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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 이야기]
객진번뇌 떠난 ‘이념離念’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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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  2021 년 7 월 [통권 제99호]  /     /  작성일21-07-05 11:37  /   조회9,69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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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 이야기 7 | 신수神秀의 북종선北宗禪

 

도신道信 선사가 개창하고 홍인弘忍 선사가 계승한 동산법문은 그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 천하 도속道俗의 십중팔구였다는 기록이 보일 정도로 당시 불교계에 획기적인 반향을 불러왔다. 이러한 까닭에 후대에 선과 관련된 많은 선사들이 모두 동산법문의 법맥을 계승하였다는 주장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그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우두 법융牛頭法融을 도신의 사법제자로 추인追認한 일이다. 이는 후대에 조사선의 사상적 전개에 있어서 획기적인 변주變奏의 계기가 된다. 그러나 동산법문의 중요한 법맥은 신수의 북종선과 혜능의 남종선, 그리고 지선智詵 계열의 신라 출신 무상無相이 창립한 정중종淨衆宗이라고 하겠다.

 

 


사진1. 당양 옥천사 산문. 포항 거주 강선희 불자 제공. 

 

 

따라서 동산법문의 계승자를 논하자면, 무엇보다도 먼저 북종선의 신수(606-706)를 손꼽을 수 있다. 신수의 전기는 다양한 문헌에 실려 있지만 상당히 간략하고, 대부분이 신수에게 귀의한 장열(張說, 667-730)의 『대통선사비명大通禪師碑銘』에 따른 것이라고 하겠다. 이에 따르면, 속성은 이李 씨이고, 변주汴州 위씨(尉氏, 현 河南省 尉氏縣) 출신이라고 한다. 신수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제생諸生이 되어 “『노자老子』, 『장자莊子』의 현지玄旨와 『서경書經』, 『주역周易』의 대의大義, 삼승경론三乘經論과 『사분율四分律』의 취지趣旨 등에 정통하여 훈고訓詁하였다.”(주1)라고 하고 있다. 따라서 신수는 출가 전부터 상당히 학식이 뛰어났으며, 다양한 경율론을 섭렵했음을 알 수 있다. 신수의 출가 시기에 대해서는 『대통선사비명』에서 20세인 무덕武德 8년(625) 낙양洛陽의 천궁사天宮寺에서 받았다고 기술되어 있다.(주2)

 

신수는 46세인 영휘永徽 2년(651)에 홍인 선사가 황매黃梅 동산東山에서 선법을 전한다는 소문을 듣고 홍인의 문하에 들어가 6년 동안 밤낮으로 정진하였으므로, 홍인이 “동산東山의 법은 모두 신수에게 있구나!”(주3)라고 하였다. 이후 신수는 홍인 문하를 떠나게 되는데, 『대통선사비명』에는 “그리하여 눈물을 흘리며 물러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 은거하였다.”(주4)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까닭은 신수가 국가의 승록僧錄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던 사도私度였기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대통선사비명』에는 의봉儀鳳 연간(676-679)에 형초(荊楚, 현 湖北省)의 대덕들이 당양當陽 옥천사玉泉寺(사진 1·2)의 주지住持로 추대하였고, 그때서야 신수는 비로소 국가의 ‘승록’에 올랐다고 기술하고 있다.(주5)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앞에서 언급한 20세에 낙양의 천궁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는 기록은 옥천사에 머물게 되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겠다. 이는 남종선의 혜능 역시 국가로부터 허락을 받지 않은 ‘사도’였기 때문에 홍인 문하를 갑자기 떠난 경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신수는 옥천사 동쪽으로 칠리七里 떨어진 땅이 평탄하고 산세가 웅장한 장소를 보고, “이곳은 바른 능가楞伽의 고봉孤峰이며, 도문度門의 난야(蘭若, 사찰)로서, 그늘진 소나무 아래 풀을 깔고 앉아, 나는 늙어가는구나.”(주6)라고 말하였다는 기록으로부터 생을 마치도록 이곳에 주석하기를 원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로부터 신수 대사에게 배우러 온 이들이 넘쳐 마치 도시와 같았으며, 당堂에 오른 이가 70명이고, 도道를 맛본 이들이 3천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고 한다.(주7)

