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禪, 禪과 시]
무심無心의 묘경妙境 옛 선사들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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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택 / 2021 년 11 월 [통권 제103호] / / 작성일21-11-03 15:59 / 조회5,221회 / 댓글0건본문
시詩와 선禪 선과 시 6 / 고운사孤雲寺 연수전延壽殿
나이가 든 다음에 여행하는 즐거움 가운데 일찍이 여행한 곳을 다시 찾아가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10년, 20년 전에 갔던 곳을 다시 가보면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산사를 찾아가는 발걸음은 예전보다 훨씬 편해졌습니다. 별로 걷지도 않고 산사에 도착하면 옛날 같은 감격은 느끼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고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의성군 단촌면 등운산에 있는 고운사孤雲寺도 그런 곳입니다. 갈림길에서 산길로 20리를 더 들어가야 첩첩산중에 고운사가 나타납니다. 옛날에는 이 길을 걸어서 올라갔기 때문에 그 시절 고운사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감동적인 사찰이었습니다. 사찰은 우리들이 참배하러 갔을 때 마음을 씻어주는 듯한 기분이 있어야 합니다. 고운사가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은 깊디깊은 산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 2. 의성 고운사 구글어스.
고운사가 얼마나 깊은 골짜기에 있는지 사진 두 장(사진1, 2)을 한번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눈치채셨습니까? 구글어스의 도움으로 고운사를 조감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새의 눈으로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됩니다.
좁은 골짜기에 지어진 사찰이라 교구 본사로서는 규모가 작은 편입니다. 개울 옆으로 일주문과 천왕문이 있고, 고불전을 지나면 개울에 걸터앉은 가운루駕雲樓가 나옵니다. 가운루(사진3)란 구름 위에 올라탄다는 뜻입니다. 가운루에서 내려다보면 물 위에 뜬 구름이 보이기에 붙인 이름입니다. 현재의 건물은 1899년에 중수한 건물입니다. 개울을 가로질러 세워졌기에 건축 양식에 볼 만한 데가 많은 건물입니다.
사진으로 보면 고운사는 좁은 골짜기의 개울을 끼고 세워졌다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사진 4). 우리나라의 산중 깊은 곳에 있는 사찰 가운데는 수맥이나 물구덩이 위에 세워진 사찰이 적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순천 송광사의 경우에도 물구덩이를 메워 법당을 지었습니다. 궁궐인 경복궁, 창경궁도 수맥 위에 세워진 궁궐입니다.(주1) 고운사 역시 좁은 계곡의 개울을 일부 메워서 지었습니다. 대웅보전과 약사전은 원래 물이 흐르던 계곡을 메우고 세운 건물입니다. 대웅보전과 약사전 사이로 보이는 단풍이 이제 막 물들기 시작했습니다(사진 5).
사진 3. 가운루.
고운사 경내를 어슬렁거리노라면 단연 단아한 건물 하나가 눈길을 끕니다. 솟을삼문 뒤로 겹처마가 아름다운 팔작지붕을 지닌 연수전延壽殿입니다(사진 6). 연수전은 영조가 하사한 어첩과 불구, 보물 등을 모시기 위해 1744년에 건립했습니다. 현재의 건물은 고종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1902년에 어첩을 내리고 새로 지었습니다. 왕실의 족보를 기록한 어첩이 있었기에 고운사는 박해를 피해 번창할 수 있었습니다.
만세문으로 들어가면 좁은 마당이 있고 사방을 에워싸는 토석담을 쌓았습니다. 작지만 단단하고 위엄이 돋보이는 건물입니다. 우리는 가끔 사찰에서 왕실 관련 건물을 만날 때마다 그 격조와 절제미에 감탄하곤 합니다. 만세문萬歲門은 판장문으로 되어 있고 위에 홍살과 화반을 설치하였습니다. 홑처마 맞배지붕이 단정하면서도 위엄이 서려 있습니다. 이 문 앞에 서면 누구도 함부로 까불지 못할 것 같지 않습니까?
사진 4. 고운사 전경
연수전은 돌로 쌓은 기단 위에 건물을 짓고 판벽과 사분합문을 두어 방을 만들었습니다.(사진7) 돌로 쌓은 기단은 18세기 중반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마루는 우물마루에 쪽마루를 붙였는데 계자난간을 설치하여 운치를 더했습니다. 난간에 기대서면 시야가 확 트여 개방감과 존재감이 대단합니다.
점점 높아지는 뒷산의 경사를 살리면서 층차를 두고 쌓은 담장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겠습니다. 깊은 산속에 건물을 지으면서 개발의 흔적을 남겨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건물을 가리켜 멋있고, 살아 있는 듯 생생하다고 생각합니다. 담장 위로 단청과 어우러진 파스텔톤의 단풍이 그림처럼 아름답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넋을 놓고 오랫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살짝 휜 처마, 단청, 단풍, 토석담의 아름다움이 감동을 너머 도취감을 불러옵니다.(사진8) 아, 여기서 바라보면 아름다운 풍경만 존재하고 ‘나’라는 의식마저 잠시 동안 사라져 버립니다.
사진 5. 고운사 단풍.
