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
금속에 역사문화를 새기다 /국가무형문화재 조각장 곽홍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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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리 / 2022 년 8 월 [통권 제112호] / / 작성일22-08-05 10:49 / 조회4,286회 / 댓글0건본문
불교에서 전통적으로 시신을 화장하는 의례를 다비茶毘라고 하고, 참된 수행의 결과로 다비 이후 생겨난 구슬 모양의 유골을 사리舍利라고 한다. 사리는 부처의 유골을 뜻하는 말로 신체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사리라sarira’에서 유래하였다. 때로 독실한 신도에게서도 나온다고 하지만 사리는 깊은 수행을 뜻하는 특별한 상징성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담는 용기도 각별하게 신경을 쓰게 된다(사진 1).
사리를 담는 사리기의 재질은 금·은·동·자기·유리 등 매우 다양한 편이다. 사리 용기를 이와 같은 재질로 사용하게 된 연유는 『대반열반경』에 의하는데, 석가의 보관이 금·은·동·철의 4중 관이었기 때문이다. 사리를 사리기에 넣은 뒤에는 탑이나 부도에 봉안하며, 탑에 넣을 경우에는 제1층 탑신 한가운데 넣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리기를 가장 정교하고 화려하게 표현하는 재질은 역시 금과 은이다. 금속 표면에 정교한 음양각의 조각과 입체적인 부속물이 더해지면 사리기는 사리를 담아내는 하나의 예술품으로 승화된다. 이렇게 금속에 조각을 하고, 금속제에 아름다운 무늬를 새겨내는 일을 하는 사람을 조이장彫伊匠, 조각장彫刻匠이라고 한다(사진 2).
4대로 이어지는 금속조각 예술가문
천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는 금속. 단단하고 견고하지만 결코 다루기 쉽지 않은 이 재료를 통해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있는 국가무형문화재 곽홍찬 조각장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조각장은 금속공예가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도 아버지의 아버지도 평생 줄과 정을 손에 놓지 않았다. 그렇게 할아버지 곽순복 장인과 아버지 곽상진 장인에 이어 3대째 금속공예가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직업도 성실함도 대를 이어 내려오는 것인지 곽조각장은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누구보다 이른 시각에 공방문을 열고, 주변을 정리하고 시종일관 같은 자세 유지를 위한 기초 체력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주말에는 쉴 법도 한데 그런 예외는 없다고 한다(사진 3).
할아버지 곽순복 장인은 조선 후기 경복궁 근처 지금의 인사동에 ‘곽씨공방’을 열었다. 궁에서 사용하는 물품과 양반들이 우아하게 사용할 고급 생활용품 그리고 향로와 사리함 등의 사찰용품을 제작하였다. 곽홍찬 조각장에게 금속을 주제로 아름답게 만드는 일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즈음부터 아버지 일을 돕기 시작했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단계를 넘어서며 지금의 그는 아버지, 할아버지의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타고난 DNA와 자연스러운 일상처럼 재료를 다듬는 쇠질과 섬세한 조각 솜씨를 지녔지만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도 중요했다. 그는 서울시무형문화재 은공장銀工匠 김원택 장인과 기능전승자 박기원 장인에게 전통 조각기법을 전수받았다. 현재는 사촌동생 곽찬, 친동생 곽건찬, 그리고 4대째 대를 잇는 곽건영씨가 함께 작업하고 있다.
다시 태어나는 역사
조각장의 대표작은 일본 나라현 이소노카미신궁 소장의 <칠지도七支刀>(사진 4), 조선시대 석판으로 제작된 천문도를 동판에 은입사한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사진 5)와 문왕팔괘도文王八卦圖를 동판에 은입사한 <윤도輪圖>, 보스턴 박물관 소장의 <은제 초화문 고려주자>(사진 6)의 재현품 등이다.
