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계율연구의 대가 치밀한 검증과 논증 히라카와 아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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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상 / 2021 년 11 월 [통권 제103호] / / 작성일21-11-03 21:59 / 조회4,434회 / 댓글0건본문
근대일본의 불교학자들 11 / 히라카와 아키라平川彰 1915-2002
텍스트에는 항상 컨텍스트가 반영되기 마련이다. 전자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도 후자를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도, 중국, 한국의 불교가 근본은 하나이되 각자의 독특한 불교교단을 형성해 온 것 또한 지역과 사람들의 생활 양식을 반영해 온 까닭이다. 석가모니불시대 이래 다양한 교의의 발생 내지는 새로운 해석이 이루어진 것도 삶의 현장인 컨텍스트가 기반이 되고 있는 것이다. 히라카와 아키라(平川彰, 1915-2002)가 평생 고민한 것도 그것이다. 교단은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를 떠받치는 율장이야말로 불교의 가르침과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 핵심임을 간파했다.
그는 아이치현 출신으로 1939년 도쿄제국대학 인도철학범문학과에 입학했다. 그의 스승은 미야모토 쇼손(宮本正尊)이었다. 그는 1951년 일본인도학불교학회를 창립, 일본 최대의 불교학회로 성장시킨 인물로 중도사상 연구에 매진했다. 히라카와는 홋카이도대학 조교수를 거쳐 그의 후계자로 도쿄대학에 오게 되었다. 1975년 퇴임 후에는 와세다대학, 국제불교학대학원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의 방대한 연구는 초기 율장으로부터 초기 대승불교, 대승경전, 대승불교사상, 그리고 일본불교에 이르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으로는 대승불교의 탄생에 관한 연구다. 『초기 대승불교의 연구』(1968)는 대승불교의 기원을 밝힌 것으로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까지만 해도 마에다 에운(前田慧雲)이 『대승불교사론』에서 이야기하듯 부파의 대중부가 모태라고 생각했다. 핵심은 불탑기원설이다. 경제적 기반을 가진 재가신자들을 중심으로 대승이 발생했다고 보았다. 석존 입멸 후 그의 유해가 모셔진 탑은 사방승물四方僧物에 속하지 않았다. 불법승 삼보 중에 불보에 속했다. 따라서 정사에만 사는 승려들은 여기에 거주할 수 없다. 신자들이 보시한 재물과 함께 불탑의 관리는 재가신자들의 몫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불탑신앙을 중심으로 보살교단인 ‘보살가나(bodhisattva-gaṇa)’가 형성되고 대승불교가 흥기했다고 본다. 이후 이에 대해 그레고리 쇼펜 등의 반론, 비판 연구를 통해 대승불교의 기원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그가 이렇게 대승불교 연구에 심취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초기 계율에 대한 연구로부터 비롯된다. 『율장의 연구』(1960)가 박사학위논문이다. 원래는 원시불교를 연구하고자 했다. 아비다르마 연구를 위해 『대비바사론』을 읽기 시작했다. 그는 방학 중에 오오타니대학에서 퇴직한 후나하시 스이사이(舟橋水哉)를 만나 지도를 받았다. 그는 『구사론』을 연구했다. 그러나 스승 미야모토는 남방불교의 계율을 연구하도록 했다. 태평양전쟁 중이던 1940년대에 태국, 버마 등에 군인으로 출정한 불교학자나 일본에 유학 중인 사람들로부터 자료를 수집했다. 그리고 연구보고서를 제출했지만, 미야모토는 냉철하게 비판했다.
애초에 계율연구에는 흥미가 없었던 히라카와는 불교논리학 연구를 하고자 했다. 그러나 미야모토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율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료를 읽어야 한다. 한역만도 십송률, 사분률, 마하승기률, 근본유부률이 있으며 주석도 4종이나 있다. 그 외에도 팔리어 광률, 티베트역 근본유부에도 많은 문헌이 있다. 율律 연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찾기 위해 율장을 3번 통독했다. 그는 이를 통해 불교 교단조직과의 밀접한 관계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흔히 계율은 개인이 지켜야 할 규칙으로 봄으로써 율장을 개인의 관점에서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율장을 승가 조직의 관점에서 보게 되면 교단에 대한 이해가 생긴다.
