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 이야기]
중국 선종의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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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 2021 년 5 월 [통권 제97호] / / 작성일21-05-04 15:37 / 조회9,657회 / 댓글0건본문
* 중국선 이야기 5 | 동산법문東山法門 1
중국은 서진西晋의 멸망(317) 이후 남방에는 동진東晋과 북방에는 십육국十六國으로 분열되었고, 다시 남방은 송宋・제齊・양梁・진陳의 남조南朝가 전개되었으며, 북방에는 북위北魏가 통일하였지만, 동위東魏・북제北齊로 나뉘고, 그를 서위西魏・북주北周가 계승하는 북조北朝가 전개되는 중국역사에서 가장 복잡한 남북조시기를 겪다가 약 260년 만에 수대(隋代, 581-619)에 이르러 다시 천하가 통일되었다. 그러나 양제煬帝의 대운하 건설과 고구려 침공 등의 원인으로 40년을 채우지 못하고 멸망하였다. 하지만 이 짧은 기간에 중국불교는 사상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이는 수조隋朝를 세운 고조高祖 문제(文帝, 楊堅)의 불교부흥 정책에 기인한 것이고, 또한 남북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발전을 이룬 불교학이 통합을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수의 고조 문제는 정치적인 이유로 동주(同州, 현재 陝西省 大禮 일대) 반야니사般若尼寺에서 태어나 13세까지 비구니 지선智仙이 양육하였기 때문에 자주 부처님의 은혜로 황제가 되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특히 문제는 즉위 초년인 개황 원년(581)에 북주 무제武帝의 폐불(573-577)로 초토화된 북방의 불교회복을 위해 “출가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 수를 헤아려 비용을 제공하고, 경전과 불상 등을 마련하라. 경사京師와 병주幷州, 상주相州, 락주洛州 등의 커다란 도읍에는 관리들로 하여금 모든 경전을 사경寫經하게 하여 사찰에 보관토록 하라.”고 하였으며, 또한 “천하의 사람들에게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민간에 불경을 육경六經의 수십 배가 되도록 비치하라.”(주1) 고 조서詔書를 내렸다. 또한 개황 10년(590) 담천曇遷의 건의로 문제는 “모든 사도私度 승니僧尼들의 출가를 허용”한다는 조서를 내리게 되었고, 이 조서는 바로 효력을 발휘하여 『속고승전續高僧傳』에 따르면 사도의 승니 50여만 명이 동시에 수계하였다고 한다.(주2) 따라서 필연적으로 수많은 사찰들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문제는 각 군현에 관립의 사찰들을 세웠다.(주3)
또한 문제는 개황 12년(592) 당시 제도帝都였던 장안長安에 모든 학파의 유명한 학승을 초빙하여 열반중涅槃衆・지론중地論衆・대론중大論衆・강율중講律衆・선문중禪門衆의 ‘오중五衆’을 세웠다. 열반중은 『열반경』을 중심으로 하여 불성론을 주로 논하고, 지론중은 주로 『화엄경』을 중심으로 하며, 대론중은 『대지도론』을 중심으로 주로 『대품반야경』을 논하고, 강율중은 계율을 주로 하며, 선문중은 정학定學을 위주로 하였다. 이와 함께 전국의 교화조직으로 ‘이십오중二十五衆’을 건립하는데, 전국에서 뛰어난 고승 25인을 모셔 ‘중주衆主’로 삼았다. 이러한 ‘오중’과 ‘이십오중’에 대한 자료는 남아있지 않아 그 구체적인 모습은 알 수 없지만, 당대唐代에 출현한 이십여 종파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러한 교화기구는 승관제僧官制를 통하여 불교를 국가의 통치권 내로 흡수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한편 사상사의 입장에서 보자면, 문제가 중국을 다시 통일한 이후 남・북으로 크게 양분된 불교의 교학을 통일할 필요성이 나타날 것이다. 실제적으로 이러한 작업은 문제의 아들이고 후에 양제煬帝로 즉위하게 되는 양광(楊廣, 569-618)이 극진하게 모시는 천태 지의(智顗, 諡號 智者 大師, 538~597)에 의하여 실현된다고 하겠다. 남북조시기에 불교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불성佛性에 대한 논의였고, 이 논의는 점차 교상판석敎相判釋으로 전개되었으며, 수대에 이르러서는 흔히 “남방에서는 세 부류, 북방에서는 일곱 부류, 뜻으로 세분하면 수많은 종류가 있었다[南三北七, 義成百家].”라고 하듯이 상당히 복잡한 양상이었다. 이에 따라 새로운 통일제국을 위해 이들을 통합할 필요가 있었는데, 천태 지자는 바로 당시에 유행하였던 제반 불교학설을 법화法華와 반야般若사상을 중심으로 ‘오시팔교五時八敎’로 통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물론 수대에 길장吉藏의 삼론학三論學도 상당히 유행하여 후기 조사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되며, 이와 관련한 논술은 뒤로 미루기로 하겠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문제와 양제가 모두 극진하게 귀의한 지자대사의 천태학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중국 선종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리는 중요한 인물이 출현하였으니, 그가 바로 도신(道信, 580-651)선사이다.
