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불교]
유무有無 중도 | 쌍생성 쌍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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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진 / 2021 년 6 월 [통권 제98호] / / 작성일21-06-04 14:41 / 조회6,342회 / 댓글0건본문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은 오늘날 널리 쓰이는 진단 의료 장비다. 이를 이용하여 포도당이나 아미노산 대사가 활발한 영역의 위치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장 많이 쓰이는 F-18 FDG(fluorodeoxyglucose)는 포도당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면서 방사성 동위원소 F-18을 포함하고 있다. 이를 주사하면, 이 물질은 포도당 대사가 활발한 영역에 모이게 된다. 포도당 대사가 활발한 종양이 있다면, 그 종양이 있는 지점에 이 물질이 모인다.
방사성 동위원소는 붕괴하면서 하나의 양전자positron를 방출한다. 양전자는 전자를 만나면, 두 개의 감마선을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내뿜으면서 두 입자가 동시에 사라진다. 이를 쌍소멸pair annihilation이라고 한다. 양전자는 다른 전자를 만나 함께 사라질 때까지 기껏해야 수 mm 정도를 이동한다. 그러므로 감마선을 여러 각도에서 검출하면 양전자가 방출된 위치를 알 수 있고, 이로써 종양의 위치와 크기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상대론적 양자역학의 진공
쌍소멸을 설명하는 이론이 상대론적 양자역학relativistic quantum mechanics이다. 이는 특수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결합한 이론이다. 상대론적 양자역학의 디랙Dirac 방정식은 중요한 물리 현상 여럿을 예측하고 기술한다. 여기서는 진공vacuum에 대해서만 살펴보겠다.
상대론적 양자역학에서 진공이란 어떤 에너지 준위 이하의 상태에 입자가 꽉 차 있는 상태다. 그러므로 진공이란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입자들로 가득 찬 상태다. 이는 어항 속의 물에 비유된다. 물속에 공기 방울이 없이 물이 꽉 차 있으면, 어항 속의 물고기는 아무것도 없다고 느낄 것이다. 오히려 그 물속에 공기 방울이 있으면, 즉 물의 없음이 있으면 무언가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론적 양자역학의 진공이 이와 같다. 어떤 에너지 이하의 모든 상태가 완전히 차 있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이를 진공이라고 한다.
변하지 않는 빛의 속도
많은 물리학자가 빛의 속도가 달라지는 것을 관측하려고 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이 차이가 관측되지 않았다. 이는 관측자의 운동에 상관없이 광속이 일정하다는 것이다. 빠르게 회전하는 이중성double stars의 두 별에서 오는 빛의 속도도 같았다. 이는 광원의 운동에 상관없이 광속이 일정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광속은 관측자나 광원의 운동과 상관없이 언제나 일정하다. 문제는 광속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이 관측결과가 갈릴레이의 상대론이 예상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갈릴레이의 상대론을 지지한다면, 광속의 차이가 관측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이를 위해 많은 물리학자가 여러 시도를 했지만,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것은 없었다
상대성 원리와 광속도 불변
당시의 대다수 물리학자와 달리, 아인슈타인은 상당히 다른 생각을 하면서 이 문제에 접근했다. 그는 보편적 물리법칙general law은 언제나 같다고 생각했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상대성 원리principle of relativity라고 했다. 자연 현상을 지배하는 보편적인 물리법칙은 관측자나 관측 대상의 운동 상태에 따라 달라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강한 신념이었다.
그는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것을 아주 자연스러운 보편 법칙으로 받아들였다. 이를 지지해주는 근거는 전자기학과 광학에 있었다. 오늘날의 교과서에선 이를 광속 불변의 가설이라고 하지만, 당시엔 파격적인 것이었다. 이를 받아들이면 아주 당연해 보이는 갈릴레이의 상대론과 결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광속 불변의 가설을 수용하면서 전적으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게 된다.
