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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 그 숲을 걷다]
종경록에서 말하는 거울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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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  2016 년 1 월 [통권 제33호]  /     /  작성일20-08-10 10:13  /   조회5,97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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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 91쪽에 나오는 10권-12판의 제목은 ‘종경록에서 거울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부분은 ‘종경록(宗鏡錄)’의 제목에서 ‘거울 경(鏡)’을 썼는데, 그 거울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법상종(法相宗)과 법성종(法性宗), 제8식과 여래장(如來藏)과 같은 매우 전문적인 불교 용어가 등장하는데, 일단 이 용어는 이후에 설명하기로 하고, 우선 ‘거울’에 대해 좀 더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서 ‘거울’은 말 그대로 우리가 매일 보는 거울을 가리킨다. 『명추회요』에는 나오지 않지만, 『종경록』 10권을 보면 중국 당나라의 제2대 황제였던 태종(太宗, 599-649)의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온다.

 


 

 

짐이 들으니, 구리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바르게 할 수 있고, 옛날 일을 거울로 삼으면 역사의 흥망을 알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일의 득실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당나라는 지금부터 1,400년 전에 세워졌는데, 그 당시는 구리를 가지고 거울을 만들었다. 구리거울의 용도는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거울처럼 옷이나 관을 바르게 입고 썼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구리거울은 사람의 외형만 비추는 것이므로, 사람과 사건의 복잡한 이면을 비출 수는 없다.

 

그래서 나온 것이 옛날 일을 거울로 삼는 것이다. 이는 요즘 말로 하자면 지난 역사를 배우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과거 역사의 흥망성쇠를 배워서 그것을 관통하는 원리를 알게 된다면 지금 살고 있는 현재나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사태에 보다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도덕경』의 저자로 알려진 노자(老子)도 쇠퇴해가던 주(周)나라의 도서관에서 역사책을 담당하던 관리였다고 한다. 아마 그는 역사책을 보면서 많은 국가가 흥기하거나 쇠약해지는 원리를 파악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현재 일의 득실을 파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태종은 사람을 거울로 삼아보라고 말한다. 여기서 사람은 타인을 가리킨다. 사람은 사회를 이루면서 살기 때문에 그 속에는 자연히 갈등과 모순이 생기게 된다. 이때 타인에게 자신의 행동을 비춰보면서 자신의 행동을 조정해가는 것이 바로 사람을 거울로 삼는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유가(儒家)적 사고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논어』에 보면 “자신이 바라지 않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말라.(己所不欲勿施於人)”는 구절이 나온다.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 자신이 하고 싶어 하지 않은 일은 대개 타인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처럼 자신의 욕구를 타인에게 비춰서 조정해갈 때 집단의 갈등이 해소될 수 있는 하나의 길이 열릴 수 있다. 한 사람이 타인에게 흔쾌히 받아들여질 수 있는 행동을 한다면 그 사람이 행하고자 하는 일의 득실은 보다 쉽게 판명될 수 있을 것이다.

 

당 태종이 말한 ‘구리거울’과 ‘옛날 일의 거울’과 ‘사람의 거울’의 이 세 가지는 비추는 범위나 용도가 각기 다르다. 이들 거울로는 사람의 외면과 역사의 흥망과 일의 득실을 비춰볼 수 있으므로, 이러한 거울들은 실제 현실의 삶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불교의 연수 스님이 제시하는 ‘거울’은 어떤 것인가? 스님은 단적으로 ‘마음의 거울’을 제시하는데, 이 거울의 다른 이름이 바로 ‘종경(宗鏡)’이다.

 

지금은 마음을 거울로 삼으니 법계(法界)를 비출 수 있다. 또 보통 거울은 단지 외형만 비추고 마음은 비추지 못하며, 단지 생멸의 세계만 비추고 무생(無生)의 세계는 비추지 못하며, 단지 세간만 비추고 출세간은 비추지 못하며, 형태 있는 것만 비추고 형태 없는 것은 비추지 못한다. 그러나 저 마음의 거울은 본성의 경지를 꿰뚫고, 마음의 근원을 철저히 비추고, 무생을 두루 깨닫고, 진제(眞諦)와 속제(俗諦)에 널리 통한다.

