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다도]
범절 있고 간 맞게 물 익혀 먹는 것이 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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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룡 / 2021 년 3 월 [통권 제95호] / / 작성일21-03-05 10:48 / 조회6,428회 / 댓글0건본문
지금까지 뇌리를 떠나지 않는 효당 스님께서 하신 말씀을 지난 호에 소개하였다.
“‘차가 무엇이냐, 차가 무엇이냐?’고
내게 기어이 묻는다면,
‘차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다.”
차란 편하고 자연스럽게 목마름을 달래는 것으로 시작하여 꾸준히 마시다 보면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소중한 정신음료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하셨던 말씀이셨다. 사실 그때 이 말씀 외에도 매우 중요한 말씀이 하나 더 있으셨다.
“‘차도茶道가 무엇이냐, 차도가 무엇이냐?’고
내게 기어이 묻는다면,
‘차도란 범절 있고 간 맞게 물 익혀 먹는 것’이다.”
참으로 멋진 표현이지 않은가? 오늘은 효당 스님의 차도茶道 이야기를 좀 해보기로 하자.
차도茶道
하늘이 명령한 것을 성性이라 부르고, 성에 따르는 것을 도道라 한다. 바꾸어 말하면 도道는 동양의 도덕이나 예술에서 그 중심을 흐르는 것으로 생각되어온 가장 근원적인 원리·원칙을 말한다.
그렇다면 차도茶道는 무엇일까? 몇 가지 마음에 남아 있는 생각들을 소개한다.
초의 스님의 『차신전』에는 ‘차도란 차를 만드는 데에는 정성을 다하고, 보관할 때에는 건조한 곳에 두어야 하며, 탕을 끓일 때에는 청결하게 하여야 한다. 정성을 다하고 건조하게 보관하며 청결하게 끓이게 되면 차도라 할 수 있다.’(주1)고 언술하고 있다.
무이산의 무심 도인.
또한 『동차송』에는 ‘차를 달일 때에는 오묘함을 다하고, 차를 만들 때에는 그 정기를 간직하며, 물은 참된 물을 얻고, 포법에는 중화를 얻으며, 체와 신이 즉, 차와 물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웅건함과 신령스러움을 갖추니 이런 경지에 도달하면 차도라 할 수 있다.’(주2)고 정의한다.
『두산백과사전』에는 茶道teaism를 ‘찻잎 따기에서 달여 마시기까지의 차사茶事로, 몸과 마음을 수련하여 덕을 쌓는 행위’라 적고 있다.
석용운은 ‘차생활을 함으로써 신神, 체體, 건健, 영靈을 함께 얻는 것이다. 신체건영을 얻고자 한다면 문門, 행行, 득得의 길을 거쳐야 하며, 차생활을 통해서 얻어지는 깨달음의 경지’이지 차생활의 예절이나 법도, 그리고 차를 끓이는 행다법을 차도라 하지 않는다 하였다.(주3)
화분장(음)과 갓등(양)이 있는 한국풍의 차방.
정상구는 ‘차를 마시는 멋과 더불어 인간의 건전한 삶의 길을 걷자는 것이다. 건전한 삶의 길이란 심신心身, 즉 몸과 마음을 건전하게 하며 멋 속에 삶의 도리를 다하자는 것’이라 보고 있다.(주4)
김명배는 ‘찻잎 따기에서 차를 우려 마시기까지의 차일茶事로, 몸과 마음을 수련하여 덕을 쌓는 행위를 말한다’고 하였다.(주5)
차도茶道에 대한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옳고 옳은 말씀들이다. 이 말씀들에 일천하지만 필자의 생각을 살짝 덧붙이자면, 차도茶道란 ‘차를 통하여 얻는 도의 경지’를 이른다. 그러나 ‘차를 통하여 도를 얻으려는 생각을 가지면 절대로 이룰 수 없는 것이 바로 차도茶道의 경지이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그저 지극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열심히 오직 차 마시는 일에 힘쓰다 보면 저절로 도에 이르러 각성하게 되는 것이지, 도를 이루려 일부러 차를 마시면 평생에 차도茶道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거스름이 없는 자연스러움, 부작위不作爲의 무애無㝵의 경지가 곧 차도茶道이니, 우리 모두 차를 통하여 각성의 경지에 이르자.
