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와 사상]
『대둔사지』의 찬술자와 정약용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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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후 / 2022 년 1 월 [통권 제105호] / / 작성일22-01-05 09:37 / 조회4,177회 / 댓글0건본문
근대불교사서史書 13 | 『대둔사지大芚寺志』 ②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조선 불교계에서 찬술된 팔도의 사지寺誌 가운데 『대둔사지』와 『만덕사지萬德寺誌』는 그 완성도가 높다. 당시 사찰의 중건과 함께 진행된 사적기 찬술은 개별 사찰을 중심으로 한 사찰의 역사를 재정립하였는데, 이 두 사지는 사적기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었다. 단편적인 편린들을 수집하고 철저한 고증과 함께 복원하였다. 때문에 일차적으로는 사적기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불교사서佛敎史書의 가치를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대둔사·만덕사 승려들과 정약용이 참여한 『대둔사지』의 찬술은 우선 대둔사의 산일散逸된 자료를 모으고 기록의 오류를 바로잡는 데 있었다. 그러나 궁극적인 목적은 조선 후기 불교계에서 『대둔사지』가 차지하는 위상을 천명하는 데 있었으며, 더 나아가 조선불교가 지닌 독자성과 부실한 채 남아 있는 조선불교사를 복원하려는 의도 또한 지니고 있었다.
『대둔사지』에 대한 이제까지의 관심은 『대둔사지』의 구성과 찬자 그리고 서지학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특히 최병헌은 정약용이 『대둔사지』 찬술 작업에 참여하게 된 계기와 권4 『대동선교고』의 편자가 정약용이었음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은 『대둔사지』에 대한 해제적인 측면이 강했다. 그것은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전반기에 걸친 시기의 불교계 상황을 폭넓게 검토하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어서 『대둔사지』가 지닌 조선 후기 불교계의 특성이나 역사적 의미와 같은 구체적인 문제를 규명하는 데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둔사지』는 모두 4권 2책으로 구성되었다. 각 권의 편찬을 맡아서 완성시킨 인물이 각 권의 맨 앞에 다음과 같이 밝혀져 있다.
卷之一
鑑定 : 玩虎尹佑 編輯 : 袖龍賾性·草衣意洵
留授 : 兒菴惠藏 校正 : 騎魚慈弘·縞衣始悟
卷之二
鑑定 : 玩虎尹佑 編輯 : 袖龍賾性·草衣意洵
留授 : 兒菴惠藏 校正 : 騎魚慈弘·縞衣始悟
卷之三
鑑定 : 玩虎尹佑 編輯 : 袖龍賾性·草衣意洵
留授 : 兒菴惠藏 校正 : 騎魚慈弘·縞衣始悟
卷之四
鑑定 : 玩虎尹佑 編輯 : 袖龍賾性·草衣意洵
留授 : 兒菴惠藏 校正 : 騎魚慈弘·縞衣始悟
이들 사지 찬술 참여자들은 대부분 대둔사의 스님들이었고, 만덕사의 아암혜장兒菴惠藏(1772-1811)과 그의 제자들이 일부분 참여하기도 하였다. 먼저 완호윤우玩虎尹佑(1756-1826)는 전권全卷의 감정을 맡았고, 수룡색성袖龍賾性(1777- ?)과 초의의순草衣意洵(1786-1866)이 편집을 보았다. 그리고 기어자홍騎魚慈弘과 호의시오縞衣始悟(1778-1868)가 교정을 담당했다. ‘아암혜장兒菴惠藏 유수留授’는 아암이 사지에 대한 부분적인 초고草稿를 남기고 타계(1811년)하였으므로 이를 이용했다는 의미인 듯하다. 결국 사지는 대둔사의 완호윤우와 만덕사의 아암혜장을 중심으로 그 제자들이 완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다산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 사지 찬술에 참여했고 그 정도가 어떠했는지는 『대둔사지』에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완호윤우는 조선 후기 불교계의 대표적인 승려 연담유일蓮潭有一(1720-1799)의 제자다. 그는 13세에 대둔사에 출가하여 백련도연白蓮燾演에게 교학敎學을 익히고, 연담유일로부터 선학禪學을 수학했다. 무오년戊午年(1798년) 10월에는 대둔사 청풍요淸風寮에서 강경講經 대법회를 개최했는데 100여 명의 학인學人들이 모여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리고 1811년에는 대둔사 남원南院의 여러 전각이 소실되었을 때 제성濟醒과 은봉隱峰·새순璽絢과 함께 중창 불사를 일으켜 이듬해 5월 극락전·용화전·지장전을 새로 지어 대둔사를 쇄신시키기도 했다. 또한 1812년에는 경주 기림사祇林寺에서 옥석玉石으로 천불千佛을 조성했다. 이 천불을 실은 배는 중간에 풍랑을 만나 일본에 표류하기도 했지만, 무사히 대둔사 법당에 봉안되었다.