쌍생성과 쌍소멸
전자에 관해 생각한다면, 어떤 에너지 이하의 모든 상태가 전자로 꽉 찬 충만의 상태가 진공이다. 진공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므로 쌍생성pair creation과 쌍소멸이 가능해진다. 물이 가득 찬 어항 속의 물방울 하나를 물 위로 들어 올린다고 하자. 그러면 물고기는 물속에 나타난 물방울의 없음과 물 밖에 나타난 물방울의 있음을 동시에 보게 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진공에서 물방울의 없음과 있음이 동시에 생겨난다. 쌍생성이다.
이 물방울을 전자라고 하자. 전자는 음의 전기를 띄므로, 전자의 없음인 물방울의 없음은 양의 전기를 띄게 된다. 이것이 양전자다. 양전자의 질량은 전자와 같지만, 전자와 달리 양의 전기를 갖는다. 아무것도 없던 진공에서 전자의 없음과 전자의 있음이 동시에 출현한다. 양전자와 전자가 동시에 생겨난다. 쌍생성이다.
물속의 물방울을 물 밖으로 들어 올리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 에너지를 감마선이 공급한다. 적절한 조건이 성립하면, 감마선이 사라지면서 입자인 전자와 반입자antiparticle인 양전자가 동시에 쌍으로 생성된다. 이를 쌍생성이라 한다. 이와 반대되는 과정이 쌍소멸이다. 반입자인 양전자가 입자인 전자를 만나면, 두 입자가 동시에 사라지면서 두 줄기의 감마선이 생겨난다. 이를 쌍소멸이라 한다.
에너지와 물질
특수상대성 이론의 식 E=mc2은 일반인에게도 친숙하다. 정지한 물체의 에너지 E는 정지한 물체의 질량 m에 광속도 c의 제곱을 곱한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에 의하면 질량과 에너지는 상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질량과 에너지가 같다. 뉴턴역학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식은 핵분열이나 핵융합에서도 확인되지만, 쌍생성과 쌍소멸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자와 양전자는 질량이 같으므로, 정지질량에너지도 같다. E=mc2으로 계산하면, 그 값은 511keV다. 쌍생성으로 두 입자를 생성하려면 감마선의 에너지가 1,022keV 보다 커야 한다. 충분한 에너지만 있으면 입자와 반입자를 동시에 만들어낼 수 있다. 쌍생성은 빛 에너지가 물질의 질량으로 변하는 과정이다. 이와 반대로, 쌍소멸에서는 전자와 양전자가 동시에 사라지면서 두 줄기의 감마선이 방출된다. 방출되는 감마선의 에너지는 전자나 양전자의 정지질량에너지인 511keV다. 쌍소멸은 물질의 질량이 빛 에너지로 변하는 과정이다.
포괄적 세계 이해의 과정
과학의 발전은 세계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이다. 이전에는 서로 관련이 없다고 여겨졌던 수많은 존재와 현상을 서로 연관된 것으로 이해하게 한다. 가장 극적인 예는 생명세계일 것이다. 현재 지구상에는 수백만 종의 생명이 존재한다. 그들의 모습이나 생활 방식은 다양하고 다르므로 그들을 연결하는 거대한 틀이 있다고 믿기 어렵다. 그러나 진화생물학은 그들 모두가 하나의 공통의 조상에서 비롯됐으며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깝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물리학에서도 그렇다. 뉴턴 이전에는 천상과 지상이 서로 다른 두 세계였다. 조화로운 천상과 혼란스러운 지상은 분리돼 있었다. 그러나 만유인력의 법칙을 비롯한 뉴턴역학은 분리된 두 세계에 존재했던 사과와 달을 하나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포괄적 이해의 틀을 제공했다.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주울Joule은 이전에는 서로 다르다고 생각했던 열에너지와 역학적 에너지가 같다는 것을 보여줬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한 걸음 더 나간다. 특수상대성 이론의 중요한 결론인 E=mc2은 질량과 에너지가 같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질량과 에너지를 하나의 물리량으로 통합했다. 물질의 있음과 없음을 통합적으로 보는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며, 아마도 세계에 대한 포괄적 이해의 궁극적 지점일 것이다. 이는 핵분열 반응과 핵융합 반응, 그리고 쌍생성과 쌍소멸에서 확인된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생성과 소멸
