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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중앙불전 학생들의 학술과 문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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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진  /  2022 년 5 월 [통권 제109호]  /     /  작성일22-05-04 10:04  /   조회3,87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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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불교잡지 산책 17 | 『룸비니藍毘尼』 (통권 4호, 1937.5~1940.3)

 

『룸비니藍毘尼』는 중앙불전 학생회에서 펴낸 교지다. 1937년 5월 7일 ‘람비니’라는 제명으로 창간되었는데, 제2호부터는 제목이 ‘룸비니’로 바뀌었고 1940년 3월 종간호까지 총4호가 발행되었다. 중앙불전은 1928년 개교하여 1940년 6월까지 존속하였고, 이후 혜화전문학교로 교명이 바뀌게 된다. 『룸비니』는 중앙불전의 후반기 역사와 함께 한 잡지이며 재학생들의 학생회 활동, 학술 연찬과 문학 창작의 성과가 담겨 있는 교지다. 

 

창간 배경과 목적

 

『룸비니』 이전에 중앙불전 교우회에서 발행한 교지로는 『일광』지가 있다. 이 잡지는 1928년 12월 창간되어 3호까지 교원과 재학생이 함께 발행하였다. 비록 교원과 학생이 함께 제작한 것이지만, 이 잡지는 첫 신입생들의 열정과 노고가 아니었으면 발행되지 못했을 것이다. 

 


사진 1. 『룸비니』 표지 (2호). 

 

1931년  3월에  첫 졸업생이 배출된 이후 교우회의 성격이 재학생에서 졸업생 중심으로  바뀌면서 학생회는 별도의 조직으로 독립하였다. 기존의 교지 『일광』은 이제는 교직원과 졸업생이 중심이 된 교우회지로서 지관지가 되었고, 1940년 제10호까지 발행되었다. 『일광』 4호부터 중앙불전 재학생은 발행의 주체에서 밀려나 재학생 자신들의 학문과 문학 성과를 담아낼 학생회지가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지속되었는데, 이 상황은 1937년 5월 『룸비니』가 창간되면서부터 비로소 해소되었다.

중앙불전 교장인 박한영은 창간호의 축사(「축하본회지」)에서 『룸비니』의 존재와 성격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사진 1. 『룸비니』 표지 (3호).

 

“본 학생회는 동양의 최고한 불학을 중심으로 하야 모든 철학과 문학을 연구하든 학교[學庠]로서의 회會의 영화를 발표코자 명구문신名句文身으로 황혼에 근近한 세계의 함령을 각성케 하려는 그 광선이 중인도 람비니 동산에서 마야성모께서 무우수 가지를 더우잡고 우협으로서 실달태자를 탄생하시든 기분에 역력조응歷歷照應하다 하야 회지의 명칭을 람비니라 함이 깊은 의미가 함재含在한 것으로 사유한다.” 

  사진 2. 중앙불전 교사와 교가(1호). 

 

박한영은 축사에서 중앙불전을 불교학을 중심으로 하고 철학과 문학을 연구하는 학교로 규정하고 중앙불전 학생으로서 갈고 닦은 최선의 성과를 발표하는 장으로 『룸비니』를 규정하였다. 잡지에 수록된 다양한 글감은 이러한 정신을 잘 구현한 주제를 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학술 논설의 다양한 모습

 

『룸비니』의 투고 현황을 살펴보면 중앙불전 학생들의 수행에 대한 관심, 철학과 불교학, 문학 그리고 창작에 대한 관심이 잘 드러나 있다. 특히 「논총」란은 권상로와 김경주의 논설을 제외하면 모두 재학생의 투고로 이루어졌다. 이를 철학, 불교(학), 문학 순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철학 관련 논설은 모두 6편인데 이 중 네 편이 문동한(10회 졸)이 작성한 글이다. 즉 「인간 교육에 대하야」(2호), 「철학개념의 변천에 대하야」(3호), 「Schopenhauer 연구 일단」(3호), 「형이상학론서설」(4호) 등이다.

 

문동환의 「형이상학론 서설」은 일종의 졸업논문에 해당한다. 그는 서론에서 “형이상학은 본체에 관한 학이니, 곧 실체론을 논함일 것이다.”라 정의한 후 형이상학 탐구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소개하고 다양한 분류의 양상을 체계적으로 소개하였다. 서술 체제는 (1)단원론單元論과 복원론複元論, (2)유물론과 유심론, (3)이원론, (4)일원론, (5)기계관과 목적관, (6)본체성론과 활동성론, (7)제諸 이론 비판, (7)형이상학의 제 문제 순이다. 참고문헌은 11종인데 모두 일본 철학자의 저서, 역서를 인용하였다. 철학도로서 기존 지식을 구조화하여 정리하는 학문의 첫 단계를 충실히 엮어간 논문으로 평가할 수 있다.  

 

사진 3. 우정상의 논설(3호).  

