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빛의 말씀]
함부로 무심無心을 거론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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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 2023 년 7 월 [통권 제123호] / / 작성일23-07-04 13:31 / 조회2,775회 / 댓글0건본문
“『능가경』 게송에 이렇게 말했다. 제천諸天 및 범중승梵衆乘과 성문·연각과 제불여래승諸佛如來乘(주1)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승諸乘들은 유심有心 중의 전변轉變(주2)이므로 제승은 구경무심이 아니라고 말한다. 만약에 그 각종의 유심이 멸진하면 제승과 그 승乘을 의지할 승자乘者도 없어 승乘이라 하는 명칭조차 건립할 수 없는 대무심지大無心地이다. 이는 제승을 초월한 최상유일승最上唯一乘이나 중생을 인도하기 위하여 방편으로 분별하여 제승을 설한다.”
- 『종경록』 1 「표종장」
『종경록』에 나타난 견성의 경지
“견성하면 즉시 구경의 무심경계가 현전한다.”고 하였는데 그 구경무심究竟無心에 대해 살펴보자. 영명연수 선사의 저술인 『종경록』은 선종의 만리장성으로 일컬어지는 대역작이다. 그 첫머리 「표종장」에서 연수선사는 『능가경』의 말씀을 인용하여 구경무심이란 성문승과 연각승은 물론 제불여래승까지 초월한 것임을 밝혔다.
참다운 무심이란 각종의 유심有心이 다 없어져 탈 수레도 탈 사람도 없고, 무심이란 명칭까지도 붙을 자리가 없는 그런 경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요즘 불교를 공부합네 하는 사람치고 무심이란 단어를 들먹거리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데, 무심이란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처럼 그렇게 가볍게 치부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작년에 어떤 사람이 찾아와 자기는 정말로 무심을 증득했으니 인가해 달라고 따라다니며 귀찮게 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은 인가는커녕 말을 끝까지 들어주지도 않는다. 들을 필요도 없다. 그런 것은 무심이 아니라 유심이다. 그것도 쉽게 고칠 수 없는 아주 고약한 유심이다.
금덩어리처럼 귀하게 여기며 자신의 소견을 힘주어 피력하는데 가만히 들어보면 고약한 냄새가 펄펄 풍기는 똥 덩어리이다. 그런 사람을 여럿 보았다. 제천승·범중승·성문승·연각승은 물론 제불여래승마저도 유심이지 구경의 무심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히지 않았는가? 유심과 무심의 차이를 분명히 알아 함부로 무심을 거론하지 말라.
“그러므로 선덕先德이 말했다. 일점장예一點障瞖가 안막眼膜을 덮으니(주3) 천종환화千種幻華(주4)가 요란하게 추락하고, 일진망념一陣妄念(주5)이 심중心中에 일어나니 항하사 수數의 생멸이 발동한다. 안예眼瞖를 제거하니 환화가 소진하고, 망념이 영멸永滅하여 진성眞性을 증득하니 천병千病이 쾌차하여 만약萬藥을 제각除却(주6)하고, 망념의 빙괴氷塊가 소융消融하여(주7) 진성의 담수湛水가 유통流通한다.(주8) 신령한 단약丹藥을 구번전단九番轉煅하니 생철을 점하點下하여 진금으로 변성變成하고,(주9) 지극한 묘리는 일언편구一言片句로 범부를 전환하여 성자로 성취한다. 광분하는 망심을 휴헐休歇(주10)치 못하다가 휴헐하니 즉 무상보리無上菩提요, 현경玄鏡이 청정하여 본심이 명철明徹하니 본래로 대각세존이니라.” - 『종경록』 1 「표종장」
견성은 구경의 대무심경계로서 곧 성불을 뜻함을 입증하기 위해 영명연수 선사가 앞서 『능가경』의 말씀을 인용하고, 여기에서는 조사스님의 말씀을 인용하였다. 눈을 가리는 티끌을 제거하듯 일념의 망상을 제거해 변함없고 항상한 진여본성을 확연히 증득하는 것, 이것이 구경무심이고 견성이다.
영명스님의 논지를 요약해 보자. 첫머리에서, 견성하면 곧 구경무심으로서 병이 없으면 약이 필요 없듯 일체 방편이 필요 없다는 주장을 하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능가경』을 인용해 무심의 참뜻을 밝히고, 조사스님들의 말씀을 인용해 망멸증진妄滅證眞, 즉 일체 망념이 다 사라지고 진여본성을 증득하여 융통자재하게 된 것이 견성임을 밝혔다.
돈오점수설의 근간이 되는 보조국사(주11)의 『수심결』에서는 얼음의 본성이 본래 물이었음을 알듯 중생이 본래 부처였음을 알면 그것을 견성이라 했다. 그러나 여러 경론과 정안종사들의 말씀을 살펴볼 때, 견성이란 얼음이 완전히 녹아 융통자재한 것을 견성이라 했지 그러기 전에는 10지 등각이라도 유심으로서 병이 완전히 낫지 않은 환자와 같다 하였다. 따라서 『수심결』에서 말한 견성은 종문의 정론을 근거로 볼 때 진정한 견성이 아님이 명백하다.
“보살의 종점인 10지가 요진了盡하면 수도의 방편이 원만구족하여 무간도인 일념에 상응한다. 망심의 초기생상初起生相을 각지覺知하여(주12) 심지心地에 초상初相이 전무한지라 초기생상의 극미세망념을 원리遠離하므로 자심의 본성을 철견徹見하여 심성이 기신론에 나타난 견성의 경지 담연상주湛然常住할새 구경각이라 부른다.”
