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
화려한 색채 화엄장엄의 세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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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리 / 2022 년 2 월 [통권 제106호] / / 작성일22-02-04 10:47 / 조회5,545회 / 댓글0건본문
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2 단청장 성천 김성규
마음이 어지러운 날들에는 복잡한 도심보다는 한적한 외곽이나 공기 좋은 숲속, 산길을 찾게 된다. 그러다 보면 그곳엔 사찰이 있는 경우가 많다. 꼭 불자가 아니더라도 불심 없는 일반인이라 하더라도 고요한 사찰을 찾으면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진다고들 한다. 그러니 사찰은 모든 중생의 분별 없는 마음의 쉼터요,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인 것이다.
열린 공간의 사찰은 참으로 자연과 닮아있다. 사찰의 공간은 고즈넉하고 아늑한 곳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신성하고 장엄한 양면성을 가진다. 자연적인 면에서 편안함을 가진다면 장엄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단연 자비로운 부처의 모습에서, 역사의 스토리를 담은 불화에서, 그리고 화려함의 극치를 표현하는 단청에서 우리는 불가의 진묘珍妙를 느낄 수 있다.
단청 丹靑, 화려함과 장엄 도안의 극치
우리나라 전통예술분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조를 꼽는다면 누구나 단청을 떠올린다. 단청은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상서로운 문양들을 모아 오방을 상징하는 오채금장五彩金裝으로 표출된다. 화려함의 극치속에서 황홀감마저 안겨준다. 어떻게 인간의 손끝에서 이런 극도의 세밀하고 휘황찬란한 디테일이 구사될 수 있는지 장식미술의 극치를 느끼게 한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유적에서부터 시작되어 1,60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단청은 색채문화의 예술 산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에 명찰이 많지만 속리산 법주사, 김제 금산사, 오대산 월정사, 산청 겁외사, 나주 불회사에 가면 특별히 섬세하고 아름다운 단청을 만날 수 있다.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1호 김성규 단청장의 작품이다. 그는 초등 학교 졸업식도 치르기 전에 백부가 주지로 있던 황등 황룡사로 출가했다. 행자생활을 하며 2년 여를 보내다 15세가 되던 1969년 늦가을, 절에서 문중어른이자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단청장인 신언수 선생을 만나면서 단청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된다.
김성규 단청장은 단청뿐 아니라 불화, 생칠개금에도 빼어나다. 개금, 불화는 단청과 더불어 불교미술의 정수로 꼽힌다. 불교 경전에 부처의 몸은 자금광紫金光, 붉은 듯한 금빛을 띠는 것으로 되어 있으므로 불상에 금색을 입힌다. 금칠을 잘해도 세월이 지나면 벗겨지게 마련이어서 금칠을 다시 하게 되는데, 이를 개금改金이라고 한다.
불화는 불교 경전의 내용을 그림으로 옮긴 종교화로 예전에는 단청을 배우는 과정에서 거의 필수적인 코스로 여겨 왔으나, 요즘엔 하나의 전문분야로 분화되어 개금이나 불화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단청장은 그리 많지 않다. 김성규 단청장은 불교미술의 총합체를 수행할 수 있는 종합미술가로 거듭나면서 오대산 상원사 문수동자상(국보 221호), 속리산 법주사 대웅보전 삼세불 좌상(보물 1360호), 대전 심광사 극락전 목조석가모니불 좌상 (대전시 유형문화재 제31호) 등의 생칠개금을 통해서도 명성을 떨치게 된다.
산청 겁외사 단청을 수행했던 2000년도는 김성규 단청장에게 잊을 수 없는 해다. 경남 산청군 단성면에 있는 겁외사劫外寺는 성철 대종사 열반 후 생가터에 창건된 절이다. 겁외사는 ‘시간 밖에 있는 절’, ‘시간을 초월한 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가 겁외사 단청을 맡게 된 것은 2000년 당시 해인사 주지 법전스님과 백련암 감원 원택스님의 권유에서 비롯되었다. 예전에 해인사 대적광전 단청 작업을 성심으로 수행했던 계기가 인연으로 작용했다. 겁외사 단청불사는 커다란 책무와 중압감으로 다가왔다. 성철 대종사의 위대한 불적을 기리기 위한 장엄도 그러했지만 큰 사찰의 창건을 위한 첫 단청이라는 책임감이 앞섰기 때문이다.
