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조선불교회가 간행했던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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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진 / 2021 년 9 월 [통권 제101호] / / 작성일21-09-06 10:05 / 조회4,540회 / 댓글0건본문
근대불교잡지 산책 9
『불일佛日』(통권 2호, 1924.7-1924.11)
『불일佛日』은 조선불교회朝鮮佛敎會 내 불일사佛日社에서 간행한 불교 잡지다. 조선불교회의 회지, 회보로 간행된 『불일』은 1924년 7월 23일 창간되어 같은 해 11월(일자 불분명)에 2호로 종간되었다. 1호의 편집인은 김세영金世瑛, 2호의 편집인은 백우용白禹鏞이다(사진 1).
발행 기관
조선불교회는 근대불교사에서 한용운이 1910년대 조직한 것, 1920년에 이능화 등이 조직한 것, 1930년대 일본인 시이오 벤쿄椎尾弁匡가 조직한 것 등 세 차례 등장하는데, 『불일』을 간행한 조선불교회는 1920년 3월 이능화, 박한영 등이 주도하여 출범한 단체이다. 출범 당시 발기인은 총 29명이며 임원은 28명인데, 그 면면을 보면 학계나 문화계에서 핵심적인 불교지식인들이 상당수 포진하였다. 임원으로는 전무이사 박한영, 이명칠, 오철호 등 3인, 이사 고희동, 양건식 등 8인, 심의회 이능화, 이광종, 이혼성, 김정해, 이지광, 정황진 등 17인이며 총재와 서기는 미정이다.
발기인과 임원 가운데 이능화(『조선불교통사』 저자, 불교거사운동 주도), 양건식(중문학자, 작가), 고희동(서예가), 권덕규(국어학자) 등은 불교진흥회 활동을 함께하던 문화 학술계 인사이며, 이혼성 김정해 이지광 정황진은 1918년 이후 귀국한 불교유학생들(조동종대학 출신)이다. 박한영 이능화 양건식을 중심으로 기존 거사불교운동의 권역에 있던 여러 문화 학술계 인사 그룹에 신진 불교유학생 그룹이 결합하였으며 기타 친 불교 인사들이 포진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불교회선전서」에서 조선불교회는 ‘현대 불교의 활법活法’을 사회에 선전하고자 설립하였음을 밝히고 ‘현대의 불교’란 무엇인가 물음을 던진 후 ‘민족의 무너진 기강을 바로 잡으며, 미혹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는 것, 그리고 ‘현대에 적응한 기관을 설립, 방법을 강구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현대의 불교임을 천명하였다. 이와 함께 「조선불교회 강령」으로 “조선의 불교를 발전”, “사회의 정신을 지도”, “습속習俗의 허위虛僞를 개량改良”, “감화感化의 사업을 진작”, “오인吾人의 생활을 향상” 등 다섯 가지를 제기하였다.
사진 2. 조선불교회 책 광고 (1호).
출범 당시 조선불교회는 한문으로 된 ‘선전서’를 “부인 신도와 기타 일반에 주지周知키 위”해 순 한글로 바꾸어 소개하였다. 잡지에도 불교대중화를 실천하려는 의도가 잘 구현되었다.
조선불교회는 잡지 발간과 함께 각황사(현재의 조계사)에서 통속강연회, 석존탄강제, 능엄경강의 등 다양한 행사를 주도하였고, 조선의 불교서적을 집성, 출판하고자 하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추진하였다. 조선불서의 간행 사업은 이능화가 주도하고 정황진이 실무를 담당한 이래, 1923년에는 국내 최초로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을 발굴, 간행하였다(사진 2). 더 나아가 조선불교회에서는 ‘조선불교총서’를 기획하여 간행하기로 하고, 「조선불교총서간행 예정 서목」 533종을 작성하였다(1925). 일본의 『대정신수대장경』의 간행과 같은 시기에 이루어진 이 사업은 1925년 10월부터 3년을 기한으로 전권을 모두 출판할 계획을 잡았으나 일부 불서를 간행한 채 사업은 중간에 종료되었다. 조선불교총서간행회는 회장 이능화, 편찬사 정황진, 오철호, 교정사 박한영 최남선 권상로, 이사 백우용이다. 이들 명단은 『불일』의 간행을 주도하고 지면을 채워나간 주요 인물들과 겹친다.
사진 3-1. 백용성, 반야심경 역해 (1호).
1920년대는 일제의 조선 통치 전략이 문화정치로 돌아서면서 민족 신문과 잡지가 다수 발행되는 시기다. 이러한 시대 분위기 속에서 발행한 『불일』은 어려운 교리보다는 불교문화 방면으로 확장하고자 노력하였고, 문체도 국한문 혼용체나 현토체로 전달하기보다는 가급적 한글로 전달하고자 노력하였다. 『불일』은 꾸준히 간행되었으면 훌륭한 대중불교운동의 매체가 되었을 가능성이 컸으나, 『불일』 발간 기간에 장차 불교계의 대표적인 잡지가 된 『불교』지가 간행되면서 필진이 흡수되는 양상을 보이며 2호로 종간되었다.