 

이 시기에 당조唐朝는 76년 만에 중국 역사에서 유일한 여성 황제인 측천무후(則天武后, 재위 690-705)에 의하여 주周가 건국되면서 일단 왕조가 바뀌지만, 측천무후의 사후에 다시 복원된다. 측천무후는 ‘주’를 건국하면서 도교를 중시하던 이당李唐과의 차별을 위하여 불교를 중시하였다. 특히 측천무후는 태종太宗의 사후에 당시 관습에 따라 2년간 출가한 경력까지 있으며, 황제에 즉위하기 위하여 『대운경大雲經』이라는 위경을 이용한 것은 불교사에 유명하다. 측천무후는 화엄종華嚴宗의 법장法藏과 동산법문 출신의 신수와 노안老安, 지선智詵 등을 제도帝都로 불러들였으며, 혜능 역시 초청하였지만 응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나타나는데, 여러 정황상 가능성이 있다고 하겠다.

 

구시년(久視年, 700) 측천무후가 신수를 궁으로 불러 법문을 들었으며, 이때부터 성가聖駕를 타고 낙양洛陽과 장안長安을 왕래하였고, 제사帝師가 되었고, 그에 따라 “양경兩京의 법주法主, 삼제(三帝, 睿宗・則天武后・中宗)의 국사國師”라고 칭해진다. 측천무후가 죽은 이후 옥천사로 돌아갈 것을 청했지만 허락되지 않았고, 오히려 중종中宗은 그에게 전국의 승가를 통섭할 것을 명했지만 노령의 이유로 제자인 보적普寂에게 양보하였다. 그 다음해인 신룡神龍 2년(706) 2월 28일에 낙양 천궁사에서 101세의 나이로 입적하였으며, 3월 2일에 중종은 ‘대통 선사大通禪師’라는 시호를 하사하였다. 『능가사자기』의 「신수전」에서는 “굴屈・곡曲・직直”의 세 글자를 유촉하였다고 한다.(주8)

 

신수의 선사상은 그의 저서로 확인된 『관심론觀心論』과 『대승무생방편문大乘無生方便門』으로부터 파악할 수 있는데, 특히 ‘대승오방편문大乘五方便門’에 그 골격이 있다는 것이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대승무생방편문』의 첫머리에 다음과 같이 ‘오방편문’을 열거하고 있다.

 

“제1 불체를 모두 드러내어 밝힘[第一總彰佛體], 제2 지혜문을 엶[第二開智慧門], 제3 부사의법을 현시함[第三顯示不思議法], 제4 제법의 정성을 밝힘[第四明諸法正性], 제5 자연무애해탈도[第五自然無碍解脫道].”(주9)

 

‘오방편문’은 제1문에는 불체佛體를 드러내어 밝히는 것으로 설정하고, 이로부터 제2문의 지혜, 제3문의 해탈, 제4문의 제법, 제5문의 무애해탈도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도신道信의 ‘오문선요五門禪要’를 계승한 것임을 그 체제로 보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신수는 도신에 비해 다양한 경전들을 원용하고 있는데, 뒤에 선의 평론가로 자처한 규봉 종밀圭峯宗密의  『원각경대소석의초圓覺經大疏釋義鈔』에서는 신수의 선법을 “불진간정拂塵看淨, 방편통경方便通經”(주10)으로 규정하고, 이를 해석하기를 첫째 총창불체總彰佛體는 『대승기신론』에 의지한 것이고, 둘째 개지혜문開智慧門은 『법화경』, 셋째 현시부사의법顯示不思議法은 『유마경』, 넷째 명제법정성明諸法正性은 『사익경思益經』, 다섯째 자연무애해탈도自然無碍解脫道는 『화엄경』에 의지한 것이라고 하여 상당히 상세히 논증하고 있다.(주11) 이러한 종밀의 설명은 상당히 길어서 여기에 소개할 수는 없지만, 신수가 다양한 경론을 원용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신수의 전체적인 선사상은 『대승기신론』의 ‘본각本覺과 시각始覺’, ‘일심이문一心二門’을 바탕으로 한다고 하겠다.

