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의 세계]
감로탱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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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 2020 년 8 월 [통권 제88호] / / 작성일20-08-28 12:23 / 조회9,172회 / 댓글0건본문
일체의 고혼孤魂을 차별 없이 그리고 남김없이 극락으로 왕생往生시키려는 염원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감로탱화甘露幀畵는 우리나라에만 전해지는 불화다. 수륙재水陸齋나 49재 등과 같이 영가천도靈駕薦度를 목적으로 할 때 걸리는 의식용 불화이기에 영단탱화靈壇幀畵, 하단탱화下壇幀畵라고도 하는데, 사찰의 명부전이나 법당의 좌우에 있는 영단靈壇에 주존으로 봉안된다.
천도를 통해 영가의 극락왕생을 위한 신앙 내용을 도설화圖說化한 것이기에 영단탱화라고도 하는데, 감로탱화라는 명칭은 아귀餓鬼나 지옥의 중생에게 감로미甘露味를 베푼다는 뜻에서 붙여지게 된 것이다. 이 탱화는 목련경신앙目連經信仰, 시아귀신앙施餓鬼信仰, 정토신앙淨土信仰, 인로왕보살신앙引路王菩薩信仰, 지장신앙地藏信仰 등이 복합적으로 반영되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18세기 때의 것 20점 가량이 현재 전해지고 있으며, 16세기 감로탱은 모두 일본에 있고, 17세기의 것은 2점 정도가 알려져 있다. 19·20세기에 조성된 것도 상당수 남아 있다.
사진1. 쌍계사 감로탱.
감로탱화<사진 1>의 대체적인 구성은 다음과 같다. 중앙에 고통 받는 고혼의 상징으로 아귀가 있고 그 아귀에게 성찬聖饌, 즉 감로를 베푸는 의식의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제단祭壇의 향向 왼편에는 법회를 주재하는 스님을 비롯하여 범패梵唄 하는 스님과 북을 치고 바라춤을 추는 스님이 있으며 법회 장면 좌우 주변에는 왕후장상王候將相과 함께 비구, 비구니들도 참여하고 있다. 그 아래에 중생의 여러 가지 죽는 장면들이 풍속도처럼 그려져 있다. 즉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蓄生, 아수라阿修羅, 사람[人], 천天의 욕계欲界가 드라마틱하게 표현되어 있다. 생사윤회生死輪廻하는 욕계의 육도중생六道衆生들에게 ‘시아귀施餓鬼 의식’을 거행하면, 아귀만이 아니라 욕계의 모든 망령들이 극락왕생 혹은 불佛의 세계인 해탈解脫의 경지로 인도되는 단계적 상승과정이 전 화면에 가득히 그려져 있다. 그래서 상단에는 아미타 여래를 비롯한 칠여래七如來와 관음, 지장, 인로왕 보살 등 영혼을 구제하는 모든 불보살들이 모두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감로탱에 범패 즉 범음범패의 장면이 나타나 있어 주목된다. ‘범음’은 여래의 덕상을 말하는 32상 가운데 하나인 부처님의 음성을 말하며 동시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범패는 부처님의 공덕을 찬미하는 노래라는 말이며 그 방법으로는 부처님의 공덕을 직접 찬탄하기도 하고 또는 불제자인 조사들의 어구語句에 곡을 붙여 찬탄 기도하는 음성공양인 것이다. 범패는 세속의 음악이나 춤과는 달리 복잡다단한 외연外緣을 끊게 하고 분주한 내심內心을 가라앉히는 공능이 있다하여 ‘지단지식止斷止息’이라고도 한다. 곧 수행의 일환인 것이다. 이 범패와 작법을‘어산漁山’이라 하고 범패의 대가를‘어장魚丈’이라 한다.
사진 2. 쌍계사 감로탱 부분도.
