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와 책의 향기]
아비달마 논서 왜 읽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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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활 / 2021 년 3 월 [통권 제95호] / / 작성일21-03-05 11:01 / 조회7,886회 / 댓글0건본문
문자와 책의 향기 12 | 부파불교와 아비달마
불교는 역사적 인물인 석존(釋尊, BCE.623-BCE.544. 붓다로 약칭)의 ‘깨침[自內證]’에서 흘러나온 가르침을 신봉하는 종교다. 붓다의 가르침은 경·율·논이라는 세 개의 광주리[三藏]에 정리되어 현존한다. 보리수 밑에서 증득한 존재의 원리와 실상에 대한 말씀과 자력自力수행으로 번뇌에서 벗어나는 방법[聖道]들을 주로 집약해 놓은 경장經藏; 붓다를 믿고 따르는 출가자들이 지켜야 할 규범들로 조직의 건전성을 유지하고 자신을 바르게 지키며 사회에서 존경받기 위해 ‘배워야 할 것들[學處]’을 모아놓은 율장律藏; 붓다의 말씀[法]을 해석한 논장論藏 등이 삼장이다.
경과 율은 붓다가 설명하고 제정한 것들이다. 붓다의 열반 후 ‘그 분의 말씀’을 직접 들은 제자들은 ‘경(아함)과 율’을 결집해 구전口傳 등의 방식으로 대를 이어 전했다. 화합된 하나의 맛을 자랑하던[一味和合] 교단은 대략 불멸후 1백년 경부터 여러 부파로 나눠진다. 각 부파는 전래된 경과 율의 내용을 정리해 ‘독자적인 삼장’을 편찬했다. 모든 부파가 삼장을 보유하진 않았지만 주요 부파는 삼장을 갖고 있었다. 현장(玄奘, 600-664)의 『대자은사삼장법사전』(권제4·권제6)과 의정(義淨, 635-713)의 『남해기귀내법전』(권제1)에 기재된 기록이 증명한다.
[1] “현장은 그 나라에서 두 스님을 만났다. 한 명은 소부저고, 다른 한 명은 소리야다. 둘은 대중부 삼장에 능통했다. 현장은 수개월 머물며 대중부의 『근본 아비달마』를 배웠다[法師在其國逢二僧, 一名蘇部底, 二名蘇利耶, 善解大衆部三藏. 法師因就停數月, 學大衆部《根本阿毘達摩》等論(T50, 241b)].”
[2] “현장이 서역에서 갖고 와 안치한 대승경 224부, 대승론 192부, 상좌부 경·율·론 15부, 대중부 경·율·론 15부, 삼미저부 경·율·론 15부, 마사색부 경·율·론 22부, 가섭비부 경·율·론 17부, 법밀부 경·율·론 42부, 설일체유부 경·율·론 67부, 인명론 36부, 성명론 13부, 이렇게 5백20협 657부를 20필의 말에 싣고 왔다[安置法師於西域所得大乘經二百二十四部, 大乘論一百九十二部, 上座部經律論一十五部, 大眾部經律論一十五部, 三彌底部經律論一十五部, 彌沙塞部經律論二十二部, 迦葉臂耶部經律論一十七部, 法密部經律論四十二部, 說一切有部經律論六十七部, 因論三十六部, 聲論一十三部, 凡五百二十夾, 六百五十七部, 以二十匹馬負而至(T50, 252c)].”
[3] “당나라 말로 성대중부라 부르며, (여기서) 일곱 부파가 갈라져 나왔다. 각 부파마다 삼장이 있는데 십만 송이나 된다. 당나라 말로 옮기면 천권은 될 것이다[唐云聖大衆部, 分出七部, 三藏各有十萬頌, 唐譯可成千卷(T54, 205a)].”
때문에 현존하는 경과 율에는 부파의 견해가 첨부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대중부의 『마하승기율』, 화지부의 『오분율』, 법장부의 『사분율』, 설일체유부의 『십송율』처럼. 그럼에도 ‘경과 율의 기본적인 형식과 내용’은 원형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경과 율은 부파가 흥기되기 이전에 집성돼 BCE(Before Common Era. 공통 기원전) 300년경 체재體裁가 완성됐을 것으로 추정된다.(주1)
논장의 형성과정은 경장·율장의 그것과 다르다. 붓다 입멸 후 주된 임무는 ‘그 분의 가르침’을 결집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경과 율이 편찬됐다. 교단이 여러 부파로 나눠지던 시기의 주된 관심은 경과 율에 흩어져 있는 가르침들을 주제별로 묶고, 조리條理있게 체계화해 널리 알리는 것이었다. 붓다는 상대의 수준에 맞춰 설명했기에 가르침마다 내용과 형식이 달라 간혹 서로 모순적으로 보일 때도 있었다. 논장의 형성은 이러한 붓다의 가르침을 정리하고, 연구하고, 결택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비달마대비바사론』 권제1에 정황을 알려주는 구절이 있다.
