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석문의범』을 편찬한 의례와 사기의 집대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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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태 / 2022 년 1 월 [통권 제105호] / / 작성일22-01-05 09:17 / 조회5,015회 / 댓글0건본문
근대한국의 불교학자들 13 | 안진호安震湖 1880-1965
안진호安震湖(1880-1965)는 한국불교의 의식 작법을 망라한 『석문의범釋門儀範』을 펴냈고, 사찰의 역사를 기술한 사지寺誌 편찬에서도 많은 성과를 냈다. 그는 불교 경전의 한글 역경과 불서 출판에서 백용성에 버금가는 업적을 쌓았다. 이처럼 안진호는 한국불교의 역사 전통과 의례 문화, 지식 유산을 집성하고 그 정체성을 알리며, 이를 다음 세대로 넘겨주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안진호는 1880년 경상북도 예천에서 태어났고 어려서 서당에서 한학을 익혔다. 16세 때에 예천 용문사에 가서 공부하다가 이듬해인 1896년 신일信一에게 출가했다. 법호는 진호, 법명은 석연錫淵이며, 이후 10년 동안 용문사 강원에서 사집과, 사교과, 대교과의 이력 과정을 마쳤다. 그런데 그는 1906년에 세워진 불교계 최초의 근대적 교육기관인 명진학교의 제1회 졸업생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지방 전문강원에서 대교과까지 수료한 이들이 학생으로 들어왔고, 졸업 후에는 전국의 각 사찰에서 설립한 일반 학교의 교사나 강원의 강사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통 강원과 신식 교육 과정을 모두 마친 안진호는 이후 20여 년 동안 문경 김룡사와 대승사, 의성 고운사, 양주 봉선사, 장성 백양사, 오대산 상원사 등에서 강의를 맡았다. 그는 김룡사에서 출가하고 대승사에서 강석을 열었던 권상로와 더불어 경상북도 지역의 이름난 강사였고, 두 사람은 아주 막역한 사이였다. 1914년에는 예천 용문사와 명봉사가 공동으로 포교당을 건립했는데, 정식 명칭은 ‘대본산 김룡사 말사 용문사 명봉사 예천 포교소’였다. 안진호는 1915년에 이 포교당에 예천불교회를 조직하고 학생들을 위한 야학회를 운영했고 1921년까지 포교사로 활동했다.
소금장수와 등유장수 등 기행
그는 짧게나마 기이한 행적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로 접어든 30세 무렵에는 생명 있는 모든 존재에게 필요한 소금 같은 이가 되겠다며 소금장수로 나섰다고 한다. 또 40세가 넘어서는 어둠을 밝히는 등불처럼 살겠다며 등유장수를 했다고 하는데, 이 무렵인 1922년부터 1924년 사이의 행적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1925년 서울로 와서 정동의 중앙포교소에 머물렀는데, 이곳은 전에 원종 종정을 역임했던 이회광이 운영하고 있었다.
이때 안진호는 재조선 일본인들이 만들고 조선인 유력자들이 참여한 단체인 조선불교단의 1차 일본불교 견학 사업의 일환으로 시찰단에 참가했다. 8월 20일에 서울을 출발해 부산에서 배를 타고 시모노세키에서 내려 오사카로 갔다. 시찰단은 9월 2일까지 오사카·교토·나라 일대를 다니면서 유명 사찰들을 답사했고, 그 밖에도 일본 불교계에서 운영하는 대학과 유치원 및 양로원, 방적회사와 제사공장, 박물관과 기념관 등을 방문했다. 그는 일본에서 역사가 오래된 사찰들이 가지고 있는 사지의 존재에 부러움을 느끼고 사지 편찬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본말사지 편찬
귀국한 후 안진호는 실제로 봉선사, 전등사, 유점사 등의 사지를 연이어 펴냈다. 1925년 12월부터 1927년 봄까지 경기도 양주 봉선사의 강원에서 강의했는데, 주지 홍월초가 봉선사와 소속 말사의 연혁을 정리한 사지를 만들어 달라고 의뢰했다. 이에 봉선사를 비롯해 회암사, 흥국사, 불암사, 그리고 내원암, 견성암, 현등사, 수국사 등 경기도 북부의 24개 사암을 직접 답사하고 관련 자료를 모아 1927년 9월에 『봉선본말사지』를 펴냈다. 본사인 봉선사는 위치와 교통, 연혁, 사격과 종파 및 계통, 조선 열성조 위패, 고문서 등 총 15장으로 기술되었고, 말사들의 사찰별 연혁 등을 정리했다. 『봉선본말사지』는 최초의 본격적인 본말사지라 할 수 있으며, 그러한 가치 때문인지 박한영이 편찬 관련 글을 지어주었고, 권상로와 이능화가 서문을 썼다.
1932년에는 강화도 전등사의 주지 이보인이 사지를 내자고 제의해 왔는데, 김정섭이 주지를 하던 1942년에 가서 『전등본말사지』가 나왔다.
『전등본말사지』는 모두 8편으로 1편은 전등사를 비롯해 청련사, 원통암, 백련사 등 28개 사암의 사지를 실었고, 2편은 각 사찰의 지리적 위치, 3편은 교당의 현황, 4편은 본말사의 역대 주지, 5편은 본말사 승니와 계파, 6편은 고적, 7편은 고사古寺, 8편은 고려 왕실의 신앙이며, 부록에는 본말사 사이의 거리와 지도 등이 실렸다. 안진호는 또 『유점사본말사지』(1942)에도 간여했는데, 14개 항목에 걸쳐 금강산 유점사와 말사의 자료를 모으고 연혁을 정리했다. 이 밖에도 『설봉산 석왕사 약지』, 『도봉산 망월사 사지』, 『삼각산 화계사 약지』를 작성했고, 봉은사, 백양사, 김룡사 등의 관련 기록도 수집·정리했다고 한다.
