이 눈을 찌르고 들어온다. 그 강렬한 가시광선은 편두통을 일으키며,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의 펄럭임 소리도 상황을 어렵게 만든다. 그렇지 않아도 산소 부족으로 잠을 설치게 마련인 잠자리까지 따라와서 마치 거대한 새의 날갯짓 같은 환청으로 이어져 밤새 나그네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파르르 파르륵~ 푸더더 더더더더 푸더덕~ 파팍 파파파 파파팍~”
거기에 고산증까지 심해지면 말발굽 소리에 더하여 말 울부짖는 소리까지 들릴 것이다. 물론 이쯤 되면 가까운 병원에 가서 산소통 신세를 지든지 아니면 되도록 빨리 고도가 낮은 곳으로 내려와야 한다.
바람의 길목에서 휘날리는 룽따
‘룽따(Lung-Ta, Wind Horse, 風馬旗)’란 다르촉과 같이 오색 깃발을 가리키지만, 뜻은 ‘바람의 말’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무튼 이름이야 어찌 부르든지 이 오색 깃발들은 주로 마을 입구, 고갯 마루, 나루터, 다릿목, 굴뚝, 지붕꼭대기, 대문 같은 곳과 거대한 고목나무와 바위 같은 신령스러운 곳에 매달려 있다. 말하자면 이런 곳들은 바람의 길목들이며 또한 어떤 상반되는 두 세계의 경계지점들로써 하늘과 땅, 신계와 속계, 어둠과 밝음 같은 곳들이기도 하다.
이런 두 세계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것이 바람이다. 그래서 옛적부터 중생계의 사람들은 오색천에 각자의 소원을 적어 이 바람과 영혼이 드나드는 길목에다 걸어 놓았었다. 그러면 바람이 달려와 그 사연들을 싣고서 반대편 세계로 달려가 그 소원을 전달하고 그 대답을 싣고는 다시 반대로 달려와 전달한다. 말하자면 ‘바람의 전령사’인 것이다.
이것이 바람의 말 ‘룽따’의 유래이다. 이와 같이 샤먼적인 유래에서 비롯되어 티베트 원시종교 뵌뽀교화를 거쳐 다시 티베트 불교화되었다. 깃발의 내용도 불교적으로 대체되면서 경전 구절이 쓰이게 되었다. 그럼으로 요즘의 다르촉은 뵌뽀적인 내용보다 불교적인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옴 마니 반메 훔’ 같은 만트라이다.
‘다르촉’ 또는 ‘룽따’라는 단어는 사실 국내에서 그동안 여러 가지 발음과 의미로 혼용(주1)되어 사용되어 왔다. 지난 몇 세기 동안 신비의 대명사였던 티베트 본토의 문이 우리에게 열린 지 어언 30년이 되었고, 이제 티베트학도 어느 정도 초보단계를 벗어났다. 하지만 아직도 몇 개 중요한 용어들은 혼용되고 있다. 그중에 다르촉과 룽따가 있기에 다시 한번 정리해 본다.
사진 7. 필자제작 다르촉용 목판도 <마나스꼬라도>.
다르촉이 룽따보다 상위개념이다. 모든 깃발은 다르촉으로 부를 수 있지만 룽따는 그 깃발에 ‘바람의 말’ 문양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줄로 이어서 가로로 걸든, 장대에 꿰어 세로로 세우든 거는 방식과는 상관이 없다는 점도 이참에 정리해 둔다. 또한 불교 쪽의 다르촉과 뵌뽀 쪽의 룽따의 문양이 섞여 있는 경우에는 비중이 큰 쪽으로 부르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오색 깃발 다르촉의 유래
다르촉이 언제부터 설역 고원에서 사용되었는지는 그리 명확하지 않지만 아마도 아주 먼 옛날에 인간계와 천계를 이어주었던 샤먼들이 그냥 색깔 있는 천을 신계神界와 속계俗界를 구분하기 위해서 표식기 용도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우리의 성황당 같은 곳에서 사용하던 ‘물색’이란 오색천과 그 궤적을 같이 해 왔다고 보인다. 그러다가 후에 점차로 샤먼들이 종교화되면서 그 오색천은 중요한 장엄물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되고, 그러면서 점차로 그 의미와 형식이 구체화되면서 지금과 같은 색깔과 문양으로 굳어져 버렸을 것이다.
앞에서 이미 내린 결론처럼 넓은 의미의 깃발, 즉 다르촉 중에서 가장 의미 있고 또한 대표적인 문양은 룽따이다. ‘바람의 말(Wind Horse)’이라고 번역해서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바람 많은 고원에서 사는 티베트인들은 바람을 신[Lha]의 뜻을 전하는 전령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람을 상징화하여 말로 표현하였을 것이다. 우리 동양권 용어로 말하자면 무마巫馬이다.
우선 여기 한 장의 룽따의 문양을 보면서 그 의미를 되새겨 보자.(주2) 중앙에 온갖 치장을 한 말이 보일 것이다. 그 말안장에는 불꽃이 실려 있는데, 이는 빛과 영혼을 의미한다. 사실 말은 근대문명이 달리는 기계를 만들어내기 전까지 수천 년 동안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었다. 그래서 말이 선택된 것이고 다시 그 안장 위에 영혼의 불꽃을 실었다.
또한 천계로 가기 위해서는 하늘을 날아야 하기에 그냥 말로서는 곤란하다. 그래서 날개 달린 천마가 필요하였다. 이 빠른 말도 부족하여 바람을 가세시켰다. 주마가편走馬加鞭인 셈이다. 당연히 그 이유는 더 빨리 더 효과적으로 신과 영적인 교류를 하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각주>
(주1) 다르초, 다루초, 다루초크, 탈촉, 따르촉, 따루초, 룽타, 룽다 등등이지만 앞으로는 다르촉 또는 룽따로 통일해서 사용하자고 제안한다.
(주2) 필자가 오랫동안 목판으로 작업해 온 다르촉 제작은 일종의 현대미술의 이벤트적 행위예술이다. 주로 신간 출간기념회 라든가 또는 설역고원에 갈 때마다 의미를 부여한 문양이나 글귀를 넣은 깃발을 108장 배수로 만들어 가서 바람이 잘 부는 곳마다 걸었다. 그러면 바람이 불어와 천계로 내 뜻을 날라다 주었다. 물론 매번 그 내용은 달라 지지만 이 오색깃발 다르촉이나 룽따의 근본 취지는 살리려고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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