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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禪, 禪과 시]
이 세상은 지옥 위에서 하는 꽃구경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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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택  /  2023 년 5 월 [통권 제121호]  /     /  작성일23-05-05 13:07  /   조회3,608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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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운동을 하든 자신의 호흡을 관찰하고 자신의 한계 안에서 운동해야 합니다. 확실하게 자신의 한계 안에서 운동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코로 호흡하는 것입니다. 입으로 호흡해야 한다면 자신의 한계를 넘은 것입니다. 경사가 급해지면 더욱 천천히 올라가야 합니다. 

 

어떤 이유로든 몸을 무리하게 움직였을 때마다 큰 대가를 치렀습니다. 몸을 움직이는 그 어떤 일도 즐거운 것이 될 수 있으며 산행은 그런 즐거움 가운데 하나입니다.

 

꽃구름

 

한적한 산길, 길가에 수줍은 듯 피어 있는 진달래꽃도 천천히 바라보면 가슴속으로 스며듭니다. 이 행복감은 분명 생명 그 자체가 주는 기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비탈길을 올라가면 벚꽃 터널이 나타납니다. 벚꽃 터널 아래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입니다. 잎이 나기 전에 꽃이 먼저 피는 나무는 왕벚나무입니다. 왕벚나무는 최초의 한 그루에서 번식한 나무들이라면 모두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어 일제히 꽃이 피었다가 한꺼번에 집니다. 그 때문에 꽃이 질 때 마치 눈 내리듯 흩날리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냅니다.

 

사진 1. 진달래꽃 피어 있는 한적한 산길.

 

활짝 피어났다가 어느새 일제히 지고 마는 벚꽃에서 우리는 인생무상을 느낍니다. 벚꽃을 보면서 사람들은 덧없는 인생에서 애상哀傷이라는 미학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길 가다가 아주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면 자기도 몰래 뒤돌아봅니다. 벚꽃 터널을 지난 다음에도 뒤돌아보며 그 여운을 간직하려 합니다. 이제 막 피어나는 벚꽃 구름은 우리들 마음을 구름처럼 산속으로 떠다니게 합니다. 저기 저 벚꽃 구름은 벚꽃 속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는답니다. 무엇이든지 거기서 벗어날 때 비로소 그것의 진정한 모습을 알아봅니다.

 

끌어안고 울고 싶은 풍경

 

용미봉은 해발 220m의 낮은 산이지만 봄날에는 보기 드문 꽃 잔치가 벌어집니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면 진달래꽃 잔치가 펼쳐집니다. 터질 듯 피어난 꽃들을 바라보노라면 우리들 마음도 터질 듯이 부풀어 오릅니다. 계절 따라 자기 차례가 오면 말없이 피는 꽃의 마음을 배우는 것이 화도花道입니다. 꽃을 피웠다면 열매를 맺어야 하고, 아직 피지 못했다면 언젠가는 피어납니다. 사람도 저마다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사람 나름의 꽃은 반드시 피어납니다.

 

사진 2. 구름처럼 산을 수놓는 벚꽃 터널.

 

어느 정도 내려와 문득 고개를 들고 보니 능선이 불타는 것처럼 붉게 타오릅니다. 꽃들은 스스로 열리고 자신의 색으로 물들면서 우리를 깊은 곳으로 이끌고 갑니다. 보세요. 아아, 끌어안고 울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진달래꽃을 보고 있자니 문득 100년 전에 김소월(1902~1934)이 쓴 「진달래꽃」이 생각납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주1)

 

사진 3. 끌어안고 울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

 

100년 전에 이 시가 처음 발표되었을 때 사람들은 얼마나 놀랐을까요. 사람들은 이 시를 읽고 비로소 진달래꽃과 이별에 눈을 떴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지나간 10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 시를 읽으면서 마음이 아련해지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 시는 글자 그대로 읽으면 작품이 참뜻을 잃고 허무한 시가 되고 맙니다. 이 시는 시인의 속마음과는 반대되는 반어법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 비로소 거기에서 깊은 정감이 생겨납니다. ‘가시는 걸음걸음 / 놓인 그 꽃을 /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이 한마디는 실로 사람을 아연하게 만듭니다. 시인이 뿌려 놓은 진달래꽃이 마치 비수처럼 빛납니다.

 

하지만 사랑은 원래 쉬 변하는 것이 아니던가요? 단지 세월이 흐른 뒤 문득 뒤돌아봤을 때 아련한 그리움만 남는 것, 사랑이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니었나요? 생사와 이별은 삶에서 가장 큰 일이지만 우리들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벚꽃 잎이 떨어지는 속도

 

일본에서는 벚꽃을 두고 수많은 시와 노래, 그림과 이야기가 풍부하게 만들어졌습니다. 벚꽃은 어렴풋한 흔적을 남기며 생멸하는 시각적 은유입니다. 벚꽃은 일본 문화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그리고 어쩌면 가장 상투적인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사진 4. 인생의 덧없음을 겹쳐 보는 벚꽃.

 

어느 날 신카이 마코토(1973~)는 한 여성 팬으로부터 이런 메일을 받았습니다.

 

“알고 계신가요? 초속 5센티미터. 벚꽃 잎이 떨어지는 속도.”