 

문동한은 또 ‘기범’이라는 필명으로 쇼펜하워 철학을 정리한 논설을 발표하였다. 논문은 총설-학설-결어로 구성하였다. 총설에서는 쇼펜하워의 생애와 학문 수학의 이력을 상세하게 소개하였다. 그 결과 “쇼 씨의 철학은 주로 생명의 철학이다. 씨의 철학 대계는 플라톤의 이디아론과 칸트의 인식론을 받아 베다, 범신론 등 인도철학을 가미하여 구성한 것”이라고 소개하였다. 학설에서는 쇼펜하워의 철학을 의지설, 염세관, 해탈설로 나누어 소개하였고, 결론에서는 그의 철학이 당시 학계와 후세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고찰하였다. 일본 철학서를 나열한 참고문헌을 통해 볼 때 중앙불전에서 일본을 통해 유입된 철학의 지식이 신진 철학도에게 내면화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해석된다.

 

불교학에 관한 논설은 7편으로 교학사상과 종교적 성격 및 수양론 우주론 등 비교적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김재수(7회)의 「불교의 인성론」, 윤기원(8회)의 「도피안」, 유석규(9회)의 「수마심경」, 우정상(혜전1)의 「불교의 3강령」, 한춘(10회)의 「불교의 종교적 특성」, 「불교의 우주론」, 「대승기신론연구」 등이다.

 

김재수의 「불교의 인성론」은 ‘불교윤리사상의 일절’이라는 부제를 달아 다양한 불교의 인성론을 소개하였다. 본론에서는 소승교의 2설(비선비악설, 유선청정설)과 대승교의 4설(비선비악설, 유선청정설, 선악쌍존설, 선악초월설)을 차례로 소개하고 분류한 후 이들의 관계에 대해 고찰하였다. 결론에서 “불교에서는 소승이나 대승이나 할 것 없이 인성에 있어서 유악唯惡이라고 하지 않고 대부분이 유선唯善”이라 한 것을 강조하며 불교는 ‘조화의 설을 주장’한 것으로 정리하였다.

 

우정상의 「불교의 3강령」은 복잡다단한 불교의 교리를 관통하는 핵심으로 3강령을 제시하였다. 서론에서는 불타의 직관 내용을 ‘무아無我’라 가정하고, 무아의 원리를 객관화하여 설명한 것이 불교근본원리이며, 그중에 12연기와 사성제와 삼법인이 가장 중심이 되기에 이를 3강령이라 지칭한다 하였다. 즉 3강령은 무아의 진리를 객관화하여 설명한 것이라 하였다. 본론에서는 세 가지 강령을 상술하며 그 관계성까지 고찰하였다. 즉 “사제십이연기를 주관적 인생론이라 하면, 삼법인은 객관적 우주론이라 할 수 있으며, 사제 등을 시간적 인과라 하면 삼법인은 공간적 본체론”이라 하였다.

문학 관련 논설로는 조지훈의 「유미주의 문예 소고」(4호), 한응식(혜전1)의 「문예창작에 관한 이론적 고찰」(4호) 두 편이 수록되었다.

 

조지훈은 논문에서 예술지상주의의 정의를 내린 후, 예술을 위한 예술의 발생 이유를 구명하기 위하여 그 근본개념처럼 된 유미주의를 해부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예술을 위한 예술과 인생을 위한 예술을 논하고, 세기말 문예와 기계문명의 영향을 말하고 유미주의의 기원과 예술론을 소개하였다. 서론에서 거론하기로 한 오스카 와일드의 생애와 예술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논의를 진행하지 않았다. 서론에서 스스로 “붓을 들기 전에 황홀해지고 가슴에 물결치는 미의 선율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이 글이 논문이 될 수 없다고 하였지만 일본어 역 문학이론서와 오스카 와일드, 보들레르 등의 다양한 원전의 인용을 볼 때 깊이 있는 탐구를 전개한 한 편의 비평적 글로 가치가 충분하며, 동시에 오스카 와일드에 경도된 당시 청년 문학도의 문예적 취향을 확인할 수 있다.

 

문예란의 창작성과

 

개별 작가와 작품을 살피기 전에 각 호에서 졸업생 대표가 작성한 인물평을 일부 인용하기로 한다. 중앙불전 학생들의 전반적인 취향과 학교의 분위기를 살피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사진 4. 조지훈과 시집 『청록집』. 