[4] “붓다가 살아 계실 때 곳곳의 장소와 마을에서 여러 중생들을 위해 갖가지 말씀과 가르침[論道]으로 아비달마를 분석해 설명하셨다. 붓다가 열반 든 뒤나 살아있을 때 성스러운 여러 제자들이 훌륭한 지혜[妙願智]로 순서에 따라 가르침들을 편찬하고 별도로 분류했다. 그래서 붓다 열반 후 가다연니자 존자가 훌륭한 지혜로 순서에 따라 가르침을 편집해 『발지론』을 지었다[世尊在世, 於處處方邑, 為諸有情, 以種種論道, 分別演說, 阿毘達磨. 佛涅槃後, 或在世時, 諸聖弟子, 以妙願智, 隨順纂集, 別為部類. 是故尊者迦多衍尼子, 佛去世後, 亦以妙願智, 隨順纂集, 造《發智論》(T27, 1b)].”
사진 1. 『과학의 불교』, 서울 모과나무, 2017
사진 2. 『지구인을 위한 진리탐구』. 서울 Denstory, 2016
“붓다가 열반에 든 뒤나 살아있을 때 성스러운 여러 제자들이 ‘훌륭한 지혜[妙願智]’로 순서에 따라 가르침들을 편찬하고 별도로 분류했다. 그래서 붓다 열반 후 가다연니자(Kātyāyanīputra, 대략 BCE 150 – BCE 50) 존자가 훌륭한 지혜로 순서에 따라 가르침을 편집해 『발지론』을 지었다.”는 구절처럼 논장의 형성은 부파의 분화分化와 깊은 관련이 있다. 부파분열의 시작과 전개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들이 있지만 인도불교사에서 대략 BCE 300년경 부파분열이 현저해지며 CE 50년경부터 대승불교가 흥기한 것으로 파악한다.(주2) 따라서 BCE 300부터 CE 50까지를 - 물론 이후에도 부파는 존재했지만 영향력은 약화됐다 – ‘부파불교가 주류인 시대’로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 시기에 논서도 발달됐다. 아비달마 논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을까?
아비달마 논서의 편찬자들은 붓다가 직접 아비달마를 설명했다고 주장한다. 『아비달마대비바사론』(인용문 [4])은 물론 『아바달마구사론』 권제1 첫머리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5] “존재[法]를 분석하고 살피는 것보다 번뇌들을 더 잘 소멸시킬 다른 뛰어난 방법은 없다. 세간이 변천하고 중생들이 삶과 죽음이라는 괴로움의 큰 바다에서 윤회하는 것은 번뇌들 때문이다. 존재의 본질을 분석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 붓다는 그 아비달마를 설명해 전했다. 아비달마를 벗어나면 제자들은 존재의 모습을 이치에 맞게 분석하고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붓다는 곳곳에서 아비달마를 설명하셨고, 존자 가다연니자 등 성문의 여러 제자들이 붓다의 가르침을 결집해 모았다. 마치 법구 존자가 「무상품」 등의 ‘오타남송’을 편찬한 것처럼. 비바사사[설일체유부의 주류사]는 이와 같은 말을 전한다[若離擇法, 無勝方便, 能滅諸惑. 諸惑能令世間漂轉生死大海, 因此傳佛說彼對法, 欲令世間得擇法故. 離說對法, 弟子不能於諸法相如理簡擇. 然佛世尊處處散說阿毘達磨, 大德迦多衍尼子等諸大聲聞結集安置, 猶如大德法救所集無常品等鄔拕南頌. 毘婆沙師傳說如此(T29, 1b)].”