효당 스님의 차 관련 업적
효당 스님이 현대 한국 차 문화를 중흥시킨 ‘한국차도 중흥조’로 추앙되는 이유를 효당 최범술 문집에서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주6)
첫째 ‘한국의 차도’를 저술하여 많은 사람들이 한국 차 문화에 관심을 갖도록 하였고,
둘째 전국 규모의 차 동호인 모임인 ‘한국차도회’를 최초로 발족하여 대중적 활성화를 꾀하였고,
셋째로 증제차법蒸製茶法에 의한 반야로 차를 전승시켜 우리 차 맛의 우수성을 입증케 하여 한국 제차산업製茶産業에 발전적 영향을 끼친 점이라고 하였다.
필자는 여기에 차茶와 차도茶道를 쉽고 명쾌하게 정의하신 것을 넷째 이유로 추가하고 싶다.
효당 스님의 차도
채정복은(주7) 효당 스님 차도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주8)
첫째 참된 차생활은 범절이 분명한데서 시작되고 보편적인 일상생활에 절목節目이 있어야 한다.
둘째 차는 음식물의 불기不器로, 한민족의 불기적 기호품이며, 차생활에서 비롯된 차례는 우리 문화사의 대표적 품목이다.
셋째 간이 맞는 차의 음미를 통해 간 맞게 도야된 인격이 되어야 한다.
넷째 ‘茶’자를 ‘다’가 아닌 ‘차’로 발음해야 함을 문헌에 의해 밝혔다.
2006 효당 최범술 추모학술대회 자료집.
다섯째 초의 스님이 저술한 ‘동차송’을 처음으로 완역하여 일반 대중에 알리고, 초의 스님을 ‘한국근대 차도의 중흥조’, ‘한국의 차성茶聖’, ‘안국의 육우’로 일컫고, 동차송을 ‘한국의 차경茶經’이라 자리매김하여 차사적茶史的 가치를 부여했다.
여섯째, ‘차도무문茶道無門’에 입각한 ‘차도용심茶道用心’의 중요성을 말했다.
일곱째, 총체적 인생살이를 차 살림살이로 표현했다.
군더더기가 없는 일곱 가지의 특징은 사족을 붙이기 어려울 만큼 깔끔하다. 사족을 붙이기 어려우니 필자는 스님의 시 한 편을 소개해 볼까 한다. ‘차와 멋’이란 제목의 시(주9)로 스님의 차도茶道에 대한 뜻이 잘 나타나 있다. 그 일부를 옮겨 본다.
2013 민족사에서 발간된 효당 최범술 문집.
알뜰한 예禮는 범절이라네
범절은 차례에서 오고
차례는 멋에서 난다
멋은 차에서 빛나고
차는 멋에서 산다.
내사 좋아요!
차 맛이 나는 좋아요!
순박한 그 맛은
내 멋을 자아내 내사 좋아요!
차 맛이 좋아 어쩐지 좋아
작위作爲 없이 질박한 것
정답고 마음에 들어
차 맛은 써 좋아 떫어도 좋아
신 것이 달고 달아도 시어
짜잖은 것 싫어요, 내사 싫어요
잔 솜씨 여러 양념 군맛이 싫어
구성없이 짜잖은 것 열없어 싫고
싱거우면 못써 간이 맞아야
『한국의 차도』 저술 배경
1966년 당시 재일 거류민 단장인 김정주金正柱씨가 "일본에는 '차도茶道' 문화가 있어 일본인들의 대단한 자부심에 교포들이 기가 죽는데 우리나라에는 차도 문화가 없느냐?"고 효당 스님께 여쭸다. 그 물음에 효당 스님은 "우리에게는 일본보다 훨씬 앞서 형성된 훌륭한 차문화가 있으니, 그 좋은 증거가 일반 가정에서 명절에 조상을 추모하여 제사 지내는 '차례茶禮'이다."고 하셨다. “경남, 전남 등의 범절 있는 가정에서는 그때까지도 차를 함께 올리며 차례를 지내는 가정이 남아있다.”고 효당이 말하자 “그 내용을 몇 자라도 정리해주면 일본으로 가져가서 교포들로 하여금 우리의 훌륭한 차문화 역사에 자부심을 갖게 하겠다.”며 김정주 씨가 요청했다. 그리하여 『한국차생활사』라는 제목으로 정리하여 100부 정도 복사해 주어 그가 가지고 갔다.(주10)
격의 없는 찻자리.
