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 이야기]
조사선에 있어서 불성론의 변용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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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 2022 년 7 월 [통권 제111호] / / 작성일22-07-05 11:08 / 조회7,430회 / 댓글0건본문
선종의 토대를 제공한 동산법문東山法門에서 ‘심心’을 중심으로 한 유정유성有情有性의 불성을 채택한 이래로 『육조단경六祖壇經』, 그리고 남종선南宗禪의 정종正宗을 확립시킨 하택신회荷澤神會, 마조馬祖와 그의 제자인 대주혜해大珠慧海 등이 모두 철저하게 ‘심’을 중심으로 하는 불성을 제창하고 있으며, 무정유성無情有性의 불성을 비판하고 있다.
혜충국사의 무정불성
그러나 혜능의 제자인 남양혜충南陽慧忠(?∼775)은 선종 계열에서 최초로 ‘무정유성’의 불성을 제창하고 있다. 그의 선사상은 『경덕전등록』 권28에 실려 있는 「남양혜충국사어南陽慧忠國師語」로부터 확인할 수 있는데, ‘무정유성’과 관련된 구절은 다음과 같다.
승려가 다시 묻기를, “그렇다면 어떤 것이 불심佛心인가?”라고 하자 국사는 “장벽牆壁과 기와, 돌이 그렇다.”라고 답하였다. 승려가 “경전과 서로 크게 어긋난다. 『열반경』에서 ‘담장의 무정물을 떠나므로 불성佛性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는데, 지금은 불심이라 하니, 마음과 성性이 차별이 있는가? 차별이 없는가?”라고 묻자, 국사는 “미혹하면 차별이 있고, 깨달으면 차별이 없다.” 승려가 “경전에 이르길, ‘불성은 항상 하고, 마음은 무상하다’라고 하는데, 지금 차별이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묻자 국사는 “너는 다만 말에 의지하고, 뜻에 의지하지 않는다. 비유하면, 추운 날 물이 얼어 얼음이 되고, 따뜻한 때가 되면 얼음이 녹아 물이 된다. 중생이 미혹할 때 ‘성’을 얽어매 마음을 이루고, 중생이 깨달았을 때 마음을 풀어 ‘성’을 이룬다. 만약 무정무불성無情無佛性에 집착한다면, 경전에서 마땅히 삼계유심三界唯心이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니, 이는 그대가 경전에 어긋난 것이지, 내가 어긋난 것이 아니다.”(주1)
이로부터 명확하게 ‘무정’의 불성을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단경』에서 “무정에는 부처의 종자가 없음[無情無佛種]”(주2)이라는 입장과는 명확하게 배치된다. 더욱이 『열반경』의 “불성이 아닌 것은 이른바 모든 장벽牆壁, 와석瓦石 등의 무정의 사물들이다. 이와 같은 무정의 사물들을 떠난 것을 불성이라고 칭한다.”(주3), “심心은 불성이 아니다. ‘심’은 무상無常하고, 불성은 항상[常]하기 때문이다.”(주4)라는 경문을 인용하여 힐난하여도 오히려 “그대가 경전에 어긋난 것이지, 내가 어긋난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주지하다시피 혜충은 혜능의 『단경』을 잘못 이해하여 이른바 ‘남방종지南方宗旨’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 “저 『단경』을 개환改換하여 비천한 논리를 더하여 섞어서 성의聖意를 깎아버리고 후학들을 미혹하여 어지럽게 하니, 어찌 언교言敎를 이루었다고 하겠는가! 괴롭다! 나의 종宗이 손상되었도다.”(주5)라고 탄식하였다. 그렇다면 혜충은 무슨 까닭으로 『단경』과 배치되는 ‘무정불성’을 주장하는가? 이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사상과 시대적 상황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해야만 할 것이다.
