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불교는 지금]
미국 불교사에 발자취를 남긴 주요 사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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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 / 2023 년 3 월 [통권 제119호] / / 작성일23-03-03 10:44 / 조회2,297회 / 댓글0건본문
세계불교는 지금 3 |미국 ③
미국 불교사에 족적을 남긴 중요한 사건들은 무엇이고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미국에 도래하는 불교는 뉴잉글랜드의 초월주의자들이 동양의 대안적 영성을 찾아 나섰던 이래로 150년간 지속되었던 구도 역정의 종착지였다. 불교는 유럽계 지식인 미국인들의 내밀한 관심사로부터 이른바 하나의 대중운동으로 변화했다. 미국불교의 역사와 전개 과정을 잘 이해하려면 미국사를 살펴보면서 함께 봐야 한다. 리처드 휴저스시거는 미국 사회의 흐름에 대한 반발과 그 대안으로 불교가 당시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고 평가한다. 나는 이 주장에 공감하면서 미국 불교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미국불교의 중요한 사건으로 1893년 시카고 종교회의, 1950년대 비트 세대, 1960년대의 히피 세대와 반전 세대가 불교계에 참여한 것으로, 이들은 미국불교의 역사에서 큰 역할을 했다. 이들은 미국의 문화에 반기를 든 세대들로 당시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선을 지도한 일본 조동종의 스즈키 순류와 만나면서 선불교가 널리 퍼지도록 했다. 이어서 1990년대의 미국적 불교의 전개와 2000년대의 마인드풀리스(mindfulness)로 대변되는 명상 붐으로 흘러갔다.
이외에도 1970년에 도미한 티베트인 초걈트룽파 린포체의 등장이 매우 의미 있다. 그는 현재 가장 큰 백인 신도단체인 샴발라를 창립하였고, 콜로라도 볼더에 나루빠 대학교를 설립하였다. 이러한 흐름 중에서 1960년대에 시작한 선불교와 1990년대에 불기 시작한 티베트 불교가 함께 일으킨 불교 바람의 강도는 매우 강했다. 그 강도는 점점 강해져 시간이 지날수록 태풍급으로 발전하여 전 미주 지역을 2천년대 초까지 대략 50년 동안 지속적으로 불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미국불교에 대한 많은 책들이 나왔고, 미국불교가 새로운 학문 분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즉 미국불교가 미국 종교사와 세계 불교사와 접점을 갖는 분야로 부상할 만큼 발전을 이루었다는 것이 『미국불교』의 저자 리처드 휴지스 시거의 주장이다. 하지만 미국의 한인 사회의 상황은 달랐다. 197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이민 바람으로 도미한 한국인들에 의해 형성된 한인 사회는 미국 주류사회에서 일고 있는 영성의 방향을 감지하지 못하고 기독교 중심의 문화를 형성했다. 현재까지도 대다수 미국의 한인사회는 마치 동굴 속에 사는 사람들처럼 미국사회의 흐름을 알지 못하고, 한국의 불자들도 이런 흐름을 알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 영성에 관한 초월주의자들의 관심
초월주의(주1) 운동을 이끈 주요 인물로는 랠프 월도 에머슨, 헨리 데이비드 소로, 존 뮤어, 마가렛 풀러 그리고 아모스 브론슨 엘코트, 윌리엄 엘레리 채닝, 윌리엄 헨리 채닝, 월트 휘트먼, 시어도어 파커, 엘리자베스 팔머 피바디 등이 있다. 아시아 종교에 매료되었던 이들은 아시아 종교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동양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창의적 작가들은 앞 세대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번역해 왔던 힌두교, 불교 문헌들을 자유롭게 이용했다. 잭 케루악, 게리 스나이더, 알렌 긴스버그, 앤 왈드맨 같은 비트세대 작가들은 이들 문헌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이 리처드 휴지스의 주장이다.