“비바사사毘婆沙師들은 이와 같은 말을 전한다.”며 “붓다가 아비달마를 직접 설명했다.”고 세친은 기술하지만 아비달마를 붓다의 친설親說로 보는 현대의 학자들은 드물다. 물론 아비달마와 비슷한 형식의 말씀들을 붓다가 했을 수는 있다. 내용과 서술방식에 따라 경전을 열두 가지로 나눈 것[十二部經] 가운데 하나인 우파제사(優波提舍, Upadeśa)가 그것이다. 논의論議로 한역된다. 『아비달마대비바사론』 권제126에 우파제사에 관한 설명이 있다.
[6] “논의란 무엇인가? 여러 경전 가운데 간략하게 말한 것[黙說]과 상세하게 말한 것[大說] 등의 가르침들을 판별해 결정하는 것이다. 또한 예를 들어 붓다가 어느 때 간략하게 말씀하고는 바로 수행처에 들어가 조용히 정진할 때, 성문의 많은 제자들이 함께 한 곳에 모여, 각자가 여러 가지 다른 글과 구절의 의미로 붓다가 말씀하신 것을 해석하는 것이다[論議云何? 謂諸經中, 決判默說大說等教. 又如佛一時略說經已, 便入靜室宴默多時, 諸大聲聞共集一處, 各以種種異文句義, 解釋佛說(T27, 660b)].”
붓다가 짧게 가르침을 설명하고 곧바로 수행처에 들어갔을 경우, 제자들이 모여 방금 설명한 붓다의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를 해석하고 판별하는 것이 우파제사, 즉 논의임을 알 수 있다. 『대지도론』 권제33에도 우파제사에 관한 기록이 전한다.
사진 3. 『붓다와 아인슈타인』, 서울 대숲바람, 2014.
사진 4. 『경량부 연구』, 서울 운주사, 2019.
[7] “경을 논의한다는 것은, 여러 질문에 답하는 것이며, 그 이유를 해석하는 것이다. 또한 여러 의미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붓다가 사제를 말씀하셨다면 무엇이 4인지? 이른바 사성제의 4란 무엇인지? 등처럼. … 이와 같이 묻고 답변하며 그 의미를 자세하게 해설하는 것을 우파제사라 부른다[論議經者, 答諸問者, 釋其所以. 又復廣說諸義. 如佛說四諦, 何等是四? 所謂四聖諦, 何等是四? … 如是等問答, 廣解其義, 是名優波提舍(T25, 308a)].”
『유가사지론』 권제25는 『대비바사론』이나 『대지도론』 보다 훨씬 넓은 의미로 우파제사를 해설한다.
[8] “무엇을 논의(우파제사)라 하나? 이른바 일체의 마달리가와 아비달마로, (이들은) 깊고 깊은 경의 의미를 연구해 일체경의 핵심을 널리 펴는데 이를 논의라 한다. 이처럼 십이분교는 삼장에 포함되며, 혹은 경장에 포함되는 것도 있고, 혹은 비나야장에 포함되는 것도 있고, 혹은 아비달마장에 포함되는 것도 있다고 말한다[云何論議? 所謂一切摩呾履迦阿毘達磨, 研究甚深素呾纜義, 宣暢一切契經宗要, 是名論議. 如是所說十二分教, 三藏所攝, 謂或有素怛纜藏攝, 或有毘奈耶藏攝, 或有阿毘達磨藏攝](T25, 419a).”
설일체유부는 아비달마를, 경전을 준거로 삼은 경부經部는 마달리가를 각각 중요시했다. 『유가사지론』은 유가행파의 중요한 논서 가운데 하나, 『유가사지론』이 논의(우파제사)로 마달리가와 아비달마를 통섭한 것은 - 『구사론』과 『유식이십론』 등을 저술한 세친의 사상이력이 증명하듯 - 설일체유부와 경부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계승 발전한 유가행파(세친)의 사상적 이력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튼 우파제사가 아비달마는 아니지만 아비달마의 형식과 비슷한 부류임을, 붓다의 말씀을 해석한 것임을 인용문 [6]·[7]·[8] 등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유가사지론』이 언급한 마달리가(摩怛理迦. Mātŗkā)란 무엇인가? 마질리가摩窒里迦·마득륵가摩得勒伽로 음역되며, 본모本母·지모智母로 의역되는 마달리가를 설명해줄 힌트가 『중아함경』 권제52에 나오는 “그 가운데 만약 경을 지니는 비구, 율을 지니는 비구, 지모持母 비구가 있다면[於中若有比丘持經·持律·持母者(T1, 755a)]”이라는 구절이다. “경을 지니고, 율을 지닌다.”는 구절은 “경전과 율을 잘 안다(암송할 수 있다).”는 의미며, 지모는 바로 ‘마달리가를 지닌(암송하는) 비구’를 말한다. 지경자·지율자와 더불어 지모자가 언급됐기에 당연히 경·율에 대응하나 그것과는 다른 ‘마달리가’라는 그 무엇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행히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 권제39와 권제40에 마달리가를 설명한 구절이 전한다.
