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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빛의 말씀]
역대 고승들의 해탈경계와 세 가지 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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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  2022 년 8 월 [통권 제112호]  /     /  작성일22-08-05 11:17  /   조회4,12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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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은 군자의 소행이 아니다 

 

혜숙惠宿 스님은 신라 진평왕眞平王(재위 597~631) 때 스님으로 적선촌赤善村에 이십여 년 동안 숨어 살았습니다. 그때 국선國仙인 구담瞿旵이 그 근처에 가서 사냥을 하니, 혜숙도 같이 놀기를 청하여 구담과 함께 사냥을 하였는데, 많은 짐승을 잡아 삶아서 잔치를 하였습니다.

혜숙은 고기를 잘 먹다가 구담에게 문득 물었습니다.

 

“더 좋은 고기가 있는데 드시렵니까?”

그 말에 구담이 좋다고 하자, 혜숙이 한 옆에 가서 자기의 허벅지 살을 베어다 구담 앞에 놓는 것이었습니다. 구담이 깜짝 놀라니 혜숙이 꾸짖었습니다.

“내 본래 그대를 어진 사람으로 알았는데 이렇듯 살생함을 좋아하니 어찌 어진 군자의 소행이라 할 수 있겠소?”

말을 마치고 가버린 뒤에 그가 먹던 쟁반을 보니 담았던 고기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구담은 이 일을 매우 이상히 여겨 진평왕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왕이 사신을 보내어 그를 청하고자 하였습니다. 사신이 가보니 혜숙은 술집에서 술이 많이 취하여 여자를 안고 자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사신이 나쁜 놈이라고 만나지 않고 궁중으로 되돌아가는데 얼마 안 가서 또 혜숙을 만났습니다. 혜숙의 말이 “신도 집에 가서 7일재七日齋를 지내고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신이 놀라 왕에게 가서 전후사를 말하여 왕이 신도 집과 술집을 자세히 조사하여 보니 다 사실이었습니다.

 

수년 후 혜숙이 죽으니 마을 사람이 이현耳峴 동쪽에 장사를 지냈습니다. 장사 지내는 바로 그 날 마침 이현 서쪽에서 오는 사람이 있었는데 길가에서 혜숙을 만나게 되어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으니, “이곳에 오래 살았으니 딴 곳으로 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인사하고 헤어진 후 조금 있다가 돌아보니 혜숙이 공중에서 구름 타고 가는 것이 뚜렷이 보였습니다. 그는 크게 놀랐습니다. 그래서 걸음을 재촉하여 급히 이현의 동쪽에 와서 보니 장사 지낸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자기가 본 것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묘를 파헤쳐 보니 묘 속에는 과연 아무것도 없고 헌신 한 짝뿐이었습니다.

 

너는 똥을 누고 나는 고기를 눈다

 

혜공惠空 스님은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재위 632~646) 때 사람인 천진공天眞公의 집 종의 아들로서, 아명兒名은 우조憂助였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남이 생각만 하고 말은 하지 않아도 그것을 다 알아맞히는 등의 신기한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천진공은 그에게 예배하며 “지극한 성인이 내 집에 계신다.”고 크게 존경하였습니다.

 

그가 자라서 스님이 되어서는 항상 술을 많이 먹고 거리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며 미친 사람같이 돌아다녔습니다. 또 번번이 깊은 우물 속에 들어가서 여러 달 동안 나오지 않곤 하였습니다. 만년에는 항사사恒沙寺에 있었는데, 그때에 원효元曉 대사가 경전의 주해註解를 지으며 어렵고 의심이 나는 것은 혜공에게 물었습니다.

 

사진 1. 혜공스님과 원효스님의 설화가 깃든 포항 오어지吾魚池와 오어사吾魚寺 전경. 사진 현봉 박우현.

 

하루는 원효와 같이 강에 가서 고기를 잡아먹고 똥을 누는데 산 고기가 그대로 나왔습니다. 그러자 혜공이 원효를 보고 희롱하여 말하기를 “너는 똥을 누고 나는 고기를 눈다[汝屎吾魚].”라고 하니, 그 뒤로 절 이름을 오어사吾魚寺로 고쳐 불렀다고 합니다. 

 

하루는 구담공瞿旵公이 많은 사람들과 산에 놀러갔다가 길에 혜공스님이 죽어서 그 시체가 썩어 있는 것을 보고 크게 슬퍼하였습니다. 그런데 성중城中에 돌아와 보니 혜공스님은 여전히 술에 취해서 노래 부르고 춤추며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그 무렵 진언밀종眞言密宗의 고승 명랑明朗이 금강사金剛寺를 새로 짓고 낙성을 하는데, 당대의 유명한 승려가 다 왔으나 오직 혜공스님만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명랑이 향을 꽂고 마음으로 청하자, 혜공스님이 그것을 알고 “그렇게 간절히 청하므로 할 수 없이 온다.” 하며 그곳에 왔습니다. 그때에 비가 몹시 왔으나 옷이 조금도 젖지 않았을 뿐더러 발에 흙도 묻지 않았습니다. 

 

사진 2. 혜숙스님과 혜공스님에 관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 『삼국유사』. 사진. 국가문화유산포털.