1870년대에 뉴욕에서 창설된 신지학회(Theosophical Society)
신지학회는 불교와 힌두교, 기독교와 유대교의 요소, 신비주의, 과학사상 등에서 사상을 끌어오고 영향을 받은 혼합영성 그룹이다. 이 학회의 창설자는 헨리 스틸 올코트(1832~1907)와 러시아에서 이민 온 헬레나 페트로브나 불라바츠키(1831~1991)이다.
이들은 미국 최초의 불교신도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뉴욕을 출발하여 스리랑카로 가서 오계를 받고 불교신자가 되었다. 나아가 이들은 1880년 스리랑카에서 불교계가 기독교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고, 영국 정부로부터 부처님오신날이 국경일이 되도록 하였다. 또 올코트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불교기를 디자인하기도 하였다. 미국과 인도, 영국 등 각지에서 신지학회가 결성되어 스리랑카 다르마팔마 불교 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불교를 널리 알린 1893년 시카고 종교회의
시카고 박람회는 당시의 물질문명을 정리하는 전시회였다. 종교회의는 이런 큰 행사 중에 열리는 여러 이벤트 중의 하나였다. 이 회의는 서양과 동양의 서로 다른 종교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 종교 간의 대화이자 종교회의였다. 종교 간 대화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평가받는 이 대회를 통해 미국에 불교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흥미롭게도 이 회의에 참가했던 대표들과 청중들은 대부분 크리스천들이었다. 대부분의 기독교 종파들이 많이 참석했다. 아시아에서 인도(힌두교, 조로아스터교, 시크교, 자이나교), 중국, 일본(임제종, 정토진종, 니치렌, 천태종), 태국, 스리랑카에서 대표들이 참가하였다.
주요 참석자들의 면면을 보면 대회 의장을 맡은 존 헨리 베로우스(John Henny Barrows) 목사, 인도 라마 크리슈나의 제자인 스와미 비베카난다(Swami Vivekananda), 스리랑카 아나가리카 달마팔라, 일본의 소엔사쿠(임제종) 등이다.
미국불교의 중요한 분수령이 된 비트세대의 등장
1950년대 ‘선의 대유행(Zen Boom)’은 미국불교의 역사와 계보에 중요한 분수령으로 간주된다는 것이 리처드 휴지스 시거의 주장이다. 스즈키 다이세즈, 앨런 와츠(Alan Watts)는 선을 미국에 도입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들은 비트세대의 작가들과 더불어 불교를 미국 주류사회에 진입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 1936년 70세의 D.T 스즈키가 세계신앙대회(The World Congress of Faiths)에 참석차 런던에 왔을 때 앨런 왓츠는 불과 21세의 청년이었다. 그 해에 와츠는 ‘선의 정신(The Spirit of Zen)’을 출판하였다.
뉴욕과 캘리포니아에서 많은 활동을 한 앨런 왓츠가 미국에서 낸 첫 번째 저서는 ‘행복의 의미(The Meaning of Happiness)’였는데 ‘현대심리학과 동양의 지혜에 토대한 영혼의 자유를 향한 갈구’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초 무렵 앨런 와츠는 불교, 기독교 신비주의, 정신치료, 영성에 관한 저서들을 출간하면서 많은 독자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1957년 ‘선의 길(The Way of Zen)’을 출판하여 큰 명성을 얻었고, 1959년 ‘비트선, 스퀘어 선, 선(Beat Zen, Square Zen, and Zen)’을 발행하였다.
그런데 와츠는 잭 케루악 같은 비트세대들을 향해 방종한 불교 애호가들이라고 무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는 일본 이민자들과 일본의 불교 공동체들,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소수의 미국인 추종자들이 신봉하던 불교를 의미하는 스퀘어 선에 대해서만 비판적 태도를 자제했을 뿐이다. 그러나 와츠는 이른바 자신이 선의 진정한 정신이라고 간주했던 것에 대해서는 찬양하고 있는 데 그것은 창의적 잠재성이 고취된 자유로운 형식의 인간주의적 영성 같은 것이라고 했다.
