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 저편 티베트 불교]
티베트 불교의 숨겨진 보고, 라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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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 2023 년 1 월 [통권 제117호] / / 작성일23-01-05 11:37 / 조회3,612회 / 댓글0건본문
“따시 로사르(Tashi Losar)”!
먼저 월간 『고경』 애독자분들께 히말라야식 새해 인사를 올립니다. 무심한 ‘시간의 수레바퀴’, ‘깔라차크라(Kalachakra)’가 돌고 돌아 다시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올해는 우리에게는 ‘검은 토끼[癸卯]’ 띠이지만, 티베트권에서는 ‘물 토끼(Water Rabbit)’로 부른답니다. 하기야 뭐라 부르든지 무슨 상관이 있으랴마는 여러분들의 앞날에 토끼 같은 길상스런 한 해가 펼쳐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드립니다.
티베트의 개방
딱 30년 전, 1993년이었다. 티베트란 나라가 내게, 아니 우리 모두에게 그 실체를 드러낸 때였다. 사실 티베트와 우리의 연결고리는 고려시대 때부터 낯선 관계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지정학적 관계로 오랜 세월 단절된 시기를 거치면서 생소한 나라로 변해 버렸다. 더구나 근대시기 티베트의 국권이 붉은 중공 치하로 넘어가면서 어언 50년간 ‘죽竹의 장막’에 철저히 가려 있었기에 한동안 티베트는 대설산 너머 신비의 구름 속에 가려진, 그런 이미지로 고착되어 버렸다.
그러나 세기적 해빙무드에 따라 티베트도 개방되었고, 이어서 1992년에는 한중수교가 이루어지며 한반도의 문까지 열리게 되었다. 그 이듬해 필자도 마침내 티베트 본토의 수도 라싸(Lhasa)에 들어갈 수 있었고, 뽀딸라궁을 향해 오체투지를 드리는 감격을 맛볼 수 있었다. 그리고는 내친김에 티베트대학에 적을 두고 우리와 티베트의 종교와 민속문화의 연결고리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틈틈이 멀고 먼 카일라스(St. Kailas) 산을 여러 차례 순례하면서 저술에 몰두하여 2000년에는 ‘수미산설須彌山說’을 주제로 한 『티베트의 신비와 명상』(도안사)을, 이어서 『티베트의 역사산책』(정신세계사)와 『티베트 문화산책』(정신세계사)을 출간하면서 우리나라에 ‘티베트학(Tibetology)’의 초석을 놓는 데 미력이나마 일조할 수 있었다.
하늘 고개의 땅, 라다크Ladakh
앞에서 오랫동안의 티베트 본토의 원천 봉쇄로 인해 티베트 마니아의 갈증 해소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안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었는데, 우선 요긴한 정보는 구미권이나 일본 쪽에서 제한적이나마 접할 수 있었고, 또한 직접 티베트 문화권으로 가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티베트 본토는 아니지만 인도령 라다크, 시킴(Sikkim) 그리고 네팔령 무스탕(Mustang) 같은 곳을 방문하면 그동안 사진으로만 보았던 티베트 사원과 눈 푸른 고승들 그리고 일반 티베트인을 직접 만나 이야기도 할 수 있었고 차와 설산 막걸리 ‘창’도 같이 마실 수 있었다. 말하자면 '꿩 대신 닭'이었던 셈이었다.
필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티베트 본토 개방 이전이던 1990년에 처음으로, 그리고 2011년 두 번째로 모 잡지 연재 차 또 한 번 그리고 올해 3번째로 라다크를 방문하였다. 대충 10년 강산 주기였기에 많은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초기에는 인도 서북부 카슈미르주도 스리나가르(Srinagar)까지 올라가서 해발 3,529m의 조지 라(Zoji-la)를 넘어가야 했다. 하지만 요즘은 인도북부 히마찰푸라데쉬(H.P)의 휴양지 마날리(Manali)를 경유하여 라다크의 주도 레(Leh)로 입성하는 길이 포장되었다.
또한 로탕라(Rothang-la) 터널도 뚫려서 이전보다는 많이 빨라지고 쉬어졌다. 그러나 ‘라다크’라는 어원이 ‘고개 길의 땅’임을 증명하듯이 지구촌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로 높은 해발 5,000m 급의 고개 3개를 넘어야 갈 수 있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나 같은 순례자도 그곳에 이르기가 힘든 것은 역시 마찬가지다.
힘들게 고갯마루에 올라왔다 하더라도 산꼭대기에는 또 다른 복병이 기다리고 있게 마련이다. 이름하여 ‘바람의 말들(Lungta: 風馬旗)’인데, 이것들이 몰려와 하계 중생들로 하여금 어지러워서 걸음조차 떼 놓기가 어렵게 만들고,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게 만든다. 이른바 고산병이다. 그래서 원주민들도 고개 마루턱에 오르면 고산병 귀신을 물리치려고 “키키 소소 라걀로~”라고 소리를 지르며 ‘짬빠 가루’나 작은 오색 색종이를 하늘을 향해 뿌려댄다.