 

○ 정종 : 씨가 전공으로 연구하는 것은 철학이다. 우리 학교에 들어온 것도 철학을 연구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 전재영 : 한문으로는 우리 급에서 수위에 오른다. 게다가 선에 취미를 가졌는지라 석전 노사의 염송 시간에는 간혹 묘한 말을 한마디씩 한다. 그러면 노사는 “자네는 선원에 더러 다녔는지 들은 풍월로 좀 아네그려.” 하시면서 - 이상 윤기원, 「졸업생의 이모저모」 (2호)

 

○ 김달진 : 일찍이 독서가 남달리 많았고 더구나 천부적으로 시상이 풍부하야 지금은 거의 기성문단의 문을 두드리는 쟁쟁한 시인의 존재가 뚜렷하게 되어 있다. 그리하여 주옥같은 시를 모아 금년 연말 내로 『청시靑柿』라는 처녀시집을 발간하려고 인쇄중이라고 하신다. - 이상 김어수, 「물망초의 그림자」(3호)

 

○ 문동한 : 아늑한 다방 한 석에 (중략) 고요히 향수를 꿈꿀 때 쇼펜 하우어를 손에 들고 거암과 같이 명상에 잠겼으니 여기에서 철학의 문군을 볼 수 있다. (중략) 고요히 선정삼매에 든다. 여기에서 종교의 문군을 볼 수 있다. (중략) 풀피리를 휘파람으로 낭만하니 여기에서 예술의 문군을 볼 수 있다. - 이상 장상봉, 「졸업생의 푸로필」(4호)

 

중앙불전 입학생들은 대부분 지방의 사찰에서 강원을 졸업하고 고등보통학교에 준하는 학력을 이수한 청년 승려로서 경전의 독서, 참선 수행에 기본적인 자질과 덕목을 가지고 있었다. 철학에 뜻을 두고 입학한 학생(정종)도 있고, 쇼펜하우어를 동경한 학생(문동한)도 등장하여 중앙불전의 전통인 불교와 함께 철학에 경도된 분위기를 짐작하는 데 부족하지 않다. 아울러 문학에 취미를 가진 학생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다양한 문학 장르에서 다양한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다. 

 

사진 5. 김달진과 시집 『청시』. 

 

시조와 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은 김달진(9회), 김어수(9회), 나운향(9호), 신상보(9회), 오화룡(10회) 등이다.

김달진은 『룸비니』에 ‘지현芝玄’이라는 필명으로 <차중車中>, <피로疲勞>, <양등洋燈>(1호), 본명으로 <등화燈火>, <열熱>(2호), <고궁의 행복>, <고적孤寂>, <사랑>(3호)을 발표하였다. 이들 시는 도회지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시각적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묘사하면서도 내면의 번민, 고적감을 담아내는 경향이 있다. 수행자이며 학생이고, 승려면서 도시인의 삶을 살아가는 시인이 겪고 있는 내면의 갈등과 사유의 깊이가 잘 드러나 있다.

 

김어수는 학생회의 학예부 임원으로서 교내외 웅변대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바 있고 『룸비니』의 발간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맹서>(1호)는 정축년(1937) 새해를 맞이하여 ‘옛님의 가신길’, ‘일편정성’으로 따르리 라는 신년시이며, <향수>(2호)는 떠나온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작품이다. 일상적 삶에서 느끼는 인간적 고민과 희망을 잘 담아내었다.

 

『룸비니』에 수록된 소설 작품으로는 최금동의 <연꽃>(1호), 신상보의 <자화상>(3호), 김용태의 <해동>(3호), 김해진의 <출가의 밤>(4호)이 있고, 희곡으로는 도안성의 <참회의 죽엄>이 있다.

도안성의 <참회의 죽엄>은 『룸비니』에 발표된 유일한 희곡이다. 배역으로는 먼저 아버지 박대감, 어머니, 아들 일호, 딸 정숙의 일가족이 등장한다. 이들 외에 기생 첩 월매, 하녀, 대금업자, 은행장, 월매의 정부情夫, 배달부 등 여러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아버지는 가출하여 첩에게 모든 재산을 바치고 가산을 탕진한 결과 본래의 가족들은 집마저 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그럼에도 돈타령을 하는 기생의 강짜에 아버지는 딸 정숙을 팔 계략을 실행하여 온 집안은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결국 극단적인 상황에서 아버지는 자결로써 참회한다.

이 작품은 극단적 스토리가 독자의 몰입을 유도하는 효과를 보이고 있으나 진부한 소재, 신파조의 전개, 갑작스런 등장인물과 급격한 전환, 심각한 상황에서 손쉬운 감정의 전환을 보이며 해결하는 등의 한계가 있다. 

 

사진 6. 김어수 시비. 

 

소설 4편과 희곡 1편은 전문학교 재학생의 작품으로 완성도가 그리 높지 않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문학 수련의 기간이 비교적 짧았던 그들의 작품 속에 불교문학의 오랜 전통으로 시대마다 재창조되는 인간 존재의 비극성에 대한 나름대로의 탐구와 새로운 구성의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된다. 이는 불교문학의 근대적 전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기억할 만하다. 그들은 『룸비니』를 다양한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활용하였다. 이런 점에서 『룸비니』는 문학청년인 중앙불전 학생들의 역량을 키우고 발휘하는 문학의 장으로서 충분한 기능을 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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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진
불교가사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 불교문학의 다양한 양상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조선시대 불가 한문학의 번역과 연구, 근대불교잡지의 문화사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불교시가의 동아시아적 맥락과 근대성』 등이, 번역서로 『정토보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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