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선의 대중화를 위해 설립한 선학원의 기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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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진 / 2022 년 4 월 [통권 제108호] / / 작성일22-04-04 10:58 / 조회4,850회 / 댓글0건본문
근대불교잡지 산책 16 | 『선원禪苑』 (통권 4호, 1931.10~1935.10)
근대에 접어들어 경허의 선풍 진작과 맞물려 전국에 선 수행의 풍토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그러나 선원 활동의 기록은 일회적이었고, 수행 자체가 개인적 득도 체험을 중시하다 보니, 선리를 탐구하는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조직을 결성하 고 집단적인 담론을 근대적 매체로 표출하는 기회를 얻기는 쉽지 않았다. 『선원』(통권 4호, 1931.10~1935.10)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선원의 수좌들이 마련한 작지만 강력한 공론화의 장이었다.
『선원』이 등장하기까지
선학원은 선원의 수좌들이 선의 대중화와 한국불교 정체성 정립을위해 1921년에 경성 안국동에 세운 기관이다. 선학원의 역사를 출범에서 잡지 발행 당시까지 검토해 보면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진다.
제1기는 선학원 창건과 선우공제회 활동기(1921~1924)이다. 1921년 12월 준공된 선학원은 창설 이후 선풍 진작 운동의 구심점으로 전국수좌들의 모임을 결성하였다. 이듬해인 1922년 3월 30일에서 4월 1일까지 전국 각지의 참선수좌 35인(송만공, 오성월, 백학명, 이설운, 임석두 외)이 선학원에 모여 선우공제회禪友共濟會의 결성을 선포하고 취지서를 공포하였다.
선 수행의 가풍을 전국에 확산하고자 하는 선학원의 지향은 일정 정도 성공하여, “1924년경에는 통상회원 203인, 특별회원 162인 합계 365인의 회원이 소속된 수좌 중심 단체로 성장하였다.”(주1) 그러나 재정적 어려움으로 수좌들의 ‘공제共濟’는 실현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1924년 4월에는 선우공제회의 본부가 직지사로 이전하였고, 1926년 5월 1일에는 선학원이 범어사 포교소로 전환되었다. 이로써 선학원의 제1기 활동은 마무리된다.
이후 4년의 공백기를 거친 선학원이 다시 전국 수좌들의 구심 공간이 된 시기는 1931년으로 이때부터 제2기가 시작된다. 김적음 화상이 선학원을 인수하여 선리참구원으로 개편하고 활동한 시기다. 재건된 선학원에서는 송만공, 이탄옹, 한용운, 유엽, 김남전, 도진호, 백용성 등이 대중들을 상대로 강연했으며, 일반 대중들도 남녀선우회와 부인선우회를 조직하여 생활 속의 참선수행을 실천하였다.
이러한 선풍 진작 운동이 전국적인 영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잡지라는 새로운 매체가 필요하였는데, 선학원이 재건된 1931년 10월 6일 드디어 『선원』을 창간하였다. 『선원』은 선학원의 제2기가 시작되면서 그 기관지로 발행한 것이다. 창간호의 서지는 ‘편집 겸 발행인 김적음, 인쇄소 신소년사, 발행소 선학원(경성부 안국동 40번지)’이다. 이는 2호(1932.2)와 3호(1932.8.)에도 동일하다. 4호(1935.10)는 3호 간행 이후 약 3년 만에 발행되었다. 편집 겸 발행인 김적음, 발행소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 총판매소 조선불교선종중앙종무원이다.
잡지의 지향과 편제
『선원』은 선학원의 기관지이니만큼 선학원의 창립 정신을 구현하는 매체로 존재하였다. 외래종교, 신흥종교 가릴 것 없이 잡지라는 근대 매체를 통해 종교를 홍보하는 1930년대는 참선도 개인적 체험이나 득도로 자족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었다. 선의 대중화를 위한 잡지는 이제 시대적 요구가 되었다. 『선원』은 선에 관한 지식을 일반 수좌들, 즉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는 수좌들에게 전달하여 수행에 도움을 주며, 일부 지면이라도 한글화하여 한글에 친숙한 대중과 여성 불자들에게 선리를 전달하고자 하였다.
1호 <창간사>에서는 변화하는 시대의 문장에는 조금 서툴더라도 선의 요체를 쉽고 간명하게 풀이하여 대중적 잡지를 통해 전파하는 것은 시대의 요구라 하였다. 선의 전통을 간직한 전근대에 교육을 받고 근대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선지식들이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에 대응한 것이 『선원』의 창간 정신인 것이다.
사진 4. 『선원』의 창간사 (1호).
