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수]
세 가지 번뇌[三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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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스님 / 2022 년 2 월 [통권 제106호] / / 작성일22-02-04 09:24 / 조회5,474회 / 댓글0건본문
세 가지 번뇌[三毒]란 열반을 증득 하는 데 장애가 되는 세 가지 가장 근본적인 번뇌를 말한다. 즉 탐욕貪欲과 진에瞋恚와 우치愚癡이다. 줄여서 탐貪·진瞋·치癡라고 한다. 이 세 가지를 동아시아불교에서는 ‘삼독三毒’이라고 부른다.
초기경전(Pāli Nikāya)에서 세 가지 번뇌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즉 lobha, dosa, moha 혹은 rāga, dosa, moha이다. 이것을 일반적으로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라고 번역한다. 빨리어 로바(lobha)와 라가(rāga)는 모두 ‘탐욕’으로 번역한다. 하지만 lobha는 탐욕(greed)의 뜻에 가깝고, rāga는 욕망(lust)의 뜻에 가깝다. 특히 rāga는 문맥에 따라 욕망[열의], 혹은 성욕[욕정]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처럼 lobha와 rāga는 그 의미가 약간 다르다. 아무튼 이 세 가지 번뇌가 괴로움의 뿌리일 뿐만 아니라 깨달음에 장애가 되는 근본 요인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면 붓다는 왜 탐욕(욕망), 성냄, 어리석음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는가? 한때 붓다는 불을 안치하고 큰 희생제(mahā-yañña)를 준비하고 있는 바라문에게 “바라문이여, 세 가지 불은 제거해야 하고 피해야 하고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이 셋인가? 탐욕의 불(rāgaggi)과 성냄의 불(dosaggi)과 어리석음의 불(mohaggi)이다(AN Ⅳ, 43-44).”
“바라문이여, 탐욕에 물들고 탐욕에 사로잡히고 그것에 열중하는 자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른다. … 그는 죽어서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그러므로 탐욕의 불을 제거해야 하고 피해야 하고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한다(AN Ⅳ, 44).” 성냄, 어리석음도 마찬가지다. 이 경에 따르면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모든 악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기 때문에 세 가지 불은 제거해야 하고 피해야 하고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뿌리사 숫따(Purisa-sutta, 人間經)」(SN3:2)에 의하면, 꼬살라국의 빠세나디(Pasenadi) 왕이 세존께 “세존이시여, 인간에게 안으로 어떤 법이 일어나면 해롭고 괴롭고 편히 머물지 못합니까?”라고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대왕이시여, 인간에게 안으로 탐욕이 … 성냄이 … 어리석음이 일어나면 해롭고 괴롭고 편히 머물지 못합니다(SN Ⅰ, 70).”라고 했다.
비슷한 내용이 「로까 숫따(Loka-sutta, 世間經)」(SN3:23)에도 설해져 있다. “대왕이시여, 세 가지 세상의 법들이 일어나면 해롭고 괴롭고 편히 머물지 못합니다. 무엇이 셋인가? 대왕이시여, 탐욕이 … 성냄이 … 어리석음이 세상의 법이니 이것이 일어나면 해롭고 괴롭고 편히 머물지 못합니다(SN Ⅰ, 98).”
「삔다빠따빠리숫디 숫따(Piṇḍapātaparisuddhi, 乞食淸淨經)」(MN151)에서 붓다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걸식하기 위해 마을에 들어가거나 걸식을 하거나 걸식을 마치고 돌아올 때, ‘거기서 눈으로 인식되는 형상들에 대해 욕구나 욕망이나 성냄이나 어리석음이나 적의가 내 마음에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MN Ⅰ, 294).”라고 했다.