[9] “붓다가 말씀하신 경·율·마질리가 등 참답고 진정한 가르침들이 결집되지 않았는데, 어찌 정교正敎를 잿더미가 되도록 하는가[世尊所說, 蘇怛羅·毘奈耶·摩窒里迦, 正真法藏皆不結集, 豈令正教成灰燼耶?(T24, 402c)]?”
사진 5. 『세친의 극미론』, 서울 씨아이알, 2018.
[10] “그 때 가섭파는 이렇게 생각했다. ‘후세 사람들은 지혜가 부족하고 자질도 좋지 못하다. 글자에 의거해 해석하기에 깊은 의미에 통달하지 못한다. 내 지금 마땅히 스스로 마질리가를 말해 경과 율의 의미가 소실되지 않도록 해야 겠다.’ 생각을 마쳤다. … 바로 법좌에 올라 여러 비구들에게 말했다. ‘마질리가를 지금 말하겠다. 의미를 이해함에 모두 분명해지도록 하겠다. 이른바 사념처, 사정근, 사신족, 오근, 오력, 칠보리분, 팔성도분, 사무외, 사무애해, 사사문과, 사법구, 무쟁, 원지, 또한 변제정, 공, 무상, 무원, 잡수제정, 정입현관, 또한 세속지, 사마타, 위파사나, 법집, 법온 등 이런 모든 것을 마질리가라 한다.' 말을 다해 마쳤다[時迦攝波作如是念: ‘後世之人, 少智鈍根, 依文而解, 不達深義. 我今宜可自說摩窒里迦, 欲使經律義不失故.’ 作是念已, … 即昇高座, 告諸苾芻曰: ‘摩窒里迦, 我今自說, 於所了義, 皆令明顯. 所謂四念處·四正勤·四神足·五根·五力·七菩提分·八聖道分·四無畏·四無礙解·四沙門果·四法句·無諍·願智, 及邊際定·空·無相·無願·雜修諸定·正入現觀, 及世俗智·苫摩他·毘鉢舍那·法集·法蘊, 如是總名摩窒里迦.’ 說是語已(T24, 408b)].”
사진6. 『상좌 슈리라타와 경량부』(오른쪽), 서울 씨아이알, 2012, 『상좌 슈리라타의 경량부 사상』, 서울씨아이알, 2019.
인용문 [9]·[10]에서 알 수 있듯이 마달리가는 표제어를 세우고 그것을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 사정근을 예로 들면 사정근의 정의, 사정근을 수행하는 방법, 사정근과 다른 수행법과의 관계 등을 해설하는 것이다. 표제어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사전과 비슷한 스타일이다. 간단명료해 이해하기 쉽고 우파제사 보다는 체계화 된 형태다. 그러나 ‘아비달마 방식’이 발달되며 마달리가의 중요성은 서서히 줄어든다.
‘아비달마(阿毘達磨, Abhidharma)’라는 말이 처음부터 ‘논서의 대명사’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은 아니다.(주3) ‘아비달마’는 본래 ‘경과 율을 찬탄하는 것’을 의미했다. 붓다의 모든 말씀은 요의了義라는 대중부의 주장과 달리 설일체유부는 붓다의 말씀 가운데는 요의도 있고 불요의도 있다고 보았다. ‘요의경’은 매우 귀중한 것으로 찬탄할 가치가 있다. 이런 경전을 ‘아비달마’라 불러 ‘찬탄’했다. 『마하승기율』 권제14·권제39에 보이는 “구부의 경을 아비달마라 부른다[九部修多羅, 是名阿毗曇(T22, 340c)].”; “아비달마는 구부의 경전이다[阿毗曇者, 九部修多羅(T22, 536b)].”는 구절들이 이를 증명한다. 특히 상좌부 계통의 부파는 존귀하고 찬탄할만한 구경究竟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을 ‘아비달마’라 불렀다. 나아가 구경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이 말하는 ‘아비달마’ 자체가 바로 무루의 지혜다. 그래서 ‘아비달마’는 ‘무루의 지혜[無漏慧]’를 뜻하는 말로 의미가 승화된다. 『대비바사론』(권제1)이 “아비달마의 뛰어난 본성은 오직 무루 지혜의 근본[然阿毘達磨勝義自性, 唯無漏慧根(T27,3b)]”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무루의 지혜는 깨달음 자체, 즉 ‘현증現證’이다. 아비달마가 바로 깨달음인 것이다.