주로 오랜 시간을 지나며 손상된 유물들, 해외에 있어 우리가 쉽게 볼 수 없는 유물들의 원형을 재현하였다. 곽 조각장은 이런 작업에 나름의 중요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역사에서 의미 있고 중요한 유물들을 보존, 재현하는 일은 현재와 미래 세대를 위해 다시 쓰는 금속 역사 기록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아가 과거의 역사를 바로 잡는 그만의 역사운동 방식이기도 하다. 그가 재현한 74.9cm의 <칠지도>의 경우, 진품은 비록 일본에 있지만 그 재현품을 통해 백제의 우수한 금속 공예 기술을 세계에 알리고, 일본의 그릇된 역사 왜곡을 바로 잡고자 하였다.
“일본 이소노카미신궁에 소장되어 있는 칠지도는 칼 좌우로 3개씩 칼날이 가지 모양으로 뻗어 있어 육차모六叉矛라고 불렸고, 1873년 칼날에 새겨진 명문을 발견하면서 칠지도로 이름이 붙었습니다. 칼의 양면에 금상감金象嵌 되어 있는 60여 자의 글자에는 칼이 백제에서 제작되었고, 지금으로부터 1700년 전 백제 왕세자가 일본 왕에게 내린 하사품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러니 그 동안 일본이 주장하던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이 허구라는 것이 밝혀지는 것이죠. 칠지도는 고대 일본과 한반도의 관계를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역사의 산물이죠.”
백제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칠지도가 그 후손의 맥을 이어 오늘날 다시 태어나게 된 셈이다.
불멸을 위해 추사 명문을 작업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국보 제180호 <세한도歲寒圖>는 추사 김정희의 작품으로 제주도 유배 시절 북경에서 귀한 책을 구해다 준 제자 이상적李尙迪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그려 주었다. 현재 세한도는 소장자였던 손창근孫昌根 선생이 2020년 기증하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작품은 종이에 먹으로 그려졌다. 물론 박물관에서 조심스럽게 잘 보관하겠지만 종이의 생명력이란 금, 은, 동, 철 등의 금속에 비교하면 짧다. 곽홍찬 조각장은 세한도의 귀한 내용을 오래 남겨 후손들에게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가장 오랜 지속력을 유지한다는 은로 작업하였다. 아주 먼 훗날 은으로 새겨진 금속의 세한도가 남아 예전 원형은 종이에 쓰였었다는 해제가 등장할지도 모르겠다(사진 7).
곽홍찬 조각장은 추사선생이 쓴 반야심경 또한 오래 지켜야 하는 역사문화라고 생각했다. 금속으로 재탄생하기 위해서는 원본이 필요한데 아무리 수소문해 보아도 추사의 반야심경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유물 전시에 가게 되었다.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저명한 인물들의 서지, 금속 유물들이 많이 출품된 전시였다. 그 안에서 그리도 찾았던 추사 김정희의 반야심경을 발견한 것이다.
관심을 두지 않으면 그냥 지나쳤을 테지만 추사의 반야심경을 애타게 찾던 조각장에게는 그 모든 전시물속에 유일하게 빛을 발하는 보물을 발견한 것이다. 이후 조각장은 지금까지 추사의 반야심경 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중이다(사진 8, 사진 9). 수년이 걸리는 지루하고도 예민한 작업이지만 그는 하루라도 손을 놓을 수가 없다. 그가 작업하는 하루하루가 모여 우리 역사의 중요한 페이지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아마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사진 10).
곽홍찬 조각장에게는 소망이 하나 있다고 한다. 개인을 위한 소망은 아니다. 바로 우리나라에 전통미술관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도시 주요 중심부에 현대미술관은 여럿 있지만 전통미술관이 없다는 것이 상당히 아쉽다고 말한다. 우리 문화를 제대로 선보일 공간이 필요하며 꼭 만들어져 국내외적으로 많은 이들과 소통하기 바란다고 하였다. 예술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주고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곽홍찬 조각장에게 있어 그가 만들어내는 금속예술품은 역사의 책임도 함께한다는 데 특별한 의미가 있다(사진 11).
사진 11. 청동은입사 용봉문 향완(국보제214호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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