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
불화로 그려보는 미래의 불국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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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리 / 2022 년 9 월 [통권 제113호] / / 작성일22-09-05 11:16 / 조회4,384회 / 댓글0건본문
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9 / 국가무형문화재 불화장 이수자 월암 신진환 작가
오른발을 왼쪽 무릎에 올린 반가좌 자세로 바위 위에 걸터앉아 선재동자를 굽어보고 있는 모습의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는 『화엄경』의 내용 중 한 장면을 그린 것이다. 수월水月이란 글자 뜻 그대로 달빛이 흐르는 바다에 솟은 바위에 앉은 관음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그 옆에는 선재동자가 묘사되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선지식善知識을 찾아다니던 선재동자의 기나긴 여정 중 한 장면이다.
고려 불교미술의 백미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관음보살은 현실에서 마주하는 고난과 어려움에서 사람들을 구원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보살로 자비의 상징이다. 사람들은 선재동자처럼 깨달음을 얻고 싶었고, 관음보살을 알현하고 싶은 바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이 수월관음도로 발현되었다. 관음보살을 직접 만날 수는 없을지라도 수월관음도를 통하여 대신할 수는 있었다.
수월관음도는 고려시대에 크게 유행하였다. 고려의 수월관음도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관음보살의 그윽한 미소 속에 깊고 장엄하게 풍겨지는 아우라가 신비롭기 그지없다. 수월관음도를 고요하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느새 마음의 치유가 시작된다. 섬세하고 치밀한 표현과 아름다운 색채, 화려한 금니의 사용은 고려불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마치 당장이라도 황금빛 관음보살이 현신現身하여 우리네 마음을 아우르고 하늘로 승천할 듯하다.
물론 고려 이후 조선시대에도 계속해서 수월관음도의 도상圖像은 계승되지만 색채의 기법, 관음의 자태와 모습, 화면의 구성요소는 달리 표현된다. 같은 수월관음도라도 고려와 조선이 그
리고 현대의 표현기법과 추구하는 맥락이 시대마다 변화하게 된다. 수월관음도뿐 아니라 더 나아가 불화의 흐름도 시대마다 바뀌어 가고 있다.
미륵부처님 새로운 모습으로 오시다
불화佛畫는 ‘불교회화佛敎繪畫’를 줄여서 부르는 용어로 불교의 종교적인 이념을 표현하는 그림이라고 정의한다. 쉽게 표현하자면 부처님의 말씀을 그림으로 발현하는 일이라고 하겠다. 국가무형문화재 불화장 이수자 신진환 작가는 그림으로 부처님을 모신다. 그의 작품은 기존의 전통불화에서 추구하는 방식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파격적이다.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을 불교 예술의 지평을 새롭게 하고 있다는 해석과 다른 한편에서는 너무 도발적인 것이 아닌가 하며 놀라워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흐름을 반영한다면 미륵부처님의 모습 또한 과거에 머무를 수만은 없을 것이고, 다양한 재해석과 표현은 자연스러운 흐름일 것이다. 게다가 신진환 작가는 오랜 시간을 통해 전통불화의 바탕이 견고하게 마련되어 있기에 현대화로 재해석 작업이 충분히 가능한 인물이다. 수십 년간 현장에서 함께 작업했던 그의 스승 수산 임석환 선생(중요무형문화재 제118호 불화장) 또한 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사진 4. 가상세계의 AI불, 61×48cm, 삼베위에 천연재료.
사진 5. 전설세계의 AI불, 59×48cm, 삼베위에 천연재료.
“오랜 기간 현장에서 작업을 통해 얻어진 경험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습화한 노력으로 인해 활달한 필치를 보여주며, 화려하지 않고 기교도 부리지 않아 단순한 듯이 보이는 월암의 작품은 그가 지닌 심성과 어울려 순수한 개성을 발휘하고 있다.”
임석환 선생에게 전수 받은 전통불화의 바탕은 신진환 작가 본인의 순수한 천진성과 결합되면서 새로운 현대불화로 탄생되게 된다.
금강산 신계사 복원작업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강화 전등사 명부전, 수덕사 환희대 원통보전, 서울 진관사 명부전, 경기도 만의사와 청운사 등의 불화를 비롯해 경기도 약천사, 순천 선암사 등의 괘불 등이 있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업이라면 금강산 신계사 복원에 참가해 남북한이 함께 벽화를 조성했던 순간이다.
사진 6. 신계사 복원불사에서 북한 불화장과 함께 한 신진환 작가.
사진 7. 신계사 복원작업을 하는 모습.
금강산의 4대 사찰은 유점사, 신계사, 장안사, 표훈사가 꼽힌다. 이중 표훈사를 제외하고 나머지 사찰들은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모두 파괴됐다. 신계사는 강원도 고성군 신복면 창대리 금강산에 있는 사찰이다. 신계사 불화작업은 남북이 협력해 진행하였다. 불화작업에 북측의 기술자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남북의 불화에 대한 교류가 이루어졌으며,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기회였다.
불화 복원은 1887년에 신계사를 촬영한 사진이 남아 있는 『조선고적도보』를 참조하였다. 자료가 없는 부분은 정양사, 표훈사, 석왕사 등의 사례를 참조하였다고 한다. 불화작업에는 남측에서 김준웅(충남 무형문화재 단청장 제33호) 등 10여명이 참여했고, 북측은 조선문화사보존사 김수용 단청실장 등 20여 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복원공사는 2004년 4월 6일 착공해 2007년 10월 13일 낙성식을 했으니 약 3년 6개월이 걸렸다. 이때 신진환 작가도 합류하여 남북한 합동작업에 참가하게 된다.
