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불교]
무아의 존재가 만드는 세계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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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진 / 2021 년 7 월 [통권 제99호] / / 작성일21-07-05 10:51 / 조회5,491회 / 댓글0건본문
과학과 불교 14 | 시공간과 지구
직선운동과 다른 회전운동
갈릴레이의 상대론에 의하면, 직선운동을 하는 물체의 속도는 관측자의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기차 안의 찻잔을 통해 이를 살펴봤었다. 기차의 창문이 모두 가려져 있고 진동이 없다고 하자. 이런 기차에 탄 승객은 기차가 움직이는지 아니면 정지해 있는지를 구분하지 못한다. 기차가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기만 하면, 정지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찻잔에 물을 가득 부을 수 있다. 찻잔의 물은 흔들리지 않는다. 시계추의 흔들리는 주기도 정지해 있을 때와 같다. 아무리 정교한 물리 시험을 하더라도 기차가 움직인다는 것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기차와 정지한 기차에서는 완벽하게 똑같은 물리현상이 일어난다. 두 기차의 물리법칙은 같다.
회전운동은 직선운동과 아주 다르다. 회전운동은 속도의 방향이 변하는 가속운동이다. 승강기가 출발하거나 멈출 때 알 수 있듯이, 가속운동을 하게 되면 평소와 다른 힘이 작용한다. 이 때문에 회전하는 놀이기구에서는 몸을 가누기가 어려워진다. 멀미하기도 한다. 정지해 있거나 일정한 속도로 움직일 때와는 달리, 새로운 물리현상이 나타난다. 찻잔의 물이 밖으로 흘러넘쳐서, 물을 가득 채울 수 없다. 시계추의 진동주기도 달라진다. 새로운 물리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뉴턴과 칸트의 절대시간과 절대공간
물이 들어있는 양동이를 회전시키면 원심력이 생긴다. 이 힘이 물을 밖으로 밀어내어, 물 가운데가 들어가고 가장자리가 올라간다. 물의 표면이 편평하지 않게 되며, 물을 가득 채웠다면 물이 밖으로 흘러넘친다. 원심력은 회전하는 물체에 생기는 관성력이다. 그런데 무엇에 대한 회전인가? 공간에 대한 회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것이 뉴턴역학의 회전이다. 뉴턴은 회전을 절대공간에 대한 회전이라고 생각했다.
뉴턴의 세계관에서 시간과 공간은 우주 전체에 깔린 배경과 같다. 이를 수용한 칸트는 공간이나 시간을 외적 경험에서 끌어낸 경험적 개념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건 선험적으로 자명한 것이었다. 『순수이성비판』에 의하면, 3차원 공간과 1차원 시간은 직관의 근저에 놓여있는 필연적이고 선천적인 표상이다.
뉴턴과 칸트의 세계관에서 시간과 공간은 그림을 그릴 때 필요한 화폭과 같다. 화폭이 있어야 그림을 그릴 수 있듯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바탕이 있어야 존재자의 있음과 존재의 구조가 가능해진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기 전에도 화폭이 존재하듯이, 존재자의 있음 이전에 시간과 공간이 펼쳐져 있어야 한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지 않더라도 화폭이 있어야 하듯이, 아무것도 없는 빈 우주라 하더라도 시간과 공간은 있어야 한다. 그건 우주의 구성이나 구조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펼쳐진 것이다.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펼쳐진 우주의 바탕이다. 이런 시간과 공간을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이라고 한다. 뉴턴역학에서 양동이의 회전은 이 절대공간에 대한 회전이다.