우리나라 범패는 신라의 진감국사(774-850)가 애장왕 5년(804) 31세 때 구법차 당나라에 건너가 마조도일의 제자인 창주신감의 법을 잇고 수행하는 과정에 배우고 귀국, 하동 쌍계사의 전신인 옥천사에서 제자에게 전수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범패는 면면이 이어져 내려와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1987년 ‘영산재’라는 명칭으로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었고, 200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재로 등재되었다. <사진 1>의 쌍계사 감로탱을 보면 향向 좌측에 재의식을 진행하는 작법승중作法僧衆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즉 제단의 왼쪽에 가설장막을 두르고 범패梵唄와 작법作法 의식이 거행되고 있는데, 제상祭床 가까이에는 법주法主가 의자에 앉아 있고<사진 2> 그 주위에 승려들이 의식을 거행하고 있다. 여기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작법무作法舞<사진 3>의 모습이다.
작법무는 의식에 있어 예배의 대상을 찬탄하고, 기원의 성취를 발원하고, 이에 따르는 법열法悅을 나타내는 것으로 바라무, 착복무, 타주무, 법고무를 말한다. 바라무는 법열에나 기원祈願을 나타내는 율동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백장청규』에 의하면 불전佛前에 향을 올릴 때, 설법할 때, 다비의식, 주지 진산식 등에 사용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중국 선종에 수용된 것이 한국불교에도 수용된 것이다. 착복무는 권공의식에서 거행하는 작법으로 육수가사六銖袈裟를 수하고 고깔을 쓴 승려에 의해 거행된다. 육수가사는 착복무에서 수하는 가사와 장삼이 곱고 아름답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머리에 쓰는 고깔은 불탑을 상징하므로 고깔을 쓰는 것은 불보와 법보를 정대하고 있음을 말한다.
사진 4. 영산재 의식, 타주무.
타주무는 ‘식당작법’시에 육수가사를 수하고 고깔을 쓴 2인의 승려에 의해 거행되는데 이때 거행하는 승려를 타주라고 일컫는다. 식당작법은 공양에 동참한 대중은 물론 온 우주 법계의 중생과 더불어 행하는 법공양으로 구경에는 피안에 이르러 성불을 이루자는 의식이다. 법고무는 어산에서 울리는 태징에 맞추어 북을 울리면서 행하는데, 이는 법고무를 행하기 전까지의 의식이 원만히 성취되었음과 이어 다음 의식으로 이어짐을, 육도의 중생이 함께하는 환희를 율동으로 묘사한 것이다. 감로탱화 속의 이런 모습은 현재의 영산재 시연<사진 4, 타주무>, <사진 5, 법고무>에서도 동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놀라운 일이다.
이와 같은 온전한 전승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는 단서가 된 것임은 말 할 나위가 없겠다. 그리고 작법승중 앞의 경상經床에는 『법화경』 한 질이 든 법화경함法華經函이 놓여 있으며 또 하나의 경상 위에는 『운수집雲水集』, 『중예문中禮文』, 『결수문結手文』, 『어산집魚山集』 등으로 표기된 경책이 놓여 있어, 의식 집전 때 어떤 경이나 의문儀文 등이 사용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렇게 여법如法하게 재를 올려 망자를 왕생극락케 하기 위해서는 먼저 도량을 갖가지로 장엄하고 육법공양을 올리며 식당작법에 필요한 공양물을 함께 준비하며, 영단에도 제수祭需를 마련하여 명복을 발원하는 절차를 빠짐없이 준비한다.
사진 5. 영산재 의식, 법고무.
이처럼 여러 도상이 복합적으로 배치된 것이 감로탱화이다. 그래서 여러 불화들을 회통시키는 종합적인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상단의 불보살의 세계는 무색계無色界를, 중단의 시식단施食壇과 작법승중의 의례도에 보이는 비구·비구니·사미·사미니 등은 청정한 마음을 지닌 스님들과 그 세계, 즉 성문·연각 등이 머무는 색계色界로 볼 수 있다. 하단의 여러 장면들은 욕계欲界의 육도六道를 나타낸다고 해석할 수 있다. 감로탱화를 삼계三界를 표현한 우리나라의 독특한 ‘종합 불화’로 해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방세계十方世界의 고통 받는 모든 중생이 재齋의식을 통해 극락에 태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감로탱화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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