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
차가운 돌에 따뜻한 영혼을 불어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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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리 / 2022 년 1 월 [통권 제105호] / / 작성일22-01-05 10:42 / 조회5,175회 / 댓글0건본문
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1 석장 윤태중
한국의 대중문화가 ‘한류韓流’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를 풍미風靡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대중문화에 관심을 갖지만 점차 안목이 깊어지면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 가는 사례를 보게 됩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 문화재의 대부분은 불교문화재이며, 불교문화는 한국문화의 원천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 전통은 과거의 역사에 그치지 않고 현재에도 수많은 장인들에 의해 그 맥이 계승되고 있습니다. 새해부터 ‘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라는 타이틀로 전국 곳곳에서 활동하는 장인들을 찾아 그들의 삶과 예술세계를 조명합니다. 한류의 원류를 찾아가는 품격 있는 여정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 편집자 주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대표적인 보석으로 서양에는 불멸의 광채를 가진 다이아몬드(diamond)가 있고 동양에는 청아한 아름다움을 지닌 옥(玉)이 있다. 다이아몬드와 옥은 각기 다른 매력과 우아함을 지녀 예로부터 사람들이 소유하고 싶어 하는 욕망의 대상이 되곤 하였다. 이 둘의 공통점이라면 모두 돌에서부터 탄생되었다는 것이다. 이 고귀한 돌들은 어떻게 다듬는가에 따라서 세상에 빛나는 보석이 되기도 하고, 쓸모없는 돌멩이로 버려지기도 했다.
절차탁마切磋琢磨 이후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논어論語』에 보면 공자와 그의 애제자 자공의 대화 속에 돌을 다듬어 귀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등장한다.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물었다. “가난해도 아부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그만하면 괜찮지만 “가난해도 즐거워하고 부유해도 예禮를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대답했다. 자공이 다시 말했다. “『시경詩經』에서 ‘여절여차, 여탁여마(如切如磋, 如琢如磨)’라고 하였는데, 그런 뜻입니까?” 공자가 그의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져서 이렇게 말했다. “비로소 내가 너와 함께 시를 이야기할 수 있겠구나.”(『논어論語』, 학이學而편 15장)
여절여차, 여탁여마(如切如磋, 如琢如磨) 바로 ‘절차탁마切磋琢磨’하는 모습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절차탁마는 자르고 갈고, 쪼고 다듬는 과정을 말한다. 하나의 돌덩이가 절차탁마의 과정을 거쳐 빛나는 보석이 되듯, 학문과 덕행, 수행에 있어서도 절차탁마의 과정을 통해 비로소 성숙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윤태중 석장의 절차탁마
충남 공주시 우성면 방문리에 위치한 금각조각연구소는 30년 경력의 윤태중 석장이 돌로 역사를 만들어 내는 공간이다. 돌은 가장 오래전부터 사람들과 함께해 온 예술의 소재이다. 화강암이 많이 나는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많은 석조 문화재가 만들어졌다. 돌의 특성상 야외에서 시간을 버티는 힘이 길지만 비바람과 지반의 영향으로 보수와 복원이 필요하다. 그간 300여 점의 문화재가 윤태중 석장의 손길을 통해 보수, 복원되었으니 윤석장은 오랜 돌예술품들의 치료사요 벗이요 아버지다.
석장의 마당에는 쉼 없이 돌소리가 울려 퍼진다. “타앙 타탕 탕탕탕 타아앙 탕타아아앙 탕”
정을 때리며 돌 쪼는 소리에 귀가 요란하고 쨍쨍하다. 가만히 들으면 일정한 간격을 이루며 장단을 이루니 돌과 쇠가 주고받는 대화 같기도 하고, 오래되고 단단한 바위의 중엄한 노래 같기도 하다. 돌이라는 것은 한 번 만들어지면 천년을 간다. 한 번 만들어진 작품이 세워지면 천년동안 무수한 이들의 눈길을 받아 내야한다. 그러니 돌을 다루는 석장의 손길이 얼마나 중요한가. 윤태중 석장은 자신이 빚어내는 돌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저 전시가 아닌 수세대의 사람이 교유하고 공유하는 매개체이기에 한 돌 한 돌 다듬는 그 순간이 모두 정성과 마음이라고 말한다.
강진 월남사지 석탑(보물제 298호), 부여 대조사 미륵대불(보물 제217호), 산청 범왕리 삼층석탑(국보 제105호), 동국대박물관 보협인석탑(국보제 209호), 월정사 석조보살 좌상(국보 제48-2호), 구례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 복원(국보 제35호) 등 이름만 들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문화유산이 윤태중 석장의 손끝에 의해 보전되고 복원되고 있다.
