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
조선의 승려 장인과 떠나는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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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리 / 2022 년 4 월 [통권 제108호] / / 작성일22-04-04 11:43 / 조회5,077회 / 댓글0건본문
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4 조선의 승려장인
오랜 시간의 흐름을 지나온 예술품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안에는 눈에 보이는 현상만으로 해석할 수 없는 내재적 가치가 숨겨져 있다. 한 가지 업에 평생 자신의 에너지를 오롯이 쏟은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같은 작업을 끊임없이 그리고 지루하게 무수히 반복하여야 비로소 얻어지는 실낱같은 디테일의 차이. 그 미묘한 차이를 깨어 부수어 새롭게 거듭나면서 다시 새로운 창작이라는 성과를 마주하게 된다.
아무리 최첨단 과학기술이 뛰어난 현시대라지만 고려시대의 청자칠보 투각향로(국보95호)와 같은 섬세하고 유려한 그리고 우아한 느낌의 향로와 똑같은 수준으로 재연하기 어렵고, 비단에 펼쳐진 조선시대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와 같은 몽환적이고 황홀한 작품을 새로 만나기 쉽지 않다.
불교예술에서도 이러한 작품들이 많다. 뛰어나지만 다시 비슷하게 만들어내기는 어려운 솜씨. 고즈넉하여 마음에 안정을 주고 평온함을 선사하는 옛 작품들을 감상하며 많은 현대인들은 위로 받곤 한다. 과거에서 보내온 우리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작품을 만든 이들 중엔 승려가 많다. 유명한 승려에서 이름 없는 승려까지, 승려 장인들의 구도와 예술세계는 어떠했는지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불세계를 구현하는 승려 장인
승려 장인은 출가한 구도자이며 동시에 무언가를 만드는 기예를 가진 장인이라는 두 가지 정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지만, 장인이라는 행위를 통한 구도자 하나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중생구제의 방편으로 언어가 아닌 수행과 정진을 바탕으로 하는 조형을 택했다. 조선시대 사찰은 신앙의 공간인 동시에 오늘날의 박물관의 역할을 했다. 불자들은 법당안의 불상과 불화 등을 보고 신앙심을 북돋우거나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불교예술품을 완성하는 일은 장엄한 불세계를 구현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승려 장인들은 온 정성을 기울였다.
조선 승려 장인은 불전을 짓는 건축승과 기와를 굽는 기와승, 범종을 만드는 주종승, 비석과 경전을 새기는 각자승과 판각승, 목재 불구佛具를 만드는 목공예승 등 여러 분야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예배의 중심인 불상을 만드는 조각승과 불화를 그리는 화승의 활동이 핵심이었다.
지금까지 파악된 조선 후기 조각승은 천여 명이고, 화승은 이천 사백여 명에 이른다. 당시 승려 장인이 불교계에서 차지했던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체계를 갖춘 분업방식으로 일을 해 나갔는데,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집단 방식으로 같은 무리의 스승과 제자 또는 동료들은 일정한 양식을 공유할 수 있었다. 축적된 기술과 역량은 다음 세대에 물려주면서 마치 선승들이 사자상승師資相承으로 법맥을 이어가듯 자신들의 계보를 만들었다.
승려 장인들의 작품세계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조선의 승려 장인>을 주제로 하는 기획전시가 있었고 전시 내용 중 특별한 몇 작품을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가보자.
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과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용문사 대장전에 모셔진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과 그 뒤쪽에 배치된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1684년 단응端應을 비롯한 조각승 아홉 명이 제작했다. 구품왕생으로 도달하는 서방 극락정토의 환상적인 광경을 나타냈는데, 조각의 섬세함과 금빛 찬란한 웅장함이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경외감에 빠져들게 한다.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하단의 화기畫記에 따르면, 그해 가을 용문사에서 삼존상과 후불목탱(대미타회후불상)을 조성하였다. 대표 조각승인 단응은 17세기 중엽부터 18세기 초까지 활동했던 인물로 전라북도, 경상남북도, 충청남북도 등 여러 지역의 사찰 불사에 참여했다. 전라북도 완주 <송광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과 <나한상>, 충청남도 공주 <마곡사 영산전 목조 칠불좌상>, 경상북도 안동 <봉황사 목조삼불좌상>, 경상남도 하동 <쌍계사 천왕문 사천왕상> 등 평생의 시간을 조각승으로 활동하며 기품 있는 불교예술작품을 남겼다.
