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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빛의 말씀]
마음의 본래 모습이 청정淸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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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  2021 년 9 월 [통권 제101호]  /     /  작성일21-09-06 08:58  /   조회5,536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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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제6·7대 종정

 

한국 청정비구의 표상인 성철性徹 조계종 종정이 정진하고 있는 가야산 백련암은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신록의 경이로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작약, 꽃잔디, 영산홍 등의 꽃이 만개한 가운데 나무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우치기라도 하는 듯 모두 자랑스럽게 제 빛을 뽐내고 있었다. 부처님 오신 날20일을 앞두고 14일 백련암을 찾아간 불교학자 김지견金知見 박사를 맞는 종정 성철 스님은 밝고 순수한 웃음 속에서 불교의 오묘한 진리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대담했다. 다음은 일반의 출입이 금지된 백련암 염화실에서 베풀어진 성철 종정과 김 박사와의 대담을 간추린 것이다.

 

 

성철스님

 

 

*스님, 오랜만에 찾아뵙습니다. 건강은 좋아지신 것 같군요.

 

“겉만 그렇지 전과 같지 않아요.”

 

*큰스님, 금년 부처님 오신 날 법어는 불교의 중심 사상인 중도中道에 대해서 현대의 과학 지식까지 활용하시어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법어는 한문이나 게송으로 일반 신도는 어렵다는 선입견을 갖게 마련이고 거리감이 있었는데, 금년 초파일 법어는 한걸음 시민 편에 다가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반이 중도의 원리를 깨닫기에는 큰스님의 법어는 많은 진리가 압축된 것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성불成佛하신 뒤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도는 불교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실천되었는지요?

 

“부처님께서 성불하신 후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들에게 설법한 불고불락不苦不樂이 중도 법문의 효시지요. 선종의 제6조 혜능慧能 스님도 불사선불사악不思善不思惡[선도 생각지 말고 악도 생각지 말라]으로 개구開口 제일성을 선언했습니다. 또 선종 제3조 승찬僧璨 스님의 저술 『신심명信心銘』도 중도 사상을 강조하였고, 천태 지자天台智者 대사는 교판 사상에서 원교圓敎가 바로 중도라고 했습니다. 화엄종이나 천태종도 서로 자신들의 교리가 중도 사상이라고 했지요. 법상종은 원융무애圓融無.까지는 못 미치나 그 종파에서도 중도, 중도 했지요.”

 

*그러면 부처님 당시 사실을 가장 신빙성 있게 전하는 율장의 경우에는 중도를 어떻게 보았습니까?

 

“경율론經律論, 삼장이 똑같이 중도를 벗어나지 않았지요. 부처님 행적을 보면, 부처님께서는 중도를 깨치시고 중도를 말씀하시고 실천하셨는데, 이것이 화합법계和合法界의 소식이지요.”

 

*큰스님께서 수행하는 사람은 선善의 편에도 서지 말라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중도는 시비선악 등과 같이 상대적 대립의 양면을 버리고 모순갈등이 상통융합하는 절대의 경지로, 우주의 실상은 대립의 소멸과 융합에 있다는 논리지요. 그렇기 때문에 선이 바로 악이 되고 악이 곧 선이라는 원리가 원융무애한 중도의 진리임을 알 수가 있겠습니다.

 

“만법이 혼연융합한 중도의 실상을 바로 보면 모순과 갈등, 대립과 투쟁은 자연히 소멸되고 융합자재한 대단원이 있을 뿐입니다. 대립이 소멸된 중도실상의 부처님 세계는 얼마나 장관이겠습니까. 그러나 그 중도의 소식을 보는 눈은 맑기가 거울같이 맑아야 하고, 밝기가 일월日月보다도 밝아야 하지요. 그것은 밖에서 구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자리의 본래 모습이 그 맑음이요, 그 밝음이지요.”

 

*스님께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고 하신 말씀이 시민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요’라는 말과 다른 것도 같고 같은 것도 같습니다. 그 참뜻을 어떻게 터득해야 합니까?

