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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빛의 말씀]
안팎이 환희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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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인검(조병활)  /  2021 년 4 월 [통권 제96호]  /     /  작성일21-04-05 10:00  /   조회6,41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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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선문정로』 11 | 내외명철內外明徹

 

[원문] 성철 스님 [옮김] 활 인 검 

 

편집자 | 【번호】·【평석】·【강설】은 성철 스님이 직접 쓰고 말씀하신 것이다. 【11-1】은 제11장 제1절이라는 의미다. * 표시가 붙은 것은 보다 쉽게 풀이한 것이다. 

 

【11-1】 ①지혜로 관조해 내외가 명철明徹하고 자기의 본심을 식득識得하면, 즉본해탈卽本解脫이니 즉시卽是 무념이니라. ②지智는 백일白日과 같고 혜慧는 낭월朗月과 같아서 지혜는 항상 명랑明朗하지마는 외부로 진경塵境에 주착住著하여 망상의 부운浮雲이 개복盖覆함이 되어 명랑明朗하지 못한다. 만약 진법眞法을 득문得聞하고 미망迷妄의 암운暗雲을 스스로 제거하면 내외가 명철明徹하여 진여자성眞如自性 중에 만법이 개현皆現하나니 견성한 사람도 이와 같다. ①智慧로 觀照하야 內外明徹하야 識自本心하면 卽本解脫이니 卽是無念이니라. ②智如日이요 慧如月하야 智慧常明이어늘 於外에 著境하야 被妄想浮雲이 盖覆하야 自性이 不得明朗이라 若聞眞法하고 自除迷妄하면 內外明徹하야 於自性中에 萬法이 皆現하나니 見性之人도 亦復如是니라. (①『壇經』, 大正藏48, p.351a. ②『壇經』, 大正藏48, p.354b)

 

* ①지혜로 관조해 안팎이 환희 밝아지고 자기 본심을 체득하면 이것이 바로 ‘본래 해탈’이니 ‘그릇된 생각이 없는 마음[無念]’이다. ②‘타고난 지智’는 해와 같고 ‘닦아 얻은 혜慧’는 밝은 달과 같다. 지혜는 항상 밝고 환하나 밖의 대상에 집착해 그릇된 생각의 구름에 덮여 참다운 본성이 밝지 못하다. 만약 참다운 가르침을 듣고 스스로 미혹된 망상을 없애면 안팎이 뚜렷하게 밝아 참다운 본성에 모든 존재가 나타난다. 참다운 본성을 체득한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다. 

 

【평석】 경지鏡智로 관조하여 내외가 명철明徹하면 이것이 식심識心이며 해탈이며 무념이며 견성이니 이는 근본무명의 암운暗雲이 소산消散한 증좌證左이다.

 

* ‘크고 둥근 거울 같은 지혜[鏡智]’로 (존재의 참 모습을) 관찰해 안팎이 환희 밝아지면 ‘마음을 체득한 것[識心]’이다. 이것이 해탈이며, ‘그릇된 생각이 없는 마음[無念]’이며, ‘참다운 본성을 체득한 것[見性]’이다. 이것은 타고난 무명의 검은 구름이 사라졌다는 증거이다. 

 

【강설】 견성을 하면 자성의 진여광명이 시방법계를 환히 비추게 된다. 따라서 안팎이 명철해야 견성한 것이지 안팎이 명철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견성이 아니다. 잠을 자봐야 오매일여가 되는지 되지 않는지 알 수 있듯 내외명철이란 실제로 견성한 이가 아니면 알 수 없다.

 


엘투디장니 이경미 작.

 

* 참다운 본성을 체득하면 ‘본성의 여실한 밝은 빛[眞如光明]’이 사방을 환히 비추게 된다. 따라서 안팎이 환희 밝아야 ‘참다운 본성을 체득한 것[見性]’이지 안팎이 밝지 않으면 참다운 본성을 체득한 것이 아니다. 잠을 자봐야 자나 깨나 화두가 들리는 들리지 않는지를 알 수 있듯 참다운 본성을 실제로 체득한 사람이 아니면 안팎이 환희 밝은 내외명철을 알 수 없다. 