사진 2. 히라카와 아키라 저작집(전 17권).
히라카와는 수계작법의 예를 든다. 이는 흔히 비구가 계를 받을 때의 의식이라고 본다. 그러나 교단의 관점에서는 승가가 비구를 자신의 교단 입단을 허락하는 입단 허가 의식이자 시험이다. 이렇게 되면 갈마사, 교수사 등의 명칭이나 역할도 분명해진다. 수계가 이뤄질 때, 왜 계단을 만드는가에 대한 중요성도 알게 된다. 이에 화합승和合僧에 대해 승가가 의식주를 공평하게 분배해서 생활하고, 계급이 없는 평등한 생활을 하는 측면을 통해 이해하게 된다고 본다. 이러한 연구는 매우 선진적인 것이다. 유럽에서도 정치, 경제사 연구를 출발로 삼았던 아날학파가 문화사, 생활사, 정신사 등의 연구로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다. 자본주의 연구 또한 물질과 사회의 변동에 따른 삶의 현장으로부터 연구되고 있다.
히라카와의 계율 연구는 곧 교단 연구인 셈이다. 지금까지의 교의, 교학 연구를 입체적 관점에서 보게 되는 폭넓은 전망을 부여한다. 이를 또 하나, 가사의 작법에서 예를 들어보자. 왜 가사를 누더기처럼 헝겊으로 이어 만드는가, 또는 큰 천으로 만드는 일이 왜 나쁜가. 히라카와는 그 이유를 승가에 보시된 천을 평등하게 나누기 위해, 즉 그때그때 보시받은 천을 구성원 전원에게 분배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보시받은 음식이 넘치거나 걸식에 나가지 못한 승려를 위해 공평하게 분배하는 승가식僧伽食 제도도 같은 이유에서다.
사진 3. 대만 불광산사의 성운대사와 히라카와 아키라(인간통신사人間通訊社 제공).
승가에는 비구교단과 비구니교단은 있었지만 우바새와 우바이를 포함한 승가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승가는 계급의 차별이 없어 무조건적인 화합승을 만들 수가 있었다. 즉 소승불교의 승가는 출가자에 한해 존재했다. 사중四衆 승가를 주장하는 학자들의 의견을 율장의 규칙을 승인하는 한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는 스리랑카, 태국, 버마에서 보는 불교교단에 잘 나타나 있다. 대승불교에 와서는 대승불교도들 가운데는 출가보살도 재가보살도 있었으므로 보살로서 어떤 구별도 없었다.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출가자들과 생활이 가능한 재가자들의 단체인 불탑교단에 대한 연구가 이렇게 하여 탄생한 것이다.
히라카와는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진 이유에 대해서도 이 계율과 출가자 및 재가자와의 관계로부터 찾는다.(「인도·중국·일본의 불교교단」) 재가의 상가가 없는 그들은 삼보에 귀의함으로써 우바새가 된다. 5계를 받지만 자발적인가 아닌가가 중요하다. 제1계율인 불살생계의 팔리어 어원은 ‘살아 있는 것을 죽이지 않는다, 살아 있는 것을 죽이는 것을 멀리한다’라는 의미다. 즉 ‘살생을 해서는 안 된다’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멀리한다’는 의미가 중요하다. ‘리살생離殺生’이 이 계의 본래 의미다. 그는 “이는 자기 자신이 살아 있는 것을 죽이지 않겠다는 결심,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살아 있는 어떠한 것도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에게 비추어 살아 있는 다른 생명을 죽여서는 안 된다. 혹은 사람에게 죽이도록 해서도 안 된다라는 자각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살아 있는 것을 죽이는 것을 멀리합니다’라고 서원을 세우는 것이 계戒이다.”라고 한다.