남방종지의 비판과 돈오 이후의 무정불성
먼저 사상적 측면에서 혜충이 비판하는 ‘남방종지南方宗旨’가 무엇인가를 밝혀야 하는데, 「남양혜충국사어」에서는 그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즉심卽心이 바로 부처요, 부처는 각의覺義이다. 너희들은 지금 모두 견문각지見聞覺知의 성품[性]을 갖추었는데, 이 성품이 눈썹을 치켜 올리고 눈을 껌벅이게 하고, 가고 오는 운용을 하면서 온몸에 고루 존재한다. 머리를 만지면 머리가 알고, 다리를 자르면 다리가 알 것이니, 그러므로 정변지正遍知라고 한다. 이를 떠나서 밖으로 다른 부처가 없다. 이 몸은 생멸生滅이 있지만, 심성心性은 무시이래로 일찍이 생멸한 적이 없다. 몸이 생멸한다는 것은 용龍이 뼈를
바꾼 것과 같고, 뱀이 껍질을 벗은 것과 같고, 사람이 헌 집을 나서는 것과 같다. 몸은 바로 무상無常하지만, 성품은 항상 존재한다.”(주6)
이로부터 ‘남방종지’는 바로 ‘자성自性’을 마치 선니외도先尼外道가 주장하는 ‘신성神性’, 즉 윤회의 주체로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이는 석존釋尊이 철저히 비판한 ‘아我(Ātman)’이나 ‘명命(Jīva)’과 같은 개념이다. 또한 ‘자성’에 대한 이해를 ‘견문각지’의 ‘성’으로 보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후대에서 ‘자성’을 ‘성재작용性在作用’ 혹은 ‘작용즉성作用卽性’으로 보는 견해가 출현하고 있는데, 이러한 견해는 앞에서 논한 『단경』이나 마조의 ‘즉심즉불卽心卽佛’과도 근본적으로 어긋난다고 하겠다.
사실상 여기에서 언급되는 ‘즉심시불卽心是佛’이나 ‘양미순목揚眉瞬目’ 등은 경우에 따라서는 궁극적인 선리禪理와 계합契合된 표현일 수도 있고, 또한 완전히 선리와 어그러진 표현이 될 수도 있는 용어이다. 언제나 강조하는 말이지만, 중국불교 특히 조사선에서는 용어가 같다고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되지는 않으며, 전후 문맥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혜충이 ‘무정불성無情佛性’을 제창한 중요한 계기를 이로부터 찾을 수 있다고 하겠다. 즉, ‘자성’에 대한 오해를 직접적으로 타파하기 위하여 “중생이 미혹할 때 ‘성’을 얽어매서 마음을 이루고, 중생이 깨달았을 때 마음을 풀어 ‘성’을 이룸[衆生迷時結性成心, 衆生悟時釋心成性.]”을 강조하고자 하려는 의도라고 하겠다. 비록 『단경』에서는 “무정에는 부처의 종자가 없음[無情無佛種]”(주7)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만, ‘심’을 중심으로 ‘불성’을 삼고 있으며, 이는 또한 ‘돈오頓悟’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주의하여야 할 것이다. 실제로 ‘돈오’를 이룬다면, ‘자성’과 ‘자심’은 어떤 상태일까?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혜충이 제창한 ‘무정불성’의 내용은 궁극적으로는 『단경』에서 제창하는 ‘자성’과 ‘자심’으로서의 ‘불성’과 결코 어긋나지 않는다고 하겠다.
무정불성과 무정설법
또한 혜충은 이러한 ‘무정불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이 설한다.
문: “무정에게도 이미 심성心性이 있다면, 또한 법을 해설解說하는가?” 선사: “그것들은 치연熾然하게 항상 설법하여 잠시도 멈춤이 없다.” … 문: “무정이 설법한다는 것은 어떤 전거典據가 있는가?”