“시공을 초월하는 겁외劫外의 걸작단청을 만들겠다는 창작의지를 불태우며 겁외사 단청에 매달렸습니다. 아이디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면 밤새도록 고민하다가 날을 샌 적도 허다했지요. 창작의 고통이 만만치 않았지만 뭔가 해내겠다는 열정으로 몇 달을 버텨 겁외사 단청을 마무리했지요.”
마음에 드는 단청 작업을 해보겠다는 일념으로 단청 비용은 계획했던 예산을 이미 넘어섰다. 치밀한 문양채색을 고집하다 보니 화공 인건비가 예상보다 훨씬 초과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생의 역작이 될 만한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한 작업이었기에 오히려 감사의 마음이 더 많았다고 한다. 겁외사 단청은 일필삼례一筆三禮의 불사 정신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일필삼례란 불상을 그리거나 경문을 필사할 때, 붓을 놓을 때마다 세 번 절하는 행위를 뜻하는데, 아주 고생스럽게 애쓰며 행하는 불사를 비유하는 말이다. 겁외사 단청은 불교미술 평단에서도 명작으로 호평받고 있다.
2002년 수행한 세등선원 설법전 단청 또한 그의 수작으로 꼽는다. 머리초에 다양한 별화직휘를 장식해 다포건축의 갖은 금단청양식에 못지않은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주었다. 회화적인 요소를 많이 사용함으로써 시각적으로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였으며, 채색에 있어서도 녹색 바탕에 금색, 황색, 육색, 주황, 주홍 등 난색계의 보색 대비로 화려함을 더했다.
“단청을 하면서 직업이니까 어쩔 수 없이 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산속에 와서 단청 작업을 하면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 없어요. 좋은 도량에 와서 좋은 건축물에 옷을 입히는 작업을 하는데 얼마나 좋습니까. 일단 옛날부터 내려온 기본은 밑바탕에 깔아놓고 도안부터 채색까지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대로 많이 하려고 하거든요. 100% 바꿀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이 건물은 김성규라는 사람이 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을 정도는 하고 싶습니다.”
현재 그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문화교육원 객원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쏟고 있다. 한국 단청예술의 전문화를 위한 전문 인력 교육을 위함이다. 또 한편으로는 대중화를 위해 일반인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함께한다. 부채 위에 단청을 채색하는 체험을 함께하는데 반응이 좋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 세계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할지 부단히 고민중인 김성규 장인의 모습에는 청년의 눈빛이 살아 있다.
바탕을 먼저 갖추는 회사후소繪事後素
예전에 종이가 없던 시절에는 그림을 벽이나 나무판에 그렸다. 그냥 맨 바탕에 그림을 그리면 채색이 겉돌아 스며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림을 그릴 때에는 먼저 면을 희게 칠하여 바탕을 갖춘 뒤에 그제서야 색칠을 할 수 있었다. 『논어論語』의 「팔일八佾」에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말이 등장한다.
여기에서 소素는 흰빛을 뜻한다. 생사生絲로 짠 명주의 물들이지 않은 본래 빛깔을 말한다. 그래서 소素는 ‘바탕’ 또는 ‘본디’를 의미한다. 즉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이후에 한다는 뜻으로, 본질이 있은 후에 꾸밈이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사람도 이처럼 먼저 바른 바탕을 갖춘 뒤에 꾸밈을 더해야 한다는 뜻으로 쓴다. 바른 바탕을 갖추지 않고 겉모습만 꾸미려 든다면 결국 얼마 못 가서 추한 몰골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단청도 마찬가지다. 바탕과 정신이 마련되지 않고 화려함만 강조된 단청은 겉치레에 불과할 것이다. 김성규 단청장의 단청이 극한의 화려함 속에서도 장엄한 위엄을 갖추는 이유는 단단한 바탕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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