이 경에서 말하는 욕구(chanda), 욕망(rāga), 성냄(dosa), 적의(paṭigha), 어리석음(moha)이라는 다섯 가지 번뇌의 의미는 그 깊이가 약간 다르다. 욕구는 처음에 일어난 약한 갈애(dubbala-taṇhā)이고, 욕망은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강한 갈애(balava-taṇhā)를 말한다. 성냄은 폭행 등을 실행할 수 없는 처음에 일어난 약한 분노이고, 적의는 폭행 등을 실행할 수 있는 계속 적으로 일어나는 강한 분노를 말한다. 어리석음은 미혹함을 통해서 일어나는 무지(無智, aññāṇa)이다. 이 다섯 가지 번뇌는 세 가지 번뇌, 즉 탐욕, 성냄, 어리석음에 포함된다.
(1) 로바(lobha)는 lubhati(탐하다, 탐구하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로, ‘탐욕스러움’, ‘탐욕’이라는 뜻이다. 『청정도론』에서는 “이것 때문에 탐하고, 혹은 단지 탐하기 때문에 탐욕이라 한다(Vism 468).”라고 정의한다. 이어서 “이 가운데서 탐욕은 마치 끈끈이처럼 대상을 거머쥐는 특징을 가진다. … 탐욕은 갈애의 강물로 늘어나면서 마치 강물의 거센 물살이 큰 바다로 인도하듯 중생을 잡아 악처로 인도한다고 알아야 한다(Vism 468; 대림 옮김, 『청정도론』 제2권, p.476).”라고 해석한다.
(2) 도사(dosa)는 성냄, 악의, 나쁜 의도, 적의, 증오 등으로 번역한다. 빨리어 dosa(성냄)와 paṭigha(적의)는 그 강도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dosa는 약한 분노(dubbala-kodha)이고, paṭigha는 강한 분노(balava-kodha)이다. 도사(dosa)를 『청정도론』에서는 “이 가운데서 그것 때문에 성내고 혹은 그것 스스로 성내고 혹은 단지 성내기 때문에 성냄이라 한다. 그것은 마치 두들겨 맞은 독사처럼 잔인함을 특징으로 가진다. 그것은 마치 한 모금의 독처럼 퍼지는 역할을 한다. 혹은 자기의 의지처를 태우는 역할을 한다. 마치 숲속의 불처럼. 성내고 있음으로 나타난다. … 이것은 독소가 섞인 오줌과 같다고 알아야 한다(Vism 470; 대림 옮김, 위의 책, p.479).”라고 해석한다.
또한 『청정도론』에서 자애수행을 닦고자 하는 수행자는 “먼저 성냄의 위험과 인욕의 이익을 반조해야 한다(Vism 295).” “그러므로 ‘벗이여, 성내거나, 성냄에 휩싸이거나, 마음이[성냄에] 시달릴 때 생명조차 앗아간다(AN Ⅰ, 216).’라고 시작하는 경을 통해 성냄의 허물을 보아야 한다(Vism 295; 대림 옮김, 앞의 책, p.138).”라고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꼬다나 숫따(Kodhana-sutta, 忿怒經)」(AN7:60)에서 붓다는 어떤 사람이 성을 내고 성냄에 압도되고 성냄에 정복되면, 적을 기쁘게 하고 적에게 도움이 되는 일곱 가지 법이 찾아온다고 했다. 첫째는 흉한 꼴이 된다. 비록 목욕하고 향수 뿌리고 이발과 면도를 하고 흰색 옷을 입더라도 그는 성냄에 압도되어 흉한 꼴이 된다. 둘째는 잠을 잘 못 잔다. 성냄에 압도되면 아무리 좋은 침대에 누워도 잠을 이루지 못한다. 셋째는 큰 이익을 얻지 못하고 손해만 본다. 넷째는 재물을 얻지 못하고 있던 재물도 잃어버린다. 다섯째는 명성을 잃어버린다. 여섯째는 친구와 친척 및 가족이 그를 떠나버린다. 일곱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비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AN Ⅳ, 94-96). 이 일곱 가지 법은 모두 성냄으로 인해 찾아오는 불행들이다.
