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 이야기]
선종 성립에 결정적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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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 2021 년 6 월 [통권 제98호] / / 작성일21-06-04 16:39 / 조회10,321회 / 댓글0건본문
중국선 이야기 6/동산법문東山法門 2
불교의 부흥을 위해 힘썼던 수대隋代는 고구려 침공 등의 실정으로 멸망하였다. 그를 이어 당(唐: 618~907)을 건립한 이연李淵은 자신의 족성族姓이 노자(老子: 李老聃)의 후예임을 강조하였고, 더욱이 이연의 모친은 바로 두竇씨로서 서한西漢시기 황로학黃老學의 절대적 지지자였던 두태후竇太后의 후예를 자칭했기 때문에 황실에서는 도교에 호의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으며, 도교의 인물들이 주요 관직에 대거 참여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도교에서는 불교에 대한 공격을 시작한다. 당의 건립 초기인 무덕武德 4년(621), 당시 태사령으로 있던 도사 부혁傅奕은 위진魏晋 이래의 반불교적 인물들을 모아 『고식전高識傳』을 편집하고, 이를 근거로 고조에게 몇 차례에 걸쳐 “불교를 폐하라.”는 내용의 상소를 올린다. 그에 따라 불교계에서는 법림(法琳, 572~640)이 『파사론破邪論』 2권(『大正藏』52, 所收)을, 이사정(李師政, ?~?)이 『내덕론內德論』 1권, 『정사론正邪論』 3편 등을 찬술해 반박하여 극단적인 ‘폐불’은 막았지만, 이로부터 ‘불도지쟁佛道之爭’이 전개되어 태종(太宗: 재위 626~649), 고종(高宗: 재위 649~683)의 삼대에 이르러서도 끝나지 않는 기나긴 논쟁이 지속되었다. 이러한 ‘불도지쟁’을 통하여 유불도 삼교가 정립鼎立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편 불교는 더욱 중국민족의 정서에 부합하는 사상적 경향을 가속화하였는데, 그것은 논쟁이 장기화되면서 도교에서는 결국 ‘이하론夷夏論’이라는 민족적 정서를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논하겠지만, 당대 무종武宗에 의한 ‘회창법란(會昌法亂, 841~847)’ 역시 ‘불도지쟁’의 연속선상에서 발생하였다고 하겠으며, 이로 인하여 후기 조사선의 사상에 도가, 특히 『장자莊子』의 사상이 대량으로 삼투滲透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시기에 도신道信 선사(사진 1)는 무덕武德 7년(624) 황매黃梅의 쌍봉산雙峰山에 선문禪門을 개창하였는데, 이는 수・당 교체기의 극심한 난세에 은둔하여 수행하고자 했던 도신 선사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고 하겠다. 도신 선사의 제자들은 상당히 많이 있지만, 그의 법맥을 적전한 이는 바로 후대에 오조五祖로 칭해지는 홍인(弘忍, 602~675) 선사이다.
홍인 선사의 사상은 그의 저술로 밝혀진 『최상승론最上乘論』(『수심요론修心要論』이라고도 함)을 통하여 살펴 볼 수 있다. 『최상승론』의 앞부분에 “법요法要를 알고자 한다면, 수심守心이 제일第一이다. 이러한 ‘수심’은 바로 열반涅槃의 근본이고, 입도入道의 요문要門이며, 십이부 경전의 종宗이고, 삼세제불三世諸佛의 조祖이다.”(주1)라고 하여 자신의 법요를 밝히고 있다. 이는 도신 선사가 제창한 ‘오문선요五門禪要’의 마지막인 ‘수일불이守一不移’를 ‘수심守心’으로 바꾸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홍인은 이러한 ‘심’을 『최상승론』의 첫 부분에 다음과 같이 제창하고 있다.