사진 7. 『說一切有部爲主的論書與論師之硏究』, 臺北 正聞出版社, 1968.
그런데 무루의 지혜 자체인 아비달마는 ‘유루의 지혜[有漏慧]가 의지하는 그릇[資具]’이기도 하다. 유루의 지혜를 가진 출가자들이 ‘아비달마’에 의지해 공부하고 수행하면 무루의 지혜, 즉 깨침을 증득할 수 있다. 어떻게 ‘아비달마’에 의지할 것인가? 존재[法]의 모습과 본성을 분석하고 관찰하는 방식으로 수행자들은 불법佛法의 오의奧義를 체득하거나 법성法性을 현관現觀한다. 그래서 『대비바사론』(권제1)이 “곧 이로 말미암아 ‘수행해 얻은 세간의 지혜’를 일으켜 … 또한 이로 말미암아 ‘사유해 얻은 뛰어난 지혜’를 일으켜 … 또한 이로 말미암아 ‘듣고 얻은 뛰어난 지혜’를 일으켜 … 또한 이로 말미암아 ‘타고난 원래의 뛰어난 지혜’를 일으켜 … 또한 이처럼 자량이 무루지혜의 근본을 섭수해 지니고 변해, 밝음이 더욱 왕성해지므로 역시 아비달마라 부른다[即由此故, 發起世間修所成慧, … ; 又由此故, 發起殊勝思所成慧 … ; 又由此故, 發起殊勝聞所成慧, … ; 又由此故, 發起殊勝生處得慧, …. 復由如是, 資糧攝持, 無漏慧根, 轉得明盛, 是故亦名阿毘達磨(T27,3b)].”고 한 것이다. 아비달마(무루의 지혜)를 분석해 수소성혜, 사소성혜, 문소성혜, 생처득혜를 체득하고, 이들 지혜에 의지해 아비달마(현증)로 향한다. ‘아비달마’에서 출발해 ‘아비달마’로 귀결되며, 무루의 지혜를 현증하려면 아비달마에 의지해 존재의 모습을 관찰하고 분석해야 된다. 존재의 모습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분별하는 것으로 ‘아비달마’의 의미가 확대된 것이다.
사진 8. 『基于梵漢對勘的阿毘達磨俱舍論語法硏究』, 北京 中西書局, 2014.
물론 존재의 모습[法相]을 관찰한다고만 말하면 대상이 너무 방대하고 모호하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관찰할 것인가? 『대비바사론』(권제23)이나 『입아비달마론』(권상) 등에 의하면 자상自相, 공상共相, 섭攝, 상응相應, 인연因緣 등 ‘다섯 가지 주제[論門]’를 중심으로 존재의 모습을 관찰한다. 어떻게 관찰할 것인가? 자상은 자상을 ‘포섭[攝]’하나 타상他相을 포섭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정定과 혜慧는 자상이 다르다. 포섭하지 못한다. 다른 존재[法]다. 이 방법을 ‘상섭론문(相攝論門, 攝門)’이라고 한다. ‘상섭론문’만으로 모든 존재를 정리하기 힘들다. 존재의 자상(자성)을 분별하는 섭문攝門, 심心과 심소心所를 분석하는 상응문相應門, 일체 존재의 시간적 관계(전·후·동시)를 분석하는 인연문因緣門 등의 방식으로 모든 존재를 분류하고 정리한다. 다만 상相과 성性은 통용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본성의 측면에서 말하면 자성自性이고, 모습의 견지에서 보면 자상自相이다. 그래서 『대지도론』(권제31)이 “성과 상의 의미는 같다[性相同義(T25, 293c)].”고 한 것이다. 자상自相과 자성自性은 같은 개념이다.
아무튼, 자상문, 공상문, 섭문, 상응문, 인연문 등 다섯 가지 분류 방식·주제를 응용해 모든 존재를 분석해 들어가면 5위75법, 5위100법이라는 ‘법체法體의 표表’를 만들 수 있다. 존재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아비달마는 이런 과정을 거쳐 성립된 것이다.
