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
범패, 하늘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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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리 / 2022 년 5 월 [통권 제109호] / / 작성일22-05-04 11:14 / 조회4,965회 / 댓글0건본문
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5 / 어산어장 인묵스님
K-콘텐츠 열풍이 뜨겁다. 세계인들은 BTS와 블랙핑크의 음악에 열광하고, 영화 「기생충」, 넷플리스의 「오징어 게임」, 애플티비의 「파친코」 등 한국 영화, 드라마뿐만 아니라 한복, 음식, 스포츠 등 대한민국 문화 전반의 다양한 콘텐츠들이 세계인들에게 특별한 이슈가 되고 있다. 특이한 현상은 우리도 그들도 한국의 전통문화라고 불리는 우리 옛 문화에 요즘들어 더욱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사실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해서 모두 전통문화에 대해 깊숙하게 알기는 어렵다.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1인 오페라’인 판소리가 수궁가, 심청가, 춘향가, 흥부가, 적벽가 5가지인지, 우리나라 3대 성악곡으로 판소리·가곡·범패가 손꼽히는지 잘 모를 것이다. 특히 ‘범패梵唄’라고 하면 그 용어마저 생소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물론 아직까지 범패라는 음악 장르를 접해 보지 못한 이들도 있을 것이며, 우연히 들어 보았지만 그것이 범패인지 몰랐을 이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범패를 아우르는 어산魚山과 그 맥을 잇고 있는 어산어장魚山魚丈 인묵스님을 소개하려 한다.
범패는 과연 무엇인가?
범패는 절에서 재齋를 올릴 때, 불교의식에 사용되는 음악이다. 장단이 없는 단성선율單聲旋律이며, 악보 없는 무보이다. 악보가 없으니 오로지 체득으로, 온몸에 담을 수밖에 없는 선율이다. 현재 약 100곡의 범패가 있는데 짧은 곡은 6~7분, 긴 곡은 20~30분 분량이다. 영산재靈山齋[죽은 사람을 위한 재. 2009년 유네스코 세계 무형 유산 지정. 국가 무형 문화재 제50호]나 수륙재水陸齋[물과 육지의 홀로 떠도는 귀신들과 아귀餓鬼에게 공양하는 재] 등에서 소리와 의식을 함께 일컬어 범패라고 하는 것이 바로 어산魚山이다. 어산은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는 노래와 의식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다.
그리고 ‘어산어장魚山魚丈’은 범패와 범음 등 각종 불교의례의식 분야에서 최고 수준에 도달한 스님을 의미한다. 어산 종장 지정 후 20년 이상 또는 어산 분야에서 30년 이상 수학 및 활동 경력을 보유한 자로서 계행이 청정한 승려에게 자격이 주어지며, 종단 주요 영산재 및 수륙재 등의 집전을 담당한다. 봉선사 염불원 인묵스님은 어산어장의 중책을 맡고 있다. 삼학 스님을 은사로 1976년 사미계를 수계했다. 회암사 및 자재암 주지, 제25교구본사 봉선사 주지, 문화재청 문화재 위원 등을 역임하고 현재 종단 어산어장과 의례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인묵스님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 예능 보유자 일응스님에게 범패를 배웠다. 가장 존경하는 스승이며, 큰 재능을 물려주신 분이기도 하다. 어릴 적부터 일응스님의 범패 소리를 들으며 자란 인묵스님은 천상의 소리를 배우고 싶어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범패의 매력에 빠져든 14살 어린 소년은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하게 된다. 범패는 가사보다는 운율과 음으로 이뤄져 노래라기보다 소리에 가깝고 악보가 없어 오랜 시간 동안 무한 반복해 체득할 수밖에 없다. 일찍이 신심에 따라 염불의 깊이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던 인묵스님은 깊은 소리를 통하여 오묘한 불법의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최고의 어산, 영산재
영산재는 불교에서 영혼천도를 위하여 행하는 49재 의식으로 가장 규모가 크다. 영산재는 부처가 인도의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던 모습을 재현한 의식으로, 불교의 철학적·영적 메시지를 담고 있어 영가뿐만 아니라 재齋에 참여한 모든 중생의 수양과 깨달음을 돕기 위한 의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영산재는 불교철학과 음악에 괘불과 같은 미술적 요소가 집약된 종합예술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에 등재되기도 했다.
