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벽화 이야기]
찬탄의 상징, 비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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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 2022 년 1 월 [통권 제105호] / / 작성일22-01-05 10:29 / 조회5,919회 / 댓글0건본문
불교벽화 이야기1 | 비천도飛天圖
불교벽화는 불국토佛國土를 형상화한 공간인 사찰의 전각 내외 벽면을 장엄하기 위해 직접 그린 그림을 말한다.
여기에는 불·보살상을 비롯하여 석존釋尊의 일대기를 그린 팔상도八相圖와 선화禪畵의 중요한 소재인 심우도尋牛圖, 그리고 경전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변상도, 교화적인 내용과 다양한 문양 등과 같은 장식적인 그림 등이 그려진다. 이러한 벽화들은 사찰이나 전각의 성격을 나타내 주기도 하면서 동시에 신행자들의 신심을 더욱 불러일으켜 주는 중요한 기능을 하는 불교미술의 한 장르이다.
벽화로 표현되는 소재 가운데 먼저 공양과 찬탄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면서 전각의 성격과 상관없이 그려지는 것으로 비천飛天을 들 수 있다. 비천은 천상을 나르는 선인을 지칭하는데 즉, 천인天人을 말한다. 따라서 천인이 하늘을 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나 문양이 곧 비천상 혹은 비천문이라 하는데 그 표현 양상은 여러 민족의 각 지역에서 다양하게 볼 수 있으며 각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대체로 서방 미술에서의 천인상은 등 뒤 양 어깨에 새 날개[鳥翼]를 달고 있다. 날개 달린 천인상은 기원전 1400년경 이집트 상대上代의 석각신상 石刻神像에서 볼 수 있으며 또 그 이전에는 기원전 3000년 경에 메소포타미아의 인장印章에 새겨진 천인상을 볼 수 있다.
불교에서의 비천상은 이전의 바라문 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문화 형태의 하나로 볼 수 있으며 범어로는 Apsara이다. 곧 비천, 낙천樂天이라는 의미이다. 그려지는 모습은 허공을 날아다니며 악기를 연주하고 하늘 꽃을 흩날리며 항상 즐거운 지경에 처하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불교에서 초기에 나타나는 비천상으로 인도 산치 대탑의 난순欄楯에 제석굴설법도帝釋窟說法圖 부조가 있는데, 이것은 찬탄이나 공양의 의미가 아닌 도리천의 주인 제석천이 집락신執樂神과 같이 동굴에 내려와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을 들었다는 내용을 나타낸 것이다. 중국에 이르러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의 화상전畵像塼(하남성 6세기 경)의 비천상, 북위시대 돈황석굴敦煌石窟(5~6세기 경)의 벽화에서 나타나는 비천상은 우리나라 고구려 고분벽화를 비롯하여 각종 조상에서의 비천상에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고분벽화 중 인물 풍속도고분人物風俗圖古墳 및 사신도고분四神圖古墳에서 천정벽화에 비천상이 그려져 있다. 대안리大安里 정천 제1호분에는 해, 달과 28수[宿]의 별자리와 함께 비천(사진 1)을 표현하고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표현하고 있는 비천도는 도교적 성격의 도상과 혼재되어 있으나 부처님의 위덕에 대한 찬탄의 의미로 꽃을 뿌리는 비천[散花飛天]과 공양상들은 불교적 의미를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돈황막고굴 제320굴과 제321굴 서벽에는 꽃을 뿌리며 공중을 나는 비천의 모습이 경쾌하게 그려져 있다.
사진 3. 기원정사 극락전 벽화.
돈황의 벽화는 다종다양한 내용과 풍부한 양, 뛰어난 회화성 등에서 경이의 대상으로 연구되고 있는데, 특히 제321굴의 비천상(사진 2)은 초당初唐대에 그려진 것으로 본존의 광배 위쪽에 묘사되어 있다. 이 비천상들은 마치 다이빙을 하듯 경쾌한 하향감을 주고 있으며, 천의天衣가 매우 유려하면서 약동감이 넘친다. 하남의 용문석굴사원, 향당산석굴, 또 산서성 용산석굴 등의 돔dome 천정에는 천개天蓋가 구성되었는데, 좌우에 비천이 날고 있는 모습을 부조에 채색으로 그렸는데, 그 형식과 표현이 고구려 고분벽화의 비천상과 유사하게 나타나 있다.