사진 9. 『구사론』·『현종론』이 수록되어 있는 『티베트대장경』 제79책, 北京 中國藏學出版社, 2001.
결국 아비달마는 우파제사, 마달리가 보다 훨씬 포괄적이고 체계적이며 엄밀하다. ‘아비달마’가 우파제사·마달리가를 뛰어넘는 것은 당연하다. 개략적으로 말해 우파제사는 『아함』에 있는 붓다의 교설을 이해하고 정리하는 단계[초기]에 나타난 방식이며, 마달리가는 우파제사를 넘어 경·율 이외의 문헌으로 발전해가던 시기[중기]에 나타난 방식이며, 아비달마는 단순히 『아함』을 이해하고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안목과 관점으로 붓다의 교설을 하나의 장대한 체계로 수립하던 시기[마지막 단계]에 나타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아비달마와 관련해 『대지도론』 권제2·권제18에 주목해야 될 기록이 있다.
사진 10. 17-18세기 티베트 불교·불학을 대표하는 학승의 한 명인 꾼켄잠양세빠(1648-1722)가 주석한 『구사론보장俱舍論寶藏』, Drepung Gomang Library, 2015.
[11] “붓다가 살아 있을 때 마하가전연Mahākātyāyana이 붓다의 말씀을 해설해 곤륵(중국말로 협장이라 한다)을 만들었다. 지금도 남인도에 유행하고 있다. … 아비달마에 3종이 있다. 첫째는 ‘아비달마신의’로 요약하여 32만자를 설했다. 둘째는 ‘6분’으로 요약하여 36만자를 설했다. 셋째는 ‘곤륵’으로 요약하여 32만자를 설했다. 곤륵은 여러 사물들을 폭넓게 비교해 종류별로 분류했다. 아비달마는 아니다[摩訶迦旃延, 佛在時, 解佛語作蜫勒(蜫勒秦言篋藏), 乃至今行於南天竺. … 為阿毘曇三種: 一者阿毘曇身及義, 略說三十二萬言; 二者六分, 略說三十六萬言; 三者蜫勒, 略說三十二萬言. 蜫勒廣比諸事, 以類相從, 非阿毘曇(T25, 70ab)].”
[12] “지혜로운 자는 세 가지 법문에 들어간다. … 무엇이 세 가지 법문인가? 첫째는 곤륵, 둘째는 아비달마, 셋째는 공문이다. … 무엇을 곤륵이라 하는가? 무엇을 아비달마라 하는가? 무엇을 공문이라 하는가? 곤륵은 320만자가 있으며, 붓다가 살아 있을 때 대가전연이 만들었다. … 만약 곤륵문에 들어가면 논의가 끝없이 이어진다. 그 가운데 수상문과 대치문 등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智者入三種法門, … 何等是三門? 一者蜫勒門; 二者阿毘曇門; 三者空門. … 云何名蜫勒? 云何名阿毘曇? 云何名空門? … 蜫勒有三百二十萬言, 佛在世時, 大迦栴延之所造, … 若人入蜫勒門, 論議則無窮, 其中有隨相門·對治門等種種諸門(T25, 192bc)].”
