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의 세계]
부처님이 지금도 가르침 설파함을 보여 주는 불화
페이지 정보
이은희 / 2021 년 9 월 [통권 제101호] / / 작성일21-09-06 09:57 / 조회5,633회 / 댓글0건본문
불화의 세계 21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靈山一會 儼然未散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후 그려지기 시작된 다양한 불화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영산회상도라 할 수 있다. 특히 조선 후기 사찰에 봉안되는 탱화는 크게 불보살을 모신 상단탱화上壇幀畵, 신중을 모신 중단탱화中壇幀畵, 산신·칠성·영단靈壇의 감로탱甘露幀 등의 하단탱화下壇幀畵로 분류할 수 있다.
상단탱화는 다시 각 전각殿閣에 모신 본존과 관련하여 대웅전 후불탱화, 극락전 후불탱화, 약사전 후불탱화, 영산전 후불탱화, 관음전 후불탱화 등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대웅전이나 영산전 등에 후불後佛로 봉안되는 영산회상도에서 ‘영산회상靈山會上’이란, 넓은 의미로는 석가모니불의 교설敎說, 또는 불교 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불교의 상징적인 표상이기도 하면서, 좁은 의미로는 석가모니불이 영취산에서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한 법회를 말한다. 영산회상도는 달리 「법화경변상도」라고 할 수도 있다.
사진 1. 봉정사-대웅전 석가후불벽화(15세기 초기).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봉안한 대웅전에 모셔진다. 석가모니불의 많은 존칭 가운데 하나인 대웅은 산스크리트어 마하비라Mah.v.ra의 의역으로 『법화경』 「종지용출품從地踊出品」 및 『화엄경』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등에 보인다. 즉 석가모니불이야말로 위대한 지혜의 힘으로 일체의 마군을 항복받고 모든 장애를 극복한 분이라는 데서 붙여진 덕호德號이다. 그러므로 대웅전은 사바세계 중생의 으뜸가는 스승인 석가모니불을 모신 불당佛堂의 이름이라 하겠다. 따라서 영산회상도는 영산회상을 재현하고자 하는 또는 석가정토에 왕생하려 하는 강한 신앙심의 구체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많은 불佛세계가 있지만 석가정토가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사진 2. 흥국사-대웅전 석가모니후불탱 (1693).
이러한 석가정토에 대한 개념은 『법화경』 「여래수량품」에 “차토此土는 안온하여 천인이 항상 충만하고 원림園林 속『법화경』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에 ‘상재영취산常在靈鷲山[영취산에 상주하심]’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구원실성久遠實成의 부처님이 방편으로 입멸을 보이셨을 뿐이며[方便現涅槃而實不滅道], 영취산에 상주하시며 가르침을 설명하고 계신다는 말이다. 따라서 영산회상은 곧 법法의 모임, 진리의 모임이므로 대웅전에 들어선 우리도 이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산회상 법회에 동참한 대중의 일원一員이라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사진 3. 해인사-대적광전 석가모니후불탱 (1729).
대웅전 후불탱화인 영산회상도는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 보살과 보현 보살을 비롯한 팔대보살·십대제자·대범천·제석천·사천왕·팔부중·화불 등이 배치되는 것이 기본적인 구도라 할 수 있다. 조선 시대 불화에는 이와 같은 구도가 충실하게 지켜지고 있다. 이와 관련된 도상으로 봉정사 대웅전 석가모니후불벽화(사진 1)가 있다. 현재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구체적인 존상을 모두 확인하기는 어려우나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영산회상도이다. 그리고 영산회상을 표현한 현존하는 최고의 고古불화로는 흥국사 대웅전 석가모니후불탱(사진 2)을 들 수 있겠다.
이와 함께 해인사 대적광전 석가모니후불탱(사진 3) 역시 조선후기 영산회상도를 대표하는 불화이다. 이 영상회상도는 조선조 3대 불모의 한 분으로 일컬어지는 의겸 불모가 조성한 것이다. 본존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상단의 좌우에 100위가 넘는 화불化佛을 서기 가득한 구름 위와 반원半圓 속에 그렸고 26보살과 30여 존자 등의 권속을 질서정연하고 짜임새 있게 배치한 것이 특색이다.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통도사 영산전 석가모니후불탱(사진 4) 역시 장대한 본존과 질서정연한 권속의 표현은 기품이 있고 색감은 온화하면서도 힘을 느끼게 한다. 대흥사 석가모니후불 홍탱(사진 5)은 고려 때부터 유입된 탕카 미술과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으로 주목된다.
17세기 후반(1693년)에 조성된 여천 흥국사 영산회상도(사진 2)를 살펴보며 영산회상도의 구체적인 도상 배치를 살펴보자. 주존인 석가모니불은 수미단須彌壇 위의 연화좌連花座에 앉아 계신다. 이는 수미산 꼭대기에 앉아 자비와 지혜의 광명을 발하고 있음을 상징하며 연화좌는 인간과 모든 생명에 불성佛性이 내재함을 상징한다. 불상은 대개 결인結印으로 구별하는데, 결인은 산스크리트어 무드라Mudr.의 번역으로 인상印相·인계印契·수인手印이라고도 한다. 결인은 불보살의 깨달음 또는 서원을 손 모양을 통해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영산회상도에서 석가모니불의 결인은 사진에서와 같이 주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다.