어떤 건물에 들어갔을 때 바로 눈앞에서 날아 들어오는 처마의 모양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물론 건물을 지은 옛날 목수는 그런 것까지 다 염두에 두고 지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래된 나무는 놀랍게도 만져보면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감촉이 부드럽습니다. 우리는 연수전의 난간과 기둥을 만져보며 고색창연함 속에서 반음계씩 낮아진 저음의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저 단정한 기와지붕, 그리고 살짝 휜 처마 아래 떠도는 어둠은 환상적입니다. 처마 밑은 어둠 속에 묻혀 있어서 밖에서 보면 웅숭깊은 그늘만 보입니다. 처마 밑 그늘은 매우 양질의 그늘입니다. 저 그늘 아래 앉아서 편안하게 쉬고 싶어집니다. 저런 그늘은 우리들의 불안을 다독여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바로 이런 처마 밑의 웅숭깊은 양질의 그늘을 읽을 줄 알았던 선인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천 년 전에도, 이천 년 전에도 그런 그늘의 감촉을 느낀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만 오늘은 그중 원오극근 선사가 느낀 그늘의 감촉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1125년에 36세의 대혜종고(1089~1163)가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 천령사로 62세의 원오극근(1063~1135)을 찾아갑니다. 만난 지 40일이 지난 어느 날 원오극근이 법당에 올라 법문을 합니다.
“어떤 승려가 운문雲門(864~949)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모든 부처가 나오는 자리입니까?’라고 하자, 운문이 말했다. ‘동산東山이 물 위로 간다’고 하였는데 나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문득 누가 묻기를 ‘무엇이 모든 부처님이 나오는 자리입니까?’라고 한다면 나는 그에게 말하겠다. ‘따뜻한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오니, 전각殿閣에서 조금 서늘한 기운이 생기는구나.’ 대혜大慧는 말끝에 문득 앞뒤의 시간이 끊어졌다.”(주2)
이 법문에는 세 겹의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화자話者는 원오극근이고, 청자聽者는 법문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대혜종고입니다. 법문의 구절인 ‘훈풍자남래 전각미생량薫風自南來, 殿閣生微涼’은 당나라 유공권(778~865)의 작품입니다.
이 구절은 원래 당 문종(재위 829~840)이 앞 2구를 짓고 신하들에게 댓구를 짓게 한 것인데 유공권의 댓구가 가장 좋다고 문종이 골라서 그 시절에도 이미 유명했던 구절입니다.(주3) 무더위 때문에 다들 싫어하는 여름을 황제가 굳이 낮이 길어서 좋다고 하자, 유공권이 더운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와도 궁궐에는 청량한 기운이 일어난다고 맞장구를 치는 시였습니다. 원오극근의 위대함은 300년 전의 시를 읽는 방식의 깊이에 있습니다. 거기에서 가르침의 권위가 나옵니다. 이 구절은 원오극근으로 말미암아 오랫동안 사람들의 가슴에 메아리치는 화두가 되었습니다.
300년 전의 시에서 무심無心의 경지를 처음으로 읽어낸 원오극근이나 그 말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대혜종고의 경지는 자아에서 벗어나, 순수한 인식 상태에서 청량한 바람과 하나가 된 경지입니다. 객관만 남고 주관은 사라진 경계입니다. 고뇌와 고통이 다 사라진 경계입니다. 이런 경지는 무심의 묘경妙境입니다. 이는 돈오頓悟에 속하는 것으로서, 참으로 위대하고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산수 공부를 할 때처럼 책 뒤쪽으로 가서 답을 미리 알고 공부하는 식으로 이 시를 읽어봤자 거죽만 훑을 뿐,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알았다’라는 감각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범부도 해설을 들으면 ‘훈풍자남래 전각미생량’의 경지를 잠깐 동안 맛볼 수는 있겠지만 거기에 오랫동안 머물 수 있는 힘은 갖고 있지 못합니다. 옆에서 누가 어깨를 툭 건드리기만 해도 마법은 끝나버리고 우리는 다시 평범한 범부로 돌아옵니다.
궁궐을 짓는 목수들 세계에서는 이런 말이 전해집니다.
“참새와 목수는 처마에서 운다.”(주4)
이 경지도 순수한 인식 상태에서 나온 것으로 또 하나의 별세계를 보여줍니다. 이런 세계에서는 오직 처마만 있고 참새나 목수는 사라지고 없는 경계입니다. 무거운 지붕을 떠받치는 처마 밑의 골조를 숨기지 않고 다 드러내는 서까래의 디테일만 순수하게 남고 나머지는 다 사라진 세계입니다. 이런 미적 관조의 시선은 플라톤의 이데아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문득 이런 처마 밑에서 여생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이 되어 사라지거나 한 마리의 참새가 되어 조그만 소리로 한번 울어보고 싶습니다.
각주)
이종호, 『한국의 유산 21가지』(1999).
『오등회원五燈會元』, 권제19, “南嶽下十五世上昭覺勤禪師法嗣徑山宗杲禪師 臨安府徑山宗杲大慧普覺禪師, 且囑令見圓悟. 師至天寧, 一日聞悟陞堂, 舉:“僧問雲門:“‘如何是諸佛出身處?’ 門曰:‘東山水上行.’ 若是天寧即不然. 忽有人問:‘如何是諸佛出身處?’ 只向他道:‘薰風自南來,殿閣生微涼.’” 師於言下, 忽然前後際斷.”
『전당시全唐詩』 권4, 文宗皇帝, <夏日聯句>, “人皆苦炎熱, 我愛夏日長, 薫風自南來, 殿閣生微涼”
마츠우라 쇼우지, 『천년을 이어온 궁궐목수의 삶과 지혜』(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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