뉴턴과 마흐 - 공간에 대한 회전과 우주에 대한 회전
물리학자 마흐Mach는 뉴턴과 전혀 다르게 생각했다. 절대공간에 대해 회전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에 대해 회전한다고 생각했다. 얼핏 보면, 뉴턴과 마흐의 생각에는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아주 다르다. 우주에 아무 물체도 없을 때와 우주 전체를 회전시키는 상황에서 그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뉴턴의 양동이는 빈 우주에서 돌리더라도 물이 움푹하게 들어간다. 아무것도 없더라도 절대공간은 펼쳐져 있고, 회전은 절대공간에 대한 회전이므로 원심력이 생긴다. 이와 달리 마흐의 양동이는 빈 우주에서 돌리면 원심력이 생기지 않는다. 우주 전체에 대한 상대적 회전으로 원심력이 발생하므로, 빈 우주에서는 물체를 회전시키더라도 물은 평편하게 된다.
양동이를 정지시켜 놓고 우주 전체를 회전시키면 어떻게 될까? 우주 전체를 돌리더라도 양동이가 절대공간에 대해 회전하는 것은 아니므로, 뉴턴의 양동이에서는 원심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마흐의 경우엔, 우주를 회전시키고 양동이를 정지시키는 것은 양동이를 회전시키고 우주를 정지시킨 것과 같다. 따라서 우주 전체를 회전시킬 수만 있다면, 양동이를 돌리지 않더라도 마흐의 양동이에서는 원심력이 나타나야 한다.
마흐는 우주 전체를 회전시키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실험을 시도했다. 양동이 주변에서 무거운 물체를 회전시키면서 원심력이 생기는지를 확인했다. 우주 전체와 비교해서 훨씬 적은 질량이지만, 양동이에 가까이 있으니까 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효과를 높이기 위해 양동이 주변의 물체를 빠르게 회전시켰지만, 물의 표면에는 변화가 없었다.
일반상대론의 시공간과 존재
우주 전체를 돌릴 수 없었기 때문에 마흐의 생각을 직접 검증하지는 못했지만, 이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제시하는 세계 이해와 맥을 같이한다. 일반상대론은 중력이 존재하는 상황에서의 상대론이다. 중력의 영향이 없는 경우를 다루는 특수상대론에 비해 보편적인 이론이다.
일반상대론은 중력과 가속도의 효과가 같다는 데서 출발한다. 이를 중력과 가속도의 등가equivalence원리라고 한다. 주위의 물체를 볼 수 없는 우주선을 타고 우주 공간을 여행할 때, 몸이 뒤로 쏠리는 경험을 했다 하자. 여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우리가 탄 우주선이 가속했을 수도 있고, 아주 무거운 물체가 갑자기 뒤에 나타났을 수도 있다. 두 상황이 같은 효과를 내므로, 어떤 물리적 실험을 하더라도 현재 상황이 이 중의 어느 것인지를 알아낼 수 없다.
중력과 가속도의 효과가 같으므로, 중력에 의한 모든 물리적 효과는 가속하는 상황으로 대치하거나 혹은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가속도가 있게 되면 빛의 경로가 굽어진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이는 중력이 있는 공간에서 빛이 휘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공간은 중력이 있는 공간이고, 이는 모두 빛이 휘어지는 공간이다. 이는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의 성질과 분포가 우주의 시공간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존재자가 시공간을 형성한다. 존재자와 상관없이 펼쳐지는 뉴턴의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이 아니라, 존재자에 의해 형성되는 상대적 시공간이다.
지구 생명이 만든 지구
존재자와 시공간 사이의 관계는 지구 생명과 지구 사이의 관계와 놀랄 만큼 그 구조가 유사하다. 현재의 지구 환경은 45억 년 전 지구가 형성됐을 당시와는 전혀 다르다. 이에 대해서는 『고경』 2020년 8월호에서 논의했다.
원시지구는 태양계의 다른 행성과 비슷한 대기 성분을 가졌을 것이다. 다른 행성에서는 이산화탄소가 대기의 주성분이고 산소는 거의 없다. 이와 달리, 지구에는 이산화탄소가 거의 없고 상당한 양의 산소가 존재한다. 지구 환경을 이처럼 여타 행성과 다르게 변화시킨 것은 지구 생명이다.