도신의 생애는 후대에 선종의 사조四祖로 추대되었기 때문에 다양한 문헌에서 기재되고 있지만, 가장 믿을 수 있는 자료는 바로 도선道宣의 『속고승전』이라고 하겠다. 더욱이 도선은 도신이 입적한 영휘永徽 2년(651)에 도신의 전기를 추보追補하였기 때문에 다른 전설이 가미되지 않은 자료라고 하겠다.
이에 따르면, 도신은 사마司馬씨이며, 7세에 계행戒行이 불순한 스승을 5년간 모시다가 어디에서 온지 모르는 2인의 승려를 따라 서주舒州 환공산에서 10년 동안 선업禪業을 닦았다고 한다. 그 후에 양제가 즉위하면서 또한 사도승의 출가를 허용하여 정식으로 계를 받고 길주吉州의 관립사찰에 배속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도신은 본래 사도승이었으며, 여러 자료를 종합하면 정식으로 계를 받은 것은 27세라고 하겠다. 그 후에 도신은 형악衡嶽에 머물려고 향하다가 강주(江州, 九江)에서 도속道俗들의 청으로 여산廬山 대림사大林寺에 10년을 주석하였다.(주4) 이 대림사는 현재 댐의 건설로 수몰되어 아쉽게도 유적조차도 볼 수 없지만, ‘연사蓮社’를 일으킨 혜원慧遠의 동림사東林寺와 상당히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대림사는 본래 지개(智鍇, 533-610)가 창립한 사찰이다. 지개의 전기는 『속고승전』권17에 실려 있는데, 개황 15년(595)에 천태 지의를 참알하여 천태학을 수습하여 지의대사가 중히 여겼다고 하며, 만년에 『열반경』, 『법화경』, 『십송율十誦律』을 강의하였으며, 고조 문제가 제도帝都로 초청했지만 병을 핑계로 응하지 않았고, 대림사에 주석하면서 20년간 산문을 내려가지 않았다고 한다.(주5) 여러 가지 자료를 종합하면, 도신선사가 대림사에 머물었던 것은 27세 이후이며, 30세에 지개가 입적하였고, 또한 황매黃梅 쌍봉산雙峰山에 들어간 시기는 무덕武德 7년(624), 도신의 44세이다. 따라서 『속고승전』에서는 10년이라고 하지만, 여러 정황상 27세에서 43세에 이르기까지 최대한 약 16년에 이르도록 도신선사가 대림사에 머물렀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에 따라 도신선사는 천태학을 수습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농후했을 것이라고 하겠다. 더욱이 이 시기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천태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도신 선사의 선사상이 천태학과 유사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도신의 선사상은 천태학으로부터 도출한 흔적이 여실하게 보인다.