 

【11-2】 ①수정水精의 영락瓔珞은 내외가 원명통철圓明通徹하여 구경지인 묘각에 상주하여 담연湛然히 현명청정玄明淸淨한지라 일체지지一切智地라고 하나니 항상 중도中道에 안처安處하느니라. ②오직 불타만이 중도제일의제中道第一義諦인 법성심토法性心土에 주거하느니라. ①水精瓔珞은 內外明徹하야 妙覺에 常住하야 湛然明淨이라 名一切智地니 常處中道니라. ②唯佛이 居中道第一法性之土니라. (①『瓔珞經』上, 『大正藏』24, p.1013a. ②『瓔珞經』上, 『大正藏』24, p.1016a)

 

* ①수정과 영락(장신구)은 안팎이 투명하게 비치듯이 깨침의 궁극적 경지인 묘각은 맑고 밝으며 깨끗한 경지에 머문다. 이를 일체지의 경지라 부르며 항상 중도에 있다. ②오직 부처님의 경지만이 중도 제일법성의 깨끗한 땅에 안주한다. 

 

【평석】 수정영락水精瓔珞과 같이 내외명철內外明徹하여 일체의 망진妄塵을 탕진하면 구경묘각인 불지이며 견성이다.

 

* 수정과 영락이 안팎이 투명하게 비치듯이 일체의 그릇된 번뇌를 모두 없애면 깨침의 궁극의 경지인 ‘부처님의 경지[佛地]’이며 ‘참다운 본성을 체득한 것[見性]’이다. 

 

【강설】 구경각인 묘각을 성취해야만 내외가 명철하지 구경각을 성취하지 못하면 내외명철하지 못하다고 부처님께서 분명히 밝히셨다. 내외명철하면 견성이라는 육조 스님의 말씀과 구경각인 묘각을 성취해야만 내외명철하다는 부처님 말씀은 같은 뜻이다. 이는 내외가 명철한 구경각이 견성이지 10지·등각도 견성이 아니라는 말씀이 아니겠는가? 

 

【11-3】 ①시방十方의 세계와 및 신심身心이 폐유리吠瑠璃와 같아서 내외가 명철明徹함을 식음識陰이 진盡하였다 한다. ②만약에 식음識陰이 멸진하면, 원명圓明한 청정묘심이 그 중에 발화發化하여 청정한 유리瑠璃 내의 보월寶月과 같다. 그리하여 보살의 소행所行인 금강金剛과 10지를 초월하여 정각과 동등하게 원명圓明하여 여래의 묘장엄해妙莊嚴海에 돈입頓入하여 보리를 원만성취하여 무소득無所得에 귀환한다. ①十方世界와 及與身心이 如吠瑠璃하야 內外明徹을 名識陰盡이니라. ②識陰이 若盡則圓明淨心이 於中에 發化하야 如瑠璃內含寶月하나니 如是乃超菩薩所行의 金剛十地하야 等覺圓明하야 圓滿菩提하야 入於如來妙莊嚴海하야 歸無所得이니라. (①『楞嚴經』10, 『大正藏』19, p.153b. ②『楞嚴經』10, 『大正藏』19, ②p.154b)

 

* ①모든 세계, 몸, 마음이 유리처럼 안팎이 투명한 것을 ‘번뇌에 물든 식[識陰]’이 다 사라졌다고 말한다. ②만약 번뇌가 다 사라지면 둥글고 밝고 깨끗한 마음이 그 가운데에서 나타나는데 마치 유리가 보배로운 달을 머금은 것 같다. 이처럼 보살의 수행을 두루 밟아 십지의 금강유정을 통해 ‘둥글고 밝은 것[圓明]’을 부처님과 동등하게 깨달으면[等覺] 깨침이 원만해져 아름다운 깨달음의 바다에 들어가서 결국엔 ‘얻을 것 없음[無所得]’에 귀결된다. 

 

【평석】 제8第八 리야梨耶인 식음識陰이 멸진하면 내외가 명철明徹하여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한다.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과 기타에 “식음識陰은 위아뢰야謂阿賴耶니 역명亦名 아타나阿陀那”라고 분명히 하였다.

 

* 제8 아뢰야식이 모두 사라지면 안팎이 환하게 밝아 즉시 부처님의 경지에 오른다. 『대승오온론』 등에 “식음識陰은 아뢰야식을 말하며 또한 아타나라고 부른다.”고 분명하게 되어 있다. 

 

【강설】 공부 하다가 아무리 깨친 것 같고 지견이 분명하더라도 오매에 일여一如한지를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 또한 무심의 경계를 체득했다 하더라도 그곳에 머물면 마구니 경계가 됨을 알아 확연히 깨쳐 내외명철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이것이 달마 스님에서 육조 스님으로 면면히 이어 온 우리 종문의 가풍이다. 