 

“마음의 눈을 떠야지요. 실상을 바로 보는 눈을 말합니다. 그 마음의 눈을 뜨고 보면 자기가 먼 천지개벽 전부터 성불했다는 것과 천지개벽 전부터 성불했으니 현재는 말할 것도 없고 미래가 다하도록 성불한 것임을 알게 되지요. 마음의 눈을 뜨면 결국 자성自性을 보는데, 그것을 견성見性이라고 하지요. 팔만대장경에 그토록 많은 말씀이 담겨 있지만, 사실 알고 보면 ‘마음 심心’ 한 자에 모든 것이 귀결됩니다. 마음의 눈을 바로 뜨고 그 실상을 바로 보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지요. 그리고 산이 물 위로 가는 본지풍광의 소식이지요.”

 

*부처님 오신 기쁜 날을 맞이하면서 떠오르는 일들이 많습니다. 최근 우리나라는 종교 인구가 늘어나고 갖가지 종교가 번성하고 있으나 우리 사회의 윤리와 도덕은 땅에 떨어졌다고 개탄들을 하고 많은 문제가 노출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부처님 오신 날의 참뜻은 부처님 육신의 탄생이 아니고, 인간이 미망과 어두움으로부터 떨쳐나고 독선과 아집으로부터 벗어나는 깨달음을 준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깨쳐서 작용하는 영원한 생명으로서 우리들 속에 흐르는 진리의 여울이 되어야 하지요. 그렇기 위해서는 이 사회의 현상을 바로 보고 진정한 뉘우침과 중생 불공하는 간절한 발원이 있어야 불교의 생명력이 있지요. 그러나 우리 시대에는 부처를 파는 승려는 많으나 진정한 불제자는 찾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고 따르는 승려 양성부터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

 

*불법의 요체가 깨우침에 있다면, 그 깨우침이란 무엇입니까?

 

“달이 서산에 졌을 때 달을 보여 달라고 조르면 둥근 부채를 드러내 보이고, 바람이 없을 때 바람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뭇가지를 흔들어 보여준다는 말이 있지요. 도道를 깨치면 망상이 소멸되고, 소멸되었다는 흔적도 없게 되지요. 이런 경지를 무심無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망상이 소멸된 상태가 생명력이 없는 무정물無情物인 돌덩이와 같은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본래 가지고 있는 지혜 광명을 회복한다는 뜻이지요. 어두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밝음이 회복되었다는 이치입니다.

먼지가 끼어 사물을 비추지 못하던 거울이 깨끗하게 되어 거울구실을 하게 되는 것과 같지요. 마음의 눈을 뜨고 보면 전체가 광명인 동시에 대낮 그대로입니다. 마음의 눈을 뜨고 보면 전체가 부처 아닌 존재 없고, 어느 곳도 불국토佛國土 아닌 처소가 없지요. 사람이 깨달아 어린이와 같이 순진무구한 마음이 되면 산이 물 위로 간다는 소식이 환하게 드러나지요. 이와 같은 세계가 바로 깨우침의 경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백련암이 온통 향산香山인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는 꽃도 좋아하시는군요.

 

“꽃 좋아하지요. 가지마다, 송이마다 화장찰해華藏刹海이지요. 그러나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어린애지요. 어린애들이 놀러 와 춤도 추고 노래를 하며 재롱을 피울 때가 가장 즐거운 시간입니다. 그들은 내 친구들이지요. 꾸밈없는 천진함이 다름 아닌 진불眞佛의 소식이 아니겠어요.”

 

*큰스님 선방에 걸려 있는 ‘은거부하구隱居復何求 무언도심장無言道心長’은 만파萬波 스님의 글씨 같습니다. 특별히 뜻이 있어서 선방에 걸려 있는 것이겠지요?

 

“세상 사람들이 스님들은 산에 숨어 무엇을 하느냐고 비난 같은 질문을 하지만 묵언.言으로 도심道心을 기르는 것이 스님의 생활이란 말이지요. 승려는 도락道樂을 이루기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13 성철 스님과 어린이들 

 

*요즘 너무 놀라운 일이 많이 일어나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부인이 남편을 독살한 사건이라든지, 인명人命 경시 풍조가 특히 우리를 전율케 합니다.

 

“생명의 참모습을 모르기 때문이지요. 모든 생명 있는 것은 부처님과 같이 존귀한 것입니다. 하물며 같은 무리들끼리야 더 말할 것도 없고, 부부간의 처지야 한동안 말이 없다가 부부가 이해타산으로 죽인다는 것은 인간이 이성을 잃고 물질의 노예가 된 극단의 사태를 드러낸 것입니다.”

