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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한국불교의 문헌서지학 연구를 개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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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태  /  2022 년 3 월 [통권 제107호]  /     /  작성일22-03-04 09:37  /   조회4,626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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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한국의 불교학자들 15 | 구로다 료黒田亮 1890~1947  

 

구로다 료(黒田亮: 1890~1947)는 식민지시기 경성제대의 교수로서 문헌서지학 분야의 선구적 업적인 『조선구서고朝鮮舊書考』(1940)를 저술한 학자였다. 이 책은 조선시대에 간행된 불서를 주요 연구 대상으로 하여 주제별, 지역별 현황과 특징을 정리해 놓았다. 이는 의천의 교장 편찬에 대한 기념비적 저작인 오야 도쿠조의 『고려속장조조고』(1937)와 함께 한국 간행 불교문헌에 대한 초창기 연구 성과로서 주목된다. 그런데 구로다는 원래 심리학 전공자로서 중국사상과 함께 문헌서지학 분야까지 관심 분야를 넓힌 특이한 연구 이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설국의 무대에서 태어나다

 

구로다 료는 1890년 일본 니가타현 미나미우오누마에서 태어났다. 이 지역은 일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주요 무대가 된 곳이었다. 그는 일본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걸었는데, 제국대학의 예비교였던 제일고등학교를 나왔고, 1915년 도쿄제국대학 철학과(심리학 전공)를 졸업했다. 이후 고향의 니가타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는데, 앞서 톨스토이의 소설 『가정의 행복』을 일본어로 번역 출판(1913)하기도 했다.

 

 

사진 1. 구로다 료의 도쿄제대 졸업장.  

 

구로다는 1926년 식민지 조선의 유일한 대학이었던 경성제국대학의 교수로 부임했다. 경성제대는 1924년 관제가 공포된 후 예과가 먼저 개설되었고, 1926년 법문학부와 의학부가 설립되었다. 『이조불교』의 저자 다카하시 도루도 1923년 경성제국대학창립위원회 간사를 맡은 후 이때 신설된 경성제대 법문학부의 교수가 되어 조선어학문학 제1강좌를 담당했고, 조선문학사와 사상사 강의를 주로 맡았다. 구로다는 1930년 『음音의 비교심리학』이라는 논문으로 동경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42년까지 경성제대 교수로 재직했다. 이후 그는 194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저술 활동에 전념했다.

 

구로다의 저술 목록을 보면 매우 다채로운 그의 연구 이력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경성제대 교수 시절에는 『감勘의 연구』(1933), 『심리학 개론』(1935), 『동물 심리학』(1936), 『조선구서고』(1940) 등의 저서를 펴냈다. 일본에서 현재까지도 그의 대표저작으로 인정받는 『감의 연구』는 백내장 수술로 시력을 찾은 선천성 맹인의 심리 및 경험적 인식을 관찰하고 분석한 논문을 비롯해 여러 비교연구를 모은 것이다.

 

그는 퇴임 후에도 『심心의 세계: 심리학 입문』(1943), 심리학의 관점에서 불교 유식사상을 분석한 『유식 심리학』(1944), 중국을 대상으로 한 『지나 심리사 상사』(1948) 등을 저술했다. 이처럼 그의 주 전공은 심리학이었지만 문헌학과 불교사상에도 관심을 갖고 연구했는데, 이들 분야의 주목할 만한 논문으로는 「조선의 고古간본」(1937), 「선禪의 심리학」(『선의 강좌: 제1 선의 개요』, 1952 수록) 등을 들 수 있다.

 

17년을 경성제대 교수로 봉직한 구로다가 한국과 관련해 쓴 유일한 저작이 『조선구서고』였다. 그의 전공인 심리학과 전혀 관련 없는 분야에서 성과를 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앞부분에는 연구의 서설에 해당하는 「조선 간본 개관」, 「서적 특히 불서 간행으로 본 이조李朝 문화의 일면」, 「조선 불서에 대한 종합적 고찰」이 있다. 이어서 각종 불교 서적을 검토한 내용인 「조선 유통 『육조단경六祖壇經』의 형식에 대하여」, 「『선문보장록禪門實藏錄』 인용 서목」,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에 대하여」, 「『치문경훈緇門警訓』과 『치림보훈緇林寶訓』의 관계」, 「『고봉선요高峰禪要』·사문 영중永中과 호법론」,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과 『선림유취禪林類聚』」, 「송대의 대혜서大惠書 개판과 그 조선 간본」, 「회입繪入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이 수록되어 있다. 다음으로는 문학과 관련된 「오신五臣 주석 『문선文選』의 연구」, 「이태백李太白 문집 교감기」, 「『산곡시주山谷詩註』」, 「『고문진보古文眞寶』 화한본和韓本 비교」, 「『문장궤범文章軌範』의 원형과 그 조선 간본」이 나오며, 책의 말미에는 색인이 달려 있다.

 

 

사진 2. 구로다 료가 조선시대 불서에 대해 연구한 저서 『조선구서고』.  

