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의 세계]
금강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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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자 / 2020 년 7 월 [통권 제87호] / / 작성일20-07-20 14:44 / 조회10,724회 / 댓글0건본문
부처님 호위
현재 파키스탄은 부처님 당시 북인도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1세기에서 4세기에 걸쳐 간다라미술이 꽃피었다. 알렉산더(기원전 365~기원전 323년)의 동방 원정으로 이곳에 전파된 그리스 문화에 기반을 둔 헬레니즘은 간다라 불상에 그리스 신의 모습을 투영시켰다. 간다라 지역에 이식된 헬레니즘의 영향은 부처님을 호위하는 금강역사(金剛力士, 바즈라파니 Vajrapani)에게도 반영되었다. 바로 그리스 신 가운데 힘의 상징인 헤라클레스가 간다라 불전도 속에서 부처님의 호위 무사인 금강역사로 모습을 바꾼 것이다(사진 1).
사진3 . 출가, 간다라(2~3세기), 콜카타 인도박물관.
사진1 . 금강저와 불자를 들고 부처님을 호위하는 금강역사, 간다라(1~2세기), 독일 베를린인도박물관.
금강역사는 집금강신執金剛神·밀적금강密迹金剛·금강수金剛手·집금강執金剛·금강밀적수金剛密迹首·이왕二王·인왕仁王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며, 손에 금강저를 들고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밀적은 항상 부처님을 모시고 부처님의 비밀스러운 일들을 기억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부처님의 3밀密을 알고 자취를 드리워 신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집금강신執金剛神은 바즈라파니Vajrapāṇi를 한역한 것으로 ‘금강저Vajra를 손에 든 신’이라는 뜻이다. <불본행경>에는 금강역사의 명칭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즉 서품인 「인연품」에서는 금강역사金剛力士․금강신金剛神으로, 「탄무위품嘆無爲品」에서는 천목집금강千目執金剛으로, 「팔왕분사리품」에서는 밀적역사로 표기되어 있다. <불본행경>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들은 모두 금강역사의 다른 표현으로 생각된다.
금강역사의 역할
여러 경전에 나타난 금강역사의 역할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부처님을 항상 옆에서 모시는 호위자이며 다른 하나는 비법非法을 저지르는 자들을 타파하는 역할이다. 이때 그는 군중들의 눈에는 띄지 않고 부처님과 그 반대자의 눈에만 보인다. <불설수능엄삼매경> 을 비롯한 많은 경전에서는 백천의 보이지 않는[밀적密迹] 금강역사가 항상 따라다니며 보호하고 모신다고 기록하고 있다. 초기불교경전에서 금강역사의 역할은 이교도에 대한 교화와 악룡 조복 등에 있다. 이들 경전에서 금강역사는 이교도와 악룡에게 분노하거나 위협하고, 그들로부터 부처님과 그 가르침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간다라 불전도에 나타난 금강역사를 통해 초기 불교에서 금강역사의 역할을 알 수 있다. 부처님의 호위자로서 동행한 금강역사는 간다라의 ‘연등불수기’ 장면부터 등장한다(사진 2). 그러나 ‘탄생’을 비롯한 출가 이전의 세속 생활에는 제석천이 중요한 역할로 등장하기 때문에 제석천의 금강저를 지물로 선택한 금강역사는 표현되지 않는다.
사진2 . 연등부처님으로부터 부처님이 될 것이라는 수기를 받는 장면, 간다라(2~3세기), 시카고박물관.
전생이야기에 속하는 ‘연등불수기’에 금강역사가 등장하는 것은 부처님의 과거 보살행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연등불수기’ 역시 간다라 지역을 기반으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금강역사가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간다라 불전도에서 금강역사는 부처님의 ‘출가’ 장면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해 부처님의 호위자로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사진 3). 특히 ‘열반’ 장면에서는 부처님의 열반을 애통해 하는 금강역사를 볼 수 있는데 이때의 그는 금강저를 땅에 떨어뜨리고 바닥에 주저앉은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간다라와 금강역사
금강역사는 다른 지역의 부처님의 생애를 표현한 불전 미술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아쇼카 아바다나阿育王傳> 같은 문헌에서 부처님이 전설적으로 여러 곳을 순력巡歷하는 이야기를 서술하는 가운데, 인도 본토에서는 아난이 부처님을 시봉侍奉하다가 부처님께서 서북 지방[간다라]으로 가면서 금강역사로 시자가 바뀐다는 점이다. 그 의미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간다라에서 금강역사가 부처님의 시자로서 그만큼 중요시되었음을 미술과 문헌에서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
근본설일체유부율이 간다라 불전 미술과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약사> 제9권의 내용이다. 여기서는 금강수야차金剛手藥叉로 등장한다. 부처님께서 북천축에서 조복시킬 일을 완수하기 위해 아난 대신 금강수야차를 동반한다는 사실이다. <디가니카야>와 <장아함경>에서 바라문 암몰라자를 위협하기 위해 금강역사가 금강저를 보인 것과 달리 주로 ‘용’을 항복시키고 있다. 중인도에서는 바라문이 주된 교화 대상이었다면 서북 인도인 간다라에서는 토속 신을 상징하는 용을 항복시키는 것이 주 임무 가운데 하나였음을 암시하고 있다(사진 4).