 

 

 

사진2. 신수가 한때 머물며 수행했던 당양 옥천사. 사진은 조사전. 포항 거주 강선희 불자 제공.

 

 

『대승무생방편문』에서는 “불심佛心은 청정하고, 유有와 무無를 떠났다. 신심身心을 일으키지 않고 항상 진심을 지킴[守真心]이 진여眞如인가? 마음이 일어나지 않은 마음[心不起心]이 진여이고, 색色이 일어나지 않은 색이 진여이다. 심진여心眞如이기 때문에 심해탈心解脫이요, 색진여色眞如이기 때문에 색해탈色解脫이다. 심과 색이 함께 떠남이 바로 무일물無一物이고, 대보리수이다.”(주12)라고 논한다. 이로부터 신수는 “신심불기身心不起”를 바로 “수진심守真心”으로 말하고, 또한 “심불기心不起”를 “심진여心真如”로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홍인의 ‘수진심’(주13)을 계승하지만, 이를 『대승기신론』의 ‘일심이문’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대승무생방편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이른바 말하는 각覺의 뜻이란 심체心體가 생각을 떠남[離念]이요, 

‘이념’은 불佛의 뜻이고, ‘각’의 뜻이다.”(주14)

“각覺이라는 것은 심체心體가 생각을 떠나서, 허공계虛空界와 같아서,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법계法界는 하나의 상相으로, 바로 여래의 평등법신平等法身이다. 이 법신法身에 대해, 이름을 말하면 본각本覺이다.”(주15)

“체體와 용用을 나누어 밝히자면, 이념離念이 ‘체’이고, 견문각지見聞覺知가 ‘용’이다. 고요하면서도 항상함이 ‘용’이고, 쓰면서도 항상함이 ‘고요함[寂]’이며, ‘용’에 즉卽하고, 고요함에 ‘즉’하며, 상相을 떠남이 고요함이라 한다.”(주16) 

 

이상의 인용문으로부터 신수의 선사상을 대체로 정리할 수 있는데, 신수는 ‘불佛’의 개념을 마음의 본체, 즉 ‘심체’가 번뇌망상의 사념을 떠난 상태, 즉 ‘이념’으로 설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법계일상法界一相’을 여래의 ‘평등법신’으로 보고, 또한 이를 ‘본각’이라고 칭함을 알 수 있다. 이 ‘법계일상’은 『문수설반야경』에서 연원하며 동산법문의 도신과 홍인이 모두 중시하던 개념이지만, 『기신론』과 『화엄경』에서도 중시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본각’의 용어와 함께 쓰는 것으로부터 『기신론』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신수의 사상은 『기신론』의 ‘본각本覺⋅시각始覺’과 ‘일심이문一心二門’으로부터 연원하고 있음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에 따라 체용體用의 구분도 역시 그러한 틀에 입각하여 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신수의 선법은 ‘심체’를 『대승기신론』의 ‘심진여문心眞如門’의 입장에서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그에 도달하려는 수행을 모든 객진번뇌를 떠난 ‘이념離念’으로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에 따라서 『대승무생방편문』에서는 “제불여래에게 입도入道를 위한 대방편大方便이 있는데, 일념一念에 정심淨心한다면, 불지佛地를 돈초頓超한다.”(주17)라고 설하며, 또한 그를 실현시키기 위해 “간심看心하여 만약 청정하다면, 정심지淨心地라고 하니, 몸과 마음을 웅크리거나 펴지 말 것이며, 넓고 멀리 놓아서 평등하게 허공이 다하도록 간하라.”(주18)라는 것을 권한다.

