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의 세계]
공양간을 관장하며 불을 상징하는 조왕신竈王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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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 2021 년 12 월 [통권 제104호] / / 작성일21-12-03 10:06 / 조회6,249회 / 댓글0건본문
불화의 세계 24 | 조왕탱화竈王幀畵
조왕탱은 부엌의 신인 조왕을 묘사한 불화로 사찰에서는 주로 공양간에 봉안된다. 실제로 인류는 보편적으로 불을 신성시하여 왔다. 조왕은 음식물을 만드는 공간인 부엌을 관장하며, 그 기원은 불을 다루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부엌은 불을 사용하여 음식을 만드는 곳이기도 하고, 음식을 만들 때 자연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불과 물을 동시에 사용하는 곳이다. 그래서 때로는 조왕이 물로 상징되기도 한다. 그러나 조왕은 원칙적으로 불을 상징하는 신앙이라 하겠다.
과거 민간에서도 불씨를 신성시하며 이사를 갈 때 불을 꺼뜨리지 않고 가지고 가는 풍습은 모두 불을 숭배하던 신앙에서 유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는 부엌 부뚜막에 물을 담은 종지를 놓고 모시는 풍습이 있는데, 이것을 ‘조왕보시기’ 또는 ‘조왕중발’이라 하였다. 강원도 화전민촌에서는 부뚜막에 불씨를 보호하는 곳을 만들어 두는데, 이것을 ‘화투’ 또는 ‘화티’라고 하였다. 여기에는 불을 꺼뜨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덕목이었다.
조왕탱을 그려 모실 수 없었던 민간에서는 부엌의 벽에 백지를 붙여 조왕신을 모시기도 하는 등 그 형태가 다양하기도 하지만 모두 불씨를 중요시하는 신앙이 복합되어 있다. 조왕에게 물을 바치는 것은 불을 끄고자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물과 불을 동시에 다루는 것에서 생긴 것으로 보여진다. 불과 물이 따로따로 조왕을 상징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여하튼 부엌은 물과 불을 다루는 곳이고, 따라서 정화淨化하는 힘도 있다고 믿어져 예전의 풍습 가운데 초상집에 다녀오는 길에 먼저 부엌에 들르는 습속도 전해 내려온다.
이러한 조왕신앙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찍이 중국 고대에서도 나타나는데, 5,6세기 경에 신앙으로써 성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신앙이 우리나라나 일본 특히 오키나와 등지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관련 연구자들은 말하고 있다. 이러한 영향설과는 달리 우리나라 고유의 신앙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그러한 영향 관계를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의 삶이 이루어지는 모든 지역에서는 불과 관련한 조왕에게 제사를 지내고 신앙적 의례 등을 하는 점에서 볼 때 삶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대상인지를 알 수 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조왕신을 ‘가마도(부뚜막)’ 신이라 하여 집을 수호하는 수호신으로 여기며, 중국에서는 조왕신이 집안의 가족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상천하여 하늘에 있는 옥황상제玉皇上帝에게 보고하여 인간들의 선악의 행동에 따라 화복禍福을 준다는 기능신으로 믿어진다.
이러한 조왕대성竈王大聖은 부처님의 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보살피는 호법선신중護法善神衆으로 위치하게 되면서, 104위 신중의 하단위목下壇位目에 위치하여 인사人事를 검찰하고 선악을 분명히 가리는 신장으로서 참여한다. 즉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토지의 온갖 것들을 관리하고 중생의 삶에서 정성스런 마음을 살펴보는 일을 부촉받은 것이다. 그런 연유로 『불설환희조왕경佛說歡喜竈王經』에서도 “뜻과 희망 다 이루게 하시는 조왕신, 선함을 기억하여 만복을 다 갖도록 하옵니다.”라고 한 것이다.
