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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의 책 이야기]
중국 명·청대 방각본 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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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정  /  2022 년 5 월 [통권 제109호]  /     /  작성일22-05-04 11:30  /   조회4,37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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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의 책 이야기5 / 중국의 판각 불서②

 

불교가 중국에서 국내로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주로 책을 통해서였다. 중국에서 한역된 많은 불서들이 국내에 전래되어 이를 필사하거나 다시 판각하게 되면서 국내 책의 인쇄술도 발전해 나갈 수 있었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목판본과 금속활자본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국내에 유입 되었던 중국판 불서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미비한 편이다. 조선시대에 ‘당본唐本’으로 불리었던 중국본 불서가 어떤 경로로 국내에 유입되었고, 어떤 책을 주로 들여왔는지 그 경위에 대한 연구나 실물에 대한 조사는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조선 중기 이후 근대까지 국내에 유입된 중국본 불서로는 가흥대장경과 청대 양문회楊文會(1837~1911)가 주도한 금릉각경처 불서가 주로 알려져 있다. 책 말미에 기록된 간행 시기와 간행처를 통해 두 판본의 구분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들 불서가 대규모로 판각·유통되었던 만큼 간행 기록이 없더라도 한 면에 10행 20자의 판식이나 4침안針眼의 선장線裝 방식 그리고 한지와는 구별되는 종이의 재질 등 형태적인 특징으로도 중국에서 간행한 판본임을 식별할 수 있다. 그런데 가흥대장경이나 금릉각경처 불서뿐만 아니라 중국의 다른 사찰판 불서나 중국의 방각본坊刻本 불서도 국내에 유통되었다는 사실을 백련암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상업 출판의 방각본 중국 불서

 

중국에서 근대 이전의 책을 분류하는 방식은 관청에서 간행한 관각본官刻本, 개인이나 단체가 비영리적으로 간행한 사각본私刻本, 영리를 목적으로 간행한 방각본 등 세 가지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중국은 한나라 때 이미 책을 파는 서점에 관한 기록이 있고, 당나라 중엽에 방각본으로 추정되는 불서나 책력 등도 확인된다. 특히 남송 시대 이후로 방각본 책이 성행하였다.  

 

사진 1. 『육조대사법보단경』(1554). 

 

백련암 책에는 명·청대 이후로 중국에서 간행한 사찰본과 방각본 불서가 50종 222책이 확인된다. 시기별로 불서의 간행처를 살펴보면, 1554년에 중국 오대산방五臺山房의 『육조대사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壇經』(사진 1)을 비롯하여 1569년부터 1573년에 걸쳐 경산徑山 전의암傳衣庵에서 간행된 『화엄경합론華嚴經合論』, 1624년 남경南京 진룡산경방陳龍山經房의 『묘법연화경지음妙法蓮華經知音』, 1636년 소주蘇州 이란정李蘭庭의 『능엄경합철楞嚴經合轍』, 1668년 묘희암妙喜庵의 『능엄경관섭楞嚴經貫攝』, 1784년 연법사衍法寺의 『정토진량淨土津梁』, 1792년 백의암白衣庵의 『금강경찬주정해金剛經纂註正解』, 1828년 북경 홍향관紅香館의 『관능가아발다라보경기觀楞伽阿跋多羅寶經記』, 1847년 포고각抱古閣의 『대승총지大乘總持』, 1883년 소엽산방埽葉山房의 『여조주강금강심경呂祖註講金剛心經』, 1896년 천태산 진각사眞覺寺의 『유마힐소설경무아소維摩詰所說經無我疏』 등이 확인된다. 이 책은 대부분 목판본이다.

 

1900년대 들어서 신연활자본이나 석인본으로 간행한 중국본 불서도 확인된다. 1908년에서 1909년에 절강성 서호西湖 소만류당小萬栁堂의 『수능엄경首楞嚴經』, 1910년 광동廣東 광아서국廣雅書局의 『중론中論』, 1917년 북경 법륜인자국法輪印字局의 『입아비달마론통해入阿毘達磨論通解』, 1921년 상해 상무인서관商務印書館에서 간행한 신라 태현太賢의 『성유식론학기成唯識論學記』와 매광희梅光羲의 『상종강요相宗綱要』 등이 확인된다. 이 밖에 1913년 빈가정사頻伽精舍에서 간행한 『선종송고연주통집禪宗頌古聯珠通集』과 『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 그리고 1952년 대만 서성서국瑞成書局에서 발행한 『선림돈오입도요문론禪林頓悟入道要門論』 등도 확인된다.

 

이처럼 백련암의 중국본 불서는 16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초까지 항주, 소주, 남경, 북경 등 중국의 여러 지역에서 간행한 방각본 불서의 현전본이기에 역사적 문화적으로도 자료적 가치가 있다. 특히 명·청대 목판본 불서에서 혜월거사 유성종劉聖鍾(1821~1884)의 인장이 대부분 확인되는 만큼, 그가 직접 구매한 책일 가능성이 크다.


유성종의 명·청대 중국본 불서

 

19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유성종이 주도적으로 구매했던 책인 만큼 중국본 불서에서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우선 조선시대 승가 교육의 바탕이었던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 『능가경』, 『유마경』, 『능엄경』 등의 경전에 대한 명·청대 승려와 거사들의 주석서들이 확인된다. 이 책들은 당시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주석서들이다. 

 

사진 2. <법해> 포갑 내 기록.