“대저 수도修道의 본체本體는 모름지기 신심身心이 본래청정本來淸淨하고, 불생불멸不生不滅하며, 분별分別이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자성원만청정심自性圓滿淸淨心이 바로 본사本師이고, 이것은 시방의 제불을 염念하는 것보다 뛰어나다. 문: 어떻게 자심自心이 본래청정함을 아는가? 답: 『십지경十地經』에서 이르기를 ‘중생의 몸에 금강불성金剛佛性이 있어 마치 일륜日輪과 같아 체體가 밝고 원만하며 광대무변하지만, 다만 오음五陰의 검은 구름이 덮여있어, 병에 든 등불이 비추지 못하는 바와 같다.”(주2)
여기에서 홍인은 ‘자성원만청정심’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스승인 도신의 선사상에는 제시되지 않았던 내용이다. 그런데 이는 혜정(慧淨; 578~?)이 찬술한 『반야바라밀다심경소般若波羅蜜多心經疏』의 마지막 문구(주3)를 인용한 것이다. 혜정의 전기는 『속고승전』 권3에 상당히 상세하게 실려 있다. 이에 따르면 ‘불도지쟁’에서 도사를 승복시켰으며, 법림으로부터 받은 편지가 실려 있다. 정관貞觀 2년(628)에 『대장엄론大莊嚴論』의 필수筆受를 맡아 범어梵語의 의미를 남김없이 번역하였고, 그에 대한 30권에 이르는 소疏를 편찬하여 격찬을 받았다고 하며, 그에 따라 “동방보살東方菩薩”이라고 찬탄 받았다고 한다.(주4) 또한 “다시 『법화경찬술法華經纘述』 10권을 찬술하고, 『승만경勝鬘經』・『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온실우란분경溫室盂蘭盆經』・『미륵상하생경彌勒上下生經』 등에 각 요찬要纘을 찬술하였는데, 세상에서 성행하였다.”(주5)라고 하고, 또한 『금강반야경주金剛般若經註』 3권(『卍續藏』24 所收)을 찬술하여 세상에 널리 유포되었다고 한다.(주6)
여기에서 혜정의 저술을 언급하는 것은 바로 홍인 문하에서 혜능에게 『금강경』을 가르쳤다고 하는 실마리를 풀고자 하는 의도이다. 실제로 앞에서 고찰한 『능가사자기』의 도신전이나 홍인의 『최상승론』에서 『금강경』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그렇지만 『육조단경(六祖壇經)』등에서는 혜능이 『금강경』의 문구를 듣고서 발심했으며, 홍인으로부터『금강경』을 전수받았다는 내용이 나타난다. 같은 홍인의 제자인 신수(神秀, 605~706)의 저술에는 『최상승론』을 인용하지만, 『금강경』에 대한 언급이나 사상적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육조단경』이나 하택신회(荷澤神會)의 어록에서는 있지도 않은 스승의 교계(敎誡)를 날조한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최상승론』의 서문의 역할을 하는 시작 부분에서 혜정의 『반야바라밀다심경소』의 끝부분을 그대로 인용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바로 혜정의 사상을 존중하거나 계승한다는 의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신수의 저술에 『최상승론』의 문구를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신수가 홍인 문하에 있을 때 이미 출현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자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도신 선사가 입적한 영휘 2년(651)에 신수는 46세의 나이로 홍인 문하에 들어와 52세(656)에 홍인 선사로부터 인가를 받은 이후에 홍인 문하를 떠난 것으로 추정되며, 혜능은 22세(660)에 홍인 문하에 들어온 것으로 확인된다. 따라서 홍인 선사가 혜능에게 『금강경』을 가르쳤다면, 신수가 문하를 떠난 이후의 일이고, 그 매개가 된 것은 혜정이 찬술한 『금강반야경주』라고 추정할 수 있다.
『반야바라밀다심경소』의 마지막 구절을 서문과 같이 인용한 홍인이 『금강반야경주』 역시 보았을 가능성이 크며, 또한 그를 통해 자연스럽게 『금강경』으로 관심이 집중되었을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최상승론』에는 『금강경』의 사상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하겠다. 따라서 홍인이 신수에게는 도신선사로부터 계승한 『문수설반야경』에 입각한 ‘오문선요’의 선사상을 가르쳤지만, 이후에 입문한 혜능에게는 『금강경』을 가르쳤다고 하겠다. 이는 필자의 추론일 뿐이지만, 여러 정황상 가능한 일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홍인의 선사상은 여전히 『최상승론』을 통해서 고찰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홍인은 ‘수심’을 법요로 제창하였는데, 『최상승론』에서는 “수심”, “수진심守眞心”, “수본진심守本眞心”, “수아정심守我淨心” 등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수본진심”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홍인의 선사상적 핵심은 흔히 ‘수본진심’으로 논한다. 『최상승론』은 모두 아홉 가지의 질문에 대한 답을 기술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수본진심’이 무엇 때문에 입도入道의 요문要門이고, 제불의 근본이 되는가를 설명하고 최종적으로 “천경만론千經萬論이 ‘수본진심’을 넘지 못하며, 그 핵심[要]이다.”(주7)라고 결론을 내린다. 이러한 홍인의 사상은 전체적으로 도신의 선사상의 틀에서 다만 ‘수일守一’을 ‘수심守心’으로 구체화하여 ‘마음’을 보다 강조하였다고 하겠다.