앨런 와츠가 강의나 저술을 통해서 전했던 선은 풍요 속에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방황하던 비트족이나 히피족에게는 가슴에 와닿는 가르침이 되었다. 불교 대중화를 위한 그의 노력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가 지향하는 불교는 개인주의적이고 낙관적이고, 인간주의적인 특징을 지닌 불교였다. 창의적인 자기표현을 강조했던 그의 불교관이 1960년대 초의 포괄적 이상주의와 잘 어울렸기 때문이라는 것이 리처드 휴지스 시거의 평가이다.
비트세대(Beat Generation)와 히피세대
비트세대는 1950년대의 풍요로운 물질 중심적 가치관, 체제 순응적인 가치관에 반감을 품었다. 대신 개인적인 각성을 통해 새로운 자유와 진리를 찾겠다는 구도적인 삶의 태도를 보였다. 이들은 마약과 문란한 섹스 그리고 방랑 생활을 했지만 동양전통 특히 선불교에서 참 진리를 찾고자 했다. 안정과 평상을 최고로 하는 나라에서 그들 스스로 추방자가 되었다.
이들은 사회에서 ‘패배한(beaten)’ 것처럼 느낀다고 해서 또 재즈 리듬이 강한 ‘박자(beat)’를 좋아한다고 해서 비트족이라고 불렸다. 이 말은 캐나다 출생의 잭 케루악이 만들어 낸 용어이다. 이 세대에 등장한 중요한 시인은 알렌 긴스버그, 게리 스나이더 등이다. 비트세대의 시인들은 미국인들이 불교에 관심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나아가 유럽계 백인 불교인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도록 불법을 창의적으로 전유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 리처드 휴지스 시거의 평가이다.
1950년대 이전과 50년대에 미국불교는 자유분방한 예술가나 방랑자 진영에 국한되어 있었으며 소수의 영적 구도자들만이 심취해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불교는 대중적 종교운동으로 변해 가기 시작하였다. 이들과 더불어 1960년대 히피세대와 반전주의자나, 평화주의자들, LSD에 빠진 사람들, 반문화주의자들이 불교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불교에 들어왔다. 이들의 참여로 불교는 대중적 종교운동으로 변했으며, 이후 미국 불교계의 중요한 사람들이 되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이 세대보다 약간 늦은 나이지만 전형적인 히피였다. 많은 히피들이 출가를 하였다. 현재 세속 나이로 70세 중반 이후로 미국에서 출가하여 활동하고 있는 스님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는 히피였다. 뉴욕의 Zen Mountain Monastery를 건립한 미국인 루리스님도 히피였고, 숭산스님의 제자로 현재 계룡산 무상사 조실인 대봉스님도 1960∼70년대에는 히피로 살았다.
미국 선불교의 본거지가 된 세 선원
당시 히피의 본거지는 샌프란시스코였다. 이곳에 위치한 조동종 사찰인 소코지(Sokoji)의 주지로 있던 스즈키 순류는 아침 좌선 모임을 시작하였는데 유럽계 미국인들의 참가자가 많아졌다. 1962년 이 소코지로부터 샌프란스시코 선원(S.F Zen Center)이 따로 법인을 등록하였다. 선의 대폭발로 불리던 1960년대에 히피 등 스즈키 순류에게 선을 배우고자 찾아오는 사람들이 급증하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1966년 타사하라 온천을 매입하여 미국에 첫 번째 아시아 정통식 선원 타사하라 선원을 건립하였다. 나아가 1969년에는 페이지가의 호텔식 아파트를 구입하여 샌프란선원을 개원하였다. 이후 스즈키 순류 사망 후인 1972년에는 이곳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곳인 마린 카운티에 그린 걸치(Green Gulch) 농장 선원을 세웠다. 이 세 곳은 이후 미국에서 선불교의 본거지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각주>
(주1) 초월주의超越主義(Transcendentalism)는 1830년대부터 1840년대 본격화된 산업혁명과 근대국가로 발돋움 하는 미국의 전환기를 바탕으로 미국의 사상가들이 주장한 이상주의적 관념론에 의한 사상 개혁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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