 

*불살생을 덕목으로 삼는 불교 입장에서 보면 말문이 막히는 일이 허다합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벌레까지 보살피는 것이 참 불공이지요. 항차 부부 사이에 서로가 부처님 모시듯 공경하면 모든 불행은 자취도 없이 사라질 텐데, 행복은 받는 것이나 주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이지요. 모두가 복 짓는 일을 해 나갈 때 사회의 불안도 가시고 개인의 행복도 보장되는 것입니다.”

 

*큰스님의 법어를 모은 『선문정로禪門正路』와 『산이 물 위로 간다[本地風光]』가 출간되어 지식인 사회에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두 법어집은 학자들 사이에서 문학, 철학, 종교적인 측면에서 연구되리라 생각합니다. 영역을 서두르고 있다고 하나 참뜻이 전달될지 걱정입니다. 두 법어집 모두 난해한 점이 없지 않으나 큰스님의 육성을 느낄 수 있어 다행입니다. 그런데 스님의 법어집에 나오는 고려 보조 국사 지눌 스님에 대한 평가에 대해 일부에서는 이견이 있더군요.

 

“보조 스님의 선은 외선내교外禪內敎요 화엄선이지 조계선은 아닙니다. 보조 스님의 돈오점수頓悟漸修[단번에 깨쳐 점점 닦아 간다]는 하택신회荷澤神會가 원류原流이지요. 보조 스님의 『수심결修心訣』을 의지하는 선객들도 있으나 조계선적인 입장에서 보면 지눌 스님은 오락가락한 데가 없지 않아요. 원돈圓頓사상을 털어 버리고 조계선으로 뛰어들지 못했지요. 보조 스님이 인교오심因敎悟心[교로 인해서 마음을 깨침]자를 위해 돈오점수를 말하는 것은 조계직전曹溪直傳이라기보다는 화엄선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 밝혀질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조계선과 보조선의 성격은 『선문정로』를 숙독한 다음에 다시 뵙기로 하겠습니다. 조계종의 법맥을 밝히는 막중한 문제로 모두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큰스님은 승가대학에 대해 깊은 배려를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불교 중흥을 위해 모범적인 승려교육 기관의 창설이 시급합니다.

 

“내가 가장 걱정하는 문제이지요. 승려 자신도 잘 모르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을 지도하겠어요. 법당의 기왓장을 벗겨 팔아서라도 승려를 가르쳐야 우리 불교가 제구실을 하고 전통을 계승할 것으로 믿고 있어요. 종단이 안정되어 제일 먼저 할 일이 승려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최근 우수한 사람들이 절에 들어오고 있어 교육만 제대로 시키면 한국 불교의 전통이 살아날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의 참뜻을 바르게 하기 위해 회통의 말씀을 해주십시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자기를 바로 보아야 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하고 무한한 자기는 모든 진리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만약 자기 밖에서 진리를 구한다면, 이는 바다 밖에서 물을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참나[眞我]’는 영원하므로 종말이 없는데, 참나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세상의 종말을 두려워하며 헤매고 있습니다. 참 나는 본래 순금입니다. 그러나 욕심이 마음의 눈을 가려서 순금을 잡철로 착각하고 자기를 욕되게 합니다. 욕심이 자취를 감추면 마음의 눈이 열려서 순금인 자신을 재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현대는 물질만능에 휘말리어 자기를 상실하기 쉬운 세대입니다. 자기는 큰 바다와 같고 물질은 거품과 같은 것입니다. 바다를 봐야지 거품은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듯 크나큰 진리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부처님은 중도中道를 깨치시고 중도를 실천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되어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러 오셨다는 말씀은, 부처님 오신 날을 기리는 우리들의 마음에 광명의 불을 점화해 주신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또 보조선이 외선내교적인 화엄선임도 알게 되었습니다. 장시간 감사합니다.

 

 

│1983년 5월 16일, 김지견 박사와의 대담·경향신문 박석흥 기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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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성철스님은 1936년 해인사로 출가하여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봉암사 결사’를 주도하였다. 1955년 대구 팔공산 성전암으로 들어가 10여 년 동안 절문 밖을 나서지 않았는데 세상에서는 ‘10년 동구불출’의 수행으로 칭송하였다. 1967년 해인총림 초대 방장으로 취임하여 ‘백일법문’을 하였다. 1981년 1월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에 추대되어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법어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1993년 11월 4일 해인사에서 열반하였다. 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우리 곁에 왔던 부처’로서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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