사실상 ‘동산법문東山法門’이라는 명칭은 홍인이 도신선사의 입적 후에 ‘동산東山’에 사찰을 세웠기 때문에 발생한 명칭이지만, 점차 도신-홍인계를 모두 통칭하는 명칭으로 사용되었고, 후대에서는 선종을 지칭하는 명칭으로까지 사용되며, 『송고승전』에서는 홍인의 제자인 혜능이 법성사法性寺에서 설법을 시작하자 “동산법문을 열었다.”(주8)라고 표현하고 있다. 특히 동산법문이 천하에 알려지게 되는 계기는 측천무후則天武后가 홍인의 제자인 신수 대사를 제도帝都로 청하여 행해진 입내설법入內說法이라고 하겠다.(주9) 그러나 이미 도신의 쌍봉산 선문의 개창은 상당히 번성하여 문하에 500여 대중이 운집하였으며,(주10) 또한 이후 홍인 문하에 700여 대중이 있었다고 한다.(주11) 이러한 대규모의 대중을 형성한 것은 선종사에 있어서 최초의 일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대중을 형성함에 따라 학인들에 대한 교육방법과 많은 대중들의 의식주 해결도 문제가 되었을 것이고, 다양한 생활규범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하겠다.
동산법문에서는 대중교육을 실행한 흔적이 보인다. 도신은 학인들을 4등급으로 구분하여(주12) 그에 적합한 교육을 실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대중들의 의식주, 즉 경제적 문제를 동산법문에서는 대중들의 노동으로 생산에 참여하는 것으로 해결하고 있다. 본래 불교에서는 출가 승려들의 노동을 계율로 금하고 있으며, 경제적 문제는 신도들의 재시財施로 해결하고 있다. 그런데 동산법문에서는 모든 대중들이 노동에 참여하여 생산하는 독특한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후대에 선종이 중국불교의 주류를 형성하여 크게 이상할 것이 없지만, 당시에 승려가 직접 노동을 하여 생산에 참여하는 것은 계율에 어긋나는 파격적인 일이라고 하겠다. 이는 당시의 시대상황에 따른 일이기도 하지만, 신도들의 재시에 의지하지 않고 대자유를 얻고자 하는 도신 선사의 사상에 따른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는 또한 현재 중국불교의 주류인 ‘생활선生活禪’의 선범先範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낮에는 노동의 참여하고, 밤에는 수선修禪하는 생활양식으로부터 새로운 생활규범이 필요하였을 것이므로 다양한 규구規矩가 출현했고, 후대에 백장百丈 선사가 이를 정리하여 ‘청규淸規’로 규범화하게 된다.
동산법문이 선종의 성립에 있어서 결정적인 작용을 한 것은 바로 동산법문의 법맥으로부터 선종의 대부분의 분파들이 출현하였다는 점이다. 홍인의 제자 가운데 대표적인 이들은 북종北宗의 신수神秀와 남종南宗의 혜능慧能을 들 수 있으며, 또한 지선智詵의 계열로부터 정중종淨衆宗과 보당종保唐宗이 출현하고 있다. 또한 『송고승전』에는 법지法持(주13)를 홍인의 제자로 논하는데, 법지는 『정토왕생론淨土往生論』을 찬술하여 이른바 ‘염불선念佛禪’을 열었고, 규봉종밀圭峯宗密의 『원각경대소석의초圓覺經大疏釋義抄』에는 홍인의 제자로 선습宣什을 언급하며 ‘남산염불문선종南山念佛門禪宗’으로 분류하고 있다.(주14) 따라서 신수의 ‘북종선’, 혜능의 ‘남종선’, 법지의 ‘염불선’, 지선 계열의 ‘정중종’과 ‘보당종’, 선습의 ‘남산염불선종’ 등 중국선의 대부분의 분파가 ‘동산법문’으로부터 출현했다고 하겠다.
종파의 성립조건을 종조宗祖, 독자적인 사상, 수행집단과 그에 귀의한 신도信徒 등으로 규정하는데, 도신 선사가 창립하고 홍인 선사가 계승한 동산법문은 이러한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진정한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는 바로 도신 선사가 아닐까 한다. 더욱이 도신 선사가 제창한 ‘입도안심요방편법문’의 선사상에서 ‘방편方便’의 부분을 걷어낸다면 후대에 성립한 조사선의 사상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주)
1) [唐]弘忍述, 『最上乘論』(大正藏48, 377c) “知法要, 守心第一. 此守心者, 乃是涅槃之根本, 入道之要門, 十二部經之宗, 三世諸佛之祖.”