핵반응과 쌍생성과 쌍소멸은 모두 우리 삶 가까이에 있다. 우리는 원자력발전을 통해 핵분열 반응으로 만든 전기를 쓴다. 대형 병원에서는 쌍생성과 쌍소멸을 이용하는 진단용 의료 장비를 사용한다. 핵융합 반응은 아주 일상적이다. 태양과 별은 핵융합 반응으로 빛과 열을 만들어낸다.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지만, 우리는 밤낮으로 언제든 핵융합 반응을 볼 수 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며 물이 증발하여 비가 내리는 등 지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순환은 태양 에너지 때문에 가능하다.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빛 에너지를 탄수화물로 고정시킨다. 이것이 생명세계 전체가 활동하는 에너지를 공급하고 일부는 화석연료의 에너지로 저장되기도 한다. 태양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이 없었다면 생명 현상을 유지할 수도 없었겠지만, 최초의 생명체의 탄생이나 생명의 진화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핵융합반응으로 태양의 질량이 사라지면서 생긴 에너지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핵반응에서는 질량이 에너지로 변하는 것만을 확인할 수 있지만, 쌍생성과 쌍소멸에서는 에너지가 질량으로 변하고 질량이 에너지로 변하는 양방향의 변환을 모두 볼 수 있다. 에너지와 질량이 동등함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예다. 없었던 물체가 생겨나고 있었던 물체가 사라지는 사건이 우리 주변에서 매 순간 일어난다.
궁극적 물질도 연기緣起다
우리 세계의 모든 존재는 그 자신의 변치 않는 자성自性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어서, 오직 인연의 모아짐에 의해 나타났다 인연의 흩어짐에 따라 사라진다. 스스로 존재할 수 없고 연緣의 도움을 받아야 하므로 무아無我이고, 이에 따라 생멸하므로 무상無常이다. 이렇게 무아이고 무상이어서 오직 연기일 뿐이니 공空이다. 그래서 색즉시공이다.
그 모두를 인정한다 해도, 전자와 같이 우리 세계를 구성하는 궁극적인 존재는 영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남을 수 있다. 그러나 쌍생성과 쌍소멸은 전자마저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양전자를 만나기만 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전자가 아주 안정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그 주위에 양전자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우주에는 양전자가 아주 드물게 존재한다. 그 조건, 그 연緣 때문에 전자가 영원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일체가 무아, 제법무아諸法無我다.
색성공色性空, 유와 무의 중도中道
색즉시공이란 지금은 색이지만 언젠가 공이 된다는 것도 아니고, 색인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아무것도 없다는 허무적멸도 아니다. 실체가 아니면서 동시에 허무적멸이 아니다. 연기緣起일 뿐이다. 색즉시공이란 색으로 나타나는 모든 것은 오직 연기여서 그 성품이 공하다는 것이다. 연기緣起하는 색色을 떠나 따로 공空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용수 보살은 『중론』에서 연기緣起하는 것을 공空이라고 하셨고 성철 스님은 『백일법문』에서 색성공色性空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전도돼 있는 것은 있음과 없음의 양변에 의지하기 때문임을 밝힌 『깟찌야나곳따』(가전연경)를 읽으며 글을 마친다(주1).
“세간의 쌓임[集]을 바른 통찰지로 있는 그대로 보면[正觀] 세간에 대하여 ‘없음[無見]’이라고 할 것이 없다오. 세간의 소멸을 바른 통찰지로 있는 그대로 보면 세간에 대하여 ‘있음[有見]’이라고 할 것이 없다오 … ‘일체一切는 있다’고 보는 것은 한쪽의 견해이고 ‘일체는 없다’고 보는 것은 다른 한쪽의 견해라오. 여래는 이들 양쪽에 가까이 가지 않고, 중간에서 법을 보여준다오.”
주)
이중표 『붓다의 철학』(불광출판사) 제1장 중도 pp93~97 및 이중표 역 『정선 쌍윳따니까야』(불광출판사) 인연품 깟찌야나곳따(가전연경) pp.231~234 참조.
제천 덕주사 마애여래입상. 보물 제406호, 고려시대. 충북 제천시 한수면 덕주사. 2020년 9월 26일 박우현 거사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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