사진4 . 아팔랄라 용왕을 물리치는 금강역사, 간다라(2~3세기), 파키스탄 페샤와르박물관.
금강역사의 지물
간다라 불전도 속의 다양한 금강역사의 모습은 세 가지 설로 압축된다. 첫째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헤라클레스 기원설이고(사진 1), 둘째는 웨다 신인 인드라(Indra, 제석천) 기원설이며, 셋째는 비非아리아 기원의 약샤Yaksha 기원설이다(사진 3). 기원이 어디에 있든 모두 강력한 힘을 가지며 금강저를 들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간다라 불전도 속의 금강역사는 항상 부처님 곁에 서 있는데 한 손에 위아래가 넓고 가운데가 좁은 금강저를 들고 있다.
이때 금강역사의 역할은 부처님을 호위하는 것이 임무이지만 불자拂子를 갖고 있는 금강역사의 임무는 공손하고 순종적인 종자從者의 표현이라고 보는 연구도 있다(사진 1). 또한 금강역사의 얼굴과 착의着衣는 다양하기 때문에 그 역할 역시 매우 다양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금강저는 고대 인도의 신인 인드라Indra 즉 제석천의 번개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러다가 점차 여러 신과 역사가 지니는 무기를 일컫게 되었다. 금강저의 산스크리트는 바즈라Vajra로, 소리를 따서 발절라跋折羅 또는 박일라縛日羅 등으로 번역되었다. 그 외에도 곤봉, 다이야몬드金剛 등으로도 번역되었다. 그러나 간다라의 예술가들은 번개 또는 곤봉의 의미를 선택했다고 한다.
번개는 그리스의 제우스신의 특징적인 속성이기 때문에 금강역사는 자주 제우스와 동일시된다. 곤봉gada은 헤라클레스 무기로 유명하다. 헤라클레스는 승리자를 의미하는 칼리니코스Kallinikos라는 칭호를 가진 영웅이다. 그의 12가지 공업功業은 명부의 신들에게 속한 괴수를 정복하고 포획하는 것이었다. 특히 네메아의 사자는 죽음과 명계冥界의 화신이었기 때문에 그는 죽음의 공포를 파괴하고 인간의 구제를 약속하는 자가 되었다(사진 5). 부처님 역시 번뇌를 소멸시킨 승리자이기 때문에 헤라클레스와 부처님 그리고 금강역사는 간다라 불전도 속에서 서로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으로 여겨진다.
사진5 . 네메아 산의 사자를 죽이는 헬라클레스, 간다라(1세기), 메트로폴리탄박물관.
금강저를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즉 금강저는 부처님의 비밀스런 힘의 상징이고 종자從者인 금강역사는 주인의 ‘상징’을 가진 자라는 의미이다. 금강저는 만물을 파괴할 수 있다는 성질 때문에 순수한 절대 또는 최고의 지혜의 힘인 진실을 상징하게 되었다. 또한 모든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에 밀교에서는 마음의 번뇌를 없애주는 상징적인 의미로 수용되었고 수행법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금강저에 대한 불교 경전의 기록으로는 중국 오나라의 지겸 스님이 3세기 경에 번역한 <수마제녀경>에 처음으로 밀적역사의 지물로 등장한다. 서진시대에 번역된 <법구비유경>에서는 불을 켜는 발화發火의 용구로 금강저가 기록되어 있으며, 법현 스님의 인도 구법 순례기인 <불국기>와 현장 스님의 <대당서역기>에도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유행한 금강저의 형태는 중간 부분이 잘룩하게 좁혀진 손잡이로 되어 있고 양 끝은 창끝처럼 길게 돌출되어 있다. 그러나 고대 인도나 간다라에서 제석천이나 금강역사의 지물로 등장하는 금강저의 형태는 우리나라의 것과는 다르게 위아래가 넓고 가운데가 좁은 형태를 하고 경우가 많다(사진 6).
사진6 . 보리수 아래로 향하는 부처님께 길상초를 받치는 솟띠야, 간다라(1~2세기), 페샤와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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