2) 앞의 책(大正藏48, 377a) “夫修道之本體, 須識當身心本來淸淨, 不生不滅, 無有分別, 自性圓滿淸淨之心. 此是本師, 乃勝念十方諸佛. 乃勝念十方諸佛. 問曰: 何知自心本來清淨? 答曰: 十地經云, 眾生身中有金剛佛性, 猶如日輪體明圓滿廣大無邊, 只為五陰黑雲之所覆, 如瓶內燈光不能照輝.”
3) [唐]慧淨作, 『般若波羅蜜多心經疏』(卍續藏 26, 597c) “夫言修道之體, 自識當身本來清淨, 不生不滅, 無有分別, 自性圓滿清淨之心. 此是本師乃勝念十方諸佛. 問曰: 何知自心本來清淨? 答: 十地論云, 眾生身中, 有金剛佛性, 猶如日輪體明圓滿, 廣大無遍, 只為五蘊重雲所覆, 如瓶內燈光, 不能照外.”
4) [唐]道宣, 『續高僧傳』卷3(大正藏50, 442c-443a) “貞觀二年新經既至, 將事傳譯, 下勅所司搜選名德, 淨當斯集. 筆受大莊嚴論, 詞旨深妙曲盡梵言. 宗本既成, 并纘文疏為三十卷, 義冠古今, 英聲藉甚. …… 歎曰: 此乃東方菩薩也.”
5) 앞의 책(大正藏50, 443a) “又撰法華經纘述十卷, 勝鬘仁王般若溫室盂蘭盆上下生各出要纘, 盛行於世.”
6) 앞의 책(大正藏50, 442b) “穎川의 學士 庾初孫이 『金剛般若經』의 註를 청하자 바로 그를 위해 문장을 풀이하고 뜻을 거론하여 뛰어난 작품을 이루었으니, 眞俗의 敎原을 窮究하고, 대승의 秘要를 다하였다. 가깝고 먼 곳에 널리 퍼지니, 이를 베껴 쓰고 외우며 受持하였다.[學士頴川庾初孫, 請註金剛般若, 乃為釋文舉義, 欝為盛作, 窮真俗之教原, 盡大乘之祕要. 遐邇流布書寫誦持.]”
7) [唐]弘忍述, 『最上乘論』(大正藏48, 378a) “千經萬論莫過守本真心, 是要也.”
8) [宋]贊寧等撰, 『宋高僧傳』(大正藏50, 755a) “開東山法門.”
9) [唐]淨覺, 『楞伽師資記』(大正藏85, 1290a-b) “則天武后가 神秀禪師에게 물었다. “傳承한 法은 누구의 宗旨입니까?” 답하였다. “蘄州의 東山法門을 이어 받았습니다.” 묻기를, “어떤 경전에 의거합니까?”라고 하자 답하기를, “『文殊說般若經』의 一行三昧에 의거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측천무후가 말하기를, “만약 修道를 논한다면 東山法門을 능가할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則天大聖皇后問神秀禪師曰: 所傳之法, 誰家宗旨? 答曰: 稟蘄州東山法門. 問: 依何典誥? 答曰: 依文殊說般若經一行三昧. 則天曰: 若論修道, 更不過東山法門.]”
10) [唐]道宣, 『續高僧傳』卷20(大正藏50, 606b) “于時山中五百餘人, 並諸州道俗.”
11) [宋]道原, 『景德傳燈錄』卷3(大正藏51, 222c) “時會下七百餘僧.”
12) [唐]淨覺, 『楞伽師資記』(大正藏85, 1287c) “知學者有四種人, 有行有解有證, 上上人; 無行有解有證, 中上人; 有行有解無證, 中下人; 有行無解無證, 下下人也.”
13) [宋]贊寧, 『宋高僧傳』卷8(大正藏50, 757c) “謂弟子玄賾曰: 後傳吾法者可有十人, 金陵法持即其一也.”
14) [唐]宗密撰, 『圓覺經大疏釋義鈔』(卍續藏9, 534c) “即南山念佛門禪宗也. 其先亦五祖下分出, 法名宣什, 果州未和上, 閬州蘊玉, 相如縣尼一乘, 皆弘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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