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禪, 禪과 시]
자연인과 한 줄기 푸른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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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택 / 2022 년 4 월 [통권 제108호] / / 작성일22-04-04 11:21 / 조회5,256회 / 댓글0건본문
친구들과 안의에 갈비탕 먹으러 갑니다. 풍채 좋은 행인에게 현지인이 잘 가는 식당을 물어봅니다. 그 사람이 나를 한참 보더니 갑자기 내 가슴을 탁 칩니다. “야, 자네는 어째 친구도 몰라보나?”
자연인이 되어 만난 옛 친구
아니 이게 누구냐 싶어서 자세히 보니 글쎄, 나와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K입니다. 그는 대구에서 건설회사를 경영하기도 하고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지금은 바로 이 안의에서 가까운 산속에 혼자 산다는 겁니다. 요즘 TV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자연인’, 그가 바로 자연인입니다. 세상에 어째 이런 우연이 다 있는 걸까요. 【사진 1】
“야, 가서 갈비탕이나 한 그릇 같이 먹자.” 내가 권하자 선약이 있다고 합니다. 그럼 식사 후에 자네가 사는 곳을 한번 보고 싶다고 하자 흔쾌히 우리를 초대합니다.
약속 장소로 가서 자연인에게 전화를 하니 사륜구동 포터를 타고 나타납니다. 그의 차를 타고 꼬불꼬불 군데군데 푹푹 파인 험한 비포장 산길을 거침없이 휙휙 올라갑니다. 앞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맨 나는 좀 덜하지만 3인용 뒷좌석에 4명이 끼여 앉은 친구들은 식겁합니다. 간신히 고개를 하나 넘어 내리막길을 내리달리자 자연인의 움막이 나타납니다.
산 능선에 소나무가 늘어선 모습이 마치 보초를 서는 것 같습니다. 뒤쪽으로는 암벽이 턱 버티고 있어 좋은 기운이 느껴집니다. 원래 암자가 있던 곳을 인수했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는 이 깊은 산중에 있는 땅을 어떻게 알고 샀을까요. 그가 젊었을 때 이 일대에 등산 왔다가 하산하는 길에 우연히 이곳에 들렀습니다. 경치가 너무 좋고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져서 암자에 계시던 스님에게 말합니다. “스님, 나중에 혹시라도 이 암자를 파실 의향이 생기시면 저에게 먼저 연락 주십시오.”
그런데 20년 전쯤에 그 스님으로부터 암자를 물려받은 스님에게서 연락이 옵니다. 포교당을 하는데 도저히 암자를 유지할 수 없어서 팔겠다고 합니다. 적당한 금액에 암자와 부속 토지 일체를 사고 길을 내고 나무를 심었습니다. 차가 들어오도록 길을 내는 과정에서 길에 물린 땅도 어쩔 수 없이 사들입니다. 지금은 7,000평이 좀 넘는 땅이 그의 소유입니다. 【사진 2】
나는 그가 쭈글쭈글한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인적없는 풍경 속에서 한 줄기 푸른 바람처럼 살아가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깊은 산속에서 바람 소리를 들으면 누구나 머리가 맑아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바람 소리 속에는 천 년이라는 세월을 건너 한 선승禪僧이 우리에게 말하는 목소리도 들려옵니다.
송죽에 부는 맑은 바람
오조법연(1024?~1104)은 수행과 문학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낸 천재입니다. 천재란 내적 영성의 영감을 부여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선방에서도 널리 행해지는 조주의 무자無字 화두를 수행의 근본으로 삼은 최초의 인물이 바로 법연입니다. 법연의 오도송悟道頌입니다.
저 산기슭에 있는 한 뙈기 쓸모없는 밭에 대해
두 손 모으고 은근하게 할아버지께 물었더니
그 밭을 몇 번이고 팔았다가 다시 산 것은
송죽에 부는 맑은 바람이 못내 좋아서라네(주1)
법연은 본향에 돌아와서 산기슭에 있는 저 쓸모없는 밭뙈기를 왜 샀느냐고 할아버지에게 짐짓 물어봅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송죽에 부는 맑은 바람이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좋아서 몇 번이고 팔았다가 끝내 다시 샀다고 말합니다. 그 땅은 농사를 지으려고 산 것이 아니라 바람 소리를 들으려고 샀다고 하니 어느 누가 그 정도로까지 생각할 수 있을까요.
이 시는 의경意境을 노래한 것으로 화자話者인 할아버지는 바로 법연 자신입니다. 천 년 세월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삶의 기쁨이 할아버지의 무심한 목소리에 실려 우리들 내면에서 살아납니다. 이 시는 ‘송죽에 부는 바람 소리’ 같은 심미적 정취를 인생철학의 위치로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선종에서는 자연계가 가장 불성佛性이 풍부하고 깨달음의 경지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푸르디푸른 대나무는 모두가 법신法身이고, 무성한 노란 꽃은 반야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주2)
법연은 이 시를 통하여 송죽에 이는 바람 소리 속에 깨달음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아득한 경지를 창출합니다. 해탈의 심리 상태에서 집착을 버린 마음, 넓은 시야를 가지고 살아가는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줍니다.
