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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해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축하의 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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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  2013 년 5 월 [통권 제1호]  /     /  작성일20-06-29 14:58  /   조회10,38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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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의 시대적 배경


‘백일법문’은 퇴옹성철 스님께서 해인총림 방장에 취임했던 1967년 12월 4일부터 1968년 2월 18일까지 약 석 달에 걸쳐 진행된 법문을 말한다. 백일법문이라는 명칭도 법문이 백일 가까이 설해진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백고좌법회를 통해 수많은 선지식이 동원되어 진행된 백일 간의 법회는 예로부터 행해져 왔지만 한 스님이 백일에 걸쳐 대중설법을 진행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렇다면 성철 스님은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은 장광설(長廣舌)을 설파하셨을까?

 

한 인물의 삶과 사상은 당대의 시대적 요청에 대한 고뇌이자 응답이다. 백일법문의 내용 또한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시대적 맥락을 간과한 채 문자로만 이해하려고 하면 역사성이 간과되기 때문이다. 반면 역사적 맥락만을 고집한다면 시공을 초월하는 보편적 사상이 될 수 없다. 역사적 공간이라는 특수성과 사상적 보편성이 담보될 때 비로소 하나의 사상으로 탄생할 수 있다. 백일법문 역시 그것을 잉태한 시대적 맥락 속에서 읽혀져야 한다.

 

해방 이후 한국불교는 자유의 기쁨을 누릴 여유도 없이 곧이어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수많은 사찰이 파괴되면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혼란은 전쟁이 끝난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전후 불교계에 불어 닥친 정화(淨化)의 광풍은 30년 이상 분쟁으로 치닫는 맹렬한 불길이 되었기 때문이다. 승가는 순교항쟁을 결의하고, 신도들은 총궐기를 선언했다. 그 과정에서 단식, 할복, 분신, 데모, 난투극, 소송 등 모든 방법이 동원되었다. 이 같은 분란 속에서 갈등의 골은 깊어갔으며, 서로를 질시하고 배척하는 비극이 연출되었다.

 

백일법문은 이 같은 정화불사가 소강국면을 보이던 1960년대 말에 설해졌다. 한바탕 광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단비처럼 쏟아진 법문은 혼란으로 방황하는 납자들에게 출가의 바른 길을 되새기게 하는 경종이 되었고, 분규에 실망한 불자들에게는 정법에 대한 믿음을 회복시켜주는 감로법이 되었다. 나아가 분단과 이데올로기적 대립 속에 신음하던 국민들에게 스님의 중도(中道) 법문은 이분법적 가치관이 초래한 상처를 치유하는 양약이 되었다.

 

의제의 전환과 내적 정화

 

사상은 한 시대의 산물이지만 그것은 다시 당대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좌우하고, 그들의 삶과 행동을 결정짓는다. 1960년대 비구들의 정신세계를 결정지은 것은 백일법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성철 스님은 백일법문을 통해 출가의 본분사(本分事)가 무엇인지를 반문하고, 구경각(究竟覺)과 돈오돈수(頓悟頓修)와 같은 불법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사자후처럼 토해냈다.

 

그것은 불교를 떠받치는 근본이었지만 정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잃어버린 가치였다. 승가본연의 수행은 뒷전으로 미뤄졌으며, 승속을 막론하고 갈등의 현장으로 달려가야 했던 것이 당시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불교의 이상과 승가의 본래적 과제는 약화된 반면 투쟁과 승리가 승가의 정신을 지배하는 담론이 되었다.

 

바로 그 때 성철 스님은 “참다운 출가정신과 불교의 궁극적 목표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의제를 제기했다. 성철 스님의 이 같은 질문은 승가를 지배하고 있던 담론을 외적 정화에서 내적 성찰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했다. 따라서 백일법문은 승가의식을 지배하고 있던 정화라는 담론을 넘어 새로운 의제를 설정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할 수 있다. 해인총림 방장에 취임한 스님이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한 것이 수행풍토 진작이었다는 점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을 뒷받침해 준다. 스님은 당시 불교계가 몰입해 왔던 외적 정화에서 수행을 중심 과제로 하는 내적 정화로 인식의 방향을 전환시켰던 것이다.

 

물론 왜색불교를 청산하는 것은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바로 잡기 위한 필연적 과정이었다. 하지만 삼보정재를 소진하며 진행된 분쟁은 불교의 쇠퇴와 승가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교단의 사회적 고립을 자초하였다. 따라서 정화에 몰두하는 과정에서 내적 성숙은 자연히 공백으로 남겨질 수밖에 없었다. 백일법문의 진지한 문제의식과 심오한 사상은 내면적 공백을 메우는 자양분이 되기에 충분했다.