영산재가 진행되는 절차는 매우 복잡하다. 우선 의식도량을 상징화하기 위해 야외에 영산회상도를 내어 거는 괘불이운掛佛移運으로 시작하여 괘불 앞에서 찬불의식을 갖는다. 괘불은 정면 한가운데 걸고 그 앞에 불단을 세우는데 불보살을 모시는 상단, 신중神衆을 모시는 중단, 영가를 모시는 하단 등 삼단이 있다. 그 뒤 영혼을 모셔오는 시련侍輦, 영가를 대접하는 대령, 영가가 생전에 지은 탐. 진. 치 삼독 번뇌를 씻어내는 의식인 관욕이 행해진다.
그리고 공양드리기 전에 의식 장소를 정화하는 신중작법神衆作法을 한 다음 불보살에게 공양을 드리고 죽은 영혼이 극락왕생하기를 바라는 찬불 의례가 뒤를 잇는다. 이렇게 권공의식을 마치면 재를 치르는 사람들의 보다 구체적인 소원을 아뢰게 되는 축원문이 낭독된다.
본 의식이 끝나면 영산재에 참여한 모든 대중들이 다함께 하는 회향의식이 거행된다. 끝으로 의식에 청했던 대중들을 돌려보내는 봉송의례가 이루어진다. 영산재는 범패와 춤 등 어산을 통한 불교예술의 총화라 할 수 있다.
젊은 인재가 절실한 어산
따듯한 차를 계속 내어 주시는 인묵 스님의 손길은 부드럽고 여유로웠지만, 어산의 미래를 생각하시는 스님의 마음 한구석은 어쩐지 무거워 보인다.
“어산은 소리와 하나가 될 때까지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면 변성 이후 소리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아요. 불교음악에 최적화된 성대를 갖추기 위해 가급적 어린 나이에 입문해야 하는데, 갈수록 출가 연령이 높아지는 현재의 종단 현실 앞에서는 능력 있는 인재 찾기가 참 어렵습니다.”
일평생을 어산의 계승과 전수를 위해 어산작법학교 초대 교장과 조계종 의례위원장을 맡아 후학을 길러온 인묵스님은 출가자가 감소하고 특히 동진출가는 없다시피 한 현실에 어깨가 많이 무거우신 듯하다. 그래도 얼마 후 어린 제자 한 명이 입문하게 될지도 모른다며 와중에 아기같이 해맑은 미소를 지으신다.
사진 8. 새로운 시도, 화엄음악제의 현괘의식.
어산어장의 책임은 막중하고 가야할 길이 멀다 그러나 한곳에 머물지 않는다. 보다 확장된 모습으로 대중과 함께하고 있다. 그런 일환으로 인묵스님은 다양한 분야의 장르와 콜라보 활동도 꾸준히 해오고 있다. 국내외 아티스트들과 함께 장르와 세대, 종교와 이념을 뛰어넘은 축제를 선보여 왔다. 지리산 화엄사의 화엄음악제가 그러하고, 동서양의 다양한 악기(해금, 기타, 드럼, 클라리넷 등)와 무용 등과 접목하며 꾸준하게 새로운 시도를 해왔다. 해외에 알리기 위해 도쿄·자카르타·미국 스탠퍼드 대학 등지에서도 공연을 했다.
2022년 4월 국립무형유산원의 개막공연에서는 이 시대의 국악 각 장르의 최고 예술인들이 무대에 서는데 어산어장 인묵스님은 범음, 바라무, 착복무, 축원화청, 법고무 등 불교의례의식의 정수를 예술의 관점에서 대중들에게 선보이게 된다. 벌써부터 관심있는 이들로 조기예약이 마감되었다. 우리는 이 하늘의 소리를 다시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서울 진관사와 동해 삼화사 국행수륙재, 서울 봉은사 생전예수재, 교구본·말사 개산대재 등 종단 주요 불교의례가 열리는 날이면 무대에서 어김없이 스님을 만나볼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는 인간의 목소리이다. 목소리 안에 진정한 진심盡心과 신심信心이 담겨 있을 때 비로소 환희심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소리를 내는 사람에게도 듣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순수한 집중을 통하여 마음이 고요해지는 깊은 삼매三昧의 순간이 소리를 통하여 다가오는 순간이다. 그 소리가 우리 마음에 닿는 순간이 바로 하늘에 닿는 순간이며 그것이 곧 하늘의 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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