그 뒤 『한국차생활사』에 다솔사 수련회 강의 내용 등을 보충 정리하여 1973년 8월30일 초판이 발행되었다.(주11) 이것이 현대 한국의 차도에 관한 최초의 책이 되어 차생활에 관심 있는 이들의 길잡이가 되었다.
물 익혀 먹는 것이 차도
“‘차가 무엇이냐, 차가 무엇이냐?’고
내게 기어이 묻는다면,
‘차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다.”
“‘차도茶道가 무엇이냐, 차도가 무엇이냐?’고
내게 기어이 묻는다면,
‘차도란 범절 있고 간 맞게 물 익혀 먹는 것’이다.”
필자가 전하고 있는 효당 스님의 말씀은 사실 어떤 책에도 언급된 적이 없는 내용이다. 1973년 출간된 『한국의 차도』, 2006년 효당 최범술 스님 추모 학술대회 자료집과 추모집, 『찻잔에 비친 老佛微微笑』(사진1)은 물론 2013년 민족사에서 출간된 3권의 『효당 최범술 문집』(사진2) 어디에도 위에서 언급한 효당 스님의 말씀은 수록되어 있지 않다.
스님의 말씀은 필자의 마음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스님의 말씀은 다솔사 수련회 강의 중 하셨던 말씀으로, 당시 강의 내용을 녹음하여 되풀이 들은 필자에게는 활자가 아닌 스님의 육성 그대로 마음속에 남아 차에 대한 끊임없는 상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차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다.’라는 말씀에는 차에 대한 스님의 생각이 담겨 있고, 그 의미를 헤아려 보면 ‘차는 다가가기 어려운 것이 아니니 편한 마음으로 마시는 기호음료로 대하라’는 것이다.
이제 ‘차도란 범절 있고 간 맞게 물 익혀 먹는 것’이라는 스님의 말씀은 차도茶道에 대한 스님의 생각이 담겨 있는 것으로 ‘차도는 별다른 것이 아니라 지극한 마음으로 법도에 맞게 차생활을 하는 데서 마음속으로부터 자연히 우러나오는 것이며, 또한 차생활을 하면서 양변을 모두 함유하되 양변에 치우치지 않는 것이며, 오미五味를 모두 가지되 하모니를 이루는 차 맛을 내는 일상의 차생활에서 자연히 참되고 한결같은 마음이 솟아 나오는 것이 차도茶道’임을 강조하신 것이라고 감히 사족蛇足을 붙여 본다.
주)--
1) 동국역경원(1997), 한글대장경 『草衣集外』, pp. 361-388.
2) 동국역경원(1997), 한글대장경 『草衣集外』, pp. 307-360.
3) 석용운(1988), 『韓國茶藝』, 도서출판 초의.
4) 정상구(1997), 『韓國茶文化學』, 세종출판사.
5) 김명배(1991), 『茶道學』, 학문사.
6) 원화 채정복(2005), 『효당 최범술 문집』(2권) 「문화와 차도」.
7) 元和 蔡貞福; 효당사상연구회 회주.
8) 효당사상연구회(2006), 『효당 최범술 스님의 생애와 업적』, pp. 225-248(2006).
9) 효당 최범술(1980), 『한국의 차도』, 보련각.
10) 채원화(2005), 월간 『차의 세계』(2005년 9월호) 「효당의 차 살림살이」.
11) 당시 효당 스님 사서로 수련회에 동참했던 경상대학 임학과 4학년 김상현(1947-2013, 동국대 교수 역임)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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