『속고승전』에서는 도신 선사가 대림사에 머무를 때, 기주蘄州 황매현黃梅縣의 도속들이 찾아와 황매현에 사찰을 건립하여 주석할 것을 청했지만, 도신 선사는 쌍봉산雙峰山에 입산하여 선문禪門을 개창開創하였으며, 이곳에서 30년간 주석하다 72세로 영휘 2년 윤 9월 4일에 입적하였다.(주6)
도신선사의 선사상과 관련된 유일한 자료는 『능가사자기楞伽師資記』라고 하겠다. 『능가사자기』는 상당히 많은 분량을 「도신전」에 할당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도신선사의 선사상을 밝히기 위하여 찬술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타날 정도이다. 그에 따라 『능가사자기』의 「도신전」을 중심으로 그 선사상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능가사자기』의 도신전은 “당唐의 기주蘄州 쌍봉산雙峰山 도신 선사는 찬 선사燦禪師의 후계자이다. 그 도신 선사는 다시 선문禪門을 일으켜 천하에 전파하였다. 도신 선사에게는 『보살계법菩薩戒法』 1권과 『입도안심요방편법문入道安心要方便法門』이라는 저술이 있다.”(주7)라고 시작된다. 여기에서 도신선사가 삼조 승찬僧璨의 제자라는 것은 조통부법설에 입각한 것이지만, 『보살계법』과 『입도안심요방편법문』의 저술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특히 「도신전」에 보이는 내용은 바로 이 저술을 요약한 것이라고 추정된다. 특히 도신 선사의 제자인 선복善伏의 전기에 “도신 선사를 뵈니, 입도방편入道方便으로 교시(敎示)하였다.”(주8)라는 구절로부터 도신 선사는 바로 ‘입도방편’으로서 교화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에 이어서 「도신전」에서는 “나의 법요法要는 『능가경』의 ‘제불심제일諸佛心第一’에 의거한다. 또한 『문수설반야경』의 ‘일행삼매一行三昧’에 의거하고 있다.”(주9)라고 하여 도신선사의 법요를 밝히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능가경』의 구절은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역의 4권본과 보리류지菩提流支역의 10권본에 있는 구절(주10)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무엇보다도 ‘불심佛心’을 중시한다는 것으로 기본적인 불성론佛性論의 대전제를 선언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 역시 사상적으로 달마-혜가계와 도신-홍인계를 연결시키려는 의도에서 출현한 것으로, 전체적인 도신의 선사상에 『능가경』의 사상적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도신전」에서 ‘심’을 논할 때, “『무량수경無量壽經』에서는 ‘모든 부처님들의 법신은 일체중생의 심상心想에 들어 있으며, 이 마음이 바로 부처이고, 이 마음이 바로 부처를 만든다.’라고 한다. 그러므로 부처는 바로 이 마음인 것을, 마음을 벗어나서는 다른 부처는 없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주11)라고 밝히고 있어 오히려 천태학으로부터 연원한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지자 대사에게 『불설관무량수불경소佛說觀無量壽佛經疏』라는 저술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문수설반야경』의 “일행삼매”는 바로 반야공관을 바탕으로 선법을 전개하고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따라서 ‘불성’과 ‘반야’라고 하는 두 축을 법요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이어서 「도신전」에서는 ‘일행삼매’에 득입得入하는 방법을 설하는데, 바로 양대梁代 만타라선曼陀羅仙이 번역한 『문수설반야경』의 경문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를 요약하면 ‘일행삼매’를 얻어 들어가는 방법은 바로 ‘좌선坐禪’과 ‘염불念佛’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도신전에서는 ‘좌선’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하는데, 이는 선종에 있어서 최초의 ‘좌선의坐禪儀’라고 할 정도로 좌법坐法과 그에 따른 심경心境을 ‘반야’의 입장에서 상세하게 설하고, “만약 믿음을 일으켜 이를 행하는 자는 무생정리無生正理에 들지 못하는 자가 없다.”(주12)라고 설하고 있다.
이로부터 도신 선사는 그의 저술인 『입도안심요방편법문』의 제목과 같이 ‘입도’하여 ‘안심’에 이르는 ‘핵심적인[要]’ ‘방편법문’을 설하는데, 그것이 바로 ‘오문선요五門禪要’(주13)이다. 이 오문선요는 마음의 체體・용用으로부터 출발하여 ‘상각부정常覺不停’, ‘상관신공적常觀身空寂’을 거쳐 ‘수일불이守一不移’에 이르는 다섯의 핵심적인 선법이다. 비록 간략하게 설하고 있지만, 여기에서 논하는 내용은 결코 간단하지 않으며, 특히 ‘수일불이’에서는 “불성을 분명히 보아 정문에 빠르게 들어감[明見佛性, 早入定門]”이라는 궁극적인 경계를 제시하는데, 이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의 원형原形이라고 하겠다. 또한 ‘수일불이’를 통하여 “종일 간看하여 멈춤이 없으면, 모두 사라져 마음은 스스로 안정하게 된다.”(주14)라고 하여 ‘입도안심’을 실현코자 하는 것이다.
달마가 선수학의 전통을 계승한 정학定學과는 달리 ‘이입사행二入四行’의 간결한 선사상을 도출했다고 한다면, 도신은 복잡한 천태학으로부터 ‘오문선요’를 제창하였다고 할 수 있다. 비록 달마-혜가계와 도신-홍인계는 사법관계가 존재하지 않고, 그 선사상 역시 같은 맥으로 볼 수 없지만, ‘불성’과 ‘반야’라는 틀로 간결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일치하는 점이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점은 중국적 사유의 특징인 “앎이 간결하면 실행이 용이함[知簡行易]”(주15)과 완전히 부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이후의 선사상은 모두 이러한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고 하겠다.