언급하였듯이 조왕은 104위 신중에 포함되어 신중탱화에 나타나는 까닭에 공양간에 모셔지는 조왕탱은 신중탱의 분화로 볼 수 있으며, 성격에 있어서는 안택安宅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1795년(정조 19)에는 『불설환희조왕경』이 간행되었으며, 이후에도 단독으로 간행되거나 또는 『천지팔양신주경』, 『불설지심다라니경』과 합철되어 간행되기도 하였다. 조왕은 이렇게 불교적으로 정화된 뒤 독립되면서 조왕단과 조왕탱화의 성립을 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조왕탱화는 크게 두 가지의 형식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먼저 첫 번째는 조왕 한 분만을 그린 독존 형식(사진 1)이며, 그리고 좌우 협시가 표현된 삼존 형식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보통의 삼존 형식은 조왕대신을 중심으로 좌측에 담시역사擔柴力士가 그려지고, 우측에 조식취모造食炊母가 그려진다. 담시역사는 지물로 도끼를 들고 있거나 메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며, 조식취모는 공양물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변형의 모습도 많이 나타나고 있음을 현존하는 조왕탱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조왕단에 탱화 대신 ‘나무조왕대신南無竈王大神’이라는 글자로 봉안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경우이든지 간에 사찰에서는 ‘내조왕內竈王 외산신外山神’이라 하여 대중 생활에 있어 공양간을 담당하는 소임자에게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해인사 약수암 조왕탱(사진 2)은 조왕탱의 전형적인 모습들이 갖추어져 있어 많이 알려진 대표적인 조왕탱의 한 경우이다. 전체적으로 주색과 녹색을 위주로 하여 차분하고 안정된 색감으로 표현되었는데, 중앙의 조왕은 향 좌측으로 시선을 두고 있으며, 오른손은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펴서 탁자 위에 올려놓고 있다. 왼손은 수염을 만지고 있으며, 탁자 위에는 다구茶具와 문방사우 및 서책이 놓여 있다. 좌측에는 도끼를 든 담시역사가 조왕을 바라보며 시립해 있다. 조식취모는 일반적인 삼존 형식과는 다르게 조왕님의 앞에서 공양을 올리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탁자 앞에는 받침대 위에 놓인 화분이 그려져 있으며, 배경은 좌우의 커튼 사이로 파도가 일렁이는 물의 좌우에 해와 달이 운무를 배경으로 그려져 있다.
보덕사 조왕탱(사진 3)은 황색 계통의 통일감에 난색계와 한색계가 적절하게 어우러져 표현된 점이 주목된다. 그러나 도상은 앞의 약수암 조왕탱과 다른 양상을 보여 준다. 중앙의 조왕은 호피로 덮은 의자에 앉아 계시고, 담시역사는 조왕의 오른쪽에서 홀笏인 듯한 지물을 들고 있으며, 조식취모는 연꽃과 다관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조왕의 다른 경우와 달리 협시의 좌우가 다르게 도설되어 있으며 지물도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범어사 금수암 조왕탱(사진 4)은 정면을 향해 앉은 조왕이 화면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12곡 병풍을 배경으로 높은 관을 쓰고 엷은 하늘색의 관복에 각대를 하고 두 손을 양 무릎에 대고 있는 모습이 마치 관리의 모습과도 같다. 삼존 형식이기는 하나 조왕의 좌측에는 담시역사이기보다는 공양물을 들고 있는 동자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조왕의 우측에는 합장한 조식취모가 시립해 있다.
청룡사 조왕탱(사진 5)에서 표현되는 조왕은 대체적으로 문관의 모습을 띠는 경우와 달리 무관의 모습을 보여 준다. 중앙의 조왕대성은 향 좌측을 향해 앉아서 두 손을 들어 올려 시무외인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다리도 넓게 벌리고 앉은 활달한 자세를 보여 준다. 조왕대성의 좌측에 위치하는 담시역사도 갑옷을 입은 무장을 한 모습이며, 조식취모는 시녀侍女의 모습을 하고 있어 신중도의 한 부분을 연상하게 한다. 화면의 하단을 넓게 설정하여 시원한 공간감을 느끼게 해 준다.
기림사 조왕탱(사진 6)에서는 중앙의 조왕이 향 좌측을 향하고 있으며, 오른손은 의자의 팔걸이를 잡고 왼손에는 홀을 쥐고 있다. 조왕의 뒤쪽 좌우에는 과반에 선과를 든 여인이 배치되어 있다. 희고 원만한 얼굴의 조왕은 조관복을 착용하였는데, 짙은 녹색 관복의 흉부에는 방형 흉배에 학과 구름을 그려 장식하였고, 그 위에 옥대를 두르고 있다. 하반신에는 주색 상의와 백색의를 겹쳐 입었다. 이는 삼존의 형식이 아닌 2위의 동녀가 시립한 모습이어서 약수암 조왕탱이나 청룡사 조왕탱과는 달리 해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상과 같이 독존 형식을 비롯하여 삼존 형식까지 살펴보았으나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두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조왕신앙에는 부지런히 일함으로써 가족이 잘 되고, 특히 집을 떠나 객지에 있는 가족을 수호한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이를 『불설환희조왕경』에서는 “장엄하신 조왕님께 머리 숙여 예배하니 큰 광명이 시방세계 환히 밝게 비칩니다. 집안 식구 모두 같이 건강하고 편안하며, 집 안과 밖 번창하고 길하게 한 크신 조왕신 금은보배 옥백들이 집안 가득 하옵니다.”라고 하였다. 결국 자신의 현실에 충실하고 그에 따라 복을 받는 인과의 이치를 구체적으로 현실화한 것이 조왕신앙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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