답: “『화엄경』에 설하기를, ‘국토가 설법하고, 중생이 설법하고, 삼세의 일체가 설법한다’(주8)라는 것을 보지 못했는가?”(주9)
이는 이른바 ‘무정설법無情說法’을 제창하고 있는 구절로서 다양한 전적에 상당히 많이 인용되고 있다. 엄밀하게 논하자면, ‘무정불성’과 ‘무정설법’은 다른 개념이다. ‘무정’에 불성이 있어도 불법을 해설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무정’에 불성이 없어도 그로 인하여, 예를 들자면 갑자기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이 울려서 불법이나 선리를 깨닫는다면, 이를 ‘무정설법’이라고도 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사의 난과 ‘무정불성’ 제창
두 번째로 ‘무정불성’을 제창한 시대적 상황이다. 혜충이 활동하던 시대에 당조唐朝를 위태롭게 한 안사安史의 난(755∼763)이 발생하였다. 앞에서 ‘안사의 난’를 평정하는 데 하택신회(684∼758)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을 논했지만, 신회는 안사의 난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 입적하였다. 『조당집祖堂集』 권3에 실린 혜충의 전기에서는 “선사는 일찍이 남양南陽 백애산白崖山에서 사십여 년을 수행하였다. 상원上元 2년 정월 16일에 숙종肅宗의 부름을 받아 장안長安의 천복사千福寺 서선원西禪院에 안치安置되었고, 후에 광택사光宅寺에 의탁하였다. 숙종과 대종代宗의 전후 양조兩朝에서 (황제가) 모두 친히 보살계를 받았고, 국사國師의 호號를 내렸다.”(주10)라고 한다.
이로부터 상원 2년(761)에 숙종의 명에 의하여 남양에서 40여 년을 수행하던 혜충이 장안으로 초빙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신회가 입적한 지 2년 후의 일이다. 그리고 장안에 들어간 후에 숙종과 대종에게 보살계를 주었고, 대력大曆 10년(775)에 광택사에서 입적(주11)하기까지 15년을 ‘국사’로서 제도帝都에 머물렀다.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숙종이 혜충을 장안으로 초빙한 의도라고 하겠다. 본래 숙종은 하택신회를 장안으로 초빙하여 장안에 주석시키려 하였으나 입적하여 가능하지 않게 되자 바로 혜충을 청했다고 추정된다. 신회와 혜충은 모두 혜능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혜충을 초빙한 까닭은 ‘안사의 난’으로 혼란한 민심을 불교를 통하여 통합하려는 의도라고 추정된다.
안사의 난은 당시 세계에서 최고의 문명을 구가하던 당조를 한순간에 초토화시켰던 사건으로, 장안과 낙양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의 인구 70%가 감소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황권과 지식인들에게 심각한 사상적 반성을 통해 새로운 사상을 일으키고자 하였다. 유학에 있어서는 ‘고문古文운동’과 ‘유불융합儒佛融合’을 제창했고, 불교에 있어서도 ‘제종융합諸宗融合’과 유불도의 ‘삼교합일三敎合一’ 등의 사상적 흐름이 발생하게 되었다. 사실상 혜충이 ‘무정불성’을 제창했던 의도는 바로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
무엇보다도 혜충은 ‘제종융합’을 위해서 각 종파에 있어서 가장 심층적인 ‘불성’에 대한 융합을 시도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명확하게 ‘유정유성’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남종선에 ‘무정유성’의 사상을 제시하여 ‘융합’을 시도했다고 하겠다. 남북의 선사상과 천태 화엄종 등의 차별은 ‘불성’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발생하며, 그 근저의 가장 커다란 차별은 바로 ‘유정유성’과 ‘무정유성’의 분기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혜충과 동일한 시기에 활동한 천태종의 형계담연荊溪湛然(711∼782)도 『금강비金剛錍』를 찬술하여 역시 ‘무정유성’을 적극적으로 논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본래 천태학에 있어서도 선종과 마찬가지로 ‘무정유성’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였기 때문에 담연이 ‘무정유성’을 제창한 것도 역시 시대적 상황에 따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그의 법을 사사한 양숙梁肅(753∼793)은 바로 ‘고문운동’을 제창하였으며, 나아가 천태학을 통한 ‘유불융합’을 제창하였다.