 

이는 『종경록』에서 연수 스님이 그냥 거울과 ‘마음의 거울’이 비추는 범위와 작용의 차이를 설명한 내용이다. 일단 마음의 거울은 비추는 대상의 크기가 한정이 없다. 마음 거울로 비추는 ‘법계’라는 것은 세계의 모든 것을 총칭하는 말이므로, 앞에서 말한 사람의 외형, 역사의 흥망, 일의 득실 등의 생멸의 세계를 비출 뿐 아니라 생멸이 없는 깨달음의 세계까지도 비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의 거울은 유가적인 사회 규범까지도 포함하는 보다 넓은 거울이라고 볼 수 있다.

 

불교 용어 가운데 가장 널리 쓰이는 말이 바로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이 마음에 대해 불교의 오랜 역사 가운데서 가장 고심했던 이들이 바로 글의 첫머리에서 말한 법상종과 법성종의 스님들이다. 법상종은 일체법의 상(相), 곧 현상에 대해 보다 깊이 연구하던 이들이고, 법성종은 일체법의 성(性), 곧 본성에 보다 깊은 관심을 두었던 이들이다. 이러한 관심의 차이는 마음의 정체에 대해서도 서로 조금씩 다른 차이를 생기게 했다. 그것이 바로 제8식과 여래장이다. 이와 관련하여 『명추회요』 91쪽의 글을 한 번 인용해 보자.

 

【물음】 지금 『종경록』에서 거울로 내용을 삼은 것은 법상종(法相宗)의 입장에서 세운 것인가, 법성종(法性宗)의 입장에서 세운 것인가?

 

【답함】 만약 ‘인과 연이 서로 의지하는 문’의 입장에 의거하면 다음과 같다. 법상종은 본식(本識)으로 거울을 삼는다. 예를 들면 『능가경』(楞伽經)』에서 “비유하면 마치 밝은 거울이 갖가지 색상(色像)을 나타내는 것처럼 현식(現識)이 12처(十二處)를 나타내는 것도 이와 같다.”고 하였으니, 현식은 제8식(第八識)이다. 법성종은 여래장(如來藏)으로 거울을 삼는다. 예를 들어 『기신론(起信論)』에서는 “다시 말해서 각체(覺體)의 상(相)이라는 것은 네 가지 대의(大義)가 있으니 허공과 같으며, 마치 깨끗한 거울과 같다.”고 하였다.

 

이를 보면 마음에 대해 법상종에서는 제8식을 제시하고, 법성종에서는 여래장을 제시함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법상종은 유식학파(唯識學派)를 가리키는데, 이들은 인간의 의식을 8가지로 분류하였다. 그 중 앞의 여섯 가지는 우리가 보통 6식(六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한 6식 아래 끊임없이 자아를 생각하는 마음의 작용을 제7식이라고 하고, 제7식의 아래 심층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 제8식이 있어 이 세계의 근본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제8식은 인과 연에 따라 끊임없이 생멸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반면 법성종에서 제시하는 여래장은 말 그대로 ‘여래를 감추고 있는 창고’이다. 이는 중생의 마음에 여래와 같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진실이 간직되어 있지만, 아직은 환히 드러나지 않고 감춰져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그러므로 법상종과 법성종의 마음 이론의 차이는 그 바탕이 생멸의 것인지 아니면 불생불멸의 것인지에 놓여 있다.

 

연수 스님은 이 두 가지의 거울 가운데 인(因)과 연(緣)이 서로 의지하는 현상의 세계를 비춰볼 때는 법상종의 본식의 거울을 사용하고, 깨달음의 세계를 비춰볼 때는 법성종의 여래장의 거울을 사용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고 보고 있다. 또한 스님은 제8식의 거울을 여래장의 거울 속에 포함시키려고 노력하는데, 이 논의는 꽤 복잡하므로 다음 기회에 한 번 설명해 보고자 한다.

 

한편 성철 스님의 『선문정로』에는 ‘아뢰야식에 있는 미세한 3세(三細)의 번뇌를 끊어버리면 진여자성이 곧 현현한다.’거나 ‘10지 보살을 넘은 등각에서 미세망상이 완전히 끊어져 구경각에 이르러야 견성이다.’는 것과 같은 표현이 자주 보이는데, 이를 보면 성철 스님께서도 연수 스님과 같이 여래장의 거울을 중심으로 삼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백일법문』 등에는 유식학의 논의 역시 자주 나오므로, 마음의 다양한 작용을 비춰보는 데 있어서는 성철 스님께서 법상종, 곧 유식학의 거울 역시 적극 활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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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영명연수 『종경록』의 일심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의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불교전서>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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