(3) 모하(moha)는 동사 muyhati(거칠어지다, 미혹하다, 둔해지다)에서 파생된 명사로, 어리석음, 둔함, 미혹 등으로 번역한다. 모하를 『청정도론』에서는 “이것 때문에 어리석고, 혹은 이것 스스로 어리석고, 혹은 단지 어리석기 때문에 어리석음이라 한다(Vism 468).”라고 정의한다. 또 “어리석음의 특징은 마음의 어두운 상태이다. 혹은 지혜가 없음이다. 통찰하지 않는 역할을 한다. 혹은 대상의 고유성질을 덮어버리는 역할을 한다. 바른 수행의 결여로 나타난다. 혹은 어두움으로 나타난다. … 모든 해로움의 뿌리라고 알아야 한다(Vism 468; 대림 옮김, 위의 책, p.476).”라고 해석한다.
또 “이것 때문에 삿되게 보고 혹은 이것 스스로 삿되게 보고, 단지 삿되게 보기 때문에 사견(邪見, micchā-diṭṭhi)이라 한다. 이것의 특징은 이치에 어긋나는 고집이다. 집착하는 역할을 한다. 삿된 고집으로 나타난다. … 이것은 가장 비난받아야 할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Vism 468; 대림 옮김, 위의 책, pp.476-477).”라고 해석한다.
「락카나 숫따(Lakkhaṇa-sutta, 三十二相經)」(DN30)에 의하면, 부처가 되면 안으로 감각적 욕망이나 성냄이나 어리석음이 일어나지 않는다(DN Ⅲ, 146-147). 그러나 범부들은 네 가지 경우로 사악한 업(pāpa-kamma, 邪業)을 짓는다. 즉 ①욕구(chanda, 열의), ②성냄(dosa), ③어리석음(moha), ④두려움(bhaya) 때문에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하면서 사악한 업을 짓는다(DN Ⅲ, 182).
그러나 번뇌 다한 비구는 ①살생, ②투도, ③음행, ④거짓말을 할 수 없고, ⑤감각적 욕망을 즐길 수 없다. ⑥욕구[열의], ⑦성냄, ⑧어리석음, ⑨두려움 때문에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아라한은 번뇌가 다하고 삶을 완성했으며 할 바를 다 했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참된 이상을 실현했고 삶의 족쇄가 멸진되었으며 바른 구경의 지혜로 해탈한 비구는 아홉 가지 경우들을 범할 수가 없다(DN Ⅲ, 133).
요컨대 탐욕(욕망), 성냄, 어리석음은 아라한과를 증득할 때까지 따라다닌다. 수행이라는 것도 결국은 이 세 가지 번뇌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함이다. 이것을 제거하지 않으면 결코 아라한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초기경전에 나타난 붓다의 교설이다.
한편 초기경전에는 ‘욕망’을 의미하는 여러 가지 단어들이 나타나는데, 그 중에서 까마(kāma), 딴하(taṇhā), 찬다(chanda)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까마(kāma)는 ‘바라다’라는 의미를 지닌 ‘kam’에서 파생된 명사로, ‘애욕’, ‘성교’ 등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감각적 욕망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딴하(taṇhā)는 그 어원이 ‘목마름’이란 뜻을 갖고 있음에서 알 수 있듯이, 간절한 바람을 가리키기에 갈애渴愛라고 번역한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상에서 보듯이, 로바, 라가, 까마, 딴하가 괴로움의 뿌리로서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반면 찬다(chanda)는 매우 중립적인 의미를 갖고있다. 찬다는 행위를 하기 위한 의지나 욕구, 또는 대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심리 현상 등을 가리키기 때문에 ‘의욕’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흔히 의욕은 그 결과가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단지 ‘하고자 하는 마음’을 나타내기 때문에, 의욕으로서의 찬다에는 부정적인 면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면이 모두 포함된다(정준영 외, 『욕망 삶의 동력인가 괴로움의 뿌리인가』, p.10). 따라서 찬다는 괴로움의 뿌리이면서 삶의 동력으로 작동할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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