 

그리고 『육조대사법보단경』, 『종경록宗鏡錄』(100권 20책), 『어선어록御選語錄』(12권 7책),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30권 8책) 등 전질로 된 선종서와 금릉金陵 조당祖堂에서 간행한 『정토삼론淨土三論』과 『사자림천여화상정토혹문師子林天如和尙淨土或問』, 『용서증광정토문龍舒增廣淨土文』 등 정토 관련 불서들도 다수 확인된다.  

 

사진 3. 『정토삼론』 표지. 

 

백련암 고서를 조사할 당시에 ‘법해法海 정토종淨土宗’이라는 제첨을 붙여 둔 낡은 포갑包匣이 확인된 적이 있었다. 책도 없이 빈 포갑만 남아 있었기에,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조사 과정에서 유성종의 글씨체를 알게 되었고, 그가 특별히 책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포갑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포갑 안에는 ‘정토십의론淨土十疑論 일一, 염불삼매보왕론念佛三昧寶王論 삼三, 정토생무생론淨土生無生論 일一, 만선동귀집萬善同歸集 육六, 정토지귀집淨土指歸集 이二, 용서정토문龍舒淨土文 십이十二, 정토혹문淨土或問 일一, 정토법어淨土法語 일一’이라는 책 제목과 권수를 기록한 종이가 붙어있었다(사진 2). 종이에 적힌 8종 8책의 불서가 모두 중국본 불서로 확인되었다. 유성종은 이 책의 중국 표지를 떼어내고 5침안의 표지로 동일하게 개장改裝해 뒀다. 표지의 책명도 그가 직접 새로 쓴 것이다(사진 3).

 

중국본 불서의 수용과 변용

 

유성종이 이처럼 선과 정토 관련 중국 책에 특별히 관심을 둔 이유는 19세기 후반에 정원사淨願社와 감로사甘露社에서 편간編刊한 불서들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다. 그는 1870년 이후로 정원사와 감로사의 결사단체에서 자신들의 염불과 선 수행에 도움이 될 만한 불서를 직접 편찬하고자 하였다. 기존의 국내 불서를 단순히 복각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새로 들여온 불서까지도 섭렵하여 새롭게 유서類書나 총서叢書 형태로 간행했던 것이다. 유서는 백과사전식 성격의 책이고, 총서는 한 분야에 대해 집필된 개개의 단행 저서들을 한데 모아놓은 것이다. 

 

사진 4. 『금강경찬주정해』 권수제면. 

 

정원사에서 간행한 『청주집淸珠集』(1870), 『서방휘정西舫彙征』(1881), 『정토감주淨土紺珠』(1882) 등은 정토 관련 유서류의 불서이다. 정원사의 『원해서범願海西帆』(1882)과 감로사의 『법해보벌法海寶筏』(1883)은 각각 정토와 선 관련 총서류의 불서이다. 이들 책 서두에 본문의 출처를 밝힌 인용서목이 기록되어 있다. 예로써, 앞서 ‘법해’라는 포갑 속에 든 8종의 책을 『청주집』과 『정토감주』의 인용서목에서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백련암 중국본 불서가 정원사와 감로사 편찬에 직접적으로 수용된 예도 확인된다. 1883년에 감로사에 간행한 『금강경정해金剛經正解』는 구마라집 한역본에 청나라 잉한거사剩閒居士 공기채龔穊綵가 주해註解하고 감로사 결사에 참여했던 연방거사蓮舫居士 호정지扈正智가 교정한 책이다. 본문에 앞서 육조선사의 「금강경구결金剛經口訣」과 본문 끝에 왕화륭王化隆의 「금강경총제金剛經總提」가 함께 실려 있다. 이 책은 앞서 살펴본 1792년 중국 백의암에서 간행한 『금강경찬주정해』 5권 4책에서 편집한 것임을 대교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사진 4). 또한 정원사에서 간행한 『불설대아미타경』(1881)과 『원해서범』(1882)의 서두에 수록되어 있는 「석가여래기원설법도釋迦如來祈園說法圖」와 「극락세계의정장엄도極樂世界依正莊嚴圖」의 변상도 2장은 앞서 1784년에 중국 연법사에 간행한 『정토진량』의 첫 번째 책 서두에 수록된 변상과 동일하다(사진 5). 

 

사진 5. 『정토삼경』 변상도. 

 

백련암에 소장된 중국본 불서는 19세기 후반 국내 불서 편간에 직접적으로 활용된 책이었으며, 명·청대 불서를 국내에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염불과 선 수행에 맞게 주체적으로 변용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일찍이 동아시아 삼국에서 대장경뿐만 아니라 상업 출판의 불서도 끊임없이 교류가 이루어져 왔다. 중국과 일본의 상업 출판에 대한 이해는 국내 불서의 서적사 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국내 현전하는 중국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해 보인다.

 

참고문헌

황진위 지음, 이윤석·가첩·최묘시 옮김, 『중국의 방각본: 중국 상업출판, 천 년의 역사를 고찰하다』, 민속원, 2020.

환공치조 엮음, 성재헌 옮김, 『(한글본 한국불교전서)청주집』, 동국대학교출판부, 2020.

허주덕진 엮음, 김석군 옮김, 『(한글본 한국불교전서)정토감주』, 동국대학교출판부,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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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정
동국대 불교학술원 전문연구원.
성철스님의 장경각 책이 계기가 되어 「19세기 불서간행과 유성종劉聖鍾의 『덕신당서목德新堂書目』 연구」(2016)로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박사학위 취득. 「해인사 백련암 불서의 전래와 그 특징」(2020), 「조선후기 『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 판본의 성립과정 고찰」(2021) 등 불교서지학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crystal07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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