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
승무, 멈추지 않는 구도의 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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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리 / 2022 년 3 월 [통권 제107호] / / 작성일22-03-04 10:53 / 조회5,316회 / 댓글0건본문
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3 ‘승무’ 예능보유자 금당錦堂 채상묵
갓 쌓인 눈송이처럼 맑고 깨끗한 백색은 인간이 가장 경외하는 태양 색이며 크다는 뜻을 지닌다. 신비함을 내포하며, 색채 중의 으뜸이며, 한국의 민족성을 표현하는 색이다. 우리 조상들은 백색을 이야기할 때 지극히 희다 하여 순백純白, 정백精白이라고 표현하였다. 이 고결한 하얀색은 자연에 하나되는 동화이며 자연 그 자체라고 여겨 왔다. 순수이고 결백이다.
백색의 춤, 승무
승무僧舞의 하얀 고깔과 흰 저고리, 선이 고운 버선에서 우리는 백의의 숭고함을 보게 된다. 승무는 한국 무용의 정수라 불릴 만큼 춤사위의 멋과 춤가락의 흥을 고루 갖춘 춤이다. 흰 장삼에 가사를 어깨에 메고, 고깔로 얼굴 가리우듯 쓰고 추는 깊이 있는 내면을 표현하는 예술성 높은 춤이다.
물론 그 기원에 대해 다양한 이론들이 있지만 어원과 내용에 있어 지극히 불교적 성격을 띠고 있다. 불교적인 명칭, 복식의 차림, 염불장단의 사용, 불교의식의 법고가락이 승무의 북가락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승무는 불교의식 무용에서 기원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승무의 구성을 볼 때 첫째 장단이 염불로 시작되고 있어서 불교와 관련 깊은 예술임을 알 수 있다.
사제지연師弟之煙, 우봉 이매방과 금당 채상묵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는 인생 구도자로서의 고뇌와 해탈 등 염불장단 아래 가장 낮은 자세로 시작한다. 북소리의 울림으로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오묘한 움직임은 가장 예술적이며 완성도 높은 대한민국 대표 전통춤이다. 어쩌면 한국인의 내면적 심성과도 닮았을 정신세계의 고즈넉함, 불교적 차원을 넘어서는 경건한 인간 본연의 구도자적 모습을 표현한다.
사진 2. 채상묵 승무 춤사위.
현재 승무 예능보유자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는 채상묵 명인을 찾아보았다. 서울 방배동에 위치한 ‘채상묵춤전승원’. 이곳에는 우리춤의 열기로 가득하다. 선생은 제자들을 맞이하기 위해 미리 준비하고, 그날의 동선을 체크한다. 여든이 넘은 연세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정정하고 단단하다.
솔직히 놀라울 정도로 탄력적이고 경쾌하여 청년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속세적인 표현으로 한 이십년은 젊어 보이셨다. 흥미롭게도 에너지의 원천은 부드러운 들숨과 날숨, 정중동으로 이어지는 우리춤의 움직임에서 오는 것이라고 한다. 평생을 그것과 함께 했고 일종의 선물받음이 아닌가 한다.
오늘의 채상묵 선생이 있기까지는 큰 바탕이 되어준 그의 스승 우봉 이매방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사람들은 우봉을 이르러 ‘하늘이 내린 전설적인 춤꾼’이라고 평한다. 민속무용에 대해 무관심했던 70년대. 20세기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세기의 발레리나 영국의 마고트 폰테인이 한국에 내한하게 된다. 19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기념으로 내한했던 그녀는 이매방의 승무 공연을 보게 되었고 크게 감동받는다. 세기의 발레리나는 “이매방의 발놀림은 디딤새도 단단하고 정확하며 그 움직임도 화려하다.”는 격찬을 남긴다. 이후 이매방은 세계 예술인들의 주목을 받게 되며, 우리 무용은 세계인을 만나게 되는 문을 열게 된다.