“아비달마와 다른 곤륵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곤륵蜫勒’이 무엇일까? 일본학자 오기와라 운라이(荻原雲來, 1869-1937)는 1911년 6월 『철학잡지哲學雜誌』 제22권 제244호에 발표한 「곤륵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곤륵은 ‘비륵螕勒’을 잘못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주4) ‘곤륵’은 오자誤字고 ‘비륵’이 올바른 표기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타이완의 인슌(印順, 1906-2005)은 ‘곤륵’이 정확한 표기라고 반박하며, 아비달마가 ‘상좌부 계통의 논서’라면 곤륵은 ‘대중부 계통의 근본 논서’라고 지적했다.(주5)
인용문 [12]에는 ‘곤륵’이 경을 해석하는 두 가지 주요한 방법, 즉 ‘수상문隨相門’과 ‘대치문對治門’도 언급되어 있다. 수상문은 연상 작용 하듯이 연이어 해설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허공’이라는 말을 들으면 허공은 무위법, 무위법에 택멸과 비택멸 등 세 가지가 있다는 식으로 연상 작용을 통해 관련된 개념을 포괄적이고 종합적으로 설명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대치문은 사전도四顚倒 가운데 하나인 ‘상常전도’라는 말을 들으면, ‘무상한 것을 항상 존재하는 것으로 잘못 보는 견해’를 생각함[正. 한 측면]과 동시에 신념처身念處로 상常전도를 대치하는 것[反. 다른 측면]까지 고려해 경전을 해석하는 태도다. 낙樂전도에 대해서는 수념처受念處, 아我전도에 대해서는 심념처心念處, 정淨전도에 대해서는 법념처法念處까지를 포함해 정正·반反을 동시에 고려하면 경전을 정확하고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인용문 [12]에 보이는 ‘공문空門’은 무엇일까? 바로 대승의 공문을 말한다. 공문 역시 경전을 해설하는 방식의 하나였다. 아비달마문, 곤륵문, 공문 등 세 가지 가운데 ‘부파불교 주류 시기’를 대표한 것은 아비달마문이었다. 대승이 주류로 떠오른 뒤엔 공문이 주도적 위치를 차지했다. 곤륵문은 아비달마문이 성행하기 이전 단계에 어느 정도 성행했던 방식이었다. ‘아비달마문’의 해석방식이 실재론적인 ‘유有’로 달렸다면, 공문은 주로 ‘공空’으로 나아갔고, 곤륵문은 유有와 무無의 두 극단으로 향했다고 평가된다.(주6)
아비달마 논사들은 왜 정교하고 장대한 체계를 구축했을까? 5위75법으로 일체 존재의 생성과 변화 그리고 소멸을 설명하려 한 이유가 무엇일까? 붓다의 가르침은 세 가지 대전제가 있다. 첫째, 신과 같은 초월적인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둘째, 신비성을 배제하고 현상과 현실을 법칙성에 따라 설명한다; 셋째, 번뇌를 스스로의 힘으로 제거해 해탈을 얻는다. 즉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을 발견해 자력으로 해탈하는 것이 붓다 교설의 핵심이다. 대승불교가 흥기한 뒤 세 가지 원칙은 조금씩 변하지만 적어도 부파불교 주류 시기까지는 변함없는 전제였다.
이런 원칙을 견지하며 해탈을 증득하려면 먼저 자기를 둘러싼 존재의 현상과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외적인 물리적 현상은 인식기관을 통해 마음[心]과 마음부수[心所]로 연결된다. 물리적 현상, 인식기관, 마음은 ‘연결된 하나’이며, 셋이 일체화된 세계가 시간과 함께 흘러간다는 것이 아비달마 논사들의 기본적인 입장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5위75법, 98 번뇌설[견소단見所斷의 번뇌(88)와 수소단修所斷의 번뇌(10)] 등 정연하고 조직적인 체계를 구축했다. 붓다의 말씀에 입각해 세계를 이해하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번뇌를 제거해 ‘영원한 자유[解脫]’를 성취하자는 아비달마 논사들의 ‘간절함’이 정교하고 장대한 체계를 만든 근본적인 원인이었다고 생각된다. 승원에 안주하는 출가자들만의 해탈을 위해서가 아니고 ‘아비달마 체계’를 이해하고 따라 수행하면 누구나 ‘영원한 평화[涅槃]’를 얻을 수 있게끔 하고자 그들은 ‘아비달마’라는 수행지침서를 만들었을 것이다.
아비달마 문헌 가운데 가장 완전하게 현존하는 것은 『법집론』, 『분별론, 『논사』, 『인시설론』, 『계설론』, 『쌍대론』, 『발취론』 등의 ‘남방 상좌부 7론(팔리 7론)’(주7)과 『아비달마집이문족론』, 『아비달마법온족론』, 『아비달마시설론』, 『아비달마식신족론』, 『아비달마계신족론』, 『아비달마품류족론』, 『아비달마발지론』 등의 ‘설일체유부 7론’이다. 둘 다 상좌부 계통에서 분화된 부파들이다. 이 밖에도 적지 않은 설일체유부의 문헌들이 전한다. 이들 가운데 『아비달마집이문족론』, 『아비달마법온족론』, 『아비달마발지론』, 『아비담심론』, 『아비달마구사론』 등이 중요하다. 특히 『아비달마구사론』은 반드시 읽어야 될 책이다.