이와 함께 비천상의 특징적인 표현으로 우리나라의 범종을 들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주조된 범종梵鍾의 종신鐘身에는 공간을 구획하고 그 양면의 당좌撞座 사이에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의 주악비천상 또는 공양비천상을 새겨 놓았다. 이는 마치 동굴사원의 돔 천정에 그려진 비천상을 떠올리게 하면서 생동감 나게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특징은 신라 범종만의 독특 한 양식으로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신라만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창작품이다. 그러한 비천상은 고려, 조선시대 범종에서도 전통적으로 이어져 오는데, 특히 비천상 주위에 생황, 젓대, 장고, 바라, 비파 등 불가를 상징하는 여덟 악기가 칠보처럼 둥실둥실 떠도는 모습을 새겨 놓아 천상세계에 음악이 울려 퍼지는 모습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진 4. 청룡사 벽화.
범종의 비천상의 예로서 현존하는 최고의 종이라 할 수 있는 상원사종上院寺鐘에서는 종의 몸통 양면에 각기 두 비천상이 꽃구름 위에 서로 마주하여 앉아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을 부조하였는데, 한 명은 비파琵琶를, 또 한 명은 생황을 불고 있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또한 애절한 전설을 담고 있는 성덕대왕신종(725년)은 상원사종과는 또 다른 특징 을 보여준다. 즉 당좌 사이 양면 공간에 조각된 비천상은 각기 한 명의 비천이 꽃구름 위의 연화좌蓮華坐에 무릎을 꿇고 앉은 자세로 공양드리는 모습이다. 즉 두 손으로 향로를 받쳐들고 있는 경건한 모습이 묘사되었는데 천의天衣 자락과 보운寶雲이 한층 유려하고 신비하게 표현되었고, 인물 표현에는 사실감을 더하고 있다.
경주 부근 사지寺址에서 출토되는 통일신라기의 와당瓦當 암막새 기와에는 중앙에 향로를 두고 양편에서 비천이 양로를 받쳐 들고 나는 모습을 새긴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비천문은 고려 초 범종에서도 유행되었다.
사진 5. 오어사 비천 벽화.
이러한 상징과 역사성을 지니는 비천상은 현재 우리의 사찰 벽면에 빠짐없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 비천상은 특정 전각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닌 불·보살님을 주존으로 봉안한 모든 전각에 표현되고 있다. 그 이유는 비천이 불·보살님의 가피력과 위신력을 찬탄하고 공양하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사진 3)은 경주 기원정사 극락전 벽화에 표현된 벽화로, 아미타불의 본원이 성취되어 이루어진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행자를 아미타 삼존이 맞이하고 있으며, 이를 환희하고 찬탄하는 비천이 좌우에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범종을 통해서 이미 보아온 비파를 타는 비천과 피리를 부는 모습의 비천상은 벽화에 끊임없이 그 표현이 이어져 오는데, (사진 4)의 서울 돈암동 청룡사 비천도와 (사진 5)의 오어사 응진전 벽화에 잘 나타나 있다. 생동감 있게 흩날리는 천의를 통해서 비천의 양태를 드러내 주고 비파나 피리 등의 악기를 통해서 불덕佛德을 찬탄하는 의미를 표현해 주고 있다. (사진 6)은 꽃을 흩뿌리며 법계를 장엄하고 찬탄하는 산화 비천의 모습을 아름다운 채색을 통해서 나타내 주고 있다.
사진 6. 청룡사 벽화.
이와 같이 비천은 불교미술의 전 장르에 걸쳐서 다양한 기법과 표현으로 전승되고 표현되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비천상은 앞서 언급하였듯이 특정 사찰이나 특정 전각의 성격을 강조하는 벽화의 소재라기보다는 모든 부처님께 예경하고, 여래를 우러러 찬탄하며, 널리 공양하고, 업장을 참회하며, 남의 공덕을 따라 기뻐하고, 설법해 주기를 청하며,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래 머물기를 청하며,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며, 항상 중생들을 수순하고, 널리 회향하고자 하였던 보현보살의 행원을 시각화한 것으로 이해한다면 우리의 신행을 대승적이고 실천적으로 이끌어 주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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