 

혜공스님은 승조僧肇 법사가 지은 『조론肇論』을 보고 자기가 전생에 지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은 자신이 전생에 승조 법사였다는 말입니다. 승조 법사도 깨달음을 얻어 자유자재한 분이었습니다. 혜공스님이 배운 바 없어도 이처럼 원효스님이 모르는 것을 물어볼 정도이며 또 신통이 자재하여 분신까지 하는 것을 보면, 스님의 말을 거짓말이라 하여 믿지 못할 까닭이 없는 것입니다.

혜공스님은 죽을 때에 공중에 높이 떠서 죽었는데, 나중에 화장을 하니 사리舍利가 수없이 많이 나왔습니다.

 

소나무를 많이 심은 노인의 출가

 

임제종의 중흥조라고 하는 오조법연五祖法演 선사는 오조산五祖山에 살았다고 해서 오조법연 선사라고 불렸습니다. 이 스님 밑에 불감佛鑑, 불안佛眼, 불과佛果의 세 분 스님이 있었는데, 이 분들을 삼불三佛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 분 스님의 자손이 천하에 널리 퍼져 그 뒤로 불교는 선종 일색이 되었고, 또 선은 오조법연 선사의 법손 일색이 되었습니다.

 

그 오조법연 스님이 오조산에 처음 들어가면서 오조홍인弘忍 선사가 탑인 조탑祖塔에 예배를 하였습니다. 오조홍인 선사가 돌아가신 지 이미 오륙백 년이 지났지만 육신이 그대로 탑에 모셔져 보존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조탑에 예배를 드리면서 오조법연 선사가 이렇게 법문을 하였습니다.

 

옛날 이렇게 온몸으로 갔다가

오늘에 다시 오니 기억하는가.

무엇으로 증거 삼는고

이로써 증거 삼노라.

昔日與麽全身去

今日重來得否

以何爲驗

以此爲驗

 

이것은 오조홍인 선사를 보고 하는 말입니다. 곧 그전의 오조홍인 선사가 돌아가셨다가 다시 오조법연 선사가 되어 돌아왔는데 알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다시 돌아왔다고 하는 이것이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진 3. 오조법연 선사.

 

오조홍인 선사는 사조도신道信 선사의 제자입니다. 도신 선사는 나이가 많도록 제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웃에 산에 소나무를 많이 심은 사람[栽松道者]이 있었는데, 나이 많은 노인이었습니다. 하루는 그 노인이 도신 선사에게 와서 “스님께서 연세가 많은데 법法제자가 없으니 제가 스님의 제자가 되면 어떻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도신 선사가 “당신도 나이가 많아 나와 같이 죽을 터인데 제자가 되어도 마찬가지 아닌가.” 하고 대답했더니, 그 노인은 “그럼 몸을 바꾸어 오면 어떻겠습니까?” 하고는 사라졌습니다.

 

그 노인이 산밑에 있는 마을의 주周씨 집의 아들로 태어나 사조도신 선사를 찾아와서 그의 제자가 되었으니, 그가 바로 오조홍인 선사입니다. 이렇게 보면 오조홍인 선사는 재송도자栽松道者의 후신이고, 오조법연 선사는 오조홍인 선사의 후신인 것입니다. 이 삼대三代, 곧 재송도자에서 오조홍인 선사로 이어지는 삼대의 전생은 모두 밝혀져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영겁불망하는 열반묘심을 성취한 증거인 것입니다.

 

열반묘심을 성취하면 정신적으로만 어떤 작용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육체적으로도 뛰어난 작용이 있어 분신도 하고 또 부사의不思議한 행동을 합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성상불이性相不二’라 하여 성과 상이 둘이 아니라고 합니다. 또 ‘심신일여心身一如’라고 하여 몸과 마음이 하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정신적으로 열반묘심을 성취하면 육체적으로도 그만큼 자유자재한 활동이 자연히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신일여가 안 될래야 안 될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영원한 생명 속에 들어 있는 무한한 능력을 개발하면, 물질적인 것에 자유자재한 색자재色自在를 얻을 수 있고, 심리적인 것에 자유자재한 심자재心自在를 얻을 수 있으며, 또 모든 법에 대한 자유인 법자재法自在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모두에 대해 자재를 얻게 되면 여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영원한 진여위에서 자유자재하게 분신分身도 하고 화신化身도 하여 중생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자유자재, 영겁불망의 크고 작은 마음은 누구든 열심히 수도하여 자기 자성自性을 확철히 깨침으로써 성취하게 됩니다. 이런 마음을 성취하면 자기 해탈, 곧 색자재, 심자재, 법자재는 자연히 따라오게 마련인데, 이것이 불교의 근본 목표이며 또 부사의해탈경계不思議解脫境界라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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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성철스님은 1936년 해인사로 출가하여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봉암사 결사’를 주도하였다. 1955년 대구 팔공산 성전암으로 들어가 10여 년 동안 절문 밖을 나서지 않았는데 세상에서는 ‘10년 동구불출’의 수행으로 칭송하였다. 1967년 해인총림 초대 방장으로 취임하여 ‘백일법문’을 하였다. 1981년 1월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에 추대되어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법어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1993년 11월 4일 해인사에서 열반하였다. 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우리 곁에 왔던 부처’로서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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