불전佛典 번역의 다양성
『불일』이 불전의 한글화에 기울인 노력은 주목할 만하다. 백용성과 권상로는 경전의 한글 번역에 관심을 기울여 불경대중화의 가능성을 시험하였다(사진 3-1·3-2).
백용성의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역해」는 서언에 이어 ‘마하’에서부터 ‘수상행식 역부여시’까지 본문 일부를 번역하였다. 서언에서는 마하반야바라밀다 제목의 심대한 가치를 소개하였고, ‘마하’에서 ‘수상행식 역부여시’까지 각각의 표제어마다 한문 현토의 법어와 순한글(일부 한자 부기) 풀이를 제시하였다. 표제어에는 협주 형식으로 어휘를 풀이하였다. 예를 들면, ‘마하’의 경우 ‘1.마하는 크다(大)의 뜻’, ‘반야’의 경우 ‘2.반야는 지헤라는 뜻’ 등이다. 대중을 위해 한글을 적극 구사하며 어휘설명을 한 점이 주목된다. 제목에 이어 본문이 시작되는 지점에는 “일로부터는 경젼대문을 일일이 해석하니 한문을 모로는 사람은 죠선글만 보드라도 그 깁흔 .을 용이하게 알 수 잇슴니다”라 하여 한글사용의 목적을 분명히 하였다.
사진 3-2. 권상로, 미타경 번역 (1호).
권상로는 『미타경』(1호) 및 『무량수경』 중 사십팔대원 부분(2호)을 번역 소개하였다. 『미타경』은 “퇴경 즉역.譯”으로 소개하였는데 ‘즉역’은 곧 직역直譯을 말한다. 앞의 백용성 번역이 역술, 역해 차원이었다면 권상로의 번역은 경문 자체의 직역으로서 한글 표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 특징이 있다.
이러케 나는 드럿다 ․한ᄯᅢ에 부텨님이 ․사위국 ․긔수급고독원에서 큰비구승일쳔이백오십인으로 더부러 함ᄭᅦ 게시더니
․한ᄯᅢ에 = 부텨님이 이 경 설하시든 그 ᄯᅢ
․사위국 = 부텨님 탄생하신 나라 일음
․긔수급고독원 = 공원 일음
․비구승 = 출가한 남자 승려
권상로는 경전의 대문大文을 순 한글로 풀이하고, 각 어휘의 뜻을 병기하여 이해를 도우며, 부호를 사용하여 독자들이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사람 이름, 술어, 땅 이름, 해석표 등 네 가지의 부호 사용은 외래 종교 경전이나 외국 서적의 표기원칙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불설무량수경』에서 뽑은 「법장비구 사십팔원」(2호)은 순한글 직역의 경향은 동일한데, 『미타경』에서 사용하던 기호는 모두 없앴으며, 새로운 불교어가 나올 때마다 쌍행(두 줄)으로 풀이한 점이 앞의 경우와 다르다. 정각, 삼악도, 숙명, 나유타, 천안, 천이, 타심지 등 모두 42개의 불교어를 한글로 평이하게 풀이해 놓았다. 이는 이능화의 불교용어 풀이(「불교술어」, 2호)에 여전히 국한문 혼용의 ‘~니라’체를 답습하고 있는 것과 대비되는 양상이다.
백용성과 권상로는 국한문 현토 해석의 병용 여부의 차이, 역해와 직역이라는 번역 방식의 차이가 있으나, 순한글체 번역과 개별 어휘의 평이한 풀이를 통해 대중의 이해를 적극 돕고 있다는 의미에서 당시 경전의 한글화를 통한 불교대중화 운동의 최전선에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석존의 일대기를 번역한 글도 주목된다. 「석가전」은 근대 일본의 문학평론가인 다카야마 조규高山樗牛(1871-1902)의 같은 제목의 글을 번역한 것이다. 원 저자인 다카야마는 당대 청년들에게 영향력을 끼친 문학평론가로 30대 초반에 요절한 인물인데, 서론에서는 전기 기술의 관점을 거론하였다.
역자인 황의돈(1890-1964)은 역사학자로 투고 당시에는 보성고보 교유敎諭로 재직하였다. 글의 서두에 원 저자는 모든 종교의 교주에 대한 전기가 그러하듯 신이한 스토리가 가미된 이야기 중에 실제 전기 조사의 어려움이 있다고 하였다. 특히 인도인의 신화적 상상력은 현재 전기 기술의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며, 전설적 기록을 통해 독자들은 ‘참된 전기[眞傳記]’를 읽어 낼 것으로 기대하였다. 본론에서 석존 출현의 시대적 배경을 상세하게 소개하며 그는 시대가 요구하는 대 성인임을 말하였다. 이후 석존의 탄생(1호), 궁중의 생활(2호) 순으로 서술하였으나, 잡지의 종간과 함께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석존의 일대기를 서술하는 역사적 관점과 서술상의 제약을 토로하는 등 진실에 접근하는 과학적 방법론을 앞서 제시한 점이 특징인데, 이는 근대 불교에서 교주의 일대기를 서술하는 한 경향이기도 하다.