 

【11-4】 ①식음識陰이 진盡한 자는 원명정심圓明淨心이 어중於中에 발화發化한다. 차此는 즉 상上으로는 제불의 자력慈力과 동일하고, 하下로는 중생의 비앙悲仰을 함용含容하여 보편 동등하게 시현示現하여 중생을 이익하므로 발화發化라 한다. 신심세계身心世界와 제불중생이 원융교철圓融交徹하는 고로 정유리淨瑠璃 내에 보월寶月을 함유함과 같다. 문득 능히 지위를 초월하여 대각과해大覺果海에 돈입頓入하여 무소득無所得에 회귀하나니, 이와 같아야 비로소 구경극칙究竟極則이라 이름 한다. ②이는 오음五陰이 다하고 원증圓證한 공용功用을 보임이니라. ①識陰이 盡者는 圓明淨心이 於中에 發化하나니 卽上同諸佛慈力하고 下含生悲仰하야 普同示現하야 利益衆生일새 故로 云 發化니라 身心世界와 諸佛衆生이 圓融交徹故로 如淨瑠璃內含寶月이라 便能超越地位하야 入於果海하야 歸無所得하나니 如此하야사 方名究竟極則也니라. ②此示陰盡圓證功用也니라. (①憨山, 『楞嚴經通議』10, 『卍續藏經』19, p.331a. ②憨山, 『楞嚴經通議』10, 『卍續藏經』19, p.330b)

 

* ①아뢰야식이 소멸된 수행자에게 완전하게 깨끗하고 밝은 마음이 전화해 나타난다. 그 마음은 위로 여러 부처님의 자비로운 힘과 같고, 아래로 자비를 바라는 중생의 마음을 포함한다. 널리 동시에 나타나 중생들을 이익 되게 하므로 ‘전화해 나타난다[發化]’고 말한다. 기세간과 유정세간, 여러 부처님과 중생들이 서로 융합해 완전히 통하므로 마치 깨끗한 유리 속에 보배로운 달이 들어있는 것 같다. 즉시 여러 지위를 뛰어넘어 ‘수행의 결과로 나타나는 큰 깨달음의 바다[大覺果海]’에 들어가 ‘얻을 것 없음[無所得]’으로 회귀된다. 이와 같아야 비로소 궁극의 가르침이라 말할 수 있다. ②이것은 아뢰야식이 소멸되어 (깨침의) 공용功用을 완전히 증득한 것이다. 

 

【평석】 내외명철한 견성은 즉 식음識陰이 영단永斷한 대각극과大覺極果이다. 『화엄』에서 10지 보살이 ‘방편신통내외명철(方便神通內外明徹, 『八十華嚴』 39 ; 『大正藏』10, p.209b)’이라 하였는바, 10지 보살은 미세무명을 미단未斷하였으므로 이 내외명철은 제8 뢰야의 통명영상通明影像이요, 진정한 내외명철이 아니다.

 

* 안팎이 환하게 밝아짐을 체득한 견성은 아뢰야식을 영원히 단절한 것이자 ‘수행의 과보로 나타난 궁극적 깨달음[大覺極果]’이다. 『화엄경』에 “방편에 자유자재하고 안팎이 환하게 밝다.”고 하였는데, 10지 보살은 미세한 번뇌를 완전히 끊어내지 못했기에 이 내외명철은 아뢰야식이 ‘밝게 비친 그림자[通明影像]’이지 참다운 내외명철이 아니다. 

 

【강설】 육조 스님께선 견성한 사람은 내외명철한 사람이라고 확실히 말씀하셨다. 이는 조사의 말씀일 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말씀인 경에도 분명하다. 견성하면 내외명철하고 내외명철한 그것이 구경 즉 극과라 했으니, 따라서 견성은 곧 구경각인 것이다. 육조 스님께서는 견성은 내외명철한 것이라고만 하고 구경각이란 말씀은 거론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잘 모르는 이들이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하곤 하는데 부처님의 말씀을 근거로 살펴볼 때 내외명철이 곧 극과인 구경각임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다. 만일 내외명철이 되지 않고서 견성이라 한다면 그런 견성은 자기 나름대로 ‘견성’이란 이름만 붙인 것이지 육조 스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견성은 아니다. 육조 스님이 말씀하신 견성이 아니면 그것은 33조사께서 말씀하신 견성이 아니고 또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견성도 아니다. 그러니 허튼 소견과 말에 현혹되지 말고 육조 스님의 말씀에 의지해 내외명철한 구경각이라야 견성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11-5】 ①원명圓明한 정심淨心이 그 중에 발화發化하면, 삼류三類로 분신分身하여 중생의 고륜苦輪을 쉬게 한다. 오직 여여리如如理와 여여지如如智가 내외에 명철하나니, 비유하건대 유리瑠璃 속에 보월寶月을 함유함과 같아서, 10신十信·10주十住·10회향十廻向·10지十地 등을 원만히 초월하여 무상불도無上佛道를 성취한다. ②圓明淨心이 於中에 發化하면 三類分身하야 息苦輪하나니 唯如如理와 如如智가 內外明徹하야 譬如瑠璃內含寶月하야 圓超信住地等하야 而成無上道也니라. (①智旭, 『楞嚴經文句』10, 『卍續藏經』20, p.751a)