 

『조선구서고』의 서문에서 저자는 이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조선에 와서 전공을 살려서 역사심리학적 방법으로 개인, 집단, 민족을 대상으로 연구해 왔는데, 이 책은 조선의 지방색(고유성)을 조금이라도 드러낸 최초의 결과물이다. 이를 통해 조선의 문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경험을 하고 조선에 대해 이해하게 된 것이 큰 수확이다.” 또한 저자는 자신은 비전공자라서 관련 전문가의 고서 연구를 많이 참조했다고 했는데, 『조선의 판본』 등을 저술한 마에마 교사쿠前間恭作의 성과에 의거한 내용이 적지 않다. 마에마는 1890년대 초에 한국에 와서 통역관으로 활동하다가 고서 연구에 전념한 인물이었다.

 

한국문화의 보고 불서佛書

 

본서의 서설에 해당하는 「조선 간본 개관」에서는 구로다가 교수로 있던 경성제대 도서관 소장 규장각 도서에 대해 조선본의 천하의 보고로서 희귀서와 조선의 대표적 간행물이 구비되어 있다고 소개하였다. 그는 조선 간본은 조선문화의 특질을 담은 유력한 자료일 뿐 아니라 중국본 서적의 원형도 찾을 수 있음을 주목했다.

 

조선은 중국과 일본의 중간에 위치하여 문화 교류의 중계지 역할을 했는데, 어떤 시대에는 중국에서 조선으로 유입되어 오래 지속된 반면 일본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도 있고, 또 중국에서 이미 자취를 감춘 예도 적지 않음을 들었다. 이 점에서도 조선 간본에 대한 연구는 매우 중요하지만 아직 미개척 분야가 많아서 후속 연구가 필요함을 당부하고 있다. 

 

무엇보다 구로다는 불서야말로 조선 문화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 연구 과제임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척불의 국책으로 피해를 입은 조선시대에 간행된 불전을 보면 이전 시대의 잔영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할 수 없으며, 불서가 요구되고 유통된 시대적 필요성, 그리고 당시 승도의 학문적 수준 등을 고려해 볼 때 상당히 높은 평가를 내릴 수 있다고 결론을 맺었다.

 

이어 「서적, 특히 불서 간행으로 본 이조문화의 일면」에서는 조선은 서적 간행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간본의 종류도 다양하며, 인쇄문화에서 세계문화사상 특이한 존재임을 상기시켰다. 하지만 일본에서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는 알지만 조선 활자판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지적하면서, 향후 여러 분야 전문가들의 협력 연구가 필수적이며 자료의 보존과 집성도 매우 중요함을 역설했다.

 

그는 유교국가인 조선시대에는 억불정책이 취해졌고 이는 일본 에도시대 불교가 국가 차원의 비호를 받으며 민중 속에서 세력을 넓힌 것과는 차이를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도 민간 일부에는 불교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고승들의 자취도 끊이지 않았음을 들어 이를 조선문화의 특수성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유교의 전성시대에 각지의 사찰에서 불서가 간행되고 고려시대 이상으로 충실하게 이어진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라고 보았다. 

 

조선시대 불교 연구의 토대 제공

 

구로다는 『조선구서고』에서 불서를 중심으로 조선시대에 간행된 서적에 대해 주제별, 시기별, 지역별 경향성을 파악하려 했고, 그로부터 간행 상의 특징을 검토하고 분석했다. 그는 1910년대부터 이루어진 문헌자료 집성의 기본 토대 위에서 마에마 교사쿠, 에다 도시오 등의 선행 연구를 충분히 활용했다. 그렇기에 이 책은 문헌서지학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불교연구의 기본 토대로서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심리학자로서 명성을 떨치던 그가 문외한의 분야에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학자적 자질과 뛰어난 능력이 있었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생활한 인연과 여러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책을 내고자 했던 저자의 바람이 원동력이 되었다. 

 

구로다는 조선시대 불서 간행의 빈도와 양, 질적 수준을 감안해 보면 불교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고려시대에 비해서도 뒤처지지 않으며, 교학 연구와 대중교화 측면에서도 매우 활성화되어 있던 시기라고 하여 불교문화의 저력을 높이 평가했다. 조선시대 불교에 대한 이러한 긍정적 인식은 그 이전 일본인 학자들의 저술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처럼 구로다의 『조선구서고』는 고려 교장을 선구적으로 연구한 오야 도쿠조의 『고려속장조조고』와 함께 식민지기에 이루어진 한국불교 문헌서지학 분야의 중요한 업적이었다.

 

한편 한국불교의 문헌자료와 관련해서 가와무라 도키河村道器(1899~1988) 의 『조선불교사: 자료편』 1·2(1995, 大阪 楞伽林)도 눈여겨볼 만하다. 가와무라는 일본 조동종 승려로서 포교사로 한국에 왔고 경성 불교전수학교의 강사를 지내기도 했다. 그는 한국불교의 역사에 큰 관심을 가져서 23편 1,700쪽에 이르는 자료집을 유고로 남겼는데, 구로다 료와 마찬가지로 학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아 향후 그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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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태
서울대 국사학과 문학박사 학위 취득(2008). 저서로 『韓國佛敎史』(2017, 東京:春秋社), 『토픽 한국사12』(2016, 여문책),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임제 법통과 교학전통』(2010, 신구문화사) 등이 있고,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및 한문불전 번역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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