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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빛의 말씀]
‘마음이 곧 부처’ 이것만이 불교의 정수이며 바른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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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  2021 년 12 월 [통권 제104호]  /     /  작성일21-12-03 09:31  /   조회5,713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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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믿음, 삿된 믿음 불교에서 바른 믿음[正信]과 삿된 믿음[邪信]을 말하는데, 어떤 것이 바 른 믿음이며 어떤 것이 삿된 믿음인가? 팔만대장경이 모두 부처님이 설하신 것이니 전부 바른 믿음의 대상이지 어떻게 삿된 믿음의 대상이 되겠느냐고 하겠지만, 팔만대장경 속에도 방편설[假說]과 실담實談이 있습니다. 방편설은 어떤 것이냐 하면, 실제 근본법을 소개해도 중생이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방편으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 법문이라도 방편설은 전부 삿된 믿음에 속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말하자면, 부처님이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법화경』을 설하기 전에 삼승십이분교(주1)를 설하셨는데, 부처님은 이것을 거짓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각을 이루고 나서 처음에 일승一乘의 일진법계一眞法界인 『화엄경』을 설했는데, 중생들이 그것을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에 삼승三乘으로 물러나서 방편으로 설하신 것입니다. 부처님은 『법화경』의 마지막에서 그전에 한 말이 전부 거짓말이라고 하시면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한 거짓말이기 때문에 해害가 되지는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말씀들이 모두 방편설과 실담을 구별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일승이란 것도 실담처럼 보이지만 더 높은 데서 보면 이것도 내용에 있어서는 방편설입니다.

 

 

 

성철스님 / 대한불교조계종 제6·7대 종정 

 

 

지금은 억지로 방편설인 삿된 믿음과 실담인 바른 믿음으로 구분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바른 믿음이라고 하는가? ‘즉심시불卽心是佛’, 곧 ‘마음이 부처’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체가 삿된 믿음이라고 예전의 조사스님들도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자기 마음을 알고 마음을 깨쳐야 합니다. 아무리 불교를 믿더라도 ‘마음이 곧 부처’라는 이 근본을 놓쳐버리면 불교가 아닙니다. ‘즉심시불卽心是佛’, 이것만이 오직 부처님의 정신이며 불교의 정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나의 이런 말도 『화엄경』을 깨려고 하는 말이니, 이것도 방편설입니다. 비록 중생 교화의 방편이지만 처음부터 방편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역사적으로 볼 때 말은 다르지만 대승불교에서만 일승을 설한 것이 아닙니다. 남전南傳에서도 “부처님이 일승을 설하셨다.”는 말이 뚜렷하게 나옵니다.

 

“마음이 부처다. 마음 이외에는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말라. 오직 자기 마음을 알고 마음을 깨쳐야 한다.” 

아무리 불교를 믿더라도 ‘내 마음이 부처’라는 이 근본을 놓쳐버리면 불교가 아니라고 남전대장경에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금 시대에는 그런 방편설도 필요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많이 지나갔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지혜도 많이 향상되어서 방편설로 불교라는 가게를 차려놓았다가는 밑천도 못 찾는다고 나는 생각합니 다. 그리고 서양에 불교를 소개하는 것도 이제는 세계적인 조류입니다.

 

“불교는 참으로 자기를 계발하는 가르침이다. 내 마음을 바로 깨치는 가르침이다.

내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가르침이다.”

불교는 모든 사람에게 이런 능력이 있으니,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렇지 않고 부처님께서 횡야설수야설하신 남산 껍데기, 북산 껍데기를 대중 앞에 갖다 놓으면 “이거 미친 사람들이로군. 모두 다 정신없는 사람들이야.”라고 하면서 대장경에 불을 지르려고 달려들 것입니다. 사실 요즘 사회인들이 그렇습니다. 좀 지식 있는 사람들에게 어리숙하게 방편으로 무슨 말을 하면 “산중에 있으면서 도 닦는 거 맞아?” 하는 표정으로 사람을 빤히 쳐다봅니다. 그래서 이제는 사람들을 제접할 때면 앉을 땐 앉고 설 땐 서서 좀 자재自在하게 되었습니다.