이산화탄소는 원시지구 대기의 주성분이었다. 5억 년 전에는 현재 농도의 20배로, 주라기에는 현재의 4-5배로 줄었으며, 오늘날에는 지구 대기의 0.04%의 부피만 차지할 뿐이다. 이는 이산화탄소를 석회암으로 만드는 작업이 오랜 시간 동안 전 지구적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원시 산호와 원시 녹조류 등은 이산화탄소로 탄산칼슘을 만들어 그들의 단단한 골격을 만들었다. 원시 바다에서 엄청난 군락을 이뤘던 이들은 지구 대기인 이산화탄소를 고체인 석회암으로 바꿔 바닷속에 저장했다. 그 결과 이산화탄소로 인한 온실 효과가 줄면서 현재의 대기 온도에 이르렀다.
원시 지구의 대기에는 산소가 없었고, 이에 따라 대기권 상층부의 오존층도 없었다. 태양에서 오는 강력한 자외선이 오존층에서 걸러지지 않았으므로, 지상에선 생명체가 살 수 없었다. 그러나 원시 생명체가 광합성을 통해 산소를 방출하면서, 이런 지구 환경은 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생명체가 수십억 년 동안 산소를 만들어내면서, 대기 중의 산소가 풍부해지고 대기권 상층부엔 오존층이 형성됐다. 이 오존층이 자외선 등 고에너지 태양광선을 흡수하면서 지표면을 생명의 공간으로 바꿨다. 이에 따라 바다에만 존재했던 생명체가 4억3천만 년 전에 육지로 진출할 수 있었다. 현존하는 40km 두께의 오존층은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니다. 지구 생명이 만든 것이다.
무아無我의 연기緣起 - 존재자와 시공간, 존재자와 환경
아인슈타인 이전에는 시간과 공간을 전혀 다른 것으로 보았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은 시간과 공간이 서로 넘나든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 때문에 물리학자 Wheeler는 시간과 공간의 관계를 km와 마일 사이의 관계로 비유하기도 했다. 물론, 인과율causality이 성립해야 하므로 시간과 공간은 분명 차이가 있다. 명백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연기緣起한다. 시간과 공간은 각각 그 자체로 주어질 수 없다. 그래서 시공간space-time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시공간은 시간과 공간의 단순 합이 아니다. 서로 넘나드는 것이어서 둘로 나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의 전체를 의미한다.
아인슈타인 이전에는 시간과 공간을 우주의 배경이라고 생각했다. 변하지 않고 고정된 것이었다. 그 자체로 주어진 것이었다. 존재자와 상관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반상대성 이론은 시공간이 존재자와의 연관과 의존 속에서 구성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우리가 사는 우주에서는 우주 안의 존재자들만이 서로 의존하고 연관의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다. 존재자와 배경까지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시공간도 존재자와 연기緣起한다. 시공간마저 그 자체로 주어진 것이 아님을 알게 됐다. 시공간도 무아이고 연기緣起한다.
자연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지구는 생명체가 살아가는 배경일 뿐이다. 45억 년 전에 생긴 이후 변하지 않는 고정된 배경이다. 지구가 생명세계의 터전일지라도, 지구와 생명은 서로 분리된 두 세계였다. 현대과학의 발달로 이런 관점은 극적으로 전환됐다. 생명이 살기에 알맞은 지구 환경은 45억 년 전에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생명은 주어진 지구 환경에 그대로 순응하면서 소극적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었음을 알았다. 지금의 지구 환경은 수십억 년 동안 생명이 만든 것이다. 생명이 지구를 바꿨다. 생명이 지구를 진화시켰다. 생명 세계만 진화한 것이 아니라, 생명과 더불어 지구도 함께 진화했다. 공진화coevolution다. 지구는 생명과 함께 연기緣起한다. 지구도 생명도 모두 무아無我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생명, 지구, 시공간, 우주는 모두 무아無我의 연기緣起다.
비꽃 능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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