 

중도법문, 분열과 대립을 치유하는 가르침

 

백일법문은 방대한 불교사상을 섭렵하고 있지만 핵심 내용은 중도(中道) 사상으로 압축된다. 성철 스님은 초기불교에서 시작하여 중관, 유식은 물론 천태와 화엄을 거쳐 선종에 이르는 전체 불교사상의 핵심을 백일법문에 담아냈다. 그리고 그 모든 불교사상의 핵심은 중도임을 천명했다. 불교의 핵심은 쌍차쌍조(雙遮雙照)를 통해 모든 극단과 변견을 초극해 가는 중도라는 것이다.

 

한국불교사를 통털어 중도사상을 이렇게 강조한 인물은 일찍이 없었다. 이처럼 중도를 강조한 것은 그것이 불교의 핵심사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대적 맥락과도 결코 무관치 않을 것이다. 스님은 중도사상을 통해 정화의 과정에서 증폭되었던 갈등과 대립을 치유하는 처방으로 삼고자 했음을 읽을 수 있다.

백일법문의 중도설법은 종단적 상황에만 적용되는 가르침은 아니었다. 당시 한국사회 역시 심각한 분열과 갈등으로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좌익과 우익이라는 이분법적 가치관 속에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렀고, 민족과 국가, 사회와 가족을 갈라놓은 대립의 상처는 깊고 고통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성철 스님은 그와 같은 극단적 대립과 갈등이 빚은 아픔을 치유할 양약으로 중도의 원리를 제시했던 것이다.

 

백일법문은 차이를 부각하여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두 극단을 떠나고 모든 차별과 배제를 넘어서는 원융무애한 법성(法性)의 사유와 삶을 강조했다. 물론 백일법문은 철저히 본분사의 관점에서 중도를 논했고, 중생고의 근원이 차별변견이기 때문에 중도가 강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당대 불교계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소할 근원적인 해답을 중도에서 찾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종단 내적으로나 민족적 차원으로나 가장 심각한 병폐는 극단적 사유와 갈등이었던 만큼 중도사상을 강조한 것은 시대적 상황과 결코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백일이라는 숫자의 두 의미

 

우리에게 백일(百日)이라는 숫자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고난을 이겨낸 기쁨을 자축하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고난과 역경을 감내하기 위한 각오와 다짐의 의미다. 백일잔치를 여는 것이 전자의 경우라면 백일기도를 하는 것은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유아사망률이 높던 시절 아이가 백일을 맞이하는 것은 생사를 가르는 고비를 넘긴 것이었음으로 백일잔치는 축하와 기쁨을 나누는 것이었다. 반대로 백일기도는 오늘의 역경을 극복하고 발전된 미래를 위해 자기희생을 각오하는 의례이다. 그러므로 전자가 과거에 대한 기념이라면 후자는 다가올 미래를 위한 각오와 다짐을 의미한다.

 

백일법문 역시 이런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위기를 넘긴 것에 대한 기념이고, 다른 하나는 신발 끈 고쳐 매고 다시 내일을 향해 매진하겠다는 다짐과 각오이다. 백일법문이 설해진 1960년대는 근대불교사에서 볼 때 마치 아이가 백일을 맞이하는 것처럼 불교가 절체절명의 고비를 넘긴 시기였다. 밖으로는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을 이겨낸 불교계가 다시 교단의 대열을 정비할 때였고, 안으로는 치열했던 정화의 소용돌이가 정리 수순으로 접어들던 시기였다. 이런 맥락에서 백일법문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불교계가 마련한 축하의 법석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중대한 고비를 넘은 것은 사실이지만 상황이 종료된 것은 아니었다. 교단 안팎으로 진행된 분열과 갈등으로 빚어진 상처를 봉합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할 중차대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백일법문은 백일치성을 드리는 것과 같이 새로운 출발을 위한 각오와 다짐이라는 의미를 띤다. 백일법문으로부터 한국불교는 스스로를 점검하고, 불교의 미래를 열어갈 새로운 당간지주를 세웠기 때문이다. 결국 백일법문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 온 불교사를 기념하고, 새로운 미래를 향한 다짐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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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성균관대 초빙교수.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선의 생태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연구교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불교평론> 편집위원 등을 거쳐 현재 성철사상연구원 연학실장으로 있다. 저서로 『선의 생태철학』 등이 있으며 포교 사이트 www.buruna.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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