애니메이션 『초속 5센티미터』(2007)는 이 한 통의 메일로 시작되었습니다. 나중에 실제 벚꽃 잎이 떨어지는 속도는 그보다 훨씬 빠르다는 게 밝혀졌지만, 이 제목이 주는 로맨틱함을 살려 영화로 만들었고 다 아시는 바와 같이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매년 벚꽃은 기껏 일주일 정도 핍니다. 갑자기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섬세한 분홍빛 꽃은 금세 다 지고 맙니다. 이 짧은 시간을 즐기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일본 전국에서 벚꽃 아래에 돗자리를 펼칩니다. 이를 하나미花見라고 합니다. 짧은 순간 피었다가 꽃잎을 흩날리며 떨어지는 벚꽃에서 인생의 덧없음을 겹쳐 보았던 것입니다. 하나미에 대해서 고바야시 잇사(1763~1828)는 이런 하이쿠를 남겼습니다.

 

이 세상은 지옥 위에서 하는 꽃구경이어라(주2)

 

잇사는 아버지의 유산을 놓고 계모와 상속 문제로 12년간 싸움을 합니다. 겨우 싸움이 일단락되자 51세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살다가 이듬해에 28세의 기쿠와 결혼합니다. 그리고 54세에서 61세 사이에 장남, 장녀, 차남이 차례로 태어나서 얼마 살지 못하고 죽었으며, 삼남을 낳던 부인은 세상을 떠나고 아이도 곧 숨을 거둡니다. 그 후에 잇사 자신도 중풍으로 쓰러져 고생하였으니 세상이 지옥 같지 않았겠어요. 그러나 그 와중에도 꽃은 피고 또 피었습니다. 세상은 잔혹하고 슬픈 일 뿐이라 지옥과도 같지만, 그렇지만 그 위에서 하는 하나미花見와 같다고 잇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삶처럼 덧없는 것도 없지만 삶처럼 환상적인 것도 없습니다. 

 

사진 5. 몽테뉴가 『수상록』을 집필했던 몽테뉴 성의 전경.

 

몽테뉴(1533~1592)도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35세에 아버지가 죽고, 그 이듬해에 동생이 죽고, 또 그 이듬해에는 첫째 아이가 죽었습니다. 이후 연달아 네 자녀를 잃었습니다. 몽테뉴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거듭한 끝에 루크레티우스(B.C.96?~B.C.55)를 인용하여 말합니다. “어찌하여 배불리 먹은 손님이 향연을 떠나듯이 인생의 향연으로부터 떠나지 않는가?” 몽테뉴는 죽음으로써 더 불행해진 사람은 없다면서, “내가 양배추를 심고 있을 때 죽음이 찾아오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주3) 말년에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이 세상은 가볍게 스쳐 지나가듯 표면 위를 미끄러지듯 사는 것이 좋다.”(주4)

 

류영모(1890~1981)도 루크레티우스와 비슷한 말을 남겼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선미禪味가 느껴집니다.

 

“이 지구 위의 잔치에 다녀가는 것은 너, 나 다름없이 미련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자꾸 더 살자고 애쓰지를 말아야 합니다. 여기는 잠깐 잔치에 참여할 곳이지, 본디 여기서 살아온 것도 아니요, 늘 여기서 살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생각으로라도 초월하자는 것입니다.”(주5)

 

과학은 새로운 만큼 가치가 높아지고, 종교는 오래된 만큼 가치가 높아집니다. 철학도 항상 근원을 찾아갑니다. 죽음에 대해서는 일찍이 소크라테스(B.C.470?~B.C.399)가 선기禪氣 가득한 말을 남겼습니다.

 

 “어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그는 지혜로운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지혜롭지 않으며, 무엇을 아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허락된 모든 복 중에서 죽음이 최고의 복일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은 마치 죽음이 최악의 재앙임이 확실한 것처럼 죽음을 두려워합니다.”(주6)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지혜로운 자와 아닌 자를 구분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조금만 아파도 죽을까 봐 두려워하는 우리는 언제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지혜를 얻게 될까요.

 

길을 잃는 즐거움

 

오늘은 꽃구경하다가 사랑과 죽음의 미로를 오랫동안 헤맸습니다. 내려오는 길에서 아차 하는 순간 그만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갈림길에서 대치골 쪽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이렇게 길을 잘못 들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감각이 깨어나고 야생을 알게 됩니다. 길을 잘못 드는 것, 그것은 언제나 산행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입니다. 길을 잃는 것은 우리가 모르는 것을 발견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독서든, 산행이든, 인생이든, 우리는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닐 뿐입니다.

 

사진 6. 길을 잃고 헤매어도 즐거운 산길.

 

<각주> 

1) 김소월, 『진달내꽃』(1925).

2) 小林一茶, 『七番日記』 : 世の中は 地獄の上の 花見かな.

3) 몽테뉴, 『수상록』 제20장.

4) 사라 베이크웰, 『어떻게 살 것인가』(2012).

5) 박영호, 『다석 류영모』(2009).

6)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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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택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1976년 시). 전 대구시인협회 회장. 대구대학교 사범대 겸임교수, 전 영신중학교 교장.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저서로 『보물찾기』(시와시학사, 2000), 『납작바위』(시와반시사, 2012), 『글쓰기 노트』(집현전, 2018) 등이 있다.
jtsuh@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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