5계는 결국 자발적인 자신의 정신에 의거한 서원인 셈이다. 이는 부담 주는 의무가 아니다. 5계를 파괴했다고 해서 특별히 교단으로부터 질책을 듣는다든가, 교단으로부터 추방을 당한다든가 하는 것은 없다. 단지 삼보에 귀의하여 우바새라고 인정받으면 된다. 재가자에게는 의무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자이나교에서는 불살생의 계율은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재가들에게도 이 계율의 의무가 주어졌다. 이 점에서 자이나교는 교단 조직에 재가교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서력 1200년 무렵 이슬람교도가 침입했을 때, 불교는 멸망했다. 나란다대학을 포함한 여러 사원에서는 비구들이 수행하고 있었지만 사원이 파괴되자 불교를 계승할 집단이 없었던 것이다. 재가신자들은 조직이 없었기 때문에 이들을 지도할 지도자가 없으므로 불교신자는 힌두교에 흡수되고 말았다. 계율의 자발성은 불교 고유의 것이지만, 문제는 불교조직에 관한 재가의 자발성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는 히라카와도 언급했지만, 현대불교의 특징인 재가교단을 볼 때, 출가와 재가와의 관계 또는 역할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아무튼 불교의 인도 멸망을 이처럼 내부에서 찾은 것은 매우 의미가 깊다. 이슬람의 침입이 강했다든가, 힌두교의 교의가 불교를 신적 체계 내에서 흡수했다라든가 하는 설에 비해 출가와 재가 조직의 측면에서 본 것은 불교의 본질적 속성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율의 문제는 오늘날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히라카와에 의하면 자율적인 계율은 불교가 국가로부터 독자적인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출세간 세계의 특징은 첫째, 세금을 내지 않는 것, 둘째, 국가의 법률에 속박받지 않는 것이다. 석존 당시에도 이러한 국가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었다. 원시불교는 세속의 국왕으로부터 출세간의 특권을 인정받았다. 채무를 진 자가 출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것은 누군가에게 손해를 입혔기 때문에 이를 변재하고 와야 한다. 군인도 마찬가지이다. 출가하면 국가에 손해를 입히게 되므로 왕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 세속의 의무나 권리를 완전히 지우고 출가해야 한다. 출가의 기본은 계급을 버리는 것이다.
사진 4. 히라카와 아키라 저술 『불교통사』.
그런데 중국, 한국, 일본의 경우, 불교가 유입될 때 국가의 보호를 받게 된다. 국가가 법률을 정해 승가를 통제한다. 말하자면 국가를 운영하는 재가가 주도적으로 불교 내부의 자치적인 계율을 무시하고 강제하는 법을 제정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 고대불교의 경우, ‘승니령’을 내려 민간포교를 금지하기도 했다. 불교가 세력을 얻으면 국가가 위태롭기 때문이다. 오직 국가를 보호하는 진호鎭護의 역할을 하게 된다. 실제 동아시아에서는 미륵이나 관음을 빗댄 혁명이나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편, 선종의 경우, 국가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자급자족적인 생활을 통해 불교의 독립을 유지했다. 백장청규는 이러한 선종의 독립 노력이다. 히라카와가 보는 교단사의 맥락은 이처럼 불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안목을 열어준다.
이 외에도 『대승기신론』을 비롯한 대승경전의 주석 및 해석, 법과 연기에 대한 연구, 말년의 연구인 이백오십계 연구, 『구사론』 색인 등이 있다. 일본불교에 대해서는 승려들의 교과서로 쓰인 『팔종강요八宗綱要』 강독 등이 있다. 특히 심혈을 기울인 『불교범한대사전』은 한자에서 범어를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일본인도학불교학회의 이사장을 맡으면서 논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도 했다. 죽음을 앞에 놓고도 학문에 대한 연찬은 끊이지 않았다. 76세 때부터는 ‘천태삼대부天台三大部의 회’를 이끌며, 『마하지관』을 강의했다. 의문이 풀릴 때까지 원전을 수없이 반복해서 읽었다. 치밀한 검증과 논증이 그의 학문적 무기였다. 『중용』 20장에서 “성誠이란 하늘의 도이며, 성에 이르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라고 한다. 히라카와야말로 학문적 실천으로 이 성誠의 참된 의미를 우리에게 보여준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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