그는 50세가 된 1929년 서울 서대문에 만상회卍商會라는 가게를 열어서 불교 서적의 번역과 출판, 보급에 힘을 쏟았다. 만상회에서는 한글 번역서를 비롯한 30종이 넘는 불서를 발간했다. 그중에는 전통적 불교 의례와 작법을 모은 『석문의범』이 있고, 또 강원 교재로서 사미과의 『초발심자경문』과 『치문』, 사집과에 해당하는 『서장』, 『선요』, 『도서』, 『절요』 등을 현토 주해하여 펴냈다. 그리고 『법화경』, 『지장경』처럼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던 경전도 언해본으로 출간했다. 이뿐 아니라 붓다의 일대기를 여덟 부분으로 구성한 『신편 팔상록』도 간행했다. 만상회는 해방 이후 법륜사로 이름을 바꾸어 성북동으로 옮겨서 운영되었다.
『석문의범』(1935)은 전통적인 의례서와 의식집을 모아서 정리해 놓은 책으로 한국불교 의례의 지침서이자 참고서라 할 수 있다. 앞에 권상로의 서문이 있고, 본문의 <시始 황엽보도문黃葉普渡門 교敎>는 상·하편 18장으로 예경, 축원, 송주, 재공, 시식, 점안, 이운, 수계, 다비, 가곡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음 <종終 격외염롱문格外拈弄門 선禪>은 불조화두, 좌선의식, 좌선심득 등 4장이며, <부록별책>에는 조선사찰 일람표, 조선교당 일람표, 최근 오백년간 연대표가 붙어 있다.
이 책에는 각종 예참, 축원, 재공 의식과 선수행 관련 절차는 물론 참선곡, 회심곡, 염불가 등이 들어 있다. 의례문에는 한자와 함께 한글을 병기하여 대중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또 승가의 일상 의례뿐 아니라 승과속이 함께 하는 각종 재의식에도 큰 비중을 두었으며, 장례 및 추도의식도 시대에 맞게 정비했다. 흥미로운 점은 불교의 현대화와 확산을 위해 불교식 혼례법을 넣었고, 조학유가 지은 찬불가 등을 수록한 사실이다. 『석문의범』은 출간 당시 큰 호응을 얻어서 1년여 만에 초판이 매진되었고, 지금까지도 애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불교의식집이다.
그런데 『석문의범』 출간보다 4년 앞선 1931년에 안진호는 최취허崔就墟와 함께 간편한 불교의식집인 『불자필람佛子必覽』을 펴냈다. 최취허는 주로 포교사로 활동한 인물로 이때는 서울 각황사에 있으면서 이 책의 편집 및 발행인을 맡았다. 『불자필람』의 발간은 한용운이 후원했고 교정은 권상로와 김태흡이 담당했다(사진 3). 책의 앞머리에는 권상로의 글씨, 최취허의 발간 취지와 안진호의 서문이 있고 발문은 김태흡이 썼다. 이 책은 과송課誦 및 예공禮供 의식을 간추린 것으로 상편은 향수해, 사성례, 행선축원, 법성게, 다비문, 사미십계, 거사오계, 하편은 제불통청, 미타청, 관음청, 산신청, 조왕청, 대령식, 구병시식, 상용영반 등이 수록되었다. 부록에는 포교방식, 입교양식(신도증), 설교의식, 강연의식(법회순서), 기념식, 추도의식, 화혼의식 등이 포함되었다. 이처럼 게송, 축문, 계율, 청문 등 전통적 의식절차가 망라되어 있 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불교 근대화의 탐색 노력이 묻어나 있다. 또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본문을 상단과 하단으로 나누어 한문과 한글로 기재했다.
안진호는 권상로가 발행하던 《불교》 잡지에 1925년 1월부터 1927년 2월까지 22회에 걸쳐 〈일호일언一號一言〉이라는 고정란을 맡아 소백두타小白頭陀라는 필명으로 연재했다. 그중에는 ‘십년공부 도로아미타불’, ‘신라 때 불가사리’ 등 눈길을 끄는 제목도 보이고 자신이 경험한 일본 시찰 내용, 출신 사찰인 ‘용문사의 신비’ 등을 소개하기도 했다. 또 1926년 11월부터 1928년 7월까지 같은 《불교》지에 만오생晩悟生이라는 필명으로 〈양주 각사各寺 순례기〉를 게재했다. 이는 그가 『봉선본말사지』를 편찬할 때 양주의 여러 사찰을 답사했던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한국불교의 오랜 역사와 고유한 문화를 오롯이 담아낸 사지와 의례서 편찬에서 안진호의 역할은 적지 않았다. 그는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상황에서 강사와 포교사로 활발히 활동하면서 강학 전통의 계승과 불교의 저변 확대에도 이바지했다. 사찰의 연혁과 의례 문화를 중심으로 불교 기록유산을 집성한 불교사학자로서, 그리고 많은 불서를 번역하고 간행한 역경사업과 불교 대중화의 기수로서 그의 업적과 위상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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