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현실 개혁적 불교로의 전환, 인간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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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 2021 년 10 월 [통권 제102호] / / 작성일21-10-05 13:47 / 조회4,520회 / 댓글0건본문
근대중국의 불교학자들 10 / 인순 印順 1906-2005 ③
『대학』과 대승불교, 『소학』과 소승불교
인순은 인간 불교의 입장에서 타종교에 대해 열린 종교관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불교와 전통 철학인 유학이 근본적으로 일치한다고 본 것은 당연하다. 그는 특히 불교와 유학 모두 자신의 수양, 즉 수신修身을 근본으로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보았다. 유학에서는 수신을 근거로 하여 자기 마음을 바르게 하고[正心], 뜻을 정성스럽게 하며[誠意], 지극한 앎에 머무는 것[致知]으로 나아가고, 불교는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心淨]으로 귀결한다는 것이다. “불교와 유학은 모두 수신을 근본으로 한다. 자신에서 시작하여 자기 마음을 탐구하는 것을, 덕으로 나아가고 업을 성취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관건으로 여긴다. 수신이 근본이 되는 문화야말로 인성의 참된 실현자이다.”라고 단언하였다. ‘수신이 근본이 되는 문화’는 동양 전통 문화를 말하고, 이를 ‘인성의 참된 실현자’라고 칭찬한 것은 서양에 대하여 동양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중국 근대에 전통 철학인 불교와 유학을 결합, 회통시켜서 서양에 대항할 수 있는 민족적 자존심을 북돋는 효과를 가져 오고자 한 의도였다.
인순은 유학에 『대학』과 『소학』의 구별이 있듯이, 불교에도 대승과 소승의 구별이 있다고 보았다. “불교에는 소승과 대승이 있다. 유학의 『대학』은 대인의 학문이고, 대승불교도 대인의 승乘이다. 불법은 본래 한 가지 맛으로 평등한 것이어서, 소승과 대승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인간은 근성이 다르므로 방편도 그에 맞추게 되어 대승과 소승의 차별이 없을 수 없다.”라는 것이다. 그는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차이를 이렇게 분석하였다.
“첫째, 소승은 규율을 중시하는데, 이것은 유학의 예禮와 서로 비슷하다. 그러나 편중되면 모두 제도에만 기울고 형체의 자취에 구애된다. 반면에 대승은 법을 중시하고 의리의 연마를 중시하며 법성을 깨닫는다. 둘째, 소승은 자기를 이롭게 하는 것을 중시하고, 대승은 자기를 이롭게 하는 것과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을 모두 중시한다. 따라서 대승불교는 수신修身을 근본으로 하는 유학의 『대학』과 비교적 근접한다.”
인순은 유학에 『대학』, 『소학』이 있고, 불교에 대승·소승이 있다는 것에서 유사점을 찾았던 것이다. 소학은 예禮를 익히고, 소승은 규율을 중시한다. 반면에 대학은 덕의 교화를 중시하고, 대승은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을 중시한다. 이처럼 『소학』과 소승, 『대학』과 대승은 서로 유사점이 있고, 따라서 두 학파는 크게 일치한다[大同]. 그리하여 “불교와 유학은 수신을 근본으로 하므로 서로 근접한다.”라는 결론에 다시 이르게 된다.
‘지관止觀’과 ‘격물치지格物致知’의 회통
인순이 보는 불교와 유학의 공통점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인순은 유학인 『대학」의 학설과 불교의 ‘지관止觀’ 학설을 연관시켜 두 가지가 일치함을 설명하였다. 구주심九住心을 포함한 불교의 지止는 『대학』의 지止, 정定, 정靜, 안安에 대응하고, 불교의 관觀은 『대학』의 여慮, 득得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인순은 유학의 ‘격물치지格物致知’는 불교의 ‘신信’의 성취에, 유학의 ‘성의誠意’는 불교의 ‘계戒’의 성취에, 유학의 정심正心은 ‘정定’의 성취에, 또한 유학의 ‘수신修身’은 불교의 ‘혜慧’의 성취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이처럼 불교와 유학의 회통을 말하면서도 인순은 불교를 더 높은 차원의 것으로 생각하였다. “유학은 지극한 앎에 이른다[致知]는 입문이고, 불교 공부는 바른 견해인 정견正見을 제일로 삼는다. 견見은 지知이며 깊고 간절한 의미의 지이다. 유학은 도덕적 양지良知를 중시한다. 불교도 도덕적이지만 이지적 요소가 더욱 풍부하다. 실제의 정견은 진정한 양지의 깨달음이다.”라고 해석하였다. 그는 유학은 불교로 들어가는 입문에 불과하며, 불교의 정견은 ‘도덕적 양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양지의 깨달음임을 강조한 것이다. 불교의 정견이 유학의 양지보다 차원이 높은 것임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불교의 정견을 ‘연기성공緣起性空’의 개념으로 귀결시키고 있으며, 공과 유가 상즉相卽하는 ‘원만한 중도’가 정견임을 주장하였다. 불교와 유학이 회통하는 가운데에서도 유학이 입문 역할을 한다면 중도를 말하는 불교가 그보다 높은 차원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인순이 말하는 인간 불교는 유학을 그 속에 포함하는 더 넓은 외연을 가진 불교인 것이다.
