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와 사상]
우리가 보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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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진 / 2020 년 9 월 [통권 제89호] / / 작성일20-09-21 11:02 / 조회7,263회 / 댓글0건본문
관측장비로 관찰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 은하galaxy의 수가 이삼천 억 개이고, 각각의 은하 안에 다시 이삼천 억 개의 항성 (별, star)이 평균적으로 존재한다. 그 많은 은하 중에서 태양계가 속한 은하를 우리은하(은하수, milky way)라고 하는 데, 영어로는 대문자를 써서 Galaxy라고도 한다. 그중에서 우리는 얼마나 볼 수 있을까? 우리가 밤하늘에서 보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얼마나 볼 수 있나?
인공조명 같은 불빛이 전혀 없이 완벽하게 깜깜한 밤하늘에서 인간의 시력으로 볼 수 있는 별의 수는 이론적으로 5만 개가 안 된다고 한다. 우리은하 안에만 이삼천 억 개의 별이 있는데, 우리는 기껏 5만 개의 별을 볼 뿐이다. 우리은하 안으로 한정하더라도, 천만 개의 별 중에 두 개 정도를 보는 셈이다.
더구나 지구에서 2백만 광년 정도 떨어져 있는 안드로메다 성운과 마젤란성운을 제외한 나머지 수천억 개의 은하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맨눈으로는 볼 수 없다. 사막처럼 먼지는 물론 습기조차 없는 맑은 밤하늘에서 눈이 좋은 사람이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천체는 우리은하에 속한 천체와 안드로메다 성운과 마젤란성운뿐이다. 이삼천 억의 은하 중에서 단지 세 은하만 볼 수 있다. 관측 가능한 우주의 천억 분의 일 정도다. 우리가 보는 것은 우주가 아니라, 우주의 아주 극히 일부일 뿐이다. 100경 개의 별 중에 하나 정도를 본다.
엄청나게 많은 별이 존재하지만, 우주에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별이나 행성과 같은 천체보다는 블랙홀 같은 암흑물질dark matter이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은하의 형성이나 운동이 지금과 같을 수 없다는 여러 증거가 제시됐다. 암흑물질은 우주 전체 질량의 85% 정도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된다.
요약해서 말하면, 우주를 구성하는 대부분 물질은 빛으로는 볼 수 없다. 빛으로 관측할 수 있다 하더라도 거의 모든 은하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은하는 우리은하를 포함해 세 개뿐이다. 우리은하 안에도 이삼천 억 개의 별이 있지만, 맨눈으로는 5만 개 정도의 별만 볼 수 있다. 아주 간단히 줄여서 말하면,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만 볼 수 있고, 그중에서도 우리 가까이에 있는 것만 볼 수 있다. 그건 우주의 아주 극히 일부다.
지금 보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 아주 극히 일부분의 우주라면, 그것만이라도 그 모습 그대로 볼 수 있을까? 아니다. 우리은하는 반지름이 5만 광년이나 되고, 지구가 속한 태양계는 우리은하의 가장자리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우리은하의 반대편에 있는 별에서 떠난 빛은 10만 년 전에 그 별을 떠나 오늘 지구에 도착한다.
우주의 진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10만 년이란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그 별에서 빛이 떠난 다음에 그 별이 사라졌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 밤 관측하는 그 별은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 별이 그곳에 존재하는지를 확인할 방법이란 없다. 예를 들어, 그 별이 지금 사라진다 해도 10만 년이 지나기 전에는 이를 확인할 수 없다. 앞으로 10만 년이 지날 때까지 우리는 그 별이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낄 것이다.
안드로메다와 마젤란성운으로 시야를 확대하면 200만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네안델타르인과 데니소반스와 호모엘렉투스가 호모사피엔스와 함께 살았던 시기에 안드로메다와 마젤란성운을 떠난 빛이 지금 이 순간 지구에 도착한다. 200만 년 전의 안드로메다와 마젤란 성운을 오늘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서 본다. 환영幻影이다.
세계와 진화의 역사
우리의 눈에 우주의 모습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 모습은 지금 이 순간 우주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다. 우리가 보는 우주는 우주 전체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우리에게 나타나는 그 일부분의 우주마저 지금 이 순간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의 사건들이 서로 중첩되어 나에게 나타날 뿐이다. 우주의 모습을 현재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 눈에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고 관측 기술의 문제 때문도 아니다. 그런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우주의 시공간적 구조 때문이다. 지금 나에게 나타나는 모습은 우주의 연기적 구조에 의해 그렇게 나타날 수밖에 없도록 설정돼 있다.
그럼 우주의 시공간적인 구조가 아니라면 우리는 세계를 정확하게 볼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니다. 우리는 자신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지만 착각이다. 왜 그런가?
우리가 보는 빛이란 전자기파의 극히 일부 영역이다.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전자기파 중에서 4천에서 7천 옹스트롬 사이의 파장을 가진 빛이다. 이는 빨강에서 보라에 해당하는 빛이며, 가시광선이라고 한다.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짧은 전자기파로는 자외선, X선, 감마선 등이 있고,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긴 것으로는 적외선, TV파, AM-FM 라디오파, 이동통신파, 장파 등이 있다.
