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
보리수 한 알 한 알에 담는 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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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리 / 2023 년 5 월 [통권 제121호] / / 작성일23-05-05 13:20 / 조회3,816회 / 댓글1건본문
보리수염주 손중석 장인
염불念佛·독경讀經·절수행 등에서 불자佛子의 손에 쥐어진 염주念珠는 횟수를 헤아리는 단순한 용도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번뇌를 없애고 의지를 굳게 하는 데 힘이 되는 법구法具이다. 정성 어린 염원을 담아 올리는 기도와 수행에 염주는 불자와 함께하는 동반자이자 묵묵한 성원자聲援者 역할을 한다.
일정한 개수의 낱알을 실에 꿰어서 만든 염주는 수주數珠·송주誦珠·주주呪珠·불주佛珠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염주라 하고, 일본에서는 수주数珠라고 한다.
수행에 함께하는 동반자 염주
보통 108주珠를 사용하는데, 108은 인간의 번뇌를 뜻하며, 이것을 하나씩 넘기며 번뇌를 없애는 것을 의미한다. 『목환자경木槵子經』에 의하면 번뇌 업보를 없애고자 하면 목환자 108개를 끼워 항상 지니고서 가거나 앉거나 눕거나 막론하고 언제나 불법승佛法僧의 명칭을 외우며, 외울 때마다 목환자 하나씩을 넘기라고 하였다. 나무구슬인 목환자, 즉 염주는 불교 초기부터 번뇌와 고민을 끊기 위해 기도하는 도구로 만들어진 것이다.
염주의 수는 『금강정유가염송경金剛頂瑜伽念誦經』에 따르면 상품上品은 1,080과, 최승最勝은 108과, 중품은 54과, 하품은 27과의 4종을 말하는 등 그 수에 있어서도 다양하다. 108과를 절반으로 하였을 때 54과가 되고, 또 54과를 반감하여 27과로 하고 또 108과를 10배하여 1,080과로 한 것으로 보인다. 짧으면 단주, 손목에 차는 염주는 합장주라고 한다.
염주의 가장 중심에 있는 모주母珠는 아미타불, 염주알은 중생의 번뇌를 끊는다는 의미로써 관음보살이다. 모주는 내부를 투명하게 하여 그 안에 불상이나 보살상을 배치하여 작은 구멍을 통해 안이 크게 보이게도 만든다.
우리나라에서 1970년대에는 흙을 빚어서 만든 염주가, 1980년대에는 향나무와 박달나무로 만든 염주가 애용되었다. 지금은 목환자木槵子·율무·금강자金剛子·수정·산호·향목 등 다양한 소재의 염주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옥이나 수정 염주는 화사하지만 차가운 느낌이 있고, 은은한 향이 좋은 침향 염주는 자칫 부담스러운 가격에 사치스러워 보일 수 있다. 매끄러운 검은 빛의 목환자나 수수한 율무 염주도 좋지만 여러 가지로 고려해 보았을 때 보리수 염주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알이 단단해서 오랫동안 사용해도 깨지거나 망가지는 경우가 없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손길이 쌓여 스스로 보석처럼 아름다워진다.
불교에서 보리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오랜 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염주의 재료로 사용되는 보리수는 인도의 보드가야Bodhgaya 마하보리사摩訶菩提寺의 그 보리수와는 품종이 다르다. 피나무의 사촌격인 염주나무를 보리수라고 부른다. 통도사, 법주사, 해인사의 보리수는 납작하게 눌린 모양의 납작 보리수이고, 천은사, 직지사, 용화사의 보리수는 동그란 원형 보리수이다. 물론 염주로 사용하기에는 동글동글한 원형의 보리수 열매가 알맞다.
사진 5. 잘 익어 가는 보리수 열매.
보리수나무는 20년 이상 성장해야 비로소 염주알을 만들 수 있도록 여물어진다. 거친 열매 곱게 다듬으면 평소에 보이지 않던 열매의 줄무늬가 선명히 드러난다. 보리수 알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참외 같은 세로 줄무늬도, 알알이 조금씩 다른 빛을 발하는 각각의 색감도 따듯하고 정겹다. 좋은 보리수 열매로 만든 염주는 잡았을 때 매끄럽고 걸림이 없어 삿됨 없는 이와 어울린다.
정읍 보리수 염주 손중석 장인
정읍 내장상동 답곡마을에서 보리수 염주를 만드는 손중석 장인을 만나보았다. 그가 직접 디자인해서 지은 한옥 건봉재乾峰齋는 내장산의 서래봉, 불출봉, 망해봉과 어울려 자연스러운 정취가 있다. 그의 집안에서 염주 만드는 일의 시작은 선친 손무헌(1920~1995)선생에 의해서다. 1955년 합천 해인사에서 인연이 되어 염주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나무를 깎아 구슬을 만들거나 찰흙을 빚어 구워 만들었다. 누구보다 정교하고 세밀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기에 불국사 불교용품점을 시작으로 서울, 부산, 대구, 충청 등 전국적으로 서서히 알려지게 되었다.