사람은 왜 사는 걸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고 말합니다. 행복에는 외적인 행복, 육체의 행복, 영혼의 행복이 있는데 이 가운데 영혼의 행복이 가장 엄밀한 의미에서의 행복입니다. 영혼의 행복은 관조적인 활동에서 오는 행복입니다.(주3)
오조법연은 이 시에서 바람 소리를 관조하는 영혼의 행복을 노래합니다. 내 친구도 아마 송죽에 부는 바람 소리를 마음속으로 받아들여 행복을 찾아서 이 깊은 산속에 홀로 들어온 것이 아닐까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이 깊은 산속에 혼자 들어와 사는 것은 야생에 가까운 삶입니다. 이름 없는 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존재에 더 가까이 가는 일입니다. 야생은 존재의 밀도가 높은 삶이지만 현대인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삶입니다. 그는 거창하게 거품을 늘어놓지 않고 그저 노후에 집에 죽치고 앉아 있는 것이 싫어서 깊은 산속에 혼자 들어왔다고 말합니다.
암자 터에 이는 푸른 바람
건설회사 사장 출신이라 그는 거주하는 움막을 2층으로 올리고 리모델링합니다. 커 보이지만 실상은 원래 움막이라 건평은 스무 평이 채 안 됩니다. 【사진 3】 자가용 사륜구동 포터와 개도 두 마리 있습니다. 토종 진돗개와 시베리아견인 라이카로 두 마리 다 중형견입니다. 멧돼지들이 날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기르는 개입니다. 야생은 살기에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저녁엔 주로 뭐하고 지내느냐?”고 물어봅니다. 밤에는 심심하다고 합니다. 일찍 자거나 아니면 TV로 자연인, 등산, 바둑, 여행 프로그램을 보기도 합니다.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개들을 데리고 산책을 하기도 하고, 밭일도 합니다. 한눈에 봐도 혼자서 경작하기에는 벅찬 면적입니다. 그는 여기에 온갖 재래종 과실수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갈아놓은 곳에는 주로 산초를 재배하려 합니다. 산초 기름은 참기름보다 훨씬 비쌉니다.
이곳 말고 스님이 살던 진짜 암자는 따로 있습니다. 그럼 그곳을 한 번 보자고 하니 그 암자는 허물어 버렸다며 산모롱이를 돌아 빈터로 안내합니다. 등산객들이 버려진 집인 줄 알고 들어와 불을 피우는 바람에 불이 날까봐 허물어 버린 것입니다. 허문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아직 풀도 제대로 자라지 않았습니다. 【사진 4】 나는 이곳에서도 마치 수행하던 옛 스님을 만난 듯 한 줄기 푸른 바람이 뺨에 닿는 것을 느꼈습니다.
취한 듯 꿈꾸는 듯 나른하게 보내는 하루
문득 봄이 다 간다는 소리에 힘을 내어 산에 올랐네
대숲 지나다 마주친 스님과 나눈 이야기
덧없는 인생에 또 한나절의 한가로움을 얻었네(주4)
우리는 뒷짐을 지고 그를 따라 이곳저곳 둘러봅니다. 단풍나무에는 수액을 받기 위해 수액 줄을 설치해 두었군요. 고로쇠 수액보다 단풍나무 수액이 더 달다고 합니다. 고로쇠 수액만 알았지 단풍나무 수액은 처음 들었습니다. 나무에서 수액을 받아내는 방법을 맨 처음 알아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산에서 혼자 사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생각이 깊어집니다. 그래서 자연인들은 대체로 도시에 사는 사람보다 지혜롭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뭐든지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니 점점 인터넷 멍텅구리로 변해 갑니다.
우리는 짐짓 선승의 포행 을 흉내내며 걸어갑니다. 저 마루를 넘으면 자연인의 움막이 있습니다. 산길에는 언제나 거룩하고 아득한 깊이가 있습니다. 이 길도 밤에는 멧돼지가 출몰하는 길입니다. 【사진 5】
시간이 촉박해서 우리는 그만 돌아와야 할 시간입니다. 그는 우리를 다시 데려다 주기 위해 사륜구동 포터로 산을 내려옵니다. 올라올 때처럼 산길을 거침없이 내달립니다. 아찔한 가운데도 차창 밖으로 건너다보이는 풍경은 절경입니다. 대통선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곳이라 건너편 기슭에는 호화스런 주택이 많이 보입니다. 나는 저쪽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도 훌륭하고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허나 이쪽 산중 움막에 혼자 사는 내 친구도 인생이 무엇인지 사는 맛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 6】
이날 저녁, 나는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좀체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깊은 산속에서 혼자 살아가는 친구의 모습이 계속 떠오릅니다. 아울러 내 귀에 가만히 속삭여 준 인간적인 말도 산속의 고독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지 생생하게 전해 줍니다.
“보기와 달리 외롭고 쓸쓸한 하루하루가 길고 길게 느껴진다네…”
<각주>
(주1) 『古尊宿語錄』 卷第22, “山前一片閑田地 叉手丁寧問祖翁 幾度賣來還自買 爲隣松竹引淸風.”
(주2) 『祖庭事苑』 卷第5, “靑靑翠竹 盡是眞如 鬱鬱黃花 無非般若.”
(주3)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주4) 『全唐詩』, 李涉, 題鶴林寺僧室, “終日昏昏醉夢間 忽聞春盡强登山 因過竹院逢僧話 又得浮生半日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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