잡지의 목차를 보면 전체적으로 ‘권두언-선화 및 선종사 논설-문학(시조)-한글법문-불교전기-소식란’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경향성에도 불구하고 시조란이 중간에 들어 있는 경우(1호), 불교논설(교양)이 문학란 전후에 중복 배치되어 있는 경우(2호)가 있는 등 전반적으로 각 항목의 편제가 정제되지 않은 경향이 있다. 전문적인 문학인이나 잡지의 편집자가 아니라, 선학원에서 실참하는 수좌가 행정 업무와 잡지 업무를 함께 담당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권두언은 짧은 시구 위주의 법어로서 만해(1, 2호), 운납(3호), 성월(4호)의 글이 수록되었다. 이는 잡지의 전체적인 지향이나 선의 핵심을 짧은 경구나 시구로 표현하여 잡지의 격조를 높인, 잡지의 얼굴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본문에는 새해를 맞이한 논설이나 시사 논설이 간혹 앞에 제시되기는 했으나, 전체적으로는 본 잡지의 핵심이라 할 고승 대덕의 선화禪話와 선종사 관련 논설이 제시되었다. 백용성(대각교당), 방한암의 선화가 중핵을 이루고 있고, 여기에 박한영(중앙불전 교수, 개운사 강주)의 선화 및 선종사 관련 논설, 그리고 이 시대 주요 논객으로 어느 잡지에나 등장하는 권상로(중앙불전 교수), 김태흡(중앙불전 강사, 불교시보사 사장), 김경주(중앙불전 교수) 및 허영호(중앙불전 강사)의 불교개설이나 논설이 추가된 형국이다.
한글법문은 선학원 내에 설립된 부인선원의 활동과 관련된 글이다. 부인 회원에만 한정되지 않고 일반 대중들에게도 가독성을 높이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불전佛傳 문학으로는 불전을 번역하고 각색한 김태흡의 소설이 특색을 이루었다. <부설거사>(1호), <육조대사>(2호), <장수왕의 자비>(3호)는 모두 순 한글로 되어 있으며 각 호의 마지막 부분에 부록처럼 수록되어 있다. 이들은 각각 13면, 17면, 34면의 분량으로 한 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며, 잡지에 발표된 이후 선학원에서 단행본으로 간행하기도 하였다.
권두언의 시적 논리
만해의 권두언(1, 2호)은 매우 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1호의 권두언은 부처님의 삼처전심三處傳心(多子塔前分半坐, 靈山會上擧蓮花, 泥連河畔示雙趺) 외에 별도의 일법一法이 있는지를 묻는 법어(此外別有一法相傳會麽)이고, 2호의 권두언은 한 편의 선시에 해당한다.
禪은 禪이라고 하면 곧 禪이 아니다. 그러나 禪이라고 하는 것을 여의고는 별로 禪이 없는 것이다. 禪이면서 곧 禪이 아니요 禪이 아니면서 곧 선이 되는 것이 이른바 禪이다. 달빛이냐 갈꽃이냐 흰 모래 위의 갈매기냐.
만해는 선적인 논리를 특유의 시적 문법으로 『님의 침묵』에서 다채롭게 보여준 바 있다. 이 권두언에서도 선이면서 선이 아니고 선이 아니면서 선이 되는 것이 곧 선이라는 불이不二의 논리를 전개하였고, 마지막 구에서는 논리가 아닌 형상의 세계로 독자를 이끌었다.
3호의 권두언(운납)은 “지극한 도이시여 / 어려움이 없건마는/ 오즉이 혐의라면/ 가림일가 하노라”라는 4구와 함께 일원상을 그려놓았다. 4호는 범어사 오성월 선사의 한문 게송(7언 절구)이 수록되었다. 전반부는 영축산의 한 줄기 꽃가지가 만방의 겁외춘劫外春에 피어남을 노래하였고, 후반부는 무생곡을 부르는 열락을 노래하며 ‘삼각산각한강심三角山脚漢江心’으로 마무리하였다. ‘삼각산 아래 한강 물이로다’ 정도로 해석되는 제4구는 불교적 시상을 외경의 한 장면으로 제시하여 감각화하고 입체화한 것으로 시적 묘미를 살려냈다.
이상 권두언은 대중의 언어로 ‘선음禪音’을 전하고자 하는 『선원』의 지향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시다. 만해의 한글시와 오성월의 한시는 문학적으로도 평가받을 만한 수준이다.