좌선할 때의 손 모양에서 오른손을 풀어 오른쪽 무릎에 얹고, 오른손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모습으로, 석가모니불이 수행을 방해하는 모든 마군의 유혹을 물리치고 성취한 정각正覺을 지신地神이 증명하였음을 상징한다.
협시 보살로는 붓다의 반야지般若智를 상징하는 좌보처 문수 보살文殊菩薩과 붓다의 광대한 자비행원을 상징하는 우보처 보현 보살普賢菩薩이 시립해 있다. 묘길상妙吉祥이라고 번역하는 문수 보살에 대해 『대일경소大日經疏』에는 “가장 뛰어난 공空의 지혜로 보리심을 청정하게 하고 반야의 칼로 번뇌를 근원부터 자른다.”고 나온다.
보현 보살은 문수 보살과 함께 대승불교를 대표하는 보살로 『화엄경華嚴經』에서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열 가지의 광대한 서원을 세워 중생을 구제한다. 문수 보살의 옆에 위치하는 대범천왕은 범천권청梵天勸請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우주의 생성을 주관하며 제석천왕과 함께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대표적인 천부의 주존이다. 또한 보현 보살의 우측에 위치한 제석천왕은 강한 힘의 신들 중에 제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석가모니불이 깨달음을 얻었을 때 범천과 함께 설법을 요청했다. 수미산 정상의 도리천을 다스리며 불교에 귀의한 뒤 정법을 수호하고 부처와 그 제자들을 옹호하겠다는 서원을 세운 천신이다.
사진 5. 대흥사-석가후불 홍탱(1826).
그 위로는 석가모니불의 교화를 받으며 수행하다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기별을 받은[授記] 미륵 보살과 과거불인 제화갈라 보살이 그려져 있다. 다소 생소한 제화갈라 보살은 석가모니불이 전생에 선혜善慧라는 이름으로 수행하고 몸과 마음을 바쳐 자비행을 닦을 때, 선혜 보살에게 붓다가 되리라고 수기를 내린 연등불의 보살형이 곧 제화갈라 보살이다. 이 역시 과거·현재·미래를 통해 설해지는 진리와 함께 시간을 달리하며 중생을 교화하는 붓다의 자비를 상징한다.
이와 함께 시방의 법계에서 붓다의 법을 증명하고 찬탄하는 화불과 과거칠불(비바시불, 시기불, 비사부불, 구류손불, 구나함모니불, 가섭불)이 본존 두광의 양옆으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불심(佛心, 禪)을 상징하는 두타제일頭陀第一 가섭 존자와 불어(佛語, 敎)를 상징하는 다문제일多聞第一 아난 존자를 비롯해 지혜제일智慧第一 사리불 존자, 해공제일解空第一 수보리 존자, 설법제일說法第一 부루나 존자, 신통제일神通第一 목건련 존자와 함께 외호신外護神인 동방 지국천, 북방 다문천, 서방 광목천, 남방 증장천 등의 사천왕四天王과 팔부신중인 용왕, 용녀, 긴나라, 가루라, 나찰, 야차, 아수라, 마후라가 등 수많은 대중들이 영산회상 법회를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구성한다.
그런데 조선 말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과정에 경우에 따라 각 존상의 대표격만 줄여 그려지기도 했다. 즉 10대 제자는 가섭 존자와 아난 존자 만의 2대 제자로 간략화 되고, 팔대보살은 문수 보살과 보현 보살 양 협시만으로, 여기에 호법존인 사천왕을 그려 『법화경』의 내용을 압축해 그리기도 한다. 영산회상도는 조성방식과 예배공양의 장소 등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이어져 왔다. 결국 부처님의 가르침을 장엄莊嚴하게 보여주고 깨달음의 법등을 유구하게 이어온 불화가 바로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영산회상도라 할 수 있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옛거울古鏡’, 본래면목 그대로
유난히 더웠던 여름도 지나가고 불면석佛面石 옆 단풍나무 잎새도 어느새 불그스레 물이 들어가는 계절입니다. 선선해진 바람을 맞으며 포행을 마치고 들어오니 책상 위에 2024년 10월호 『고경』(통권 …
원택스님 /
-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물병 속에 있다네
어렸을 때는 밤에 화장실 가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그 시절에 화장실은 집 안에서 가장 구석진 곳에 있었거든요. 무덤 옆으로 지나갈 때는 대낮이라도 무서웠습니다. 산속에 있는 무덤 옆으로야 좀체 지나…
서종택 /
-
한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없다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있음이니 하나마저도 지키지 말라.二由一有 一亦莫守 흔히들 둘은 버리고 하나를 취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두 가지 변견은 하나 때문에 나며 둘은 하나를 전…
성철스님 /
-
구루 린뽀체를 따라서 삼예사원으로
공땅라모를 넘어 설역고원雪域高原 강짼으로 현재 네팔과 티베트 땅을 가르는 고개 중에 ‘공땅라모(Gongtang Lamo, 孔唐拉姆)’라는 아주 높은 고개가 있다. ‘공땅’은 지명이니 ‘공땅…
김규현 /
-
법등을 활용하여 자등을 밝힌다
1. 『대승기신론』의 네 가지 믿음 [질문]스님, 제가 얼마 전 어느 스님의 법문을 녹취한 글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생겨 이렇게 여쭙니다. 그 스님께서 법문하신 내용 중에 일심一心, 이문二…
일행스님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