춤에 대해서 유독 엄격한 스승 이매방. 채상묵 선생은 그런 스승과 함께 온 시간을 춤으로 불태웠다. 그런 시간들이 그에게 있어 가장 큰 성장의 시간이었다. 춤의 동작을 야무지게 살펴보며 이야기하는 눈 좋은 비평가들은 말한다. 채상묵의 춤을 이르러 ‘승무의 교과서’라고.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손끝 한 치의 떨림도, 한 호흡의 고저장단高低長短도 적확할 뿐이다. 그만큼 자기 컨트롤에 민감하다는 이야기다. 채 명인은 전통춤이라는 것이 외형적인 것보다 자기의 감성이나 내면을 표현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후학들에게도 그를 강조한다고 한다.
“춤의 형태는 선생을 보고 그대로 흉내내 공부하면 되지만 감성이라는 것은 자기 스스로 개발해서 창출을 해야 하기 때문에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구나 우리 춤이 굉장히 즉흥성이 요구되는 춤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스승의 춤을 그대로 흉내내 추다가 순간의 신명에 의해 저도 모르게 다른 모습으로 표현이 될 때가 있어요. 그 모습들을 다시 또 재현하려면 잘 안 됩니다. 그래서 한 스승 밑에서 수십 명이 춤을 똑같이 배우지만 다 다르게 표현되는 것이지요. 결국은 자기의 특성들이 다 살아나기 때문에 춤이 변형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예술이 다 그렇듯이.”
채상묵 선생은 작고 단단한 외형을 가졌다. 어찌 보면 무용수에게 있어 단신은 콤플렉스가 될 수 있다. 수십 년 전 아련한 기억 속엔 작은 키로 인해 단역을 면치 못하는 경험도 있었다고 한다. 그럴수록 더 깊은 호흡과 완전한 연습을 통해 내공을 쌓고 쌓는 데 노력했다고. 바로 그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 선생의 무대가 그토록 크게 보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거인의 모습으로 펼쳐지는 것은 아닐까.
채상묵 선생은 어떤 삶을 꿈꾸고 있을까?
“세상에는 많은 아름다운 꽃들이 많지만 제가 가장 애정을 갖는 것은 대나무입니다. 어렸을 때 고모 댁 대청마루 뒤가 전부 산인데 그게 대나무 숲이었어요. 그 숲을 보면 겨울에 눈이 쌓여 있어도 파란 잎을 유지하고, 댓잎을 잘라 동치미를 담을 때 그 위에 올려놓기도 하며, 뿌리도 먹고 대나무를 잘라 그것을 가지고 밥을 만들고 하는 모습을 보니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더군요. 대나무같이 겨울에도 푸르고 잎에서부터 뿌리까지 버릴 게 하나도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해서 대나무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눈부신 화려함도, 진한 향기도 없지만 비바람과 눈보라를 겪으면서도 푸름을 잃지 않는 세한고절歲寒孤節의 대나무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워요. 뿌리에서 잎사귀까지도 쓸모 있게 남겨지는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대학大學』에 ‘심성구지心誠求之’라는 대목이 나온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원하고 정성을 다해 노력하면 비록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지라도 그 목표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는 내용이다[心誠求之 雖不中不遠矣]. 간단히 말해서 ‘절실한 마음으로 구하면 얻을 것이다’라는 뜻이다. 성실함을 이기기는 어렵다. 대나무의 푸름도 쉬지 않는 성실한 호흡 때문이고, 채상묵 선생이 팔순의 나이에 이십대의 유연함을 지키고 있는 것 또한 하루도 빠지지 않는 성실한 연습이 있기 때문이다. 채상묵 선생의 대나무 정신으로 우리춤 승무가 널리 알려지길 응원한다.
채상묵 선생 공연 안내
무형문화재 승무/태평무 합동공개행사, 2022년 10월 23일, 17시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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