사실 반공교육을 따로 받고 38선을 넘어가는 순간에는 몸이 경직될 정도로 긴장감이 돌았다고 한다. 혹시라도 남한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되었다고. 그러나 작업은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고, 일을 모두 마치고 25명이 닭 4마리 끓여 회식을 하는 날에는 서로가 서로에서 닭다리를 권하고 서로 사양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차마 가장 맛있는 부위를 선뜻 먹을 수 없는 마음은 어느새 서로 위하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함께 일하던 북측의 어떤 이는 계속 함께 작업하고 싶은 마음에 제자가 되고 싶다는 표현도 해 왔으나 마음뿐이었다. 결국 이별의 시간은 다가왔고 그렇게 남한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당시 신계사의 작업은 신 작가 인생에 있어서 큰 불사였다고 회상한다. 언제 다시 그곳에 가 볼 수 있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전해진다. 잠시나마 불화로 남북한이 하나되는 순간이었고, 그 기록화는 오랜 세월 남겨질 것이다. 이렇듯 신진환 작가의 현대불화의 남다름은 전통의 기반, 다양한 경험에서 시작하게 된다.
불화로 대중과 함께 소통하려 하다
신진환 작가의 미륵부처는 천진난만 그 자체다. 유쾌한 표정으로 TV를 보거나 컴퓨터에 빠져 있다. 신나게 춤을 추다가도 인공위성을 타고 참선을 한다. 화사한 핑크색, 옅은 그린톤, 파스텔톤의 AI로봇 부처님이라니 이전까지 전통불화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색채이다. 불화에서 이제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독특한 현대적 색채미와 한국적 전통 해학미가 교차한다. 한국 불화의 새로운 장르의 탄생이다.
보통 불화의 용도는 대체로 세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사원을 장식하는 장엄용莊嚴用, 일반 대중에게 불교의 교리를 쉽게 전달해 주기 위한 교화용敎化用, 의식 같은 때에 예배하기 위한 예배용禮拜用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용도는 엄격히 분리되어 쓰이기보다는 그 용도를 서로 겸한다. 후불벽화나 후불탱화는 주로 예배용 불화의 성격이지만 법당을 장엄하기 때문에 교화와 장엄의 뜻도 포함한다.
장엄용 불화의 대표적인 예는 천장이나 기둥·벽면에 그린 단청과 벽화다. 단청은 도안적인 무늬그림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상像이나 서조瑞鳥·서수瑞獸 등을 그리기도 한다. 교화용의 불화로는 사원의 벽화로 불전도나 본생도 같은 설화적인 그림이 많이 그려졌다. 팔상도八相圖를 위주로 하여 지옥변地獄變·아미타내영도阿彌陀來迎圖·미륵내영도彌勒來迎圖·영산회상도靈山會相圖, 이밖에 본존불의 후불탱이나 후불벽화도 이 범주에 속한다.
특히 경변상도經變相圖들은 교화용 불화의 으뜸이다. 그렇다면 신진환 작가의 새로운 현대불화는 어느 범주에 포함될까? 넓은 의미에서는 교화용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도 않다. 직접적인 교리에 대한 전달이 아니고 간접적이고 해학에 가까운 표현이기 때문이다. 역시 새로운 영역으로 보아야 맞다. 그가 추구하는 불화는 대중이 함께 소통하고 누구나 친근하게 다가가는 생활 속에서의 그림이다.
“불화를 누구나 편안하게 대하면 좋을 겁니다. 종교에 상관없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그림으로 비종교인들에게도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 현대불화를 그리게 된 이유이죠.”
신 작가는 작품전을 위해서만 작품을 준비하지 않는다. 날마다 수행일기를 쓰듯 기록을 남긴다.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 SNS 활동을 통해 대중에게 부처님의 그림을 선보인다. 그는 수행자의 마음으로 지금까지 매일매일 부처님의 그림을 온라인에 올리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바로 <매일 부처님>이다.
누구와 약속을 한 것은 아니다. 스스로와의 약속을 매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저 붓을 들고 점 하나 찍으면 그날그날 붓이 손길을 끌고, 부처님이 스스로 걸어 나오신다. 손바닥만 한 종이에 등장한 부처님은 그 모습이 각양각색이다. 어느 날은 아기같이 귀엽다가 어느 날은 기괴하고 또 어느 날은 한없이 처연하기도 하다. 하나이기도 하고 여러 명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단청을 옮겨놓은 오방색의 추상 문양이기도 하고, 흑백의 판화처럼 표현하기도 한다. 작품의 소재나 동·서양화의 구분, 구상·비구상의 구분, 재료로 변별되는 구분도 짓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사불寫佛수행으로 생각하고 매일 붓을 잡는다.
“현대불화를 온라인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친숙하게 다가갔으면 합니다. 그림 속에서 불교 교리가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생활 속에서 함께하는 게 중요한 거죠. SNS라는 채널은 세계인이 쉽게 만날 수 있는 접점이기도 하니까요. 한국의 불교를 만날 수 있는 장소로 좋은 곳이죠.”
신진환 작가의 관객은 세상의 모든 이들이다. 남녀노소 누구나이고, 세계 여러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다. 종교의 경계도 없으며, 국경도 언어의 제약도 없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그는 현대불화에만 집중하지도 않는다. 요즘 그는 산신탱화를 작업하고 있는 중이다. 큰 바다와 같은 캔버스 위에서 무심하게 선을 내려 그을 때가 가장 자연스럽고 행복하다는 그의 말이 인상적이다.
잘 그리려고 마음 먹으면 오히려 붓이 잘 나가지 않고 경직되기 쉽다고 한다. 마음을 비우고 붓과 내가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가장 편안한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라고 한다. 신진환 작가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드나든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마련하고, 현재를 통해 미래를 나아가게 한다. 그림이라는 통로로 매일매일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불국토을 안내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환하고 천진한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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