가시광선 이외의 전자기파들도 눈으로 들어와서 (적어도 그 일부는) 그 자극이 시신경을 타고 뇌로 흘러 들어가겠지만, 두뇌의 시각중추는 이들에게 반응하지 않는다. 자극이 들어와도 그냥 흘려보낸다. 대상 세계 전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시각중추가 반응하게 돼 있는 세계’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볼 수 있는 세계’만을 본다. 생존에 도움이 되는 장치를 습득하고 불필요한 장치를 제거하는 진화과정을 거치면서, 우리의 시각은 빨강에서 보라까지의 가시광선만을 감지할 수 있는 상태에 현재 와 있다.
진화의 과정은 지금도 진행되므로, 우리가 보는 세계와 천만 년 전의 우리 조상이나 천만 년 후의 우리 후손이 보는 세계는 서로 다를 것이다. 식탁에 놓인 빨간 사과를 다른 색으로 볼지 모른다. 감각 기관을 통해 대상을 접촉하고 이 접촉으로 발생한 자극을 신경계가 시각중추에 전달하고 이 자극을 시각중추가 그려낸 것이 빨간 사과인데, 감각 기관과 신경계와 시각중추가 모두 진화과정을 통해 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식탁 위에 놓인 빨간 사과를 본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사건이 아니다. 사과가 지금의 상태로 진화했고 빨간 사과를 지금처럼 감지할 수 있게 내 몸이 진화해 온 생명 진화의 전 역사가 이 한 사건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빨간 사과를 본다는 이 순간의 사건에는 적어도 지구상에서 진행됐던 38억 년 동안의 생명 진화사의 모든 과정이 개입돼 있다.
내가 보는 빨간 사과는 다른 사람이 보는 빨간 사과와 같은가?
세계를 인식하는 사건에 진화가 개입되므로, 서로 다른 진화과정을 거친 두 생명종이 보는 세계는 다를 수밖에 없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동굴에 서식하는 생명체는 시각이 퇴화했고, 단 과일을 먹지 않는 고양이는 단맛을 감지하는 감각을 잃어버렸다. 우리는 진동수가 2만Hz 이상인 초음파를 들을 수 없지만, 박쥐나 돌고래는 이를 활용하여 물체를 감지하거나 서로 소통한다. 코끼리와 사자와 악어와 개구리와 잠자리와 우리가 보는 세계의 모습은 모두 다를 것이다.
그러면 우리 인간이 보는 세계, 우리에게 나타나는 세계는 모두 같을까? 그렇지 않다. 적록색맹이 있는 사람은 빨간색과 녹색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 사람이 보는 빨간색과 녹색 중 적어도 하나는 정상적인 사람이 보는 빨간색이나 녹색과 다를 것이다. 그 사람이 보는 빨간색이나 녹색은 다른 사람이 보는 빨간색과 같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보는 녹색과 같을 수도 있고, 아니면 전혀 다른 색일 수도 있다. 그 사람이 두 색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만 알 뿐, 그 색이 어떤 색인지를 알아내는 방법은 없을 것 같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다. 정상적인 시각 기능을 가진 두 사람은 같은 세상을 보고 있을까? 내가 보는 사과의 빨간색은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보는 사과와 같은 색인가? 두 사람이 보는 색이 같은지를 알아낼 방법이란 없다. 왜 그런가?
내가 보는 그대로 객관세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과가 빨갛게 나에게 나타나는 것은 사과가 빨갛기 때문이 아니다. 그 빨간 색은 나의 시각중추가 그려낸 세계다. 빨간 사과라는 객관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보는 것은 객관세계의 모습이 아니라, 나에게 나타나는 세계이고 내가 그린 세계일 뿐이다. 끝없는 연기의 그물망에 의해 만들어진 모습일 뿐이다.
무아와 연기
우주 전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아주 극히 일부분을 보면서 우리는 그걸 우주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서로 다른 시각의 영상이 중첩돼 나타나는 환영을 보면서 그것이 지금 이 순간의 우주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내 눈앞에 나타난 모습 그대로의 우주는 어디에도 없다. 나에게 나타나는 것은 우주 자체가 아니라 내가 그려낸 우주일 뿐이다.
이는 내 주위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빨간색으로 보이는 사과는 빨갛지 않다. 나에게 푸른색으로 보이는 하늘은 푸르지 않다. 빨간 사과는 빨간 게 아니고, 푸른 하늘은 푸른 게 아니다. 빨간 사과도 없고 푸른 하늘도 없다. 다만, 나에게 빨갛게 나타나고 푸르게 나타날 뿐이다. 단지 그것뿐 다른 무엇이 없다. 오직 연기일 뿐이다. 그래서 무아다.
부처님은 연기에 의해 나타날 뿐인 상想을 신기루와 같다고 하셨고, 금강경에서는 일체의 유위법이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포말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다고 하셨다. <인경人經>에서는 눈과 빛과 안식과 촉의 인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두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눈[眼]과 빛깔[色], 이것이 두 가지다. … 눈과 빛깔을 인연하여 안식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한 것이 촉이며 촉과 함께하여 느낌[受], 생각[想], 의도[思]가 생긴다.”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 탄문(900-975) 탑비. 보물 제106호. 전체 높이 4.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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