좋은 염주를 만들기 위해 꾸준하게 노력했어도 찰흙으로 만든 염주에는 한계가 있었다. 자칫 깨지기 쉽다는 것이다. 단단하면서도 손안에서 부드럽고 잘 길들여질 수 있는 소재가 필요했다. 그래서 찾은 것이 보리수 열매였다. 당시 보리수가 있는 곳이 흔하지 않았다. 고창 선운사와 부안 내소사에서 열매를 구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보리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갔지만 역시 충분하지 않아 직접 보리수 재배를 시작하게 된다.
“1970년부터 재배를 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실하고 모양이 좋은 열매가 열리는 보리수를 선별했지요. 천은사에서 묘목을 구하기도 하고요. 정읍의 몇 곳에 나누어 심어 지금은 이백 그루 넘는 보리수가 자라고 있습니다. 염주의 반은 농사일이랍니다.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나무를 잘 가꾸는가가 중요하죠. 전지剪枝, 거름, 병충해 등 신경 써야 하는 것이 많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리만 잘 한다고 해서 열매가 잘 맺는 것도 아니에요. 어느 해인가 특별히 굵고 실한 열매가 잔뜩 맺힌 때가 있어요. 너무 좋은 열매가 나와서 다음해도 계속 그럴 줄 알았죠. 그런데 그렇지가 않더라구요. 해마다 다르게 나고 날씨와 환경 등 미세한 변수가 있고 결국 하늘의 일인 것이죠. 허허허. ”
손중석 장인은 좋은 염주를 만들기 위해 묘목으로 시작해 나무로 키워내고 꽃피고 열매 맺는 전 과정을 보리수와 함께 호흡한다. 보리수 농사는 은근히 잔손이 많이 가는데, 보리수는 6월에 꽃이 펴서 8월 말이 지나야 열매가 충분히 영글어 염주로 쓸 수 있다. 열매 하나하나를 손으로 따서 수확하고, 이파리와 가지를 손으로 다듬어 열매만 골라낸다.
3일 정도 말리면 수확할 때 푸르던 빛깔이 사나흘 만에 먼지가 날아갈 만큼 바짝 마른 상태가 된다. 표면이 단단하고 빛이 나도록 여러 단계로 가공하고, 손질된 염주 알을 방향에 맞게 섬세하게 구멍을 뚫어 견고한 실에 꿰어 연결한다. 보리수 알은 다 비슷비슷해 보여도 한 알 한 알마다 형태나 굵기, 색감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각각 가공하는 디테일이 다르고 사용에 따라 분류를 달리한다. 이렇게 보리수 알은 보리수 염주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불자와 함께 호흡하여 완성되는 염주
손 장인은 오랜 세월 잘 쓰여진, 다시 말해 손길로 잘 길들여진 염주를 만날 때면 마음 한 편이 울컥하기도 하단다. 불심이 깊은 어느 나이든 노보살님의 염주였다. 얼마나 애지중지 다루었는지 염주 한 알 한 알마다 세월의 손길이 그득하였다. 곱고 깊은 먹색으로 물들어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적이라 하였다. 당시 그 보리수 염주를 사용한 지 50년 되었다 했으니 노보살과 염주는 반백년을 함께한 셈이다. 노란 빛의 어리던 보리수 염주는 먹빛의 노보리수 염주가 되었다.
“염주를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결국 염주의 최종 완성은 불자의 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죠. 따듯한 손길로 염주를 계속 만져 주면 고운 윤택이 납니다. 손길이 닿지 않는 염주는 소용이 없어요. 장식용으로 걸어만 놓으면 거기에서 생명력이 멈추어요. 끊임없이 사용되는 염주는 사람과 호흡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빛을 발하고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색으로 변모하지요.”
장인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염주이지만 쓰이는 손길로 완성된다는 손중석 장인의 말이 인상적이다. 보리수라는 같은 나무에서 나고 자라지만 영글어 보리수 염주 알이 되기도 하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보리수 염주가 되어도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 불심 가득 물들기도 하고, 자동차 백미러의 장식용의 삶을 살기도 한다.
사진 11. 곱게 완성된 보리수 염주.
불자라면 염주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염주는 사용하는 사람의 쓰임과 마음에 따라 무용無用한 물건이 되기도 하고 삶을 동반하는 교감交感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과한 집착이라 그 또한 부처님의 뜻이 아닐 테고, 좋은 친구로 곁에 두고 함께 온기를 나누는 사이로 지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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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애님의 댓글
전정애 작성일중현 김세리 선생님의 '보리수 한 알 한 알에 담는 염원'을 읽으며 장인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염주이지만 쓰이는 손길로 최종 완성된다는 장인의 마음에 감동합니다. 참 아름다운 삶이요 참 아름다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