 

* ①완전하게 밝고 깨끗한 마음이 그 가운데에서 전화해 나타나면 세 갈래로 몸을 나누어 중생의 고통스런 윤회의 바퀴를 쉬게 한다. 오직 ‘본래 그대로의 이치’와 ‘본래 그대로의 지혜’가 안팎으로 분명하게 밝아온다. 이는 마치 깨끗한 유리 속에 보배로운 달이 들어있는 것과 같다. 10신十信·10주十住·10회향十廻向·10지十地 등을 원만하게 초월하여 위없는 깨달음을 성취한다. 

 

【평석】 내외명철한 공과(功果)가 이렇게 현묘(玄妙)하다.

 

* 안팎이 환하게 밝은 깨달음의 공능과 과보가 이렇게 지극하다. 

 

【강설】 지욱 스님은 명말 4고승 중의 한 분으로 교학에 매우 밝으셨던 분이다. 그분 역시 10신・10주・10행・10지 등을 완전히 초월해 구경의 극과를 성취해야만 내외명철하여 무상의 도를 성취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유리 속에 보배 달을 품은 것[瑠璃內含寶月]’과 같은 것은 묘각의 경계이니 묘각 이전엔 그런 경계가 되지 않는다. 

 

【11-6】 ①진경塵境이 이미 공적空寂한즉 신심내외身心內外가 일시에 청정하여 시방이 교연皎然하여 폐유리吠瑠璃 내에 보월寶月을 함유함과 같으니, 어찌 통쾌하지 않으리오. 이는 근본무명을 돈파頓破하여 8식 종자八識種子로 하여금 병열멸진迸裂滅盡케 한 것이다. ①塵境이 旣空則身心內外가 一時淸淨하야 而十方이 晈然하야 如吠瑠璃內含寶月하나니 豈不快哉아 斯乃頓破根本無明하야 使八識種子로 迸裂이니라. (①憨山, 『通議』8, 『卍續藏經』19, p.256a)

 

* ①먼지 같은 대상이 이미 공적한 즉 안팎의 몸과 마음이 일시에 깨끗해져 온 세계가 환하게 밝아 마치 투명한 유리 속에 보배로운 달이 들어있는 것 같으니 어찌 통쾌하지 않으리오. 이는 근본무명을 일시에 부셔 8식 종자를 산산이 부수어 없앤 것이다. 

 

【평석】 8식 종자인 미세망상을 열파裂破하여 내외명철한 무생현로無生玄路에 우유자재優遊自在하니 이는 오직 실참실오實參實悟에 있다.

 

* 8식 종자인 미세한 망상을 찢어 없애 안팎이 환한 ‘태어남이 없는 진리의 길[無生玄路]’에 매우 자유롭게 오가니 이는 오직 실제로 화두를 참구하고 실제로 깨달아야 되는 경지이다. 

 

【11-7】 ①만약에 식음識陰이 멸진하면, 바야흐로 지위를 초월하여 요연了然히 소득이 없고 구경불과究竟佛果를 원만성취하여 정유리淨瑠璃 내에 보월寶月을 함유함과 같다. ①若得識陰이 盡하면 方超地位하야 了無所得하고 究竟圓成하야 如淨瑠璃內含寶月이니라. (①『宗鏡錄』88, 『大正藏』48, p.898b)

 

* ①만약 아뢰야식이 모두 사라지면 비로소 지위를 초월하여 ‘얻을 것 없음[無所得]’과 ‘궁극의 완전한 깨달음[究竟佛果]’을 성취한다. 이는 마치 깨끗한 유리 속에 보배로운 달이 들어있는 것과 같다. 

 

【평석】 불언佛言과 조언祖言이 양도兩道가 없으니 이는 다 같이 정안을 완구完具한 까닭이다.

 

* 부처님의 말씀과 조사들의 말씀이 서로 다르지 않으니 이는 다 같이 올바른 눈을 완전하게 구비한 까닭이다. 

 

【강설】 견성이 곧 구경의 극과임은 조사들만의 말씀이 아니다. 내외명철이 곧 구경究竟의 극과極果라 하신 말씀은 부처님이나 조사께서 공히 하신 말씀이다. 같은 깨달음을 이룬 분들이기 때문에 그 말씀에 차이가 있을 수 없다. 