- 『대승기신론』
공부하다가 기특한 소견이 생기고 기이한 경계가 나타나면 흔히 견성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데, 마명보살은 불교의 총론이라 할 『기신론』에서 “10지보살을 지나 등각의 금강유정에서 6추는 물론 3세의 미세한 망념까지 완전히 끊어져야 그때 견성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심성心性이 상주불멸하는 구경각 즉 묘각이 견성이지 그전에는 견성이 아니다.
10지 등각도 견성이 아니라 했는데, 하물며 전에 경험치 못한 기이한 경계와 기특한 소견이 조금 생겼다고 함부로 견성했다고 떠들어서야 되겠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제자라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종문의 표준인 『기신론』의 말씀을 저버리지 말라.
원효와 법장이 말하는 견성의 경지
① “무명업상無明業相이 동념動念(주13)하는 것이 망념 중에서 가장 미미하므로 미세망념이라 호칭한다. 이 미세망념이 전부 멸진하여 영원히 그 여적餘跡이 없으므로 영원히 이탈한다고 한다. 이 미세망념을 영영 이탈한 때에는 정확히 불지佛地에 머무르게 된다. 전래의 3위는 심원心源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생상生相이 멸진하지 않아서 심중心中이 아직 생멸무상生滅無常하다가, 차위此位에 이르러서는 영영 멸진하여 일심의 본원에 귀환하여 다시는 기멸동요起滅動搖(주14)함이 전무하므로 견성이라 칭언稱言한다. 견성을 하면 진심이 확연상주廓然常住(주15)하여 다시는 전진할 곳이 없으므로 최후인 구경각이라 호명한다.”
- 원효, 『기신론소』
② “업식業識이 동념動念하는 것이 가장 미세하므로 미세망념이라 호명하나니 생상生相을 말함이다. 이 최초 생상이 전부 멸진하여 영영 그 잔여가 없는 고故로 원리遠離(주16)라 하며, 허망환상虛妄幻相을 원리한 고로 진여자성이 곧 현현하나니 고로 견성이라고 한다. 전 3위 중에는 최초 생상이 멸진하지 않았으므로 견성이라 하지 않는다.”
- 현수, 『의기義記』
③ “불지佛地는 미세념까지 영진永盡한 무념이다.”
- 원효, 『소疏』 ; 현수, 『의기義記』
원효와 현수스님 역시 그 소에서 구경각 최후의 여래지만이 견성이고 그 이전의 3위는 미세망상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으므로 견성이 아님을 분명히 하였다. 부처의 지위는 미세망념까지 영원히 없어진 무념無念이니, 무념이 곧 견성이고 성불이다. 10지보살을 넘은 등각에서 미세망상이 완전히 끊어져 구경각에 이르러야 견성임은 불교의 총론이라 할 『기신론』에서 이론을 제기할 수 없게 분명히 밝힌 바이다. 또한 역대 조사스님들뿐 아니라 원효와 현수 같은 교종의 권위자들 역시 한목소리로 말씀하신 바이다. 그런데 어찌 부처님 법을 함부로 고쳐 제 마음대로 10신을 돈오라 하고 견성이라 한단 말인가?
보조스님을 비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조스님은 10지는커녕 10신초十信初를 견성이라 하였다. 부산에서 서울 가는 길로 치자면 고불고조께선 남대문을 통과해야 견성이라 하셨는데 보조스님은 출발점인 부산에서 견성한다 하였으니 불조의 말씀과 너무도 어긋난다. 보조스님이 훌륭한 분이긴 하나 부처님과 마명보살 그리고 대조사스님들을 능가할 수는 없다. 따라서 보조스님의 말씀이라고 무조건 추종할 것이 아니라 오류가 있는 부분은 비판하고 수정해야 할 것이다.
- 성철스님의 책 『옛 거울을 부수고 오너라』(장경각, 2007) 중에서 발췌 -
<각주>
(주1) 해탈의 경계에 도달하게 하는 부처님의 교법을 다섯 종류로 분류한 것으로 5승乘이라 한다. 10선善을 행하여 욕계의 천상에 태어나는 것을 천승, 청청한 계율과 4선禪 8정定을 닦아 색계천·무색계천에 태어나는 것을 범중승, 4성제聖諦를 닦아 아라한에 이르는 것을 성문승, 인연법을 관하여 진공眞空을 깨닫는 것을 연각승, 6바라밀을 행하여 모두 부처의 지위에 이르게 하는 것을 여래승이라고 한다.
(주2) 변화하여 나옴.
(주3) “티끌 하나가 눈에 들어가니.”
(주4) ‘환화’는 무엇에 부딪치거나 눈을 비비면 볼 수 있는 반짝이는 것.
(주5) ‘일진’은 한바탕 몰아치거나 몰려오는 구름이나 바람 따위의 한덩어리를 말한다. 망념 한덩어리.
(주6) 제거.
(주7) “얼음 덩어리가 다 녹아.”
(주8) “맑은 물이 흐른다.”
(주9) “아홉 번 단련하여 만든 신약을 생철에 한 방울 떨어뜨려 금으로 바꾸고.”
(주10) 번뇌나 들뜬 마음 등을 가라앉히고 쉼.
(주11) 정혜결사를 이끌며 선종의 부흥을 주도한 고려 중기의 고승으로 법명은 지눌知訥(1158~1210), 호는 목우자牧牛子. 저서로 『진심직설眞心直說』·『수심결修心訣』 등이 있음.
(주12) “미혹한 마음이 처음 생겨나는 모습을 깨달아서.”
(주13) 마음을 움직임.
(주14) 생겨났다가 사라졌다가 하며 움직임.
(주15) 아무 것에도 걸림없이 넓게 텅 비어 그대로 있음.
(주16) 번뇌를 벗어나 멀리 떠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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