골짜기마다 산재한 유서 깊은 대사원들
혹자는 “그렇게 험하고 어려운 곳을 왜 힘들게 방문하느냐?”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물론 대부분의 호사가들은 스스로의 ‘버킷리스트’를 채우기 위해서 그 고통을 감내한다. 하지만 필자 같은 티베트 마니아들은 티베트 불교의 진수를 감추어 놓은 사원들의 훈기를 직접 맛보려고 그렇게 힘든 순례길에 오르게 된다.
현재 스스로를 ‘라닥키’라고 부르는 이곳 주민들은 국적은 인도인이지만 혈통은 티베트족이다. 왜냐면 이들의 선조인 남걀(Namgyal) 왕조는 강력했던 토번吐蕃 왕조의 후예이며 또한 구게(Guge) 왕조와 형제국이었다. 그러나 후일 두 나라는 왕실 간의 결혼 문제로 전쟁이 일어나 구게왕국이 멸망에 이르게 되어 라다크는 티베트 본토에서 외톨이 신세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때 셍게남걀(Sengge Namgyal, 1590~1620) 이라는 불세출의 영걸英傑이 출현하여 왕조를 반석에 올려놓으며 그들의 정체성을 지켜 내려 왔다. 현재 이 남걀왕조의 후예는 비록 통치권은 인도에 이양하였지만 여전히 상징적인 국왕 대접을 받으며 레 인근의 스톡(Stock) 궁전에 거주하고 있다.(졸저 『티베트 역사산책』 구게왕국 편에 비극의 역사가 정리되어 있으니 관심 있는 독자들은 일독하기 바란다).
이런 지정학적 이유로 라다크는 본토에 비해 티베트적인 종교와 문화의 순수성을 지켜 내려오며, 오히려 변용을 거치며 오늘날과 같은 티베트 불교 최대, 최고의 문화유적을 지켜올 수 있었다.
우선 그 원인 중 하나는 겔룩빠(Gelukpa) 종파의 독주와 견제에서 벗어나 ‘4대 종파’가 골고루 발전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사실 티베트 본토에서는 과거 수백 년 동안 국권까지 잡고 있던, 겔룩빠로 인해 나머지 ‘4대 종파’가 평등한 경쟁을 할 수 없었던 반면 본토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라다크에서는 각자 공정하게 교세를 확장할 수 있었기에 백가쟁명의 시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물론 본토의 유산들이 1996년부터 시작된 10년간의 ‘문화혁명’ 기간 중에 거의 파괴되어 버린 결과로 라다크의 불교유산들이 더욱 조명을 받고 있다는 점도 있을 것이지만….
사실 현재 라다크 사원들 중 지파支派가 많기로 유명한 까규빠(bka’brgyud sect)에 속하는 사원들이 가장 많고 그 외 닝마빠(Ningma sect)와 샤까빠(Sakya sect) 그리고 겔룩빠가 뒤를 잇는 것을 보면 증명되는 사실이다.
사실 라다크를 여행하다 보면 중심지 레(Leh) 시가지 외에는 볼거리가 사원들 외에는 전혀 없음을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아침저녁으로 뜨고 지는 해와 달 그리고 오색별들이 가득한 밤하늘이나, 눈이 시리도록 맑고 투명한 하늘과 때로는 이마에 만년설을 이고 있는 덩치 큰 산들과 크고 작은 산주름이 잡혀 있는 계곡들과 드넓은 광야 사이로 흘러내리는 크고 작은 강들, 그리고 드넓은 초원에서 방목하는 유목민들이나 드문드문 저녁연기가 올라오는 평화로운 민가의 목가적인 풍경도 이방인들의 눈길을 사로잡겠지만, 결국 라다크 여행의 랜드마크는 다양한 매력을 숨기고 있는 고색창연한 사원들일 것이다.
힘들게 라다크까지 왔다면 가장 큰 헤미스 사원(Hemis Monastery)는 당연히 가 보아야 한다. 가능하다면 ‘헤미스 쎄추’가 열리는 가면춤[Cham] 축제에 맞추는 것이 좋을 것이고, 더 욕심을 부린다면 12년마다 열리는 원숭이해 초여름에 가는 것이 금상첨화이다.
설역雪域에 불교를 전한 구루 린뽀체 빠드마삼바바(Padmasambhava)의 탄생일을 기념해 열리는 이 축제는 티베트 불교권, 아니 세계에서 가장 성대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을 정도이다. 특히 이때 평소 볼 수 없던 대형 탕카가 공개되기에 수많은 인파들이 몰려들기로도 유명하다. 무릇 축제란 사람이 많을수록 흥이 나기 마련이니까.
참, 헤미스 사원에는 『토마스복음서』에 근거한 예수님의 숨겨진 자취에 대한 기록이 전해 온다고 해서 호사가들의 흥미를 끌기도 한다.
헤미스 사원 이외에 초대형 미륵불상으로 유명한 디스켓(Diskit), 인더스강 계곡 속의 원경이 아름다운 라마유르(Lamayur), 틱세, 알치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크고 작은 곰빠들이 있으나 지면상 다 소개할 수 없어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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