 

대개 지식이 좀 있는 사람들에게 정통으로 가슴을 콱 치면서, “당신 마음속에 무진장한 광맥이 있으니 그걸 계발해 보시오.” 하면 모두 좋아하면서 “옳습니다. 알겠습니다.”라고 수긍합니다. 자신들에게 무진장한 광맥이 있으니 그것을 계발하라고 하면 좋아하면서 광맥을 캐는 곡괭이를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나는 절 3천 배를 하고 참선하는 화두를 배워 가라고 말합니다. 이게 방편일까요? 그것은 그 사람한테는 방편이 아닙니다. 공부가 있는 사람에게는 방편이 될지 모르지만 그 사람한테는 방편이 아닙니다. 

 

어떤 때는 먼저 광맥만 소개합니다. “사람마다 이런 광맥이 있는데 말이지.”라고 소개하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현대 과학 서적이나 인문 서적들을 인용해서 처음부터 이야기를 들려주면 “참으로 그렇구나. 우리에게 무한한 능력이 있구나!”라는 자신이 드나 봅니다. 그러면 마음속의 광맥을 계발해 보려고 나에게 방법을 알려 달라고 합니다. 

 

내 마음속의 광맥은 참으로 값할 수 없는 보배[無價寶]인데 그 방법론을 함부로 가르쳐 줄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신심信心이 나게 하려고 절 3천 배를 시키는 겁니다. 3천 배를 마치고 신심이 나면 참선하는 화두 곡괭이를 얻어서 서울 가고 부산 가고 대전 가고 어디든지 가서 각자의 광맥을 캐는 것입니다.

‘즉심시불卽心是佛’, 즉 마음이 부처라는 이것만이 오직 부처님의 깨침이고 불교의 정신이란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마음을 깨치고 성불해야지 그냥 입으로만 지껄여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불교에 있어서 만고의 철칙입니다. 

 

왕양명의 거지 노릇


왕양명王陽明(주2)의 이야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유교에 주자학파朱子學派와 양명학파陽明學派가 있습니다. 당시는 전제군주제로 백성을 억압하려는 사람들이 주자학파를 이용하여 백성들을 부리면서 정치하기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주자학파가 관학官學이 되어서 백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전제군 주제를 대변하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철저한 아부파라 할 수 있는 데, 왕양명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우주의 근본원리에 의지해서 법을 설명한 사람이지 아부파가 아닙니다. 그래서 철학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육상산陸象山(주3)과 왕양명의 양명학이 주자학보다 낫다는 것을 동양 철학자들이 모두 인정합니다. 

 

사람사람마다 나침반이 있어

만 가지 변화의 근원이 모두 마음에 있구나. 

종전의 잘못된 소견을 웃노니

가지마다 잎마다 밖으로만 찾았구나. 

人人有箇定盤針하야 萬化根源總在心이라 

却笑從前顚倒見하노니 枝枝葉葉外頭尋이로다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 것을 홀로 알 때

이것이 하늘과 땅 만유의 기틀이로다. 

자기 집의 무진장 보화를 버리고

남의 집을 돌며 밥그릇 들고 거지 노릇 하는구나.(주4)

 

無聲無臭獨知時에 此是乾坤萬有基라 

抛却自家無盡藏하고 沿門持鉢效貧兒로다

 

여기에서도 공연히 언어와 문자에 끄달려 다른 곳을 더듬고 있었던 것을 경책하면서 가지마다 잎마다 밖으로 찾았다고 반성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왕양명의 근본 입각처가 불교와 많이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루바삐 마음을 돌이켜서 방편설과 삿된 믿음에 얽매이지 말고 내 마음이 오직 부처인 줄 알아서 내 마음속의 무진장 보물 창고의 문을 열자는 것입니다. 왜 남의 집에 밥 빌어먹으러 다니며 거지 노릇을 합니까.

