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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 저편 티베트 불교]
싯다르타 태자의 외가이자 처가였던 데바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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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  2023 년 7 월 [통권 제123호]  /     /  작성일23-07-04 13:23  /   조회2,31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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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망무제의 떠라이(Terai) 평원을 달리다 보면 가끔은 저 멀리 히말라야의 흰 능선이 마치 신기루처럼 힐끗힐끗 올려다 보인다. 바로 마나슬루(Manaslu, 8,163m) 연봉이다. 떠라이 평원과 히말라야 간의 이런 지리적 근접성은 불교의 안자락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옛 꼴리아 왕국의 도읍지

 

물론 고타마 붓다의 일생에서 히말라야와 직접 조우했던 전거는 찾을 수 없지만 그래도 불교계의 다양한 매체에서 ‘설산’과 관련된 모티브가 자주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그 배경에는 룸비니에서 바라다 보이는 설산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진 1. 룸비니와 데바다하 인근 지도.

 

데바다하(Devadaha)는 룸비니에서 동쪽으로 몇 시간을 달리면 도착하는 곳에 자리 잡고 있는 한적한 마을이다. 순례객으로 북적이는 룸비니에 비해 더욱 그러하다. 그렇듯 별 볼 것 없는 이 조그만 마을을 필자가 여러 번이나 방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이곳은 불교사적으로 ‘4대’니 ‘8대’니 하는 유명한 불교성지는 아니다. 하지만 싯다르타 붓다 자신과 더불어 붓다의 일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3명의 여인들의 체취가 진하게 배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3명의 여인이란 생모 마야데비 부인, 혈연적으로 친이모이며 또한 태자를 갓난아기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키워 준 양모인 프라쟈빠띠(Prajapati) 그리고 부인 야소다라(Yashodhara)이다. 

 

사진 2. 꼴리야 왕가 혈통도. 마야데비, 프라쟈빠띠, 야소다라의 이름도 보인다.

 

데바다하는 네팔 남부 떠라이 평원의 루빤데히주(Rupandehi D.)에 속해 있는 작은 군郡(Municipality)으로 인도의 국경선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그러니까 룸비니에서 본다면 동북쪽으로 57km 떨어져 있는데, 룸비니에서 출발하는 것보다 사통팔달의 교통요지 부트왈(Butwal)에서 차를 대절하거나 가끔씩 운행하는 로컬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이 편리하다.

 

싯다르타 재세 시에 꼴리아(Koliya) 왕국은 로히니(Rohni) 강을 경계로 하여 까삘라바스뚜(Kapilavatthu)를 중심으로 살면서 쌀농사를 짓는 사캬(Sakya) 부족과 혈연적으로 유대관계를 이루면서 평화롭게 지내왔다. 

 

당시 관습대로 마야데비 처녀가 혼기가 되자 이웃 사캬족의 정반왕淨飯王(Suddhodana)에게 시집을 보냈다. 그러나 그녀는 성스러운 태몽을 꾸고 전륜성왕轉輪聖王(Cakravartin)의 점괘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를 낳긴 했으나 그녀 자신은 산후통으로 인해 일주일 만에 아기 곁을 떠나 도솔천으로 올라가 버렸다. 그러자 두 왕국의 장로들은 오랜 관습대로 그녀의 친동생인 프라쟈빠띠를 상처한 왕에게 시집보내서 어미 잃는 조카 싯다르타를 대신 키우게 하였다.

 

사진 3. 바와니뿌르 경내에 밑기둥만 남아 있는 아쇼카왕의 석주.

 

현재의 데바다하에는 거창한 역사적 고대 유적은 남아 있지 않지만 싯다르타 붓다의 생모 마야데비의 집터라고 전해 오는 바와니뿌르(Bhawanipur)와 동생 프라쟈빠띠(Prajapati)의 집터라고 전해지는 칸야마이(Kanyamai) 유지가 보전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역사적 사실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고고학적 자료인 아쇼카 석주가 남아 있긴 하지만 아쉽게도 밑기둥만 남아 있는 석주에는 비문이 없어서 꼴리아 왕국과 마야데비 가문의 역사를 소상하게 밝히는 데는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신의 연못’을 뜻하는 ‘데바다하’란 말의 어원에서 그 성격을 유추해보면 당시 이곳은 모종의 정화의식을 치르는 신성한 장소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싯다르타 태자가 어릴 적부터 이런 종교적인 분위기에 익숙해져서 훗날 ‘햄릿형 인간’을 거처 출가로 이어지는, 수행자로서의 오롯한 삶을 걷게 되는 동기부여가 되었을 것이란 역설적 추론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태자의 처갓집 데바다하

 

두 왕국 간의 인연은 비단 태자의 부모 대 뿐만이 아니었다. 마야데비와 프라쟈빠띠 자매의 조카 되는 야소다라 공주가 혼기가 되었을 때 당시 꼴리아 국왕인 슈프라붓다(Suprabuddha)가 부마駙馬 자리를 걸고 경기를 개최하였다. 그때 싯다르타 태자도 참가하여 이웃나라의 여러 왕자들을 제치고 최종 승자가 되어 공주를 차지한 것은 불교계에는 널리 알려진 유명한 일화이다.

 

사진 4. 싯다르타 태자의 유모 프라쟈빠띠의 집터인 칸야마이 유지.