‘평등’과 민권 중심적 불교
인순이 보는 불교와 유학의 관계는 이러하다.
“유학의 예법은 차등差等을 중시하고, 정감情感의 중화中和를 중시한다. 불교의 계율행은 평등平等을 중시하고, 사리에 합당함을 중시한다. 유학은 인仁을 중시하고 정감으로 이치를 통섭하지만, 불법은 지혜를 중시하고 지혜로써 정감을 변화시킨다. 세간의 학문과 출세법은 실질적인 차이가 없을 수 없지만, 수행을 근본으로 한다. 수신의 핵심은 내심에 사적인 것과 자아가 없는 것이며, 외부 행위에 개인적인 덕과 공공의 덕의 구별이 없는 것이다. 이에 의거할 때 비로소 인류의 화락和樂에 도달할 수 있다. 유학· 불교는 확실히 공통된 견해이다.”
인순이 유학이 차등을 중시하는 데 반하여 불교가 ‘평등’을 중시하며, 유학이 정감을 중시하는 데 비해 불교가 이치를 중시한다고 한 말은 유학과 불교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한 말이다. 봉건시대 이데올로기로 작용했던 유학의 성격과 봉건적 차등에 비판적이고 근대의 민권 중심적 사고에 더 적합한 불교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순은 자신의 말대로 불교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간의 학문을 출세법만큼 중시하는 인순의 입장에서는 유학과 불교의 분별은 의미가 없다. 더욱이 유학과 불교, 모두 수신을 근본으로 하고 인류의 화락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것이 인순이 ‘인간 불교’를 표방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세속적, 현실 개혁적, 참여불교로서의 인간 불교
중국 근대시기 태허가 제창하고 인순이 발전시킨 이 ‘인간 불교’ 개념은 동아시아 근현대 불교를 대표할 만한 개념으로서, 대만뿐 아니라 한국· 중국· 일본을 아우르는 전 아시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여겨진다. 아시아 근현대 불교의 역할은 산중 불교가 아닌 인간 중심의 현실 참여 불교일 것이기 때문이다.
전통 불교가 ‘산중 불교’ 성격을 띤 데 반하여, ‘인간 불교’는 세속의 현실 참여, 현실 개혁의 성격을 띠고 인간 사회와 문화에 관여하는 참여 불교이다. ‘인간’을 의지하고 ‘인간’에서 출발하는 것이 불성을 완성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 인간 불교의 기본 구도이다. 그는 인간 불교가 세속적이며 현실적이고 인생 중심이므로 일반적인 도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도 있으나, 실제로는 더 깊은 차원의 '무아'의 지혜를 언급함으로써 인간 불교가 단순히 세속의 도덕으로 추락하는 것에는 반대하였다. 또한 그는 종교의 역할을 자기 강화와 자기 정화, 두 측면으로 보았는데, 이것은 그의 인간 불교가 갖는 근대성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자기 정화와 함께 자기 강화를 말하는 인순의 이 ‘자아의 종교’에 ‘평등’과 ‘자유’가 포함된 것은 명백히 근대 민권론의 영향이다.
실제로 근대 시기에 불교는 철학과 종교를 겸비하여 전통적 사유 및 종교 가운데 근대의 속성에 가장 잘 부합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또한 사회진화론 등 서구 사상의 영향 속에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근대적 변혁이 시도되었다. 이에 따라 전통의 구태는 타파되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게 되었고, 전통 불교는 전근대적인 것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불교 전통은 산중의 출가자 위주, 맹목적 신앙 교리 체계라는 식으로 부정적으로 묘사되었고, 불교의 현대화·도시화·대중화가 시대적 화두로 부상하였다. 이는 성역에 갇혀 있던 전통 불교를 해체하고 시대 및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세속 불교로의 전환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세속화·근대화의 ‘탈전통’을 지향한 것이었다. 그 대표적인 움직임 중의 하나가 인순의 인간 불교이다. 인순의 ‘인간 불교’ 개념의 제시는 향후 현대 불교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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