목조석가여래좌상
자비롭고 온화한 표정으로 온갖 시름 거두어들이는 미소를 짓는 이분은 누구실까. 자연스럽고 처연하게 떨어진 손끝이 아름답다. 금방이라도 부드럽게 살아 움직여 세상 고뇌를 어루만질 손길이다.
불상의 정확한 제작 연대와 봉안처는 알 수 없으나, 당당한 어깨, 짤막한 코가 백호 아래로 돌출해 얼굴에서 눈썹, 코, 코끝 선, 입술 사이 간격이 같아 보이는 특징으로 연구자들은 조각승 해심海心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불상을 완성한 뒤 내부 공간에 복장물을 넣고 불상에 생명력과 신성함을 부여하는 의례를 행했다.
사진 6. 목조석가여래좌상.
사진 7. 목조석가여래좌상 부분.
사진 8. 목조석가여래좌상 부분.
불두佛頭에는 종이 뭉치를 넣은 뒤 목 입구를 다라니로 봉했고, 불신佛身에도 복장물을 넣은 뒤 바닥판에 마련된 방형의 복장공服藏孔을 덮으면서 그 경계를 따라 범자梵字를 적어 넣었다. 목조석가여래좌상을 만든 해심의 스승은 17세기 전·중반의 대표적인 조각승이었던 무염無染이었으며, 무염은 행사幸思의 계보를 잇는 조각승이었다. 불심으로 맺어진 조각승의 계보는 손에서 손으로 면면히 이어졌다.
해인사 영산회상도
화승은 법맥을 따라 스승에게서 전수 받는 초본과 제작 방식을 계승하지만 여러 지역을 오가며 불사를 하는 과정에서 과거에 제작된 불화를 보고 숙련하는 것도 화업을 익히는 방식이었다. 1729년(영조5) 여름 해인사에서는 당대에 이름난 화승이었던 의겸義謙과 여성汝性, 행종幸宗, 회안懷眼, 민희敏熙 등 화승 열두 명을 초청해 불화를 조성했다. 작품 하단의 금니로 작성된 화기에는 옹정 7년 삼신불회도, 지장보살도 등 넉 점을 함께 조성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화재로 사라지고 영산회상도만 현존한다.
<해인사 영산회상도>는 설법회상의 장대한 광경을 도해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세로 293센티미터, 가로 241센티미터로 비단 다섯 폭을 이어 만들었다. 보살, 나한, 천부, 사천왕, 금강역사를 비롯해 총 253위位를 배치했다. 채색 구름을 배경으로 제자, 나한, 팔부중은 자유로운 배치로 이끌어내며 전반적인 긴장감을 유연하게 풀어내고 있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석가모니불의 당당한 체구는 금니金泥로 채색해 신비로움과 권위를 강조했다. 유려한 채색이지만 현란하기보다는 숭고한 느낌이 압도적이다. 과연 오랜 숙련됨과 깊은 신앙으로 이루어낸 대작이다.
시공간을 넘어서는 대중을 위한 선물
우리 주변 곳곳에는 옛 승려 장인들이 남겨준 선물들이 남아 있다.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에서는 여러 금동불좌상들이 남겨졌고, 통도사에는 화승들이 그려낸 대작 <팔상도>가 있으며, 대흥사에는 44명의 화승들이 합심하여 <석조 천불좌상>을 완성하였다. 불교예술의 핵심은 누구나에게 열려 있다는 것이다.
기득권의 점유물이 아닌 누구라도 다가갈 수 있고 언제라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승려 장인은 작품 활동을 매개로 위로는 부처님에게 공양을 올리고, 아래로는 자기 자신의 수행으로 삼았으며, 중생들에게는 불세계로 이끌어 주는 역할을 했다. 불교와 외부세계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이자 과거와 미래를 넘어선 귀한 선물이 되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손길을 잘 만나 조우하고, 귀한 가치를 보존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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