다양한 불전문학의 각색
<부설거사>는 부안 지역에 구전되던 등운암과 월명암의 연기설화를 극화한 것이다. 조선시대 불가 문집인 『영허집』에도 등장하는 부설대사는 신라 선덕여왕 대에 경주성내에서 진陳씨 댁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이름은 광세이며, 불국사 원정선사에게 득도하여 법호를 부설이라 하였다. 계행이 엄정하고 경학이 높은 부설은 영조와 영희대사를 도반으로 삼아 강원도 오대산의 문수보살을 참배하러 가는 길에 김제 백련동을 지날 때 구무원仇無寃이라는 사람의 집에 유숙하여 그 딸인 묘화를 만나게 된다. 19년 동안 벙어리로 지낸 묘화는 부설의 법문을 신심으로 듣고 좋아하여 결혼해 주기를 간청하였다. 이후 줄거리는 거사로서 정진한 부설의 법력이 수행자로 일관한 영조, 영희보다 높았다는 도력담으로 귀결되었다.
<부설거사>의 도입부는 묘화가 부설에게 간청하는 대사로 시작하여 이야기를 입체화함으로써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평면적인 스토리에 대화를 가미하여 더 극적으로 구성하였고, 시간 순서를 일부 도치시키면서 서사 구조를 입체화하여 독자의 흡입력을 배가한 효과를 가져왔다.
<육조대사>는 오조홍인이 혜능에게 의발을 전수받은 후 다른 제자들의 위협을 피해 구강역九江驛에 도착하여 배를 타고 남방으로 가는 스토리를 앞에 제시한 후, 시간을 역전시켜 출생에서 출가, 신수와의 경쟁, 불법 홍포, 입적에 이르는 일생담을 소개한 전기물이다. 『전등록』의 법거량 내용과 전승되는 설화를 종합하여 육조대사의 생애를 극적으로 재구성하였다. 특히 전체 6장 중 제1장은 오조홍인이 구강역 가에서 육조혜능을 전송하는 대목인데, 소설은 두 인물의 대화를 통해 긴장감을 극대화하였다. 출생에서 시작하는 일반적인 전기물과 달리, 시간적 질서를 도치시켜 서두에 가장 극적인 장면을 배치하는 구성은 흥미를 자극하는 소설적 기법이다.
<장수왕의 자비>는 불경 『장수왕경』을 번역 각색한 것이다. 이 경은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시던 부처님이 여러 비구에게 말씀하신 전생담으로, 전체가 부처님의 설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수왕은 백성을 지극히 사랑한 나머지 이웃 나라의 포학한 왕이 침략하자 태자 장생長生을 데리고 나라를 떠나며, 급기야는 자신의 목숨을 어떤 바라문에게 의탁하여 적에게 바치고 죽음을 맞이한다.
아들 장생은 복수를 위해 궁궐에 입성하는 데 성공하여 왕을 죽일 기회를 세 차례 맞이하나 아버지의 현현으로 포기하고 오히려 그 왕에게 고백을 하며 죽기를 청하였다. 이에 왕도 참회하고 나라를 태자에게 물려준 후, 두 나라는 형제와 같이 잘 지냈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마지막에는 부처님이 “그때의 장수왕이 이제 내 몸이고, 태자 장생은 아난다(아난)이며, 탐욕스런 왕은 조달調達”이라 말하며 “보살이 도를 구하는 괴로움이 이와 같으니 도적의 해침을 당해도 원망하고 성내는 마음이 없는 까닭에 스스로 부처를 얻어 삼계의 지존이 된 것이니 라.”로 마무리된다.
소설에서는 ‘범예왕의 침략’, ‘장수왕의 입산’, ‘바라문의 구걸’, ‘장수왕의 사형과 최후 유언’, ‘장생태자의 복수계획’, ‘범예왕의 수렵’, ‘장생태자의 유혹과 발검拔劍’, ‘범예왕과 장생태자의 친화’ 등의 표제를 달아 줄거리를 잘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소설은 대립적인 등장인물, 대화로 전개되는 흥미진진한 스토리, 상식을 초월하는 극적인 전개과정을 갖춘 경전 자체의 서사성을 잘 살린 흥미로운 작품이다.
<부설거사>와 <육조대사>, 그리고 <장수왕의 자비>는 수행의 자세, 전법의 본질, 자비의 실천행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포교문학으로서 종교적 교양과 소설적 흥미를 모두 갖춘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선학원에서는 이 외에 『극락가는 길』(김적음, 1932)과 『경허집』(1943)을 펴냈다. 『경허집』의 간행은 근대 선의 부흥조인 경허를 현양함과 동시에 조선불교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선학원의 지향을 반영하는 것이다.
(주1) 김광식, 「선학원의 설립과 전개」, 『선문화연구』 창간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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