 

신수의 선법은 대체로 도신-홍인의 선법을 당시 유행하던 『대승기신론』의 ‘일심이문’의 입장에서 폭넓게 확장한 것이라고 추정된다. 그러나 엄밀하게 논하자면, 신수의 선법은 ‘체용일여體用一如’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남종의 혜능이 강조한 ‘돈오頓悟’의 입장에서 보자면 ‘정망淨妄’과 ‘정박淨縛’에 떨어진 미진한 사상이라고 하겠다. 그에 따라 혜능의 남종선을 선양하기 위해 애썼던 하택 신회荷澤神會는 활대滑臺의 ‘무차대회無遮大會’에서 “마음을 모아 정에 들고[凝心入定], 마음에 머물러 깨끗함을 간하며[住心看淨], 마음을 일으켜 밖을 비추며[起心外照], 마음을 포섭하여 안으로 증득한다[攝心內證]”는 법(주19)이라고 신수의 선법을 규정하고서 북종을 비판했던 것이다.

 

주)

1) [唐]張說, 『荊州玉泉寺大通禪師碑銘屛序』(『全唐文』 卷231) “老莊玄旨, 書易大義, 三乘經論, 四分律儀, 說通訓詁.” 이 『大通禪師碑銘』은 宋代 祖琇의 『隆興佛教編年通論』卷14(卍續藏75, 179c-180a), 元代 念常의 『佛祖歷代通載』卷12(大正藏49, 586b-c)에도 실려 있다.

2) 앞의 책, “禪師武德八年乙酉受具於天宮.”

3) 앞의 책, “東山之法, 盡在秀矣!”

4) 앞의 책, “於是涕辭而去, 退藏於密.”

5) 앞의 책, “儀鳳中始隸玉泉, 名在僧錄.”

6) 앞의 책, “此正楞伽孤峰, 度門蘭若, 蔭松藉草, 吾將老焉.”

7) 앞의 책, “華陰之山學來如市, 未云多也. 後進得以拂三有超四禪, 升堂七十, 味道三千, 不是過也.”

8) [唐]淨覺, 『楞伽師資記』(大正藏85, 1290b) “遺囑三字云: 屈曲直.”

9) 『大乘無生方便門』(『大正藏』85, 1273b)

10) [唐]宗密撰, 『圓覺經大疏釋義鈔』卷3(卍續藏9, 532c)

11) 앞의 책(卍續藏9, 533a-b) “第一總彰佛體, 依起信論. …… 第二開智慧門, 依法華經. …… 第三顯不思議解脫, 依維摩經. …… 第四明諸法正性, 依思益經. …… 第五了無異自然無礙解脫, 依華嚴經.”

12) 『大乘無生方便門』(『大正藏』85, 1273c) “佛心清淨離有離無. 身心不起常守真心是沒是真如? 心不起心真如, 色不起色真如. 心真如故心解脫, 色真如故色解脫. 心色俱離即無一物, 是大菩提樹.”

13) [唐]弘忍述, 『最上乘論』(『大正藏』48, 378b) “眞心을 지키되, 念念에 머물지 말라.[守眞心, 念念莫住]”

14) 『大乘無生方便門』(『大正藏』85, 1273c) “所言覺義者, 心體離念, 離念是佛義覺義.”

15) 앞의 책. “所言覺者, 為心體離念, 離念相者, 等虛空界, 無所不遍, 法界一相, 即是如來平等法身, 於此法身, 說名本覺.”

16) 앞의 책(『大正藏』85, 1274b) “體用分明, 離念名體, 見聞覺知是用. 寂而常用, 用而常寂, 即用即寂, 離相名寂.”

17) 앞의 책(『大正藏』85, 1273c) “諸佛如來有入道大方便, 一念淨心, 頓超佛地.”

18) 앞의 책. “看心若淨名淨心地, 莫卷縮身心舒展身心, 放曠遠看平等盡虛空看.”

19) 이는 『菩提達摩南宗定是非論』에서 神會禪師가 北宗을 비판하는 근거로 사용된 말이다. [唐]獨孤沛撰, 『菩提達摩南宗定是非論』卷下(補遺編25, 67a) “為秀禪師教人, 凝心入定, 住心看淨, 起心外照, 攝心內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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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남경대학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부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한국연구재단 학술연구교수. 저서로 『중국불교거사들』, 『중국불교사상사』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조선불교통사』(공역), 『불교와 유학』, 『선학과 현학』, 『선과 노장』, 『분등선』, 『조사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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