최근 윤석장은 경남 산청군 성철 대종사 생가터 소재의 ‘겁외사 석조 사면불’을 완성하였다. 가로 3.8m, 세로 3.8m, 높이 6.1m에 이르는 규모다. 두께 0.5cm, 넓이 1.5m, 높이 3.2m의 4개 판석에 각각 고부조 양식으로 약사불, 아미타불, 미륵불, 석가모니불 입상이 새겨져 있다.
사면불은 각각 다른 세계를 상징한다. 동방 약사불은 중생들의 모든 질병을 고쳐주며 재난에서 벗어나게 하고 음식과 옷을 제공하는 등, 현재 살아가는 세상의 이익과 매우 가까운 부처님이다. 서방 아미타불은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교화하고 이 세상이 서방정토 극락세계가 되어 걱정과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부처님이다. 남방 미륵불은 미래 세상에도 우리를 보호하고 바른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해 주는 부처님이다. 북방 석가모니불은 현재의 우리가 무지無智로부터 벗어나 지혜의 삶을 살고 궁극적으로는 깨달음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부처님이다. 석장의 손길에서 모셔진 부처님들은 수세대를 통해 우리 마음에 위로를 주게 될 것이다.
차가운 돌은 가장 따듯한 존재로 승화된다
거대하게 큰 바위 덩어리가 하나의 예술품으로 태어나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이 필요하다. 우선 큰 돌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내야 한다. 톱으로 자른다고 돌이 쉽게 잘리지 않는다. 사실 돌을 자르는데 꼭 필요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한없이 힘 없을 것 같은 물이다. 물이 없으면 돌은 절대 자를 수 없다. 불꽃만 튀길 뿐이다. 워낙 큰 작업을 많이 하기 때문에 위험요소도 많고 실제로 부상도 종종 일어난다. 낙상의 위험도 있고, 돌을 쪼는 과정에서도 잔돌이 여기저기 튀어 필자도 돌 튀김을 몇 개 얻어맞았다.
작업장에서 만난 윤석장은 석수石獸를 제작하고 있었다. 진묘수라고 불리는 무령왕릉(1971년 7월 발굴)의 석수는 악귀를 쫓아내고 사자死者를 수호하며, 무령왕과 왕비의 영혼을 안내하는 역할로서 제작되었다. 백제의 석수가 오늘날의 석수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롭다. 석수의 외뿔은 쇠로 되어 있는데 놀랍게도 쇠뿔도 윤석장의 손에서 만들어진다. 하나에 관통하면 돌도 쇠도 나무도 모두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사진 7. 석수를 만들고 있는 윤태중 석장.
사진 8. 석수.
매일 야외에서 돌을 다루는 윤태중 석장의 손은 거칠게 터 있다. 얼굴도 까맣게 그을려 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아이의 미소를 그대로 담고 있다. 돌을 다듬고 있을 때만큼 행복한 순간이 없다고 한다. 저 거친 손으로 더 거친 돌의 속살을 꺼내 세상 부드러운 미소를 그려내고 온화함을 담아내는 것이 그의 평생의 업이다. 석장이 만들어 낸 석불의 얼굴은 석장의 미소 그것과 닮아 있다.
윤석장의 옆에는 든든한 지원군이 자리하고 있다. 그와 꼭 닮은 아들이다. 아버지의 돌사랑을 보고 자란 그의 아들은 그의 제자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걸었던 거칠고 힘든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반대하고 싶었으나 담담하게 따라오는 그 모습이 좋아 함께 한다고 한다. 사이좋은 부자지간이 다정하기도 하다.
돌이 있는 곳이면 전국 어디라도 바로 달려가는 윤태중 석장. 좋은 돌이 있다는 소문이 있으면 돌사냥을 나간다고 한다. 맹수가 먹이 사냥을 나가듯 좋은 돌재료를 찾아 어디라도 나선다. 좋은 재료가 있어야 좋은 예술품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차가운 돌 속에서 하나의 존재가 태어난다. 우리는 그 존재 앞에서 때로는 숙연해지고 때로는 우리 마음의 쉼터가 되기도 한다. 외로운 마음에 위로가 되기도 하고, 따듯한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차가운 돌은 가장 따듯한 존재로 우리 역사 안에서 함께 숨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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