 

여기 찻집에서 만난 데바다하의 주민들도 그 일을 마치 어제 일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당시 태자의 화살은 일곱 겹 타마린드(Tamarind) 나무 뒤에 숨어 있던 공주 근처에 정확하게 떨어졌고 이에 태자는 화환을 만들어 시녀를 통해 공주에게 바쳤다고 한다. 이때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는데, 당시 태자 앞에 공주 자신이 자청해서 나타났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근친혼’이었다. 당시 관습으로는 이는 결혼 승락의 의미였다는 대목에서는 모여 있던 여러 사람들의 각색된 추임세도 이어졌다. 더하여 태자의 외가이며 처가인 데바다하에 대한 각별한 애정담도 추가되었다. 

 

사진 5. 마야데비 부인의 집터인 바와니뿌르 유적지 정문.

 

『둘바경(Dulva)』이라는 경전에 의하면 ‘위없는 큰 깨달음’을 얻은 후 7년 뒤 싯다르타 붓다는 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설교여행을 다니다가 데바다하 마을을 방문하였는데, 이때 마을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싯다르타 붓다는 큰 나무 아래에 운집한 군중들에게 울림 있는 설법도 하고 또한 여러 주제를 놓고 그들과 며칠 동안 토론을 하였다고 한다.

 

성스러운 나무, 빠끼리 스케치 여행

 

필자는 3년간의 룸비니대학 재직 기간 중, 룸비니에 살다시피 한 탓으로 무시로 일대의 불교유적지를 쥐 잡듯이 순례할 수 있는 복을 누렸었다. 이때 나의 안나푸르나 학교의 그림반(A.D.T) 제자들도 여러 차례 룸비니로 스케치 여행을 오곤 하였다.

 

그들은 먼저 룸비니의 마야데비 사원과 까삘라바스투를 거처 마지막으로 데바다하의 성스러운 나무를 스케치하였다. 바로 ‘빠까리(S.T Pakari)’라는 나무였다. 나는 그들에게 준비해 간 돗자리를 깔게 하고는 주제를 던져 주었다.

“Drawing about ‘holy Pakari tree’ at Devdaha the home land of Maya Devi.”

 

사진 6. 겨울철 유채밭 속에 둘러싸여 있는 빠까리 성수의 신령스런 모습.

 

데바다하 근교에 있는 빠까리 나무(주1)는 높이가 건물 10층 높이인 29m에 달하고, 몸통 둘레도 25m나 된다. 가지와 잎이 뻗어 그늘을 이루는 사방면적은 152㎡나 되는 거목으로 수령이 수천 년이라 전해진다. 멀리서 보면 꼭 거대하고 푸른 우산이 펼쳐져 있는 모양새이다.

물론 이런 수치적인 거대함만으로 이 빠까리 나무가 유명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독자들께서는 감 잡으셨겠지만 이 나무의 진정한 존재가치는 성스러움에 있다. 그 근처에만 가도 어떤 영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성수聖樹(주2)인 것이다.

 

사진 7. 빠까리 아래에서 네팔 제자들과 스케치하는 광경.

 

그래서인지 나는 어떤 때는 마치 환상을 보기도 한다. 사리(Sari)를 걸친 어떤 여인들이 나무 둘레를 따라 꼬라(Kora)를 도는 모습이 그것이다. 이럴 때 나는 어떤 노래를 읇조리게 된다. 바로 이선희라는, 내공 있는 가수가 부른 ‘인연因緣(Intertwined fate)’이란 노래이다. 특히 나는 대금버전을 좋아 하는데, 이미 세간에 널리 알려진 이 노래는 부제가 <야소다라(Yasodara)의 노래> 또는 <라훌라의 아버지를 떠나 보내며>이다. 

 

물론 여기서 야소다라는 싯다르타 태자의 부인이고 라훌라는 야소다라와 싯다르타 사이에서 태어난 외아들의 이름이다. 

“약속해요./이 순간이 다 지나고 다시 보게 되는 그날/

모든 걸 버리고/그대 곁에 서서 남은 길을 가리란 걸./

인연이라고 하죠./ 거부할 수가 없죠./내 생애 이처럼 아름다운 날 

또 다시 올 수 있을까요?/(중략)”

 

사진 8. 네팔 제자가 그린 빠까리 성수 그림.

 

<각주>

(주1) 흔히 ‘빠까리’라고 불리는 나무는 식물분류학에서 보면 보리수菩提樹(peepal) 또는 무화과無花果(Ficus benjamina)의 일종으로 주로 인도 북부나 네팔 남부 떠라이 지방에서 자생하는 잎 넓은 상록수이다.

(주2) 우리는 고따마 싯다르타 붓다와 연관된 나무 중에서 흔히들 ‘3대 성수聖樹’를 꼽는다. 첫째는 탄생수인 무우수無憂樹(Ashok tree), 둘째는 정각수正覺樹(Peepala tree), 셋째는 열반수涅槃樹(Sara Tree)이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오늘의 주인공인 빠까리 나무는 ‘제4대 성수’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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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현재 8년째 ‘인생 4주기’ 중의 ‘유행기遊行期’를 보내려고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로 들어와 네팔학교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틈틈이 히말라야 권역의 불교유적을 순례하고 있다.
suri116@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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