불교를 어느 정도 공부한 사람들도 이들 논서를 곧바로 읽으면 현기증(?)을 느낀다. 그러나 철저하게 준비하고 도전하면 읽어내지 못할 책들도 아니다. 우선 『과학의 불교』(서울: 모과나무, 2017, 사진 1), 『지구인들을 위한 진리탐구』(서울: Denstory, 2016, 사진 2), 『붓다와 아인슈타인』(서울: 대숲바람, 2014, 사진 3), 『아비달마의 철학 – 존재의 분석』(서울: 민족사, 1989) 등을 읽은 뒤 우리말로 번역된 『구사론』(권오민 옮김, 서울: 동국역경원, 2002)을 읽으면 조금 헤맬지도 모르나 그럭저럭 책장을 넘길 수는 있다. 『경량부 연구』(서울: 운주사, 2019, 사진 4), 『아비달마부파의 성립과 주장』(서울: 씨아이알, 2018), 『세친의 극미론』(서울: 씨아이알, 2018, 사진 5), 『아비달마불교』(서울: 민족사, 2003), 『상좌 슈리라타와 경량부』(서울: 씨아이알, 2012, 사진 6), 『상좌 슈리라타의 경량부 사상』(서울: 씨아이알, 2019, 사진 6), 『불교의 시간론』(서울: 씨아이알, 2016), 『불교의 원자설』(서울: 씨아이알, 2015) 등은 부파불교의 사상과 역사를 연구한 중요한 책들이다.
중화권에서 출간된 책으로는 인슌印順의 『설일체유부를 중심으로 한 논서와 논사 연구說一切有部爲主的論書與論師之硏究』(臺北: 正聞出版社, 1968, 사진 7)와 앤페이(演培, 1917-1996)의 『구사론송강기俱舍論頌講記』(전3권, 臺北: 天華出版社, 1977), 『범한대교 아비달마구사론 어법 연구基于梵漢對勘的阿毘達磨俱舍論語法硏究』(북경: 중서서국, 2014, 사진 8), 『아비달마순정리론 실유관념 연구阿毘達磨順正理論實有觀念硏究』(北京: 武漢大學出版社, 2014), 『설일체유부의 선정론 연구說一切有部之禪定論硏究』(北京: 中國人民大學出版社, 2011), 『설일체유부 불교 연구說一切有部佛敎硏究』(北京: 宗敎文化出版社, 2018) 등이 돋보인다.
부파불교 연구자가 인슌의 책을 읽으면 시야가 훨씬 넓어질 것이다. 쿠마라라타鳩摩羅多, 슈리라타室利邏多, 비유사譬喩師 등에 대해 1960년대 이미 세밀하게 분석해 놓았기 때문이다. 중화권 불교연구의 수준과 방법을 알기 위해라도 독파해야 될 책이다, 일본 불교학계의 연구 성과를 중점적으로 인용하는 것에 너무나 익숙한 한국 불교학계에서 이런 책을 읽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편향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티베트 학승들이 『구사론』 등을 연구하고 주석한 것도 상당히 많다(사진 9·10). 우리나라 불교학계가 티베트의 『구사론』 연구 성과 등도 많이 이용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원한다.
주)--
1) 印順著, 『說一切有部爲主的論書與論師之硏究』, 臺北: 正聞出版社, 1968, p.2.
2) 印順著, 『說一切有部爲主的論書與論師之硏究』, 臺北: 正聞出版社, 1968, p.7.
3) 아비달마를 설명한 부분은 ‘印順著, 『說一切有部爲主的論書與論師之硏究』, 臺北: 正聞出版社, 1968, pp.33-40.’을 참조했다.
4) 이 글은 ‘荻原博士紀念會, 『荻原雲來文集』, 1938, pp.204-216.’에도 수록되어 있다.
5) 印順著, 『說一切有部爲主的論書與論師之硏究』, 臺北: 正聞出版社, 1968, pp.17-18.
6) 呂澂著, 『印度佛學源流略講』, 上海: 上海人民出版社, 2005, p.70.
7) 인슌印順은 현재의 남방 상좌부上座部는 상좌부에서 분별설부分別說部로, 분별설부에서 분화된 동엽부(銅鍱部, Tāmraśāṭīya)라고 주장한다. 상좌부와 대중부로 분화된 ‘근본 분열’ 당시의 상좌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印順著, 『說一切有部爲主的論書與論師之硏究』, 臺北: 正聞出版社, 1968, p.5. 남방불교의 논서에 대해서는 별도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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