 

 

 

왕수인

 

 

‘사람마다 나침반이 있어’는 대도大道에 들어가는 지남침이 있다는 말입니다. ‘만 가지 변화의 근원이 모두 마음에 있구나’는 모든 것이 다 마음속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종전의 잘못된 소견[顚倒見]을 웃노니, 가지마다 잎마다 밖으로만 찾았구나’는 내 마음을 바로 깨치면 그만인데, 공연히 언어니 문자니 하면서 다른 데 쓸데없이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는 말입니다. 본체는 놔두고 밖으로만 찾고 있습니다. 『증도가』의 “근본만 얻을 뿐 끝은 근심치 말지니[但得本莫愁末](주5)”와 같은 말입니다. 나무를 베려면 둥치를 자르면 될 것을 자꾸 가지와 잎에 집착하여 잎을 따고 가지를 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허송세월을 보내서야 되겠습니까. 어리석은 사람은 잎과 가지에 연연하지만 지혜 있는 사람은 둥치를 자릅니다. 그러면 나무 전체가 다 넘어갑니다. 둥치만 넘어가면 즉심즉불卽心卽佛인데 그것을 모르니 전도견이라고 한 것입니다. 가지 치고 잎 따는 방편설에 집착하여 외변外邊으로 헤매는 것을 경책하는 말입니다.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 것을 홀로 알 때’에 이것이 만유의 기틀이다, 즉 근본입니다. 무성무취無聲無臭한 마음자리를 말합니다. 이 마음속에는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고, 이 마음이 바로 만물의 근본임을 바로 알 때에, 이것이 만법의 근본이라는 말입니다. 우주 만유의 근본이 전부 내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들어내 버리고 밥그릇 하나 들고 이 집 저 집 찾아다니며 밥 한 술 구걸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가 부자인 줄 모르고 구걸하러 다니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언어와 문자에 집착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제 마음의 창고만 열면 미래제未來際가 다하도록 써도 다함이 없고 일체중생에게 다 보시를 해도 남는데, 그 무진보고無盡寶庫를 놔두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얻어먹는 거지 노릇이나 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니 누구든지 하루바삐 마음을 돌이켜 방편설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속의 무진보고를 계발해야 합니다. 공부를 하여 그 방법을 알아 보물 창고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 『백일법문』(2014) 상권, ‘제2장 불교의 절대적 인간관’ 중에서 발췌 정리. -

 

 

<각주>

1) 부처님께서 45년에 걸쳐 설하신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경문經文을 내용과 형식 등을 따져 열두 가지로 분류한 것을 말한다. 달리 ‘십이분경十二分經’ 또는 ‘십이부경十二部經’이라고도 한다.

 

2) 왕양명王陽明: 1472-1529. 명대明代의 학자 왕수인王守仁을 말한다. 그는 여요餘姚 사람으로, 진사進士를 거쳐 정덕正德 때에 순무巡撫로 대모산大帽山의 제적諸賊을 평정하였다. 그의 학문은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과 치양지설致良知說을 주장하여 주자학파朱子學派와 서로 다투었는데, 세상에서는 그의 학파를 요강학파姚江 學派라 불렀다. 일찍이 양명동陽明洞 안에 집을 짓고 살았으므로 세상에서 양명선생이라 칭한다.

 

3) 육상산陸象山: 1139-1193. 상산은 송宋나라의 학자 육구연陸九淵의 호이며, 자는 자정子靜이다. 그는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을 주장하여 존덕성尊德性만을 강조하고, 심리동일心理同一을 주장하여 동시대의 주자朱子와 다른 이론을 세워 뒷날 육왕학陸王學(양명학)의 원조가 되었다.

 

4) 이 글은 왕양명王陽明이 49살 가을부터 강서성 곳곳에 학교와 서원을 세우고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쳐 준 노래 <영양지4수시제생詠良知四首示諸生> 중 세 번째와 네 번째 노래이다.

 

5) 『영가증도가永嘉證道歌』(T48, 397a), “但得本莫愁末 如淨瑠璃含寶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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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성철스님은 1936년 해인사로 출가하여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봉암사 결사’를 주도하였다. 1955년 대구 팔공산 성전암으로 들어가 10여 년 동안 절문 밖을 나서지 않았는데 세상에서는 ‘10년 동구불출’의 수행으로 칭송하였다. 1967년 해인총림 초대 방장으로 취임하여 ‘백일법문’을 하였다. 1981년 1월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에 추대되어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법어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1993년 11월 4일 해인사에서 열반하였다. 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우리 곁에 왔던 부처’로서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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