주)_
1) 『隋書』卷315, 『經籍志四』 “開皇元年, 高祖普詔天下, 任聽出家, 仍令計口出錢, 營造經像. 而京師及并州、相州、洛州等諸大都邑之處, 並官寫一切經, 置於寺內; 而又別寫, 藏于祕閣. 天下之人, 從風而靡, 竟相景慕, 民間佛經, 多於六經數十百倍.”
2) [唐]道宣, 『續高僧傳』卷10(大正藏50, 501c) “開皇十年勅僚庶等, 有樂出家者並聽. 時新度之僧乃有五十餘萬.”
3) 道宣의 『釋迦方志』 卷下(大正藏51, 974c)에는 文帝의 在位 20년 동안에 “사찰의 건립이 3천 7백 9십 2개소, 사경寫經이 46장藏 3천 8백 5십 3부部 13만 2천 86권卷, 조상造像이 10만 6천 5백 6십구驅[立寺三千七百九十二所, 寫經四十六藏一十三萬二千八十六卷, 治故經三千八百五十三部, 造像十萬六千五百八十軀.]”라고 한다.
4) [唐]道宣, 『續高僧傳』卷20(大正藏50, 606b) “道俗留止廬山大林寺, 雖經賊盜又經十年.”
5) 앞의 책, 卷17(大正藏50, 570b) “開皇十五年遇天台顗公, 修習禪法特有念力, 顗歎重之. 晚講涅槃法華及十誦律. …… 二十餘載足不下山, 常修定業. 隋文重之, 下勅追召, 稱疾不赴.”
6) [唐]道宣, 『續高僧傳』卷20(大正藏50, 606b) “即永徽二年閏九月四日也, 春秋七十有二.”
7) [唐]淨覺, 『楞伽師資記』(大正藏85, 1286c) “唐蘄州雙峰山道信禪師, 承燦禪師後. 其信禪師再敞禪門, 宇內流布. 有菩薩戒法一本. 及制入道安心方便法門.”
8) [唐]道宣, 『續高僧傳』卷26(大正藏50, 603a) “見信禪師, 示以入道方便”
9) [唐]淨覺, 『楞伽師資記』(大正藏85, 1286c) “我此法要, 依楞伽經諸佛心第一. 又依文殊說般若經一行三昧.”
10) [宋]求那跋陀羅譯, 『楞伽阿跋多羅寶經』(大正藏16, 481c), [魏]菩提留支譯, 『入楞伽經』(大正藏16, 514c) “大乘諸度門, 諸佛心第一.”
11) [唐]淨覺, 『楞伽師資記』(大正藏85, 1287c) “無量壽經云: 諸佛法身入一切衆生心想, 是心是佛, 是心作佛. 當知佛卽是心, 心外更無別佛也.”
12) [唐]淨覺, 『楞伽師資記』(大正藏85, 1288c-1289a) “若生信依此行者, 無不得入無生正理.”
13) [唐]淨覺, 『楞伽師資記』(大正藏85, 1288a) “첫째, 心體를 아는 것이다. 心體는 그 性이 청정하여 부처와 동일하다. 둘째, 心用을 아는 것이다. 마음이 작용하여 法寶를 낳고, 마음은 끊임없이 작용하여 언제나 정적하며, 모든 迷惑에서도 그대로이다. 셋째, 언제나 깨달아 머물지 않는 것이다. 깨닫는 마음은 항상 눈앞에 있고, 깨닫는 대상은 相이 없다. 넷째, 항상 몸이 공적함을 관하는 것이다. 자신의 안팎이 하나로 관통하면, 몸은 법계의 속으로 들어가 일찍이 걸림이 없다. 다섯째, 하나를 지켜 움직이지 않게 한다. 움직임과 고요함이 常主하여 배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성을 명확히 볼 수 있게 하고, 빠르게 定門에 들어가게 할 수 있다.[一者, 知心體. 體性淸淨, 體與佛同. 二者, 知心用. 用生法寶, 起作恒寂, 萬惑皆如. 三者, 常覺不停. 覺心在前, 覺法無相. 四者, 常觀身空寂. 內外通同, 入身於法界之中, 未曾有碍. 五者, 守一不移. 動靜常住, 能令學者明見佛性, 早入定門.]”
14) [唐]淨覺, 『楞伽師資記』(大正藏85, 1288a) “終日看不已, 泯然心自定”
15) 『周易』, 『繫辭傳上』 “건(乾)은 쉬운 것으로써 알고, 곤(坤)은 간단한 것으로 능함이니, 쉬우면 알기 쉽고, 간단하면 따르기 쉬우며, 쉽고 간단해서 천하의 이치를 얻는다.[乾以易知, 坤以簡能, 易則易知, 簡則易從, 易簡而天下之理得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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