혜충이 『단경』의 입장에서 북종과 천태, 화엄을 융합하고자 했음은 바로 위의 인용문에서 『화엄경』을 인용하고 있다는 점으로부터도 추정할 수 있다. 북종과 남종의 가장 극명한 차별은 바로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일심이문一心二門’의 입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신수神秀의 북종선은 철저하게 『기신론』의 ‘심진여心眞如’와 ‘심생멸心生滅’의 이문二門을 원용하여 ‘염불기念不起’를 통한 ‘이념離念’을 강조하고 있는데, 『단경』에서는 이를 철저하게 배척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기신론』은 바로 화엄종의 논리와 입장을 밝힌 논서이다. 『단경』으로부터 출발한 조사선은 ‘불성’의 이해에 있어서 화엄의 ‘성기性起’를 배척하고 있고, 나아가 천태의 ‘성구性具’와도 차별이 있지만, 동산법문을 개창한 도신道信선사는 바로 천태학으로부터 선사상을 도출하였기 때문에 비교적 ‘성구’의 입장이 농후한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화엄경』을 인용하는 것 자체가 이미 다양한 사상을 ‘융합’하고자 하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혜능의 제자인 혜충국사로부터 ‘무정불성’과 ‘무정설법’이 제창되면서 점차 남종선에 ‘무정불성’이 승인되기 시작하는데, 거기에는 이른바 ‘회창법란會昌法亂’이라는 전체적인 중국불교의 흐름을 바꾸는 중대한 사건이 개입되어 있다. 따라서 이를 이어서 ‘회창법란’의 발생과 조사선의 불성론이 어떻게 변용하는가를 고찰하고자 한다.
<각주>
(주1) [宋]道原纂, 『景德傳燈錄』 卷28, 「南陽慧忠國師語」(大正藏51, 438a), “僧又問: 阿那個是佛心? 師曰: 牆壁瓦礫是. 僧曰: 與經大相違也. 涅槃云: 離墻壁無情之物, 故名佛性. 今云是佛心, 未審心之與性, 爲別不別? 師曰: 迷卽別, 悟卽不別. 曰: 經云, 佛性是常, 心是無常. 今云, 不別何也? 師曰: 汝但依語而不依義. 譬如寒月水結爲氷, 及至暖時, 氷釋爲水. 衆生迷時結性成心, 衆生悟時釋心成性. 若執無情無佛性者, 經不應言三界唯心, 宛是汝自違經, 吾不違也.”
(주2) 敦煌本, 『壇經』(大正藏48, 344a).
(주3) [北涼]曇無讖譯, 『大般涅槃經』 卷37(大正藏12, 581a), “非佛性者, 所謂一切牆壁 瓦石 無情之物. 離如是等無情之物, 是名佛性.”
(주4) 앞의 책, 卷28(大正藏12, 533a), “心非佛性. 何以故? 心是無常, 佛性常故.”
(주5) [宋]道原纂, 『景德傳燈錄』 卷28(大正藏51, 437c-438a), “把他壇經改換, 添糅鄙潭, 譚削除聖意, 惑亂後徒, 豈成言敎! 苦哉! 吾宗喪矣.”
(주6) [宋]道原纂, 『景德傳燈錄』 卷28, 「南陽慧忠國師語」(大正藏51, 437c), “卽心是佛, 佛是覺義. 汝今悉具見聞覺知之性, 此性善能揚眉瞬目去來運用遍於身中. 挃頭頭知挃脚脚知, 故名正遍知. 離此之外更無別佛, 此身卽有生滅, 心性無始以來未曾生滅. 身生滅者, 如龍換骨, 蛇脫皮人出故宅, 卽身是無常其性常也.”
(주7) 敦煌本, 『壇經』(大正藏48, 344a).
(주8) [東晉]佛馱跋陀羅譯, 『大方廣佛華嚴經』 卷33(大正藏9, 611a), “佛說, 菩薩說, 刹說, 衆生說, 三世一切說.”
(주9) [宋]道原纂, 『景德傳燈錄』卷28, 「南陽慧忠國師語」(大正藏51, 438a), “問: 無情旣有心性, 還解說法否? 師曰: 他熾然常說無有間歇. …… 曰: 情說法有何典據? 師曰: 不見華嚴云, 刹說衆生說三世一切說.”
(주10) 淨筠編著, 『祖堂集』 卷3(補遺編25, 356a), “師曾在南陽白崖山修行四十餘年. 上元二年正月十六日奉敕, 肅宗皇帝徵詔赴上都, 千福寺西禪院安置, 後歸光宅寺. 肅宗,代宗前後兩朝, 並親受菩薩戒, 禮號國師焉.”
(주11) 앞의 책(補遺編25, 363a), “師大曆十年十二月九日終, 代宗諡號大證禪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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