 

【11-8】 ①대각하면 돈료頓了하여 공용功用을 허시虛施할 것 없으니, 일체의 유위법과는 부동不同하다. 명상名相에 주착住著한 보시는 천상에 왕생하는 복은 되나, 전시箭矢로 허공을 향해 역사力射함과 같다. 세력이 다하면 전시箭矢는 도로 추락하니, 내생의 불여의不如意함을 초래할 뿐이다. 어찌 무위인 실상문實相門에서 한 번 초월하여 여래지에 직입直入함과 같으리오. 근본만 오득悟得할 것이요 지말은 걱정하지 말라. 정결한 유리瑠璃 속에 보월寶月을 함유함과 같다. 벌써 여의주를 해득解得하였으니, 자리와 이타가 끝내 갈진竭盡하지 않는 도다. ①覺卽了不施功이니 一切有法不同이라 住相布施는 生天福이나 猶如仰箭射空이로다 勢力盡箭還墜하야 招得來生不如意라 爭似無實相門에 一超直入如來地리오 但得本莫愁末하나 如淨瑠璃含寶月이니 旣能解此如意珠하니 自利利他終不竭이로다. (①『證道歌』, 『大正藏』48, p.396a)

 

* ①깨달으면 모든 것이 마무리되어 쓸데없는 노력을 할 필요가 없으니 일체의 유의법과는 같지 않다. 소리[名]와 형색[色]에 집착해 실행하는 보시는 하늘에 태어날 복을 지을지는 모르나 허공으로 쏜 화살이 힘이 다해 떨어지는 것처럼 ‘원하지 않는 내생[來生不如意]’을 초래할 뿐이다. 어찌 ‘모습 없는 참다운 문[無實相門]’에 들어가 즉시 부처님의 지위에 오를 수 있겠는가? 다만 근본을 증득할 뿐 지말支末은 걱정하지 말라. 마치 투명한 유리 속에 보배로운 달이 들어있는 것처럼 이미 이 여의주의 의미를 증득했으면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익 되게 함이 결코 닳아 없어지지 않는다. 

 

【평석】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하여 내외명철하면 정전正傳의 돈오이며 견성이다. 추중麤重이 멸진한 자재위 이상만 되어도 오매일여의 실경實境이 현전하지마는, 미세유주인 식음識陰까지 탕진무여蕩盡無餘하여 여래지에 직입直入하지 않으면 내외명철하여 여정유리함보월如淨瑠璃含寶月한 구경무념은 성취하지 못한다.

 

* 곧바로 부처님의 경지에 들어가 안팎이 환히 밝은 이것이 바로 올바르게 전해진 ‘몰록 깨침[頓悟]’이며 ‘참다운 본성을 체득한 것[見性]’이다. 거친 번뇌만 없애도 자재위에 오르고 오매일여의 참다운 경지가 나타나지만 미세한 번뇌인 아뢰야식까지 완전히 없앤 여래의 경지에 곧바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팎이 환한 것이 마치 투명한 유리 속에 보배로운 달이 들어있는 것’ 같은 ‘궁극의 그릇된 생각 없는 경지[究竟無念]’는 성취하지 못한다. 

 

【강설】 한 번 훌쩍 뛰어 곧장 여래지에 들어가 구경각을 완전히 성취하면 이것이 견성이고, 견성하면 맑은 유리 속에 보배 달을 품은 듯 내외명철하게 된다. 유리병 속에 촛불만 밝혀도 온 방이 환한데 거기에 보름달을 갖다 놓았다고 생각해 보라. 그 밝음이 시방법계를 비추고도 남을 것이다. 이처럼 내외가 명철하기 전에는 아무리 크게 깨치고 크게 알았다고 해도 그것은 공부하다 병이 생긴 것이지 견성도 돈오도 아니다. 따라서 10지·등각이라 해도 견성한 사람은 아니다. 운문 스님께서도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10지의 대성인이 설법은 구름이 일듯 비가 오듯 자유자재하게 하여도 견성은 하지 못했다.” 또한 선교를 통틀어 대종사로 추앙받는 마명 보살 역시 보살지가 다해 미세망상을 영원히 끊어야 견성이라고 하였다. 그러니 부처님과 조사 스님의 말씀을 불문하고 구경각을 성취해야만 견성이지 그러기 전에는 견성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불교의 철칙이라 하겠다. 만일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주장을 편다면 그런 이설은 불교가 아니고 그런 사람은 불제자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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