완호는 서산西山의 의발衣鉢이 대둔사에 전해진 이후 대둔사가 조선 후기 선교禪敎의 종원宗院으로서의 면모를 갖출 수 있도록 내외內外로 진력했던 인물이다. 성품 또한 수행자로서의 면모를 지녀 절 소유지에서 나오는 수확물의 많고 적음을 탓하지 않았고, 죽을 때까지 의식衣食의 좋고 나쁨을 분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성품과 수행으로 대둔사 12강사 가운데 한 사람으로 추앙받기도 했으며, 제자는 선禪을 전수받은 제자가 20여 명, 교학敎學을 전수받은 제자가 10여 명, 전계제자傳戒弟子가 8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대둔사지』 찬술에 참여했던 초의의순은 문학에, 호의시오는 덕행으로 유명했다. 초의의순은 자字가 중부中孚로, 출가하여 완호의 제자가 되었다. 틈틈이 범자梵字를 익혔고, 초상화를 잘 그렸으며, 전서篆書와 예서隸書의 법칙을 터득했다고 한다. 그는 교리에 정통하면서도 선경禪境을 개척했다고 한다. 그의 선사상이 온축되어 있는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는 백파긍선白坡亘璇(1767-1852)의 『선문수경禪 文手鏡』의 선론禪論을 반박하기 위한 저술로 이들의 선 논쟁은 점차 확대되어 반세기 이상 조선 후기 선종사를 지배했으며, 당시 선학禪學이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초의는 당대의 유학자였던 다산 정약용과 해거도위海居都尉 홍석주洪奭周, 자하紫霞 신위申緯,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와 함께 시를 주고받는 등 폭넓게 교유하니 “옛 동림사東林寺의 혜원慧遠이나 서악西嶽의 관휴貫休라 지칭하여 명성이 일시에 자자했다.”라고 한다. 특히 정약용과의 교유는 유서儒書와 저술에 대한 법을 익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시도詩道 또한 다산에게서 배웠는데, 그 천기天機가 넘쳐흘렀다. 1813년 51세의 정약용이 26세 초의에게 보낸 글에는 시에 대한 가르침이 잘 나타나 있다.
시라는 것은 뜻을 말하는 것이다. 본디 뜻이 저속하면 억지로 청고한 말을 하여도 조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본디 뜻이 편협하고 비루하면 억지로 달통한 말을 하여도 사정에 절실하지 못하게 된다. 시를 배움에 있어 그 뜻을 헤아리지 않는 것은 썩은 땅에서 맑은 샘물을 걸러내려는 것 같고, 냄새나는 가죽나무에서 특이한 향기를 구하는 것과 같아서 평생 노력해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천인天人과 성명性命의 이치를 알고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의 나뉨을 살펴서 찌꺼기를 걸러 맑고 참됨이 발현되게 하면 된다. -丁若鏞, 「草衣僧意洵贈言」(『茶山詩文集』 권17)
정약용은 초의에게 시를 배우기 위해서는 뜻을 헤아리고, 천인天人과 성명性命의 이치理致를 알고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의 나뉨을 살펴 참됨이 발현되게 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두 사람 사이의 교유 정도가 시우詩友와 도교道交이기보다는 사제지간의 훈육인 셈이다. 초의 또한 “종아리를 걷고 가르침을 청할 것이요, 혹 수레가 떠날 때 주신 말씀은 가슴 깊이 새겨 띠에 써 두렵니다.”라고 하여 제자로서의 예를 갖추었다. 더욱이 정약용은 그가 주관한 ‘역학회易學會’에도 초의를 참여시켜 일부를 초역抄譯하게 할 만큼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돈독했다. 초의는 정약용의 이러한 호의에 감사함을 가졌고, 스승 다산이 그리워 초당에 가려고 했지만 비가 내려 못 가고 되돌아오면서 쓸쓸한 심정을 읊기도 해 정약용에 대한 초의의 추앙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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