불교예술 영역의 확장
김세영과 백우용은 『불일』지의 편집인으로 문학과 예술 분야의 글을 소개하여 불교잡지 내용의 다양성을 추구하였다. 이들은 이능화, 박한영 등 조선불교회의 주축이면서 잡지발행을 주도한 인사들이 잡지 내용의 다변화, 불교대중화의 새로운 모색을 위해 외부에서 영입한 인사들이다.
김세영의 「부처님세계 그림 장엄」은 기존의 근대불교잡지에서 볼 수 없었던 불교회화를 소개한 글이다. 머리말에서 그는 불교회화를 본생화本生畵, 불전화佛傳畵, 불보살화, 세계와 극락정토, 만다라로 구분하고 이를 각각 한 호씩 소개하여 불교 포교의 자료로 삼고자 한다고 하였다.
자타카는 기원전 4세기 팔리어로 기록된 총 547편의 부처님 전생 이야기로, 부처님이 인간과 동물 등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이를 본생담本生談이라 하는데,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 곧 본생화本生畵이다. 현재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인 인도의 아잔타 석굴 벽화에는 모두 25편의 자타카가 벽화로 그려져 있다고 한다. 『불일』에는 그 가운데 시비왕尸毘王과 큰곰 그림을 사진 자료와 함께 소개하였다. “금언金言” 부분에서는 경전 속의 근거를 소개하였는데, 시비왕 본생화의 경우 『광명경』과 『화엄경』을, 큰곰 본생화의 경우 『불보은경』과 『화엄경』을 인용하였다.
시비왕 본생담을 약술하면, 부처님이 바라나국의 왕으로 탄생하여 보살행을 닦을 때 대왕의 이름은 시비라 하였다. 항상 정법으로 나라를 다스린 왕은 항상 보시를 즐겨 모든 재물과 보배는 물론 자신의 머리, 눈, 뇌수까지라도 구걸하는 사람을 위하여 아낌이 없었는데, 소개한 그림은 모든 걸인이 일시에 왕궁으로 몰려와서 구걸하는 형상을 그린 것이다. 필자는 보시에 관한 경전의 말씀을 인용한 후, 독자들에게 권계의 당부를 잊지 않았다. (‘불교를 믿는 우리 부모 형제 자매이시여, 지금 우리 불교가 이 어떠한 상태에 빠져있습니까? 또한 장차 어찌 되겠습니까? 남의 일이 아닙니다. 마음과 힘과 눈물이 있어야 장차 감로수를 맛볼 것입니다.’)(사진 4)
순 한글의 명쾌한 해설, 생생한 그림 제시, 경전적 근거의 제시로 구성하여 논리성과 가독성을 높였다. 이 글이 계속 지속되었다면 당시 독자들에게 불교예술의 정수를 전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나, 1호로 종결되고 말았다.
2호의 편집인인 백우용(1883-1930)은 「영산회상의 곡보를 역제譯製하면서 조선음악의 역사를 약술함」이란 글을 수록하였다. 영산회상을 오선지에 채보하면서 한국의 전통음악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그는 역사 자료를 충실히 제시하면서 한국음악사의 전체 구도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 글은 상고시대(단군과 동이, 기자의 유곡遺曲, 고조선의 공후인)부터 중고시대(한·예·부여, 종교 악무樂舞, 농공가무農功歌舞), 삼국시대(고구려, 백제)까지 기술하였는데, 우리 문학사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고조선의 <공후인>, 고구려의 <황조가>, 백제의 <지리산가><선운산곡><무등산곡><방등산><정읍> 등을 소개하며 한국음악, 한국가요의 연원을 객관적으로 정리하였다. 미완으로 끝났기 때문에 본 논문의 주제인 영산회상에는 논의가 미치지 못하였다.
백우용은 한말 최초의 서양식 군악대원으로, 국내 최초로 양악군악대를 창설한 독일 음악가 에케르트 밑에서 서양음악을 배웠다. 군악대 해산 이후 궁내부 장예원 양악대의 양악사장이 되었으며, 1915년 양악대의 해산 이후 1928년 4월 이왕직아악부의 촉탁으로 위촉되어 아악의 5선보 채보의 직무를 담당하였다. 이러한 그의 이력을 